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방송

한국방송사의 원조 6인의 행적

이장춘 2010. 12. 31. 17:54

 

 

 

 

 한국방송사의 원조 6인의 행적

 

 경성방송국이 문을 열 때

55명의 직원들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인은

몇 사람이나 되었을까? 흔히들 5사람이었다고 한다. 

우리 방송인 다섯 사람의  이름만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노창성, 한덕봉, 이옥경, 최승일, 마현경 이렇게 해서 다섯

사람이다. 그런데 55명의 직원은 업무요원까지를 합한 인원

이었다. 업무요원가운데는 한국사람도 있었다. 신경석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신경석은 업무요원으로 출발해서

사람들은 잘 모른다. 오늘은 신경석을 포함해서

 6사람의 얘기를 요약해보려고 한다.  

 

 

 

우리방송인으로 제일먼저 방송국 일에

 참여한 사람은 노창성이다. 1897년에 태어난

노창성은 일찍이 부모를 잃고 양부모 밑에서 자랐다.

만주에서 소학교를 다니고 총독부의 관비 유학생으로

뽑혀 일본 구라마에 공업대학을 다녔다. 

 

그가 졸업 할 무렵 총독부에서는

방송국을 세울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일을

맡은 체신국 실무책임자는 노창성의 구라마에 2년

선배였던 시노하라였다. 시노하라는 노창성과 함께

방송국설립에 관한 준비를 했다. 이것이 1924년 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노창성이 제일먼저 방송 일을

시작한 것이다.  노창성이 기술자로 방송국에 들어

왔지만 곧 총무부로 옮겼고 1933년 이중방송을

하면서 사업부가 새로 발족될때

사업부장을 했다.

 

함흥방송국이 개국 되었을 때는

함흥방송국장이 되고 그 뒤 우리말 전담방송인

제2방송부장을 하다가 항일 단파방송 연락운동으로 방송국을

물러났다.1949년 11월 KBS중앙방송국장이 되어 3년간의 6.25

전시중앙방송국장을 거쳐 방송 관리국장 재직중 지병으로

사망하니 이때가 1955년 1월 9일이었다.

 

 

다음으로 방송국 일을 시작한 사람은 한덕봉이다.

 1924년 12월 5일자 동아일보에 한덕봉에 관한 기사가 자세히

실려 있다. 전 일본을 통해서 한 사람밖에 없는 1급 무선기사로 배를

타고 5대양 6대주를 항해하던 한덕봉이 돌아와서 잠시 집에

머물렀을 때이고 그때 서른 살이라고 했다. 그것으로

미루어 보건데 한덕봉은 1895년생으로  보인다.

 

 

한 덕봉은 다시 배를 타려는 생각을 했지만

마침 방송국을 세운다 는 얘기를 듣도 방송국 일을

시작한 것이다.  방송기술자로서는 절대적인 위치에 있었지만

 한국인에게 주어지는 보직은 인색해서 함흥방송국이 문을 열무려

함흥방송국 기술과장을 했교 항일 단파방송 연락운동이 일어나던 때

평양방송국 기술과장을 했다. 이후 경성 중앙방송국 기술과

부과장을 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물론 한국인으로는제일

높은 직위였다. 해방된 뒤 기술부장이 되었다.

 

이때는 기술부가 방송국장 소속이 아니라

조선방송협회의 방송국장과 같은 반열이었다.

정부가 들어선 후 1949년 기술직으로는 제일 높은

직위였던 기감제도가 마련되었지만 처음에는 이계원이

기감자리를 맡았고 이계원이 물러난 자리에 1949년

말경 한덕봉이 기감자리에 올랐다.

 

 

기감으로 6.25를 맞이했다.

미쳐 피난을 할 수 없었던 한덕봉은 납치되었다.

 2001년 제1회 방송인 명예의 전당에 올랐지만 헌정패를

받을 가족이 찾지못해 방송영상진흥원세 보관하다가 가족의

소재가 파악되어 2009년 방송인 명예의 전당 헌정식에서

 가족에게 헌정패가 전달 되었다.  KBS기술인 협회에서

는 한덕봉 상을 마련, 기술에 공로가 있는분을

 선정해서 한덩봉상을 수여하고 있다.

 

 

시험방송지절부터 방송을 맡은 사람은

 최승일이다.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를 길러낸

최승일은 최승희의 큰 오빠다.  당대의 이름 있는

소설가이고 연극연출가였으며 평론가로

 아나운서도 했다.

 

 

시험방송시절에 들어온 또 하나의 방송인은

 우리나라 최초의 아나운서이기도 한 이옥경이다.

이옥경은 노창성의 부인으로 1926년 7월에 방송국에

들어왔다. 이옥경에 대해서는 제가 글을 많이

썼을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자료가

있으므로  더 보완 할 것이다.

 

개국 무렵에 아나운서 공개채용을

통해서 방송국에 들어온 사람은 마현경이다. 

지금의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방송국에 들어온

 마현경은 최승일의 부인이기도 했다.

 

 

 

개국 무렵에 방송국에 업무요원으로

들어와 1960년대 속초방송국장을 할 때가지

 오랜 세월 방송국 일을 한 사람은 신경석이다. 그는

업무요원이어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40년대 이리

방송국 업무과장을 했고 6.25때 이동방송국의 책임자 였으며

속초방송국장이 문을 열었을 때 속초 방송국장을 했다.

1970년대따지 방우회 회원이었지만

 그후로 소식이 끊겼다.

 

오늘은 개략적인 얘기만 썼다.

이미 쓴 얘기에 더 보완 해 나갈 것이다.

 

 

이정숙 강남달.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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