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살이 3개월만에 서울로 온 중앙방송국
1950년 9월28일 서울이 수복되면서
방송선발대도 함께 서울에 들어왔다. 방송선발대는
이종훈을 단장으로 권오진, 송광조등의 기술진과 아나운서로는 유일하게 춘천방송국에 있다가 대구를 거쳐 부산에서 피난방송을 했던
전성병 아나운서가 포함되었다. 정동에 있던 방송국은 잿더미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서울시민에게 소식을 알릴 수있는 방법을 강구해서
시청앞 광장, 광화문등지에서 가두 확성기 방송을 실시했다. 아래는 사직공원에 설치된 스피카다. 스피카 윗 부문에 중앙방송국이라고 쓰여있다. UN군사령부 방송소속으로 서울에 온 민재호 아나운서의 방송팀이 반도 호텔에서
군용 BC-610, 300W로 하루 한 시간의 방송을 한 것은
10월 1일이었다. 방송 송출이 이루워지려면 연희 송신소를 조속히 복구해야 되어서 이종훈을 대장으로 한 선발대는 연희 송신소장을 지내다가 체신부로 옮긴 이인관의 안내를 받아 송신소 송출방안을 강구하면서 우선 연희송신소에 비상스튜디오를 열어 방송을 실시한것은 10월 3일이었다. 첫 방송을 한 아나운서는 피난길에 오르지 못하고 서울에서 숨어 살았던 위진록 아나운서로 위진록 아나운서는 6.25발발 첫 뉴스를 보냈던 아나운서다.
임시 연주실로 쓴 대한방송협회 건물
잿더미가 된 정동방송국 옆에 있던 대한방송협회 사무실 건물을 임시방송국으로
개조해서 비상 스튜디오를 미련하고 방송을 할 수 있게
된것은 10월 10일경이었다. 대한 방송협회에 방송시설 공사는 계속되어 3층응접실을 제1스튜디오로 꾸미고 사무실로 사용
되었던 공간을 제 2. 3연주실로 개조해서 11월 25일 완성되어 이때부터 정동방송국과 연희송신소를 연걸한 정상적인 전파가 발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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