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영원한 방송인 장기범님 ( 3 )

이장춘 2009. 8. 5. 03:41



 
영원한 방송인 장기범님 ( 3 )

1957년 KBS아나운서실장이 되어
뉴스를 비롯해서 주요 공개방송, 중계방송등으로
그의 인기가 절정에 달하고있을때 1959년  VOA
미국의 소리방송을 위해서 떠났습니다.
 
미국의 소리방송은 1942년에
처음방송을 실시했고 그해 8월 우리말
방송을 실시한 이래  오랜기간  우리와 인연을 
맺어오던 방송으로 우리 머리속에는 이승만박사의
그 유명한 싸워라, 이겨라를 웨치던 그 방송과 6.25때
우리나라를도와주던일을 비롯해서 아침시간이면
조국에 계시는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로
시작되던 그 목소리가지금도 귓전을
스치는 그 방송입니다.
 
  오랜기간 황성수, 박경호, 민재호,  황재경,
이계원등 이름있는 분들이 방송에 참여했지만
그때는 엄격한 의미에서는 개인적인 계약에 따라
간것이고 국가간의 협약에 따라 아나운서가  파견된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이때는 방송을 하는것도 중요했지만
선진방송과 접할 기회가 극히 적었던 시절이라
선진방송을 도입하는등 여러면에서
의미를 지닐때였습니다. 
 
 
 2년간의 파견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방송과장이 되었습니다.  그때의 방송과장은
보도방송과 아나운서실을 총괄하는 막중한 임무를  
자리여서 방송현업에서는 자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VOA에 계실 때 얘기 가운데  자주 하시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43개국의 여러 국어로 세계를 향한 방송을 하는 만큼
인종 전시장 같은 속에서 언어별  방송경연장 같은
 감을 주었다는 것과 우리방송인 들이 너무
젊다는 것이었습니다.    
 
VOA에는 백발이 성성한 방송인들이
와 있는데 우리는 나이가 좀 들면 현업에서 물러나는
경향이 있어서 전문성을 살리기어려운 아쉬움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님은 가능한한 현업에도 참여해서
60년대 귓전을 울려준 재치문답과 에치켙선생을
  담당 했지만 1960년대 중반 춘천방송국장을
 비롯해서   바쁜일을  하게되어  현업은
더 이상 지속  할수가 없었습니다.
 


 

60년대 후반 TV제작과장과

라디오 제작과장을 거치는 동안 1968년

7월 방송 3국의 통합이 이루어졌고 그 후 부이사관으로

부산방송국장을 거쳐 1970년  10월 1일 중앙방송국

보도부장직을 맡았습니다. 지금의 보도본부에서

하는일과 아나운서실에서 하는일을

총괄하게 된 것입니다.

이 때 보도부장 밑에 차장

그리고 그 밑에 부장이 다섯 사람 있다가 

다시 열 사람으로 늘어났습니다.  이 무렵부터

방송 중심축이  라디오에서 TV로 옮겨가는 

갈림길이기도  했습니다. 


국가적으로는 1971년 4월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3선 당선에 어려움을 겪으데다가

 곧 이어질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그 흐르는 물줄기의  

방향을 좌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는  KBS보도부장은

   장기범님  자신이나   정치권이나  모두에게  불편 할 수밖에

없었을 때 보도부장 자리를 뒤로 하고  1971년 5월

대구 방송국장으로 옮겼습니다.

 

 

1973년 3월 KBS가  공사로 바뀔때

 라디오 국장을 맡았고 이어 연수원장, 방송위원,

심의위원, 그리고 1980년에는 두번째의 부산방송국장을

 지내신후 1982년 34년간의 방송생활을

마치셨습니다.

 


돌이켜 생각 해 보면 직위와

직책을 놓고 종종 윗사람또는 권력자의

비위를 의도적으로 맞추려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지만 이런 것과는 거리가 있으셨기에 고비마다
어려움을 겪거나 기회를 날리는 경우들이 있으셨습니다.
직위와 직책을 떠나 KBS의 방송인이라는 한길만을 지키셨고

대한민국 모든 아나운서의 사표로,나아가서   모든  

방송인들이   귀감으로 삼을 수 있는

 삶을 이어 오셨습니다.

명성 가지신분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KBS를 떠나시는경우가 많던 시절에도 거기에는 귀를

기울이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리 저리 비위를 맞추면 더 좋은

자리도, 더 잘 살 수도있으셨겠지만 옳지 않은

일은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님의 직위는 비록 KBS의 국장이나

연수원장에 머무르셨지만 행적이나 정신,

인품은 모든 방송인들의 사표가 되고 모든 국민의

 심금을 울려주며 그 시대를사는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명성을

지니셨지만 정작 님은그것을 자랑으로

 여기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사시던 님은 돌아가실 때도

 사람들 모르게 가셨습니다.  벚꽃 필 때 대전에

다시오시겠다던 님은 주위 사람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1988년 3월 18일   그날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님은

가셨지만 그 공적은 길이 빛나고 님을 따르던 많은

방송인이나 후배 아나운서들은 살아계시던

그날을 얘기합니다.


 

 

지금도 님이 태어 나셨던

 5월 5일이 되면 그날을  전후해서 님을 

따르던 분들이 같이 모여 님의 묘소를 찾아

 그 정신을 기리고 유덕을 되새겨 보곤 합니다.

이런 모습이방송계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모습인 것 같습니다.

한국 아나운서 협회에서는

기금을 마련해서 님의 공적을기리는

장기범상을 마련하고 매년 연말에 열리는
한국아나운서 대회식장에서 시상을 하기도 합니다.
가신지 17년이 더 지났지만 그  목소리!  그  재치! 그 모습!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 하고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그 명성은 아직도 살아 있고 또 그날을
그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묘소 앞에 새워진 묘비는

님의 삶을 압축해서묘사해 놓은 글이라고

 생각되어 여기에 올려 봅니다.

시대의 아픔을

 가슴으로 삭이신

은둔의 지사

난세를 학처럼

사신 위대한 상식인

방송의 한 시대를

풍미하시며

모든 방송인의

사표가 되신 준엄한 선비

그러나 달과 술을

사랑하셨던 낭만인

당신은 한국의
영원한

 아나운서!

 

 


 

몸은 KBS 한곳에서 한길을

걸으셨지만 모든방송사의 벽을 넘은

대한민국 전 아나운서의길잡이 이셨고

대한민국의 방송인 이셨습니다. 님은 가셨어도

 그 정신과 뜻은 모든 방송인들의사표가 되면서

 영원한 방송인으로 길이 빛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글을 마치면서

 
장기범님을 따르던 가까운 후배 분들도

많고 곁에서 지켜보신 분도 많아서 글을 쓰기가
망 서려 졌고 쓰면서도 여러모로 미흡하다는 점을
느꼈지만 피상적이 나마 회원님들과 같이 가신님을
 다시 한번 생각 해 본다는 마음으로 써 본 것입니다.
미흡한 점이나 잘 못된 점들이 있으면 또 보완 할
기회도 있을 것이므로 앞으로도 계속 관심
갖으시고 성원 해 주셨으면 합니다.

님의 영원한 명복을 빕니다.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 해 주신
정석균님,여러 가지 조언과 자료제공에 노력을
 기울여 주신  김수웅 사우회 회장님, 그리고 이 편지를
보내는 중에도 격려와 성원을 보내주신 김두석님을 비롯한
회원님들, 그리고 미흡한 이 편지를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장기범 선생님 관련 글 더 보기

 

 

영원한 방송인 1

http://blog.daum.net/jc21th/17780156

 

영원한 방송인 2

http://blog.daum.net/jc21th/17780157

 

영원한 방송인 3

http://blog.daum.net/jc21th/17780158

 

장기범 아나운서를 아십니까? / 그때의 국회의원 이계진님의 글

http://blog.daum.net/jc21th/17780163

 

한시대를 풍미한 장기범 / 당시 방우회장, 문시형님 글

http://blog.daum.net/jc21th/17780160

 

장기범 선생님 VOA생활 / 이세진 아나운서의 글

http://blog.daum.net/jc21th/17780162

 

장기범아나운서 사회로 진행된 재치문답

http://blog.daum.net/jc21th/17780187

 

장기범 아나운서 가신지 18년

http://blog.daum.net/jc21th/17780159

 

장기범 아나운서 가신지 22년

http://blog.daum.net/jc21th/17780452

 

장기범 아나운서 가신지 24주년의 날에

http://blog.daum.net/jc21th/17781238

 

장기범선생님 삶과 가신지 25주년 추모모임

http://blog.daum.net/jc21th/17781725

 

 

 

 

 

미국의 소리 방송 시절입니다'

 

1956년 멜번 올림픽 출발전 여의도 공항에서 입니다.


 

멜본 올림픽 스튜디오 입니다.

 



 앞줄
장기범님과 
오른쪽 부인 박종설 여설, 그 오른쪽은 아들입니다.
이 사진은 KBS부산사우회 구연도님이 보내 주셨습니다.
 
이곳을 찾으신분 모두 평안하심을 빕니다
  
 
 


 SUMMER / Nella Fantasia ~ Fragile  

- 닉 잉그만(지휘),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방우회의 지도를 받아 글을 쓰는 춘하추동방송 불로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