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선생님과 방송

이장춘 2009. 11. 6. 06:06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선생님과 방송

 

안익태님은 1920년대 경성방송국이
시험방송을 하던때부터 1930년 미국으로
먼길의 유학을 떠나기까지 홍난파님이나 황재경,
현제명, 박경호, 안기영, 김원복님등과의 음악활동을 했고
미국 유학으로  비롯된 오랜기간의 해외 활동을 통해서
 세계 각지에서  우리나라 명예를 드높혔습니다.  나라의
상징인  애국가나  코리아 환상곡등 수많은 곡을 작곡
연주했습니다. 1957년, 1960년등  KBS초청  귀국
공연이 있어 국민들과 더 친숙해졌습니다.  
 

 

 
1935년에 작곡한 애국가는
일제 강점기에 해외에서 공부하면서
 애국가를 외국의 곡에 붙여부르던 상황이
가슴 아파 작곡했고 우리민족정신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코리아 환상곡을 만들었습니다.
코리아 환상곡은 선생님이 가시는 곳마다
연주곡목에 넣었고  1955년 이승반대통령
탄신80주년을 맞아  선생님 지휘로 
국내에서 연주되어  갈채를
 받았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탄신 80주년에

 

 

  

 1960년에 귀국하셨을 때는
경복궁에서선생님의 지휘로 KBS관현악단의
 코리아 환상곡이  힘차게 울려 퍼지면서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방송에 출연해서 삶의 얘기를 
국민들에게 들려 주셨고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문화포상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포상행사는 이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5.16후 군사정부에서도
선생님을 초청해서 국내 음악
활동이  전개 되었습니다. 이때 KBS
교향악단과 협연한 그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올렸습니다.



  

 

그로부터 코리아 환상곡은 자주, 자주
국내에서 방송전파를 탔습니다. 1960년대에
KBS에 국내외 동포를 대상으로 날마다 방송하던
 조국찬가라는 15분의 애국시 낭송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코리아 환상곡으로 시작되어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애국시를 낭송했고 이 프로그램이 끝나면서
힘찬 연주부문이 끝 씨그널로
장식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가슴 벅찬
감동과 애국심이 솟아나곤 했습니다.  제가드나드는
스튜디오에서 이 프로그램이 녹음 될 때면 그 자리에 지켜 서서
감상하던 시절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1906년 평양에서 태어난 선생님은
평양 숭실학교를 다니셨고 일본에 건너가
 중학교를 마치고 國立음악학교에 들어가  첼로를
배우면서 국내에서도 음악활동을 했습니다.
 
1930년 미국에 건너가 필라델피아
커티스음악학교에 입학, 첼로와 작곡을 배우는 한편
신시내티교향악단의 제1첼로 주자로 활약하셨고 1934년
헝가리로 가셔서 작곡을 배우며  민족주의 정신과
애국심이 더욱 깊어 지셨다고 합니다.
 
이듬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선생님이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만나 지휘에 관한 공부를 했고
 이무렵 애국가를 작곡했습니다.
 
1940년까지 슈트라우스의 보조지휘자로 있었지만
그 이후부터 독일에서 독자적 지휘활동을 하고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에스파냐 여인 로리타 탈라베라 여사와 결혼,
에스파냐 국적을 얻고 마드리드 마욜카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었으며 영국·이탈리아·미국 등의 저명한 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하기도 하셨습니다.
 
1965년에 계획되었던 제4회 국제 음악제가
 취소되면서 선생은 큰 충격을 받았고 그로부터
병을 앓기 시작했지만 그해 7월의 알버트 홀에서 열린
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의 연주에 참여 하셔서
‘논개’ㆍ‘비창’등을 지휘 대성공을 거두어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선생님의 마지막 연주였고
1965년 9월 16일 60세의 젊은 나이로 눈을 감으셨습니다.
“나는 ‘한국 환상곡’이 온 세계에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이 평생소원이오.
 이 작품에는 조국을 그리는 나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소. 나는
내 음악을 통하여 조국의 이름을 만방에 빛낼 결심이오.”
 
선생님은 부인 로리타 탈라베라에게
이 같이 말하고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오케스트라를
연주할 때마다 한국을 세계에 더 많이 알리려고  애쓰셨다고
합니다.  ‘한국 환상곡’에는 우리 민족의 정취, 일제의 탄압,
고통 받는 슬픔, 조국의 광복, 한국 전쟁으로 인한 민족의
 수난 등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외국에서 활동 하시면서도
 조국을 세상에 알리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생을 살 으셨습니다.  작품으로는 애국가를 비롯해서,
한국 환상곡, 강천성악,   첼로 곡 한 송이 흰 백합화,
애국선열추도곡 등 다수가 있습니다.
 
 

 

1920년대 국내에서 같이 음악활동을 하시던 박경호님(왼쪽 두번째),
황재경(오른쪽 두번째)님을만나는 자리에 마침 6개월간의 미국방송연수를 받던방송원로 노정팔님
( 왼쪽 )과  최창봉님  (오른쪽)이 함께한 자리입니다.

 

 
 
안익태선생님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이고 우리민족의상징인
애국가 작곡가로 우리 모두에게 추앙받는 애국자입니다.
1930년 미국으로 먼 길의 유학을 떠나기까지 우리나라와 일본을
오가면서 음악활동을 하셨고 해외생활중세계 각지를 돌아 다니시며 
음악활동을 하셔서 세계적인음악가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얼이 깃든애국가, 코리아 환상곡등 수많은 음악곡과 함께
 그의 이름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1950년 바르셀로나 시립 교향약단 연주 모습입니다.

 

국립 현충원 선생님 묘소입니다.


 

안익태 선생님 부인 로리타 탈라베라등 가족과 함께 한 모습

 

 

배르린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 연주 모습입니다. 

 


화    보



1962년 박정희 최고의장 초청
국내활동중 KBS교향악단과 협연모습 






방우회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코리아 환상곡 필 하모니-1.wma

코리아 환상곡 필 하모니-1.wma
2.31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