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방송국 편성원 배준호와 NHK 한국전 종합뉴스
내가 결혼한 지 꼭 두 달째 일요일이 6.25가 된다.
부민관(70년대의 시민회관 별관임)에서 공연하는 무용을
구경하러 가기로 아내와 약속한 날이다. 38선에서 전투가
벌어졌다기에 처음에는 항상 있는 전방의 충돌로 대단치
않을 것으로 생각 했으나 부민관 공연도 중단되고
오후가 되면서 심상치 않은 사태로 변해갔다.
오후 늦게 방송국에 나가 보았으나
정확한 정보가 들어오자 않아 그저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이런 상태가 27일까지 계속 되었는데도
27일 낮 1시경방송국에서 근무하고 있자니
배씨를 찾는국제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보도과로 왔다기에 편성 과와 방이 다른
보도 과에 가서 받아보니 NHK 국제부 부국장인
나카무라라는 사람한테서 온 전화였다. 나카무라 부국장은
필자가 1949년 미국에 방송시찰차 갔을 때일본 NHK대표로
온 6명중에 한 사람이었으므로잘 아는 사이였다.
생각지도 않던 사람에게서 온 전화이고
미국서 해어진 지도 얼마 안 되던 터이라 서로
반갑게 안부를 주고받고 나서 전화건용건을 얘기하기
시작하는데 지금서울의 상황은 어떠한가?
전차는 다니는가? 상점은 열고 있는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이런 질문이다.
외국에서 온 전화인데다가
그것도 보도 기관에서 온 전화이고 보면
내 마음대로 대할 수도 없는 터라 당시 방송과장이던
민재호씨와 상의 한 끝에 국군의 사기는 왕성하며 지금현재
국군은 의정부를 탈환하고 북진 중에 있다 ( 국방부 발표대로 )
시내 전차는 물론 상점도다 문을 열고 있어
평상시와 큰 차이가 없다.
앞으로 2-3일이면 평온을 찾게 될 것이다.
라고 답변하면서 이상하게 땀이 많이 나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후에 알고 보니 “배 씨입니까 로부터 서로 주고받은
내용이 전부 녹음되어 그날 밤 NHK 9시 종합뉴스시간에
생생하게 방송 되었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그 다음 해 51년 부산 살이 에서 맞이한
6월 25일 다시 이 녹음을 방송하면서 피난살이 현황과
1년 전을 비교하면서 한국사정을 보도 하더라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식은 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배준호님 약력
배준호님은 해방되고 얼마 안 된
1946년 1월 중앙방송국 편성과에 들어와
편성원 ( 지금의 프로듀서- PD)으로 어린이 합창단을
처음으로 구성하고 동요를 보급하는 등 힘을 기울였고
6.25직전 6개월간 미국 시찰 연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중앙방송국 편성계장, 제2방송과장, 광주방송국장,
부산방송국장 등을 엮임했습니다.
TBC에 가셨다가 1975년
KBS심의실로 돌아와 복식 고증 등의
일을 보다가 1980년 퇴임 했고 1990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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