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공간의 방송

해방 후 첫 3.1절 행사 그때 그 감격과 ! 중계방송

이장춘 2010. 2. 8. 22:25

 
 
 
 
 해방 후 첫 3.1절 행사 그때 그 감격과 ! 중계방송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
 1919년 3월 1일 ! 암울한 세상에서 벗어나야
된다며  모든 국민들이 외쳤습니다.  국내에서는 물론
  만주에서, 중국에서, 소련에서, 미국에서 동포들이 있는
곳이면 목이터져라 독립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로부터 27년의 세월이 지나 1946년 3월 1일
해방된 조국에서 처음으로 삼일절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압박과 설움의 세월을 지나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모든
국민은 손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집집마다 태극기를 걸고 방송과 신문은  3.1절
얘기로 채워졌습니다.  군정청과 국민들의 추앙을 받는
이승만, 김구, 김규식님 등이 大韓國民代表民主議院을 구성하고
 보신각에서 행사를 갖기로 해서 보신각을 중심으로 한 종로에는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든 사람들로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신탁통치를 

두고 좌, 우대립이  극심해지면서 삼일절 행사마저 보신각과 남산에서 각각

 열리는 웃지못할상황이 벌어져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에도그런 비슷한 현상이 빚더지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합

니다.  그때의  신문지면을 올렸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위의

신문은 3월 2일자이고 아래신문은 3월 1일자 입니다. 석간이어서

 기사가 하루씩 늦었습니다. (사설부문은  앞부문만

 나타난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1945년 해방의 날에 마땅히 울렸어야 할
보신각종소리가 때는 늦었지만 이날따라 더 큰 의미를
 지닌 채 멀리 멀리 울려 퍼졌습니다.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 하셨던 
민족대표 33명의 고귀한 애국정신을 추모하는 뜻에서 생존하신
 민족대표를 모시고 33번의 타종이 있었고  이로부터
 해마다 타종은 있어 왔습니다.
 
그때 행사모습과 중계방송을 하는
모습이 담긴 다음 사진은 그때 실황중계방송에
 임하셨던  대한민국 방송기자 1호 문제안선생님 (91세)이
큰 보물로   여기시면서  간직하시고 계시는   사진입니다.
그때의 행사 모습과 함께 문제안 기자. 윤용로 아나운서의
 중계방송 모습을 보는 참으로 귀중한 사진이어서 
 첫 머리에도 올리고 여기에도 올렸습니다.    
 

 


  다음 시진역시 방송사에 남을 훌륭한
사진입니다. 3.1절 오후 2시부터 덕수궁 중화전에서
3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던 여학교 합창 경연대회실황을
중계방송 하는 모습입니다.  이 사진의 의미는 6.25때 납북당해서
그 모습을 볼 수없는 윤용노 아나운서와 전인국 아나운서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고 또 그때의 천부적으로 테어난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 호기수 아나운서의 모습이 담긴 사진입니다. 호기수
 아나운서의 완전한 모습은 아니어도 그토록 찾으려던
 호기수 아나운서의 모습을 이 사진에서 보고
기쁜 마음으로 간직하고 있고 글을 쓸때
늘 활용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의 뒷면에 문제안 선생님이
친필로 기록해 놓으신 내용입니다. 짧은 글 속에
그때의 그 심정을 잘 묘사 해 놓으셨고 사진을 활용하는
저로서도 그때 그 모습을 어렴풋이 나마 짐작하게
하는 부문입니다.  이 사진을 사용 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고마운 말씀 올립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오색의 인생항로,황해,백설희.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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