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방송국을 중심으로 여러 활동을 해 오셨던 김삼일님이 2024년 5월 말경 방송인 신윤생님에 관한 자세한 글을 쓰셨기에 그 글을 여기에 옮기면서 관련 사진과 글을 올렸습니다.
김삼일님의 글
신윤생선생님은 경남거제군 하청면 하청리 72번번지에서 출생,거제에서 초등,중졸하고 거제에 고등학교없고 가난해서 고교진학포상태로있는데 부산의 6촌동생이 부산공고,부산사범학교,
부산고등학교 원서를 구해서 거제도로 보내왔는데 어머님이 시험이나 한번쳐보라고해서 원서 마감일을 기억하고있는데 여비를 구하러간 어머님이 부산까지가는 연락선출항시간이 다되어가는데도 돌아오지않아 초조하게기다리는데 출항20분전에 돌아와서 눈물을 글썽이며 , 윤생아 니 이번에 3개학교중에 1개학교라도 꼭합격해야 된다고 하면서 돈몇푼을쥐어주면서 돈빌리려 니거 큰집에가서 니거 큰엄마에게 사정이야기하니까 니거 큰엄마하는말이 윤생이가 거제에서는 공부제법하지만 부산에서 고등학교합격하기는 어려울것이다면서 돈도 사악 깍아가 빌려주더라, 그러니 니 이번에 꼭 합격하고와야된다고재차다짐하고 윤생도함께 울면서 꼭합격해서돌아오겠다고 다짐하고 연락선에올라 부산친척집에 도착. 제일먼저 시험날짜가 잡힌부산공고에필기시험에 합격하고면접날짜를보니 그다음에 시험을 볼,부산사범학교와면접날짜가겹쳐있었다, 이에 윤생은 부산공고포기하고 부산사범을 칠생각을가졌다 당시 사범학교는 3년다니고졸업하면 초등교사가바로되 가난한 윤생은 바로취직되는사범학교에가기로하고 시험을 칠라고하니 친척동생이 일단 부산공고 한곳이라도 면접보고최종합격해놓은다음 부산고등학교를 치면되고 만약합격하면 만사형통이라고 강력히주장 하는수없이 부산공고최종합격증손에쥐고 부산고에 지원 무난히합격했다 부산공고 등록포기하고 대망의 명문 부산고에 합격하고 담임선생으로 부터 거제도천재 신윤생이라는 별명을 얻은것이다. 이와같은 사실은 2005년에 펴낸 부산중,고 제8회 동기회가 펴낸 ,일흔의 모닥불,에 신윤생선생님 글, 아~~ !!! 부산고등학교, 에 자세하게 서술 되어 있습니다.
KBS-TV 개국때 공개체용 PD로 홍두표 사장님, 깅현두 교수님 등과 동기시지이요. 여로의 이남섭 등 쟁쟁한 방송인이 많았습니다. 일생은 PD로 시작해서 부산방송국장, TV제작국장등을 거치며 많은 공을 세우신 분입니다. 머리사진은 KBS-TV 개국요원분들이 함께 한 사진인데 상징적이어서 신윤생님 글에 올렸습니다.
신윤생님과 제가 함께 한 사진 입니다.
아래 사진은 1968년 11월 4일부터 11월 22일까지 일본 NHK연수소에서 KBS와 PD, 등 방송요원
20 여명이 "TV프로그램 제작 연수를 받았을
대의 사진입니다. 이때 신윤생님이 함께 하셨지요. NHK 연수소 현관앞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번호따라 1. 송영수 2.님태우 , 3.김문무 , 4. , 5. 신윤생, 6.이동희, 7.차범석, 8. .9. 10.황은진(MBC) 11. 전영효, 12. 윤일우, 13. 홍삼룡, 14.최승일, 15. .16. 17.김기주(MBC). 18. 19 , 당시 최연장자였던 차범석(1924년생)이 반장을 맡았고 연수생 가운데 KBS 김홍태 PD 전재만 기자는 사진에서 빠졌습니다. 1965년 국교가 정상회 된후 최초의 일본 단체연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70년대는 칼라방송 준비등 국내의 급변하는 방송환경과 한.일관계 개선 등으로 일본연수가 자주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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