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일생을 방송 드라마와 함께한 한운사님

이장춘 2022. 10. 14. 08:34
 
 
 일생을 방송 드라마와 함께한 한운사님  
  
한 운사님은  우리나라 초기
라디오
TV의 일일연속극을 쓰셨고
작품 속에는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불러
넣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모아가면서
관심을 집중시켜,  라디오시대, 
 TV시대를 거치면서
지난 50년간
 방송된 100 여 편의
작품내용은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의식 속에
깊숙이
스며들었습니다.
 
 


 




라디오에서 방송된 드라마는
또 영화로도 제작되고, TV드라마로
방송
되었으며  그 드라마의 주제곡을 부른 가수는
정상급 가수로 발돋움 했습니다. 1980년대 역사적인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에서 날이면날마다 라디오와 TV에서
 울려 퍼지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그 노래는 다름 아닌1964년 KBS에서 방송된
일일연속극
남과 북의 주제곡이었습니다. 

1964년의
주제곡은 곽순옥이
불렀던 노래지만
 이산가족 찾기때의
노래는 곽순옥이 홍콩으로 간 뒤라
패티킴이
 불렀고  지금 여기서는 
최유나의 음성으로 듣고
계십니다.


 
 


1923년 1월 15일 충청북도
괴산에서
태어난  한운사님은 원래
한간남(韓看南)님
이었습니다.청주상고를
나와 일본 주오대학에
유학 중 학도병으로
징집,해방될 때까지 운전병 노릇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일본 유학시절인 1943년 12월,
 학도병으로 징집된 조선 학생들이 입대 전날
모여 있던 부민관에서 고이소 총독에게 “우리가
학도병으로  전쟁에 나간 뒤 조선 2천5백만 동포들의
 장래를 보장해 줄 수 있느냐”며 따졌습니다.  무모한
발언이었지만 모범생이라는 이유로 근신하라는
 명을 받고 다행히 중벌의 위기를 모면하고
다음해 조선학도특별 지원병으로
입대했다고 하셨습니다.
 
해방 된 후 서울대학교 불문과를
다니다가 친구 아나운서의 권유로 하룻밤
사이에 써 낸 드라마가 인연이 되어 방송국에
나들게
되고 어찌  하오리까?   우리살림 등 인생 상담
프로그램을
 집필하면서 청취자들의 호응을 받았습니다.
6.25동란 중 활동이여치않으셨던 님은 정부가       서울로
돌아오고 얼마 안 되어 한국일보  문화부장으로 계셨습니다. 
1956년 공보실장으로 부임한 오재경 장관이       방송에
바람을 불러 넣으면서
 한국일보 방송평을접하게

되면서 밖에서
방송평론을 하는
것 보다는 직접
방송 안으로
들어와
방송에
이바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방송관리국 안에
1957년 7월 방송문화연구실을
 만들어 실장이 되셨습니다.      방송문화연구실은
방송모니터를 비롯해서
전국순회 합평회 실시,
각종교재발간, 월간방송, 
주간방송 발간 등 
그 업무가 다양했습니다. 바로 
그 무렵에
기독교 방송에서 청취자의 관심을
 모으려는 드라마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형식은 연속낭독이었지만
드라마의
형식을 갖춘 이 생명
다하도록 이었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70회 방송 계획을 120회로 늘려 방송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에서는 KBS에서
1957년에 방송된
일일 연속극에 이은 두번째의
일일 연속극으로 기록되고 뒷날
영화로도 
제작 되었지만 한운사님은  이때 쓰신
글이
문제가 되어     
감옥살이를
하다가 4.19로 풀려났습니다.

4.19후에 나온 드라마가 KBS에서
방송된 한운사 작    “현해탄은 알고 있다”
였습니다. 
 식민지 백성의 고통과 일본군국주의의
잔혹성에도 굴하지 않는 휴머니즘을 그린 작품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이어서 2편 현해탄은 알고 있다.
또 3부격인 승자와 패자를써서 한국일보에 연재 한 후
책으로도
발간되고  TV극으로도 방영되었습니다.
 
현해탄은 알고있다를 비롯해서 1961년의
 빨간 마후라,1964년의 남과 북은 불후의 명작이었고
 오랜 기간 우리들의머릿속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냉전시대에
시대상황을 그리면서 청취자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이밖에도
눈이 내리네,아낌없이 주련다. 등 라디오 시대에 님의
작품은드라마의 주류를 이루었고 뒷날 TV극으로
 또 소설로 발간되기도 했습니다. 

  
 
 
TBC-TV가 개국하면서 일일 연속극을
 시도 했습니다. 이 드라마가 한운사님이 쓰신
 ‘파도여 말하라’라는 개국 특집극으로   방송 되었
습니다. 
여러 가지 여건이 좋지 않던 시절에 TBC는
과감하게     
 일일연속극을 해 보려 했지만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그로부터 오랜 기간 TV 일일
연속극은
방송 되지 않았고       1969년에
가서야  KBS
 주간 기본방송순서에 일일연속극이 
 편성되었습니다.       첫 프로를 
  한운사님이 쓰기로
하셨지만 불란서에서 열린 팬클럽에
 참여 하셔서
첫 회는 다른
분이 썼고 불란서에서 돌아오온 뒤,  
아버지와 아들을 썼습니다.
이것은
 다음해에 
 인기 드라마로등장하는 TBC의 아씨, 
 KBS, 여로의
문을 여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신인 한혜숙이 하루 아침에
대 스타로 등장하는 꿈나무를 비롯해서
“레만호에
지다”. “아로운전” 등
TV연속극을 썼습니다.
 
 
 
 
1962년에는 방송인으로서 영예의 상징이었던
제 5회 방송문화상을 받으신 것을 비롯해서 여러 차례의
 수상기록이 있으십니다. 1965년, 제 3대 방송작가협회 이사장을
 시작으로 8, 9, 11, 15대에 걸쳐 다섯 번의 이사장을 지내셨고
1984년에는 한국 팬클럽 대표직을 맡기도 하셨습니다.
 
 
 
 
1988년 방송민주화와 더불어
 KBS최고 의결기관인 이사회를 국민의
대표로
 선임할 때 KBS이사로 선임 되셔서
KBS
경영에도 참여 습니다. 중앙일보 2004년
2월 6월까지 연재 한 
 남기고 싶은 얘기들 110화
『구름의 역사』가
작가협회 홈페이지에 올라 있습니다. 
이 구름의    역사를
 1부로 하고 신문에 기고하셨던
내용들을 모아     
2부
“조각그림” 으로
님이 걸어오신      길을 정리해서
회고록을 냈습니다,
 

 2009년 8월 11일 생을
다 하실때까지  
 85년간의
삶에 50년의   
작품 활동, 길고 긴
세월
격동기를 살아오시는 동안  국민과
함께 하시면서 국민들의 정신세계에
미친 영향은 실로 넓고 깊습니다.
 
한운사 선생님 가시던 때의
빈소모습 동영상입니다.
 





한운사님 글 더보기 영문자 클릭
 
한운사 韓雲史 기념관과 삶 
http://blog.daum.net/jc21th/17781900
 
현해탄은 알고 있다. 1960년 한운사 작 라디오 화제 드라마
http://blog.daum.net/jc21th/17781285


최초의 정치드라마 잘돼갑니다. 한운사 작 안평선 연출
http://blog.daum.net/jc21th/17782447



일생을 방송 드라마와 함께한 한운사님
http://blog.daum.net/jc21th/17780711





한운사선생님의 대표작 남과 북은 
홍두표님 연출로   
그 시절의 이름있는 
성우들이
 배역을 맡았습니다. 신원균, 주상현,
오정한,이창환,   구민, 고은정, 천선녀, 윤미림,
오해영, 김인배, 김장환.
김익중, 옹상수, 최을선,
 임종국, 정철호님등이 출연 하셨습니다. 




 

박서림의 從心漫筆 40화에서 옮긴 글


1.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얌전한 몸매에 빛나는 눈
고운 마음씨는 달덩이 같이
이 세상 끝까지 가겠노라고
나하고 강가에서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2.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넘치는 정열에 화사한 입술
한번 마음주면 변함이 없어
꿈 따라 별 따라 가겠노라고
내 품에 안기어서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한운사 선생, 하면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저음가수 
곽순옥의 정열적이면서도 서글픈 이 노래는
 KBS 라디오 연속극의주제가로 불리면서 많은 
청취자의 심금을 울렸고 영화 <남과 북>으로
상영되면서 수많은 관객을 모았다. 



뿐인가 83년 KBS에서 실시된
 <이산가족 찾기> 행사에서는
이 노래를 주제곡으로 삼아 전 국민과
해외동포들로 하여금눈물바다를 이루게
했다. <남과 북>뿐이 아니다. 선생이 쓰신
연속극들은나올 때마다 인기를 끌고 화제를
모았다. <현해탄은 알고 있다> <현해탄은
말이 없다> <아로운 전>    (현해탄의 TV)
<이 생명 다하도록> <아낌없이주련다>
<빨간 마후라>      <꿈나무>
<눈이      내리는데>
<서울이여 안녕>
등등.

<현해탄>시리즈는 선생을

일약 인기작가로 끌어 올렸다.
<이 생명 다하도록>은 장애인과의 
희생적사랑을 그려 깊은 인상을 심었다.
<아낌없이 주련다>는 제목만보아도 사랑의
이야기임을 짐작케 한다,<서울이여 안녕> 이나
 <눈이 내리는데>, 제목만 보아도 애상을 느끼게

한다. <빨간 마후라>는곧 공군을 상징하고 남녀노소
신나게 합창하는데        안성맞춤인 노래가 되어
있다. <꿈나무>는    곧 청소년을 상징하고

있으니   이제라도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꿈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청소년에
관한 교육단체,
상품, 상사 등이  
무수히
 나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서울이여 안녕>으로 데뷔한
김창숙의모습이 어찌나 청순하든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기록에 의하면 일일연속극의

효시는 68년 동양 TV에서 방영한
한운사(韓雲史) 작,  황은진 연출의
《눈이 내리는데》였다.    지금은 우리
드라마에서 짙은     키스 장면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옛날에는 어림도 없었다.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선생이 최초로 TBC
에서 키스 신을시도하셨다. 동아방송에서 나간
<잘 돼 갑니다>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인의
 장막을 비판하다  도중에 중단 됐는가하면

새마을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한<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도
선생이
그    가사를 지었노라
최근에
스스로 밝히셨다.
 
이같이 선생은 진취적으로

새 경지를개척해 나간 선구적
작가셨다. 선생에게는카리스마가 있고 
보스기질도 있으시다. 제3대 협회 이사장을 
시작으로 협회가 분열되었을 때나 후에 고문으로
계시면서도 언제나 선생은 방송작가들의 중심에

계시고 지금까지변함없이   큰 어른으로 대접을
받고 있다.  연세가 80을 훨씬   넘기셨는데도
비상한 기억력으로 중앙일보와 세계일보에

<구름의 역사>와 <인생 만유기>를
 각각 연재하셨다.



선생의 회상기를 읽고 있노라면
선생의 생애 자체가 드라마틱하고로맨틱
하다. 어떻게 보면 충동적이리만큼 당돌하면서도
망설이거나 두려워하지 않으신다. 픽션인지 진실인지
구별하기 힘이 들만큼 극적이다. 선생의 달변은 모두가
인정한다. 어느 때어디서나 인사말이라면 사양
하시는 일이 없다. 이런 자신감, 이런 순발력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바로
천재성이 아닌가 싶다. 


회상기에 없는 일화 한 토막. 


선생이 어느 모임을
위해 일본에 갔을 때의 일.

옆에앉아 있던 일본인이 선생에게 
조용히 말을 거는데  들은 척을 않는다.
의아해서 소리를     좀 높이 자 그제 사
얼굴을 돌려 다른 쪽 귀를 들이대었다.


그리고 왈 이쪽 귀는 학병 나갔을 때
 기합을 받다가귀가 멀었노라고...이에 일본
인 기가 팍 죽었다는 얘기다. 들은 얘기이기에
진실인지 꾸민 얘기인지알 수 없지만 아무튼
선생은 허를 찔러 상대의 기를 죽이는 
화술을 곧잘 쓰시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선생은 단 둘이 있을 때 
상대의   장점을 조용히 칭찬하여 사기를
올려 주시는 것 같다.보스의   덕목이랄까? 
한운사씨는 충북 괴산(槐山)출신으로 서울 대학교
불문과를 중퇴하고 아르바이트 삼아 방송국에 들어온

것이 인연이 되어작가생활을 시작했다. 1948년 봄
입사한 지 사흘만에 사표를 내던지려 했으나
당시   편성과장    송영호(宋永浩)씨의
만류로주저앉아 방송작가가 되었다.

입사 초기에는 매주 정기적으로

나가는<어찌하오리까?> <우리 살림> 등 
인생상담 프로그램을 집필해 청취자들의 호응을
받았다. 6.25 전쟁 중에는 방송국을 쉬고 다른 사업에
종사하다가 환도 후 <한국일보> 문화부장을 역임했다.
1957년 7월   "방송문화 연구실"이   새로 설치되면서

초대 연구실장으로 돌아와 방송 모니터제를 실시,
전국순회 합평회 개최,    방송연구 및 교재를
발간,   청취자 여론조사,  <월간 방송>
<주간 방송>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는 1950년대 후반부터
본격전인 방송극   집필 활동을

전개하여     <현해탄은 알고 있다>
<현해탄은 말이 없다><이 생명 다하도록>
<눈이 내리네> <남과 북> <빨간 마후라>
<아낌없이 주련다>등  많은 라디오드라마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곧 영화로
되어 히트했고, 나중에는텔레비전극으로
각색 되었고, 또 소설로 각색하여
 활자화되었다.


텔레비전 드라마로 한혜숙을
등장시킨    <꿈나무>를 비롯해
<레만호에 지다>  <아버지와 아들> 
<아로운전> 등 작품이 있다. 그는 이와 같이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수많은 드라마를
써서 방송극 발전에   공헌이 많았다.
지난 88년부터    KBS초대 민선

이사가 되어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경영부문에서도

활약한 바가 있다.

(노정팔 저 ‘방송과 50년‘에서 인용)




 
 
남과 북 방송후 출연성우들과
함께
판문점을 방문했을때 출연성우
고은정,
천선녀와 함께 촬영한 사진입니다.   
한운사
님이 쓴 방송드리마 중 영화로 제작되어
심금을 울린 영화가 많습니다. 몇편의
 포스타를 올렸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최유나 남과 북.mp3

 

 
최유나 남과 북.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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