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복순 아나운서 삼가 명복을 빕니다,
1957년부터 1963년까지 KBS 채널에서 뉴스. 희망음악회, 명상의 시간, 연속낭독, 그리고 대북방송 자유의 메아리 등 방송의 대표 프로그램에서 아름답고 정겨운 문복순 아나운서의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또 우리방송사상 여성 아나운서 중계방송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던 1960년 성탄절이브! 명동성당 미사실황 중계방송을 비롯한 여러 중계방송에서도 목소리를 들었던 그 아나운서 문복순 여사가 2020년 4월 2일 세상을 뜨셨습니다.
삼가 명복을 빌며
춘하추동방송 블로그에 써 올렸던 글 한편을 보내드립니다.
문복순여사님 약력 (이세진 아나운서)
삼가명복을 빕니다. 文福順선배님 약력
이화여대 심리학과졸업. 1957년 후반기 서울중앙방송국 아나운서실 입사. 재직중,매년명동 성당 성탄미사 중계로 감명을 줌. 1959년4월, 명동성당에서,치과의사와결혼. 1962년퇴직.알려진 약력입니다.^^
문복순, 1950년대 인기 여성아나운서
1960년 12월 24일 명동성당 성탄미사를 중계방송하는 문복순 아나운서(1)와 송한규(3) 아나운서, 엔지니어 유진동(3번) 박한준(4번)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문복순 아나운서가 담당했던 그 많은 프로그램 가운데서도 재직기간 6년 중 3년간이나 방송했던 희망음악회를 통해 청취자들과 더욱 가까워지면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1956년 6월 KA의 유일한 리퀘스트 프로그램으로 탄생한 희망음악회는 처음에는 매주 토요일 7시 20분부터 25분간 방송하면서 한주동안 들어온 엽서를 정리해서 그 내용에 따라 곡을 고르고 사연을 엮어 방송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날이 갈수록 청취자들의 관심이 높아져 들어오는 엽서가 폭주하고 사연도 다양해져 방송시간대가 골든아워인 9시 10분에서 40분까지 30분간으로 바뀌었다가 또 40분으로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때 어려운 일이 많았어도 청취자와 일체감이 되어 큰 보람을 느꼈던 문복순 아나운서는 50년이 더 지난 지금도 그때 그 일이 머릿속에 생생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시그널 뮤직, 우리말로는 가을낙엽이나 고엽이라고 변역되는 피아노곡 autumn leaves를 들을 때면 젊었을 때의 열정과 낭만에 젖게 된다고도 하셨습니다. 오늘 배경음악은 그때 그 시그널 뮤직을 골랐습니다.
해방공간의 김내(래來)성 작, 이백수 낭독으로 인기를 모았던 진주탑으로 부터 시작되어 오랜 세월 1급 성우들이 정성을 기울여 청취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던 연속낭독에 아나운서가 참여 한 것이 그때로서는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지만 「폭풍의 언덕」 등 몇 편의 명작소설이 문복순 아나운서의 낭독으로 방송되는 동안 청취자들의 반응은 좋았습니다. 아래 사진은 스튜디오 안에서 방송하는 문복순 아나운서 방송 모습입니다. 문복순 아나운서가 담당했던 프로그램 중 대북방송의 간판 프로그램이었던 자유의 메아리를 빼 놓을 수없습니다. 자유의 상징인 갈매기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시그널 멘트 “압록강 두만강 까지 멀리 멀리 울려 퍼지는 자유의 메아리......” 정감 있는 대중가요와 함께 공산권의 모든 실상을 파헤치고 자유세계의 소식을 전하던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 자유의 메아리 였습니다. 하루에만 해도 몇 번씩이나 되풀이해서 날마다. 방송되었던 그 자유의 메이리를 1년간이나 담당했고 또 다른 여러 프로그램의 대북방송을 담당하면서 북한에 그 명단이 실렸다는 소문을 듣고 통일되기 전에는 고향인 개성에 갈 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기도 하셨답니다.
개성에서 태어나 개성여자고등학교에 다니다가 불시에 6.25가 일어나 개성을 나온 후 서울에서 살면서 이화여자대학교를 나오고 1957년 KBS 공채 아나운서가 되어 6년간의 아나운서 생활을 하던 중 결혼생활에 접어 들어 1963년 방송국을 떠났습니다. 라디오 시대에 아름다운 음성을 바탕으로 선발된 아나운서였지만 그 미모 또한 뛰어나 TV시대에까지 이어졌다면 더 돋보이는 아나운서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TV에서도 잠시 그 얼굴을 볼 수 있었지만 그 기간이 짧았고 또 수상기가 30,000대밖에 되지 않던 시절이라 TV화면에서 그 모습을 보신 분들은 그리 많지를 않아 아쉬움이 있습니다. 문복순 아나운서가 TV온파레이드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여난 1962년 KBS TV 온파레이드 입니다.
요즈음은 어떤 일을 하시느냐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개성은 당분간 다시 갈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어도 인연은 깊어 늘 개성을 생각하며 살고 또 남한에 있는 130명의 개성여고 동창회 회원들이 회장을 맡아 달라고 해서 그 일도 하고 있고 성당 일에도 힘을 기울인다. 고 하셨습니다. 아들 이기상씨는 SBS, EBS등 방송국에서 MC로 활약하고 있고 장기범 아나운서의 부인 박종설여사와는 이화여자대학교 동기동창으로 오랜 세월 친분을 유지하면서 살았다고 하셨습니다.
앞줄 왼쪽에서 두번째 문복순 아나운서 2014년 4월 7일 문복순 아나운서 조형미술의 선구자 최만린 선생님 현대미술관 초대전에서
앞줄 왼쪽부터 문복순, 박종세, 황우겸, 최만린, 박찬숙, 뒷줄 왼쪽부터 윤영중, 황인용, 이헤옥, 박민정, 이혜옥, 김규홍 아나운서 왼쪽부터 문복순, 탤런트 김민자, 최불암내외분, 김규홍, 박찬숙, 황우겸, 윤영중아나운서 문복순, 박종세아나운서 1950년대 60년대 초 KBS에서 함께 방송했던 시절의 추억을 떠 올리며 반가운 마음으로 6.25 첫방송 위진록 아나운서와 만나
위진록 선생님이 만난 원로방송인들입니다. 1. 이혜옥, 2.황인우, 3.임택근, 4.강영숙, 5.박민정, 6.윤영중, 7.문복순, 8.황우겸, 9.위진록, 10.한영섭, 11.전영우 12.홍기욱님입니다. 이날 사진은 아나운서 클럽 이형균님이 촬영해 주셨는데 이 사진에서 빠져 밑에 올렸습니다.
6.25 찻방송 위진록 아나운서와 함께 한 문복순 아나운서입니다. 2009년 방송의 날에
2009년에 있었던 제 46회 방송의 날에 이병순 KBS사장님과 함께 한 사진입니다. 왼쪽부터 김영효, 문복순, 김명희, 이병순, 두분건너 홍기욱, 장금자님입니다.
1950년대 여성 아나운서들이 70대 후반이 되어 모처럼 만났습니다.왼쪽부터 이현숙, 문복순, 윤영중, 장금자, 민병연님
한국 아나운서 클럽에서 만난 50년대 아나운서, 왼쪽부터 민병연, 황우겸, 문복순, 김동건, 임국희, 윤영중아나운서입니다.
왼쪽부터 윤영중, 민병연, 문복순, 김동건, 임국희 아나운서입니다.
1950년대 문복순 아나운서와 임국희 회장이 오랫만에 만나 무슨 애기를이리도 정겹게...2015년 6월 아나운서클럽 MBC방문.
1950년대 여성 아나운서, 왼쪽부터김윤희, 이연영, 윤영중, 민병연, 문복순, 김경숙2016년 한국아나운서클럽 모임에사
1957년 제2회 아나운서 강습.
위진록 아나운서 출판기념회 (2013년 10월 19일)에서 왼쪽부터 민병연, 윤영중, 문복순 아나운서가 함깨 한 사진입니다.
문복순 아나운서가 1950년대 음악 PD김명희여사님, 서울대학교 정희원 병원장과 함께 한 사진입니다.
2012년 5월 24일 한국 아나운서 클럽 모임에 참석한 아나운서입니다. 1.이성화, 2.문복순, 3.강영숙, 4.임택근, 5.황우겸, 6.전영우, 7.김동건(회장) 8.임국희, 9.김규홍, 10.황인우, 11.임주완, 12.박민정, 13.윤영중, 14.민병연, 15.정용실 16.정영희, 17.원종배 18.이해옥. 19.차인태, 20.맹관영, 21.박영웅, 22.배덕환, 23.이계진, 24.이후재, 25.성기영, 26. 정연호, 27. 권혁화, 28.양진수, 29.김상준, 30. 성경환, 이형균님입니다 .
문복순 아나운서와 ( 맨 오른쪽) 이화옥, 김명희, 김윤열, 박명숙님이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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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본 문복순 아나운서와 1950년대 라디오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1671
2012년 11월 6일 1950년대 KBS음악 PD 김명희 여사님과 함께 한 문복순 아나운서입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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