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방송

실록 DBS 동아 방송18년사 (3) 시설 편

이장춘 2010. 2. 17. 19:10

 

  

 

실록 DBS 동아 방송18년사 (3) 시설 편

 

 

동아 방송국은 서울 광화문 네거리

 동아일보사 4층과 5층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개봉동에 있던 송신소는 처음에 10Kw, 1230Khz로

방송 하다가 뒤에 50Kw, 792Khz로 증강 되었습니다. 

 송신소가 주변보다 낮은 습지에 자리하고 있어서

홍수가 날 때는 방송이 정파되는 등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한건물안에 있는 신문사 인쇄소에서는

윤전기가 돌고 주변에 소음이 많았던 광화문

동아일보사옥상에 2개 층 288평의 건물을 증축해서

방송국으로 사용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때로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건물 2개 층을 증축하는데

 1년이나 걸려 사옥 증축에 얽힌 얘기들이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을 거쳐 철탑 30.3m까지

완공된 것은 1962년 12월 26일이었습니다.

 

연주소 주요시설로 3개의

정규 스튜디오와 2개의 보조 스튜디오가 있었습니다.

뒷날 별관에 제 4 스튜디오를 마련했습니다.  

 

 

건축은 당시의 이름 있던

 이 천승님이 진두지휘 했고 연주소와

송신소의 시설은 신 광우님이 설계해서 추진했습니다.

개봉동에 마련한 광활한 습지 9만 5000평에 2층의 송신소 건물

 96평의 송신소건물과 120m아테나를 세웠습니다. 송신소 건물은

 뒤에 증축되어 200평의 본 건물과 전력실, 발전실이

 들어간 별관이 있었습니다.

 

 

동아 방송은 TV방송, FM방송,

지역방송설립에 힘을 기울였지만 정부의 허가가

 나오지 않아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동아 방송

18년사에서 가장 큰 시설의 변화는 50Kw출력증강과

주파수변경, 미도파 스튜디오 개설을

들 수 있겠습니다.

 

 

“보다 맑게 보다 멀리” 라는 기치를 내건

 동아 방송이 초기부터 직면한 것은 낮은 출력과

혼신이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심해진 혼신은 그 근본적

이유는 방송국을 세울때부터  일본 나가사키와 주파수가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방송국이 청취자들의 의식속에

자리잡은 주파수를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결국 그 길을  선택 할 수밖에 없어서   개국 때

사용하던 1230Khz를 790Khz로 바꾼 것은 

1966년 12월 4일이었습니다.

 

 

지역방송 확장이 허용되지 않던

동아 방송은 출력증강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자체 제작한 50Kw송신기를 설치하고 동아 방송

개국 5주년이 되던 1968년 4월 25일 출력이 50Kw로

 늘어나면서 청취권이 대폭 확대 되었습니다. 동아방송은

이 출력증강이 개국 당시의 김격에 못지 않은

기념비적인 순간 이었다고 합니다.

 

 

 

 

 

 

미도파백화점 도로가에 두 평 남짓 마련된

동아 방송 스튜디오는 시작부터 많은 청취자들이 모여 들어

명소가 되었습니다. 매일 낮 12시 10분부터 1시까지 음악의 산책과

경음악의 벤치, 오후 4시 30분부터 5시까지 행운의 리퀘스트  5시

30분부터 5시 반의 에이트를 직접 생방송해서 청취자들의

관심을 끌어 다른 방송국에서 그런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여의도에는 KBS를 비롯해서

MBC, TBC, DBS 동아방송이  방송국을 

새우기 위해서 힘을 기울였고 동아방송국은

마련된 부지에 건물을 짛기 시작했지만 준공전에

방송이 통폐합되어 그 건물은 동아 일보사에서

활용하다가 요즈음은 새로운 주상

복합건물이 들어 섰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동아방송 그때의 연주소 시설

 

   

 

  

 

 

  

 

  

 

 

 

 

 

 

 

 

축하프로와 사가.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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