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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춘·관악 공동체 라디오 안병천 출연·사회 이성화 -2-

이장춘 2023. 10. 9. 10:51

 

이 글은  2023년 10월 9일 이장춘과 안병천 관악공동체라디오대표가 출연해서 이성화 아나운서 사회로 진행된 인생은 아름다워 시간에 방송된 내용입니다.  

이성화 아나운서가 운영하는 네이버 블로그 푸른하늘 방송이야기에서 옮겼고 방송은 어느때던지 관악방송 100.3MHZ나 인터넷으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

 

이성화 > 오늘 스튜디오에는 관악 공동체 라디오 안병천 대표와 춘하추동 방송국장님으로서 사이버방송박물관장님이시기도 한 이장춘 국장님 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지난 월요일에 좋은 말씀 들었는데 오늘은 두 분 모시고 안병천 관악방송 대표가 중견 방송인이고 춘하추동 방송 사이버 박물관장이신 이장춘 국장님께서는 방송의 모든 걸 아우르셔서 이런 기회에 안병천 대표가 방송인으로서 선배 방송인 만나셔서 좀 듣고 싶은 얘기가 있을 것 같아요. 시간을 좀 드릴 테니까 저도 듣고 궁금한 거 있으면 저도 좀 여쭤보겠습니다.

 

안병천 > 네네 전 좋습니다.

 

이성화 > 이장춘 국장님 그 사이방송버 박물관 하신 지는 지금 몇 년째 되셨어요?

 

이장춘 > 저 2005년부터 했어요. 그런데 관악 fm 도 2005년도에 시작이잖아요. 내가 2005년에 했는데 한 10한 몇 년 하다 보니까 나이도 많고 좀 어렵잖아요. 카메라나 녹음기 들고 다니면서 다 해야 되니까 어렵고 그래서 우리 KBS 퇴직사원들 모임 KBS사우회가 있는데 한 3천 명 돼요. 그러면 내가 거기다가 넘기면 너희들이 잘 알아서 좀 할 수 있겠냐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렇게 해주셔서 고맙겠다고 그래요. 그래서 내가 다 넘겼어요. 그런데 1년이 가도 2년이 가도 변화가 없어요. 똑같아요. 그래서 내가 요즘 그냥 조금씩 새로운 것만 있으면 올리고 많이는 안 해요. 지나간 얘기를 좀 하면 처음에 그걸 할 때는 제가 kbs 사우회 부회장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회원이 한 600명 됐어요. 1년에 서너 번 밥이나 먹고 헤어지니까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내가 E-매일을 전부 모았죠. 그래서 이제 내가 브로그를 만들고 이메일을 통해서 보내고 할 때 한때는 이메일 한 2천 개까지 보냈어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전부. 캐나다 미국 영국 다 다 보내고 했더니 거기 사람들이 또 많이 내 브로그에 와서 다 자료를 줘요. 그리고 이제 어느 분이 어느 날 저한테 댓글로 써놨어요. 옛날에 tbc에 이런 분이 계셨다 이거예요. 그냥 노래자랑 하면 아주 그냥 사람들이 환호를 했다는 거예요. 그분을 한번 만나고 싶다는 거예요. 그런데 나도 그분을 몰랐어요.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아나운서 클럽에 가니까 그 분이 계시더라고요. 그분이 바로 여기서 지금 함께 방송하고 계시는 이성화 아나운서예요. 그래서 이성화 아나운서한테 내가 그런 얘기를 했더니 자료를 다 주시고 그렇게 해서 또 이성화 아나운서 자료도 모으고 그게 인연이 돼서 여기서 만나서 이렇게 방송도 하고 그래요.

 

이성화 > 많은 자료가 있으니까 몇 년 전 같이 밤도 새면서 새벽까지는 안하시고 조금 조금 이어 가시는군요.

 

이장춘 > 옛날에는 사실 밤낮 없었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밤이면 외국에서는 낮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냥 미국이 낮이니까 나한테 전화가 와요. 밤에도. 그러니까 밤중에도 또 계속 받아서 쓰고 한 10년 동안은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그러니까 우리 집 사람이 불만이 많았어요.

   

이성화 > 한 10년을 그렇게 하셨군요.

안병천 대표께서도 처음에 몇 년은 다 힘이 들고 그러는데 물론 힘이 지금도 들겠지만 이제 굴러가는 것이 처음같이 힘들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안병천 > 확실히 체계도 좀 더 올라선 것 같고 이제 곧 있으면 20주년이다 보니까요. 이제 방송박물관 이야기하시니까 사실 저는 박물관 준비를 2007년도부터인가 준비를 한 것 같아요. 2006년도인지 2007년인지. 그래서 공동체 라디오가 어차피 시작한 게 2005년 처음이니까 이런 걸 잘 쌓아놓고 나중에 그걸 알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던 게 있다 보니까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거죠.

kbs가 해왔던 큰 조직에 있었던 방송인들의 그런 역사도 중요하겠지만 동시에 이렇게 지역 소식들을 전달하고자 하는 방송인들의 역사도 이렇게 묶이게 된다면 서로 좋지 않을까 향후에는 그런 생각으로 좀 준비하고 있어서 일단은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찌 보자면 돈도 없고 공간도 부족하기 때문에 박물관을 사이버를 이용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관심이 있어서 한번 여쭤보는 거죠. 과연 이제 후배들한테 물려주고 이 자료를 잘 넘겨주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인 건데 이장춘 국장님께서는 kbs에다 사우회에 넘기셨다고 했잖아요. 좀 궁금해요. 중요한 걸 그걸 누군가가 계속해서 책임을 지고 돈은 안 되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거니까 책임을 지고서 계속 가야 될 텐데 그런 부분들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이장춘 > 그게 되지 않아요. 그게 제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돼요. 그게 참 희한하더라고요. 그래 내가 이런 얘기해서는 좀 그렇지만 아나운서 클럽에 가서 좀 도와주라고 직원들 소개했어요. 과거에 나는 아나운서 클럽에 가서 그날 행사하면 그날 저녁에 곧바로 올렸어요. 12시 전에 사진도 편집하고 동영상도 편집하고 글도 써서 다 보내놓고 내가 잠을 자요. 지금 보면 날자가 좀 지나도 그게 안 나와요. 그래서 내가 그 사람들한테 얘기했어요. 그걸 그렇게 하면 김새서 안 된다. 그랬더니 엊그제 밤을 세워 행사 동영상을 만들었다고 보내왔더라고요. 하루 걸려가지고요. 그래 그렇게 해야지 그거 열흘씩 걸려가지고 좀 잘 만든다고 그게 의미가 있냐. 그런 얘기를 해주고요.

아나운서에 대해서는 아나운서 초기 이옥경부터 전부 다 일일이 다 써놨어요. 그러니까 어느 날 대 선배가 나한테 얘기하기를 이장춘이가 아나운서를 전부 영웅으로 만들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그게 아니라 원래 아나운서들이 다 영웅인데 이장춘이가 그거 조금 그 의미를 살려보려고 쓰고 있는데 그게 잘 안 돼서 이제 그만 두련다. 고 그랬다고요.

 

이성화 > 이장춘 국장님께서 아나운서 클럽 모임 때마다 말씀하신 것처럼 사진 찍고 동영상 만드셔서 다 올려줘서 활성화에 아주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됐죠.

 

이장춘 > 그러 것이 딴 사람들은 세 사람이 해야 돼. 왜냐면 글 쓴 사람, 동영상 찍는 사람, 사진 찍는사람 그것을 나는 동영상 찍지. 사진 찍지. 글 쓰지. 저는 글 잘 쓴다고 생각 해본 적 없지만. 내가 하룻밤 사이에 그냥 그걸 써서 올리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써서 올리냐? 고 아나운서들이 또 칭찬해주고. 그게 뭐 내가 잘해서 그러겠어요. 그냥 칭찬이지.

 

안병천 > 그래도 그런 기록들이 나중에 역사로 쌓이게 되는 거고 그걸 통해서 또 학자들이나 또 이걸 연구하는 당사자들이 그런 기록이 잘 돼 있어야지 그다음 것의 의미를 발견하고 뭔가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저는 되게 존경스럽고 그런 부분들이 잘 좀 보완돼서 후배들에게 잘 넘겨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장춘 > 나는 일단 나한테 들어온 것들은 모두 저장해서 보관해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나한테 많은 물건이 있는 줄 알아요. 나는 물건 없어요. 전부 사진으로 남기고 다 돌려줘요. 어느 유명한 방송학자가 있어요. 강현두 교수라고 내가 잘 아는 분인데 성우 김세원이라고 대한민국 김세원 모르는 사람 없지. 그분이 나한테 그래 정말 살아있는 방송 역사를 쓰고 있다고, 그래서 너무 과분한 말씀입니다. 뭐 그렇겠습니까? 그랬지.

강현두 선생님은 지금 86세이예요. 우리 KBS-TV 개국 때 처음 뽑힌 사람인데 미국 유학 갔다 와서 서강대학 교수 하다가 서울대학교 교수 하다가 지금은 집에 계시죠.

 

이성화 > 이장춘 국장님께서 그렇게 역사적인 자료 다 준비하시고 우리에게 귀한 걸 물려주시는 것처럼 안병천 대표도 소 출력 방송 이걸 비영리단체 선발 주자로서 궤도에 올려놨기 때문에 나도 물려줘야 되겠다는 그런 책임감을 스스로 갖는 것 같네요.

 

안병천 > 그럼요. 일이 굉장히 많겠어요. 그렇게 되면 그런 게 있어줘야지 후배들이 역시나 공동체 라디오의 가치를 kbs나 공영방송의 가치를 계속 높여 나가듯이 저희도 이제 후배들이 이렇게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해서 가치를 좀 높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서 일단 하고 있는 거고요. 그리고 이제 더 중요한 게 저희 같은 경우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kbs나 이런 쪽에서는 기록을 잘 아카이빙을 해놨지만 저희는 시설도 없고 공간도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지금 이 순간. 순간에 정제된 그런 기록물들을 잘 남겨놓는 게 저희한테 과제더라고요.

 

이장춘 > 이게 지금은 보존을 하려고 하면 모든 걸 보존할 수 있어요. 그런데 옛날에는 예를 들어서 여로같은 영구보존 해야 할 훌륭한 프로그램도 오늘 제작해서 오늘 방송 내보내고 또 지워서 내일 또 제작을 또 해야 돼요. 옛날 70년대에 팔도강산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어요. 아주 유명한 드라마인데 윤혁민이라고 그 양반이 책을 하나 냈더라고요 내가 그거 인용했다고 저에게 책을 보내와서 읽어 보았더니 「그 팔도강산 대본을 누가 좀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줬더니 그 대본을 돌려받지 못한 체 그 사람이 세상을 뜨셨대요. 그래서 나중에 그 대본을 찾으려고 하니까 없다 이거예요. 얼마나 황당해요. 지금 같으면 그 방송된 프로그램을 모두 저장 해 놓았을 터인데 모든 게 송두리 체 없어져 버렸으니 그래서 그냥 소송을 하고 그랬대요. 그랬더니 나중에 돈을 700만 원 주면서 좀 사정을 하면서 좀 봐달라고. 해서 그대로 끝났지만 대본이 영원히 없어졌어요. 세상에 그 유명한 팔도강산이요. 아실는지 모르겠어요.

 

이성화 > 봤어요. 옛날에요.

 

이장춘 > 옛날 분들은 아시지만 젊은 사람들은 모를 거예요. 1974년에 398회를 했는데 일요일만 빼고 날마다 다큐멘터리로 20분씩을 했어요. 윤혁민이라는 사람이 작품 대본을 쓰고 해외 다니고. 그 시기에 저 포항제철도 그걸로 해서 유명해졌지. 그걸 쓴 사람인데 내가 그 팔도강산에 대해서 글을 하나 썼더니 그걸 갖다가 그 책에다가 한 파트를 넣었더라고요.

 

이성화 > 저기 그러면은 안병천 대표는 그 후배들에게도 소 츨력 지역방송이 전파에 분류에서 새로운 장르라고 볼 수 있잖아요. 이거를 물려주고 싶은 자료를 좀 축적도 하고 싶을 터인데요. 전국에 그분들하고 모여서 어떤 기념적인 날을 1년에 한 번이라도 좀 간단히 구상을 하면 좋겠네요.

 

안병천 > 좋으신 생각일 것 같습니다. 그런 걸 기획하는 건 너무 힘들겠지만요. 이성화 . 그렇게 해가지고 각 지역의 특성이 어떤 건지 서로서로 소통하고... 현재 지역 공동체 라디오가 현재 송출하고 있는 데가 몇 군데예요?

 

안병천 > 지금 8개가 더 개국을 했으니까요. 15개.

 

이장춘 > 먼저 27개라고?

 

안병천> 27개 중에 지금 현재 개국 준비를 더 해야 해요 포함된 숫자구요. 이제 하반기 또 내년 초까지 해서 이렇게 순차적으로 개국을 하게 될 것이지요.

 

이장춘 > 시골에도 그런 걸해야 돼요.

 

이성화> 이 비영리 방송 하고 싶다 해서 신청한다고 다 허가 나는 거 아니죠?

 

안병천 > 네 맞습니다. 대개 어떤 과거를 가지신 분들이 신청한 걸로 좀 아는데요. 대부분 지원하신 분들은 사실 공동체 라디오가 정확하게 뭔지 모른 채 출발하세요. <우리 지역에 이런 소식을 전달하거나 지역의 재난재해를 책임질 수 있는 매체가 있었으면 좋겠어> 라는 막연한 생각부터 어느 정도 사전 준비가 되어졌던 방송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서 아주 특별하게 시민운동을 했었던 사람들만 있느냐 또 그렇지도 않아요. 정말 다양해요. 방송인 출신들도 계시고 그리고 그냥 지역 경제인인데 내가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다양한 분들이 함께해요.

 

이성화 > 지역사회에 기여 하는거죠.

 

안병천 >근데 돈은 하나도 안 됩니다.

 

이성화 > 그런 점은 아쉬운 점이 있긴 있는데요. 저기 이장춘 국장님 좋은 노래 한 곡 추천해 주시면 듣고 또 그 아쉬운 점은 어떻게 좀 기대를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면 좋겠습니다.

 

이장춘 >명국환 선생이 세상 뜨셨어요. 안타까운 얘기인데 방랑시인 김삿갓이 듣고 싶네요. 옛날에 kbs 전속 가수 할 때 히트해서 아주 이 노래 모르는 사람 없었어요.

 

이성화 > 함께 듣겠습니다. 제가 부산 문화방송 그러니까 1960년대에 공개방송 때 자주 나오시던 가수셨거든요. 얼마 전에 타계했잖아요. 지금 명국환 노래하면 저는 벌써 옛날 여러 가지 사회 환경 떠오르지만 까마득한 후배 인생 안병 전 대표는 너무나 안병천 대표는 우리하고도 사실 소통되기 어려운 젊은 나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장춘 국장님하고 대화 나누는 거는 방송인으로서 방송 역사에 대해서 여러 가지 유익하다고 생각이 들고요.

 

이장춘 > 명국환 선생 얘기도 내가 자세히 써놨죠. 그래서 kbs 전속 가수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 써놨어요.

 

안병천 > 이분은 kbs 그때 당시 전속 가수 제도가 있었네요.

 

이장춘 > 그때는 전속으로 송민도, 박재란이 다 전속 가수였어요. 권혜경... 또 누굽니까? 안다성..다 전속 가수로 출발한 사람들이에요.

 

이성화 > 지금은 전속 가수가 없죠?

 

이장춘 > 없어요. 개인플레이죠. 기획사에서 요즘은 별도로 하죠. 잘 아시는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 김상희도 61년도 전속 가수고 다 전속 가수 출신들이에요.

 

안병천 > 그러니까 이게 어찌 보자면 저희가 이제 별거 아닌 것 같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사실은 이걸 세우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게 방송을 계속해왔던 분들 선배들의 지식과 지혜를 이렇게 전수받을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그러니까 책을 볼 수밖에 없고 또 실험하고 도전할 수밖에 없었던 건데 저희 본부장님(김기욱)도 함께해서 좋았었던 건 역시나 이제 방송인으로서 오랫동안 했었던 지식과 지혜를 계속 바로 옆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거고. 그게 좋았고요. 역시나 이제 이장춘 박사님 같이 할 때 좋은 건 그런 것 같아요. 이제 방송인으로서의 그런 직업적인 면만이 아니라 끝나고 나서도 계속 기록하려는 그런 모습들이 사실은 저희한테 주는 그런 인 사이트랄까요. 뭔가 지혜 같은 게 있어서 그런 부분들이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당장의 의미는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분명히 저 같은 사람이나 또 이제 저희 지역에서 이렇게 로컬 방송을 하는 당사자들은 이걸 많이 듣는다. 라면 한번 되돌아볼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저는 1년에 한 번이라도 이성화 선생님께서 저를 딱 붙들고 “방송해야지” 이렇게 할 때 좋은 게 멈춰 서서 내가 뭘 하고 있지? 나는 다음에 뭘 하려고 하는 거지? 이걸 좀 되돌아보게 하는 점에 있어서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이장춘 > 네 그렇죠. 나는 기록할 때 전속 가수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쫙 정리해놨어요. 제가 구할 수 있는 사진 얼굴까지 다 했고 명국환 씨는 특히 문화훈장을 받았잖아요. 그래서 그때 또 내가 글을 썼고.

 

이성화 > 젊어서는 화려했는데 혼자 쓸쓸하게 가셨어요.

 

이장춘 > 혼자 살았어요. 그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안 만나려고 해요. 서로 처지가 그러니까..

 

이성화 > 나이들이 많이 잡수셨으니까 안 만나고 그냥 다 그렇게 사는 것이 쓸쓸하게 될 수가 있고.

 

이장춘 > 저도 만난 지 한 7~8년 됐어요. 저기 동대문 가서 짜장면 2,500원짜리 한 그릇씩 먹었는데 그것이 마지막인데 그 뒤에 못 만났어요.

 

이성화 > 그런데 이장춘 국장님 조금 전에 안 대표가 비영리 방송을 애정과 열정적으로 해도 돈은 안 된다는 얘기했잖아요.

 

이장춘 > 비영리법인이니까 돈이 안 되죠.

 

이성화> 지역 주민에게 유익하고 얼마나 좋은 방송입니까 근데 젊은 나이에 이렇게 하겠다. 계획해서 한 게 아니라 시작하다 보니 점점 발전해 가지고 여기까지 오게 됐는데 어떻게 행정적으로는 어떤 이러한 분들이 조금 잘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제도는 정부에서 개발을 안 해주는 것 같아요.

그냥 내버려두는 것 같아요.

 

이장춘 > 내 버려두어도 본인들이 그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지.

그런 아이디어를 연구도 해야지 그 사람들이 거기까지 신경 쓰고 도와주고 이거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많겠어요? 별반 없죠. 경우에 따라서는 있을 수 있지만 그러니까 본인들이 이것을 분위기를 만들면서 가야 되기 때문에 어려운 거예요.

 

안병천 > 약간 어렵지만 그래도 의미는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저희가 가장 큰 걱정하는 게 사실은 좋은 일과 의미 있는 일을 해놓고 그냥 고생했어. 하고 사라질까 봐 늘 걱정인 거예요. 되게 필요한 매체 맞거든요. 필요한 매체 맞은데 아직까지는 말씀하신 대로 정부 당국이나 한국 사회에 주민들을 설득하기에는 좀 부족함이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은 디지털 사회가 너무 잘 돼 있잖아요. 스마트폰도 그렇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이나 다른 어떤 유튜브나 이런 것들이 문제는 지역의 소식을 다루지 않는다는 거죠. 그런 데 있어서 저희들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 꾸준히 노력 하다 보면 분명히 뭔가 쟤네들 정말 대단하다. 이런 순간이 오지 않을까 생각으로 일단은 계속 좀 던져보고 있습니다.

 

이성화> 그러니까 지역에서 지역 소식만 해야 된다는 건 또 아니잖아요.

 

이장춘 > 아니지만 그 의미가 가능하면 지역 사람들과 유대를 같이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죠.

 

이성화 > 지역에서 아주 재주 많은 사람 아주 노래 잘하는 사람 그런 재능인을 발굴해서 유튜브를 해서 방송하고 하면 조회 수가 많으면 거기에 수입은 들어오는 건가요?

 

안병천 > 그렇죠. 그럴 수 있죠. 근데 이제 확실한 건 그렇게 하려면 굉장히 상업적으로 뛰어나야 되는 거예요.

 

이장춘 > 저도 유튜브에 가시면 구독자가 만 넘거든요. 그러니까 뭘 하면 돈이 들어온다. 어쩌고. 하는데 나 그런 그런걸로 돈 버는 건 안 한다고 그래요.

 

안병천 > 일단 지금 이성화 선생님도 그렇고 이장춘 박사님도 그렇고 다른 분들이 오셔서 이렇게 제작을 같이 해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큰 자원이고 자산이고 도움이기 때문에 저희도 잘할 수 있습니다.

 

이성화> 여기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6개월 1년 어느 기간만큼 지나면 등장을 하게끔 기획을 하세요?

 

안병천 > 어 우선은 사실 6개월 단위긴 한데요 그러니까 지금은 가을 개편 봄 개편 이런 개념이 거의 기존 지상파도 사라지는 상황이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들 같은 경우는 6개월 1년 단위로 하고 있고 프로젝트처럼 이런 경우도 있어요. 한 10번 해보고 이걸 지속 가능할 수 있을지 포맷 개발을 해보는 거죠. 10번 해보고 의미는 있긴 한데 이건 다음 시즌에 하자. 이렇게 시즌 제처럼 운영하기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금 대단하다 고맙다 이러면서도 이렇게 좀 힘겨워하는 모습을 조금씩 보이잖아요. 나는 그게 안타까워요. 그래도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적성이 맞아야 투입이 될 수 있고 많은 분들이 다행히도 이제 코로나 때문에 확 줄긴 했어요. 그런데 제일 많았을 때가 저희가 230명 내외거든요. 늘 매주 마다 그런 분들이 왔다 갔다 하지만 그 숫자를 계속 유지하는 것 같아요. 지금은 저희가 좀 생각의 전환을 다시 하고 있는데 지역 어린이, 청소년 지역 주민들, 시민들 여기에 집중해서 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청소년들만 50명이 넘는 청소년들을 한꺼번에 뽑았어요. 초, 중, 고등학교 그런 식으로 이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이성화 > 그럼 그 사람들이 이제 꾸준하게 관심 갖고 참여해요. 아니면 중간에 이탈자도 생기는지요.

 

안병천 > 이탈자도 많죠. 그런데 이제 보면은 다른 자원봉사보다는 좀 길게 하는 것 같아요. 다른 데 비영리 법인들 사회복지법인 그런 자원봉사자들보다 꽤나 오랜 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자원 활동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성화 > 그리고 지방에서 개국한 이 비영리 방송에서 안병천 대표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데도 있을 것 같아요. 그분들의 애로사항은 대개 어떤 게 또 있어요?

 

안병천 > 가장 큰 것은 우선은 방송국 설립하는 것부터 구축을 해야 되는데 보통 이제 1억 내외가 필요해요. 최소한 그래요 근데 이제 그런 예산이 없죠. 그렇다 보니까 3~4천 4~5천만 원의 개국을 해야 된다. 그런 경우 있을 때는 저희가 이제 그런 부분들을 도와드리고 그다음에 컨설팅도 해드리고 때로는 콘텐츠를 서울에서 제작해서 지원을 하기도 해요. 우선은 방송국이 유지되는 게 더 중요하니까 그런 식의 다양한 협력들과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성화 >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지원해요?

 

안병천 > 네네.

 

이성화 > 어떤 내용으로 해서요?

 

인병천 > 예를 들어서 뭐 그 지역에 있는 방송국 프로그램을 저희가 다큐멘터리를 여기서 제작해 준다든지 인력이 없으니까요. 저희가 기획하고 지역을 조사하고 해서 제작해 드리기도 하고 지역 정보 프로그램을 우선 기틀만 잡아준다고 생각하고 저희가 포맷을 개발해서 만들어준 다음에 그쪽에다가 이제 기술 이전처럼 이렇게 구성하시면 되고요. 노동 시간이 이렇게 투여가 돼야 되고요. 사람이 몇 명이 필요합니다. 뭐 이런 것들을 하기도 합니다.

 

이성화 > 이장춘 국장님 지역 방송이 이렇게 수십 개가 탄생하고 그랬는데 이 전파라는 이 묘한 파워,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우리 생활에 작용할까요?

 

이장춘 > 너무 포괄적으로 얘기하기는 그렇고요. 저는 이 지역 공동체가 각 지역별로 다 있어가지고 하나의 세트를 형성해서 서로의 연결이 돼가지고 독자적인 어떤 시스템을 개척해 나가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이성화 > 전망하시는 거군요. 그러니까 공동체의 합동 모임 같은 게 1년에 한 번이고 해서 아이디어를 모으고 하면 .

 

이장춘 > 한 번보다는 자주자주 연락을 하고 어떤 협동체를 만든 프로그램 그 공동 프로그램을 만든다든지 해서 공동으로 방송을 한다든지 해서 그 유대관계를 강화시키고 서로 간에 이 지역의 얘기를 저 지역에서 들을 수 있고 흥미롭게 들을 수 있는 그런 분위기 조성을 해주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안병천 > 딱 맞게 보셨어요. 맞는 전략을 이야기해 주신 것 같아요. 저희가 이제 결국은 협력하고 연대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고 특히 이제 프로그램 같은 경우에 교류가 되게 중요한 지점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장춘 > 가령 센터에서 하나 만들어지고 어느 날 1시간을 방송하면 여기서도 저기서도 똑같은 우리 동네 얘기를 다 듣는다. 이 사람들이 다 같이 듣는다 하는 그런 공동체 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안병천 > 네

 

이성화 > 안병현 대표는 관악 라디오를 개국을 해가지고 책임이 점점 무거워지고 어떻게 하면 좀 공동체 라디오의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을까 저도 한 10년 이상 여기서 방송을 하다 보니까 눈에 보여 가지고 좀 가볍고 좋은 환경이 되면 좋겠다 싶은데 그 길이 참 어려운 것 같아가지고.

 

안병천 > 그래도 힘이 됩니다. 이렇게 늘 고민해 주시니까 선배님으로서 대 선배님이신 거죠 저희한테 그런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요. 앞으로 이제 5년, 10년 뒤에는 진짜 저희가 게으르지만 않는다. 라면 현명하게 해 나간다라면 분명히 좋은 공동체 라디오의 모습들, 지금 이제 안타까움보다는 더 희망적이고 더 지역 주민들한테 도움이 되는 것을 이야기하는 시기가 더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저는 갖고 있습니다.

 

이성화 > 네 조만간이라는 말처럼 시간이 흐르다 보면 또 새로운 환경과 아이디어가 모아지고 다 합해지면 보람을 거두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춘하추동 이장춘 국장님, 또 관악 공동체라디오 안병천 대표 모시고 방송의 날을 계기로 해서 두 분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졌는데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다 된 것 같고 관악방송도 앞으로 많이 발전이 될 것 같은 기대가 생깁니다.안병천 > 네 감사합니다. 저도 좋은 이야기 들어서 좋았습니다.이장춘 > 발전입니다. 감사합니다.이성화 > 안병천 대표께서 희망곡 하나 말씀해 주세요.안병천 > 김민기 선생님의 철망 앞에서라는 곡이 있는데 다양한 가수들이 함께 평화를 바라는 그런 곡이 있어요. 그 곡 함께 듣고 싶습니다.이성화 > 네 함께 듣겠습니다. 두 분 좋은 말씀 감사드리고 오늘 여러분에게 마지막 노래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현경과 영애의 노래입니다. 참 예쁘네요. 지금까지 기획 진행 이성화 기술 편집 김우신 프로듀서였습니다. 이 방송은 방송통신위원회와 시청자 미디어 재단의 후원으로 보내드렸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