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80을 사는 것도 긴 세월이라 하는데 라디오와 함께하며 산 세월이 80년이라니 얼마나 긴 세월인가? 이 나라 방송국이 정식으로 분을 열기도 전 1926년에 태어나 방송초기 1930년대 후반부터 누님의 라디오 상회에서 라디오를 팔며 고장 난 라디오를 고치고 또 간단한 라디오를 만들고, 우리나라 민간방송이 문을 열기 시작하던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송신기 등등 중요한 방송장비를 스스로 만들어 보급하면서 라디오시대의 문을 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라디오와 함께 살아온 80년, 德松 장도형, 방송박물관의 꿈
나라의 형편이 어렵던 시절, 그 많은 장비에 외화를 지불하면서 외국에서 수입하기가 어렵던 시잘, 장도형의 역할은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중요한 일을 해낸 것이다. 밤·낮 없이 물건을 만들고, 현장을 뛰어다니며 시설하고 수리하고 그 생활에서 하루에 두 시간 이상을 자본 일이 없다. 고 했다.
밥 두 그릇이상을 먹지 않으면 양이 차지 않은 님의 건강은 천성적으로 타고났다. 두 시간 이상을 자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을 지녔다. 94세가 된 오늘에도 악수를 하다보면 기가 질릴 정도로 손이 크고 힘이 세시다. 이 장도형 옹이 94년 살아온 일생의 얘기를 한권의 책에 담아 세상에 내 놓으셨다.
「라디오와 함께 살아온 80년」
참으로 이 나라 방송역사의 산 증인이시다. 선생은 일생동안 일 해서 번 돈을 바탕으로 1980년대부터 옛 방송장비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틈틈이 모은 장비들이 있지만 본격으로 수집한 것은 1980년대부터라는 얘기다. 국내에 라디오 골동품상은 장도형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방송장비 수집가로 알려져 있다. 귀한 골동품이 있다는 연락을 받으면 어느 때던지 찾아가 값을 치르고 구입 해 온다. 그렇게 수집한 골동품은 그 넓은 집, 지하로 부터 3층까지 틈이 없이 저장되어 있다.
님은 그 골동품을 보면서 삶의 보람을 느낀다. 님에게 남은 꿈은 방송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부지도 마련되고 집을 지을 돈도 마련되어 있지만 개인이 박물관을 여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어서 아직그 꿈은 실현되지 못했어도, 남은여생 여기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했다.
「라디오와 함께 살아온 80년」 이 긴 얘기를 여기에 다 쓸 수는 없기에 책이 필요하신 분에게는 책을 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10년 전에 쓴 글도 있어서 그 글도 함께 연결한다. 화 보 덕송 장도형 선생 인사말 박종세 방우회 부회장 꽃다발 증정 한영섭 전 방우회 회장 축사 김광일 KBS 사우회 회장 조선영 광운 재단 이사장 오승훈 광운 동문회장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장도형의 방송 역사 박물관 동영상 사회 방우회 사무총장 정항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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