민영방송

DBS 동아방송 최후의 날

이장춘 2010. 2. 25. 04:37

 

 

 

 

 DBS 동아방송 최후의 날  

 

 

1979년 10.26이 12. 12 쿠데타로 이어지고 

80년의 봄을 무참히 짓밟은 광주학살사건으로  

권력을 한손에 쥔 신군부가 국가보위 상임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전두환이 스스로 상임위원장 자리에 앉아  

자기 뜻에 맞지 않은 모든 언론인들을 해직했으며 마침내  

모든 언론사를 통폐합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80년 언론 대 학살이었습니다.

 

 

 

 

세계 언론사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없는

 언론 통폐합은 1980년 11월 12일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언론을 확실하게 장악해서  자기들 마음대로

나라를 통치하려는 생각에서였음은 더 다시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모든 통신은 연합통신으로 통합해서 모든 언론사는 이 연합통신의 기사를

받아 쓰도록 했습니다.  언론사는 한 경영주가 두 개 이상의 매체를 가질 수

없도록 했습니다.  종교방송은 뉴스를 할 수 없도록 했고 지역에는 한 도에

하나의 신문사만 인정되었습니다. 전국의 방송사는 사실상 하나의 방송사로

통합 되었습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신문사와 방송사를 가지고 있던

소유주는 방송사를 내놓아야 해서    동아방송과   서울의 MBC를

비롯한   지역  21개 MBC, TBC-TV , 라디오와, 광주전일방송,

군산 서해방송, 대구 한국 FM방송이 KBS에 통합되고,

기독교방송은 보도부문을 KBS에 통합 시켰습니다.

 

 

이때 동아방송은 사라졌고

 

방송은 사실상 KBS로 일원화 되었습니다.

 

 땡 전시대, 암흑시대가 전개되어 민주화 될 때까지

 

부끄러운 방송 자화상이 그려졌습니다.

 

 

 

 

 

정부가 강제로 결행한 것이었지만

겉으로는 자율결정의 형식을 취했습니다.

11월 14일 신문협회, 방송협회, 통신협회로 하여금

이른바 “건전 언론 육성과 창달을 위한 결의”라는 것을

 채택케 함으로서 자율결정의 형식을 거치게 한 다음,

11월 15일 언론 개편 계획은 발표 되었습니다.  

 

 

 

 

동아방송사는 동아방송의  

통폐합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그날 (11월 12일) 오후 5시 20분경

“보안 사령관의 면회 요청”이라는 구실로 본사를

찾아온 보안사 요원의 안내에 따라 김상만 회장과 이동욱사장이

 보안 사령부에 도착했고, 그곳에 이대령이라고 자기소개를 한 수사관

으로부터 동아방송의 포기를 요구 받았다. 통폐합 조치의 일방적인 통고

였다. 포기각서의 서명이 집요하게 강요되었고 이동욱 사장은 우리로서는

주주총회의 결의가 없이는 서명 할 수가 없다. 만일 우리 마음대로 도장을

찍는다면 배임이 된다. “ 등의 항의로 이를 거부했다. 이 같은 실랑이는 

3시간 반 동안 계속되었다. 보안사 요원은 이병철 삼성회장의

동양방송 포기각서까지 내 보였다. 결국 이 사장이 그곳에서

 준비된 내용대로 포기각서를 받아든 다음 이 사장과

 김 회장이 차례로 서명하고 무인을 찍었다.

6개항의 동아방송 포기각서였다.

 

동아방송사에서 옮겼습니다.

 

 

 

 

 다른 방송사도 이런 절차를

거쳐서 강요된 포기각서를 받았고 그 결과가

15일에 발표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동아방송을

비롯한  통폐합 대상 방송사는 1980년 11월 말까지만 방송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별방송은 엄격한 규제 속에 11월 30일 하루

 동안 실시되었습니다. 지금 듣고 계시는 방송은 동아방송 고별방송의

일부분입니다. 동아방송사는 그날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아방송의 영광과 여한이 역사 속에 묻히며 사라지는

 순간 광화문은 연주소에서는  스위치가 꺼지면서 공허의 무거운

적막이 흘렀으며 개봉동 송신소에서는 김성열 상무의 선창

으로 봉송신소 직원들이 동아방송 만세 삼창과 함께 

모두 낙루하면서 사가를 합창했다.

 

 

 

 

한편 정든 동아일보사를 떠나 낯선 KBS로

옮기게 된 동아방송 직원들은 고별 특집방송이

진행되는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구내식당에  마련된

“동아방송 석별의 모임”에 참석했고 이날 한국방송 공사로부터

 통보하여 온 인사발령 내용을 접하게 되었다. 1980년 12월 1일

오전 9시 동아방송  사우들은 동아일보사 임직원들의

애절한 전송을 받으며 그동안 심혈을 쏟아

봉직했던 일터를 떠나갔다.

 

동아방송사에서 옮겼습니다.

 

 

 

 

 언론학자 강현두 교수님의

동아방송이 사라진데 대한 글 한 토막 올리며

 실록 동아방송 18년사 글을 마칩니다.

 

 

 

 

“언론 통폐합이 가져온  

비극이라면 동아방송이 사라졌다는  

데 있다.  1960년대  초 국내에서 아직 방송의 

 언론적 인식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세계적으로  

드문 매우  언론적인  방송이었으며,      동아방송의  

프로그램은 격조와 창의성이 넘쳐 있었다.”

 

 

동아방송에 관한 전체적인 글은

 마칠지라도 기회 될 때마다 수정 보완하고

관련 글들을 써 올리려고 합니다. 계속 좋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아래 영문자를 클릭 하시면

동아방송 얘기를 더 보실 수 있습니다.

 

 

실록 DBS 동아 방송 18년사 ( 1 ) 개국 편

http://blog.daum.net/jc21th/17780369

 

실록 DBS 동아 방송 18년사 ( 2 ) 방송인물 편

http://blog.daum.net/jc21th/17780370

 

실록 DBS 동아 방송18년사 (3) 시설 편

http://blog.daum.net/jc21th/17780371

 

동아방송의 목소리, 아나운서들 그때 그 모습

http://blog.daum.net/jc21th/17780464

 

DBS 동아방송의 수난 앵무새 사건

http://blog.daum.net/jc21th/17780377

 

실록 DBS 동아 방송 18년사 그때 그 뉴스

http://blog.daum.net/jc21th/17780376

 

DBS, 동아방송 그때 공개방송과 사진모음

http://blog.daum.net/jc21th/17780375

 

DBS 동아 방송 최장수 프로 유쾌한 응접실

http://blog.daum.net/jc21th/17780374

 

DBS, 동아방송 18년 그때 그 방송 ( 1 ) 종합 편

http://blog.daum.net/jc21th/17780372

 

DBS 동아방송, 자유언론 실천운동과 광고 해약사태

http://blog.daum.net/jc21th/17780378

 

DBS 동아방송 최후의 날

http://blog.daum.net/jc21th/17780379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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