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방송

DBS 동아 방송 최장수 프로 유쾌한 응접실

이장춘 2010. 2. 20. 05:06

 

 

 

 

DBS 동아 방송 최장수 프로 유쾌한 응접실

 

 

 

동아방송과 운명을 함께한

 동아방송 최창수 프로 그램이고

전영우 아나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회를 맡아 방송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한 아나운서가 같은

 프로그램을 18년이나 이어온

경우는 없습니다. 

 

1963년 5월 4일 토요일 밤

10시 15분부터 11시까지 45분간

첫 프로그램답게 "방송"이라는 주제로

시작된 프로그램은 동아 방송의 끝나는 날 까지 

계속되어 877회가 방송 되었습니다. 지금

들려오는 프로그램은 그때의

첫 방송입니다.

 

 

KBS에 근무할 때부터 이런 포맷의

프로그램을 구상했던 노승병 P.D의 창안과

 KBS에서 재치문답이나 비밀의 문등에서 공개방송

경험을 쌓았던 전영우 아나운서실장의 기발한

사회솜씨는 이 프로그램을 성공으로

이끄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진명여고 안에 있던 삼일당을 비롯해서

시민 회관 (지금의 세종문화 회관) 소강당,  또는

야외 공개방송, 대학 순회 공개방송 등으로 진행되어

수많은 청중들이 운집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화제의 빈곤이나 산만한

프로그램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2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출연자와 포맷이

 정비되면서 새롭게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그 시대 스스로를 국보라고 하시던,

세상이 다 알아주던 양주동선생님의 박학에

뛰어난 화술과 유머, 드라마로 뭇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던  당대의 최고 극작가 이서구 선생님,  지성인

김두희 교수 등이 단골손님으로 출연하고 매주 바뀌며

출연하는 새 손님에 거물급 정관계 인사나 대학교수,

예능인, 기자, 기업인, 노동자 등 전 분야에

걸친 각계 인사가 출연했습니다.

 

프로그램의 재미를 더 해주고

지루함을 덜어 주기 위해 중간 중간에

4명 내외의 가수가 출연한 노래 손님은 그때

유쾌한 응접실에 출연하지 못하면 일류가수가

 아니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동아일보에 대한 탄압이 심할 때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출연인사가 바뀌거나

줄어들기도 했는가 하면 TV방송 시대가 열리면서

 라디오의 연예 오락프로그램이 어려워지던 시절에도

청취자의 사랑을 받으며 프로그램은 계속 이어져

동아 방송이 끝날 때 까지 계속되었습니다.

 

 

1968년 제1회 방송 프로그램

콘테스트에서 대상인 최우수상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첫회부터 이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았던 전영우 아나운서는 KBS아나운서 실장과

 수원대학교 학장을 거쳐 지금은 방우회 부회장님으로

계셔서 방우회 이사인 저는 자주 만나 그때

 그 얘기를 듣습니다.

 

어려운 여건에도 유쾌한 응접실이

18년이나 계속 될 수 있었던 것은 단골손님

김두희 교수가 평했듯이 神技의 사회솜씨가

큰 몫을 했을 것으로 봅니다.

 

 

오랫동안 이 프로그램을 맡았던

박재권, 안평선님은 1980년 방송 통폐합 때

KBS에 와 방송 간부를 지냈고 안평선님은 지금도

 KBS 사우회 합창단 활동 등 여러 모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합니다.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사회를 맡으셨던 유쾌한 응접실

산증인 전영우 아나운서의 얘기를  옮기는 것으로

오늘 글을 마치겠습니다.

 

 

“유쾌한 응접실”은 공개방송 프로그램이다.

 교양과  오락이 섞인 성격의   토크  프로그램이다.

개국 초부터 끝까지 주간 프로그램으로 편성돼 있었으나

18년 가까이 최장수를 누린 생이다.  그간의 우여곡절이

없던 바 아니나 극작가 이서구, 국문학자 양주동,

대학교수 김두희를 단골로 매회 새 손님,

이야기손님, 노래 손님이 교체되었다.

 

물론 출연인사는 여러 각도의

기준에서 엄선의 단계를 거쳐 신중하게

선정되었다. 때의 고금, 양의 동서를 종횡무진

누비며  지식, 상식, 교양이 어우러지고

웃음과 감격과 감동이 꽃 피었다.

 

사회를 본인이 맡게 된 배경은

개국 초 공개방송이 봄을 이루던 시절이라

공개방송이 매우 많았는데 다른 프로그램은 모두

후배들이 맞기로 하고 이 프로그램은 포맷이

복잡  다양해 아무도  맞지  않게  되자

할 수없이 본인이 떠맡게 되었다.

 

제작 프로듀서는 노승병,

배종우, 박재권, 안평선 등인데 박재권이

가장 오래 담당했다.     그리고 유쾌한 응접실

사회를 맡은 연고로 2, 3차례 사장의 표창을 받았고

이 프로그램이 당시 전국 프로그램 콘테스트에서

최우수 프로그램의 영예를 차지한바 있다.

 

 

강물처럼님 글


2017.10.31 18:23

이서구 선생님의 구수하고

정겹던 입담이 그립습니다.

복혜숙 선생님도 출연

하셨지요


 

 

 

 

1981년 5월 20일 동아일보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유쾌한 응접실2.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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