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방송국의 6.25 마지막 방송과 피난길
6월 27일 날이 어두워지면서 멀리서 들려오던
대포소리는 점점 가까이 들렸다. 한치 앞을 바라다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가운데 대전방송국에서는 중요 방송이 있으니 무조건 대전의 방송을 받으라는 전화가와서 한참동안 실랑이들 하다가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음을 알고 유선 회선으로 육성을 받아보니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방송 내용이었다. 긴급상황에 처해서 대통령이 실시코자하는
방송인지라 어느 방송보다 우선시되는 것이어서
몇번이고 반복 방송했다. 이날 밤의 방송이라는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방송과 행진곡, 군가 등의 레코드를 틀고 군이 제공하는 전황을 보도하면서 애국시 등을 낭송하는 것이 모두였다. 이날의 방송시간이 끝나고 만약에 대비해서 방송 거부 장치를 해 놓고 비상 방송기기를 추럭에 싫어 놓고
있었다. 세벽 1시가 넘어 더 이상 방송국에서 머무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군에서 나온 사람들과 함께 추럭에 올라타고 잠시라고 생각한 피난길에 올랐다.
영등포 우체국 정도에서 비상방송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송신소에도 그렇게 당부 해 놓았다.그러나 상황은 생각과 너무 달랐다. 남산이나 용산에서 쏘아대는 공산군의 예광탄은 영등포를 향해서 수 없이 나르고 있었고 칠흑같은 어둠에 비는 억수같이 쏟아졌다. 그 빗속을 해쳐 한강다리를 앞에 두고 헌병들이 길을 가로막았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자동차가 한강을 건널 수없었다. 자동차를 길에 놓고 갈 수밖에없었고 비상방송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여기서 부터 각자 행동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여덟사람의 방송인은손에 손을 잡고 한강다리에 ㄷ자로 설치된 사과상자같은 다이나마이트 상자를 보며 한강을 건넜다.
방송인들이 한강을 건너자 마자
뒷전에서 천지를 진동하는 폭음이 울렸다.
방송인 일행중에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람도 있었다
정신이 들면서 서로가 서로를 불러 마음을 모으고 길을
제촉했다. 잠시만 더 늦었어도 이때의 방송인들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불과 2- 3분 사이에
삶과 죽음이 갈리는 순간이었다.
발걸음을 옮겨 어둡고 험한, 알지도 못하고 관악산 언저리 길을 따라 안양부근에 도달 했을 때는 28일 아침 6시였다. 방송이 나올 리 없었지만 그래도 라디오를
켜 보았다. 어찌된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는 분명 KBS체널에서 행진곡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방송마저 사라짐을 확인 하면서 남으로 향했다.
(그날 아침 방송인들이 피난길에 들은
그 방송은 이성실이 연희 송신소에서 송출한 것이었고
이성실은 공산군이 지척에 와 도저히 방송을 더 내 보낼 수 없는
상황에서 피난길에 올랐다. 자세한 얘기는 뒤에 할 것이다.) 이때의 일을 박경환님은 일기장에
자세히 써 놓았고 96페이지에 달하는 일기장을
필자에게 넘겨주었다. 그 일기장의 한토막을
여기에 옮긴다. -일기장 전문은 싸이월드
불로그에 올라있음-
그때의 상황을 박경환님의 얘기를
통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한다.
새벽1시(28일)쯤 되었을까? 홍 대위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국방부 정훈국 보도 과에다 계속
전화를 걸었으나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 같았다.
홍대위는 감자기 직원들을 한자리에 집합시켰다.그러나
아나운서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단 한사람도 보이지 않고 박능상(조정계장) 씨를 비롯하여 왕종현씨 김성배씨 그리고 나 이렇게기술자들만 남아 있었다.
“이제 우리도 철수 할 수밖에 없소,
귀중한 물품은 차에 싫도록 하고 기계는
다시 돌아 올 것을 전제해서 파괴하지 말고
서용만 못하게 해 놓으시오”
홍대위의 말이 떨어지자 우리는
표준시계와 무선방송기 등을 차에 싫었다.
그리고 피난민들이 쏟아져 나온 동자동을 지나
한강대교를 건너가는데 헌병이 제지 하였다.홍대위는
헌병과 언쟁을 벌였으나 헌병은 끝내 우리를 보내지 않았다.홍대위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 했는지 차에서 내리더니 각자 해산을 명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인파속에 묻힌 체 한강을 건너가고 있었는데
한강을 거의 다 건너갈 무렵에 요란한
폭음과 함께 한강다리가 끊어졌다.
우리는 다시 방송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하는 수 없이 남으로 남으로
밀려 내려 갈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글은 그때 한강을 같이
건너셨던 박경환, 김성배, 정관영님의
얘기를 바탕으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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