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방송작가 유호선생을 기리며/ KBS사우회보 6월호

이장춘 2019. 6. 11. 21:33


 

 

 

     

이 글은 필자 이장춘이 써

2019년 6월호   KBS사우회보에

실린 글입니다. 유호선생님은 2019년

5월 6일 향년 98세로 세상을 뜨셨습니다.

님의 방송인생, 노래인생은 1945년 10월.

KBS 편성원으로부터 시작 되었고 세상을

뜨실때까지   방우회  (사단법인 한국

방송인 동우회) 회원이셨습니다.

  




방송작가 유호선생을 기리며/KBS사우회보


  

 

'유호(兪湖)'! 대한민국 1세대

방송작가로 1945년부터 가장 많은

드라마를 쓴 사람이다. 그의 일생을 통해

방송 드라마 작가로, 노래 작사가로 기리 남을

공적을 남겼다. 1945년 해방된 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던 KBS중앙방송국 연예담당 편성원(PD, 프로듀서)

으로 특채되면서부터 그의 방송생활이 시작되었다.

3년여에 걸쳐 재직한 중앙방송국 편성과에서

당대의 대문필가요, 방송인 김억, 김진섭을

상사로 모시고 방송을 익혔으며

 

이서구·김희창·박진·김영수·

최요안·이익·김성민·현재덕·이백수 등

당대의 명 작가, 연출가 등과 방송드라마를

제작하고 스스로 대본을 쓰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에서 벗어나    마땅히 부를 노래가 없던 시절, 우리

정서에 맞는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보급할 때 박시춘·

손목인, 남인수·현인·송민도 등 지금도 국민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그 이름, 대작곡가, 가수들과

만나 함께하면서 대한민국 1세대 방송작가·

작사가로서 기틀이 마련되었다.

 

3년여 세월 재직하던 방송국을

떠나 1949년 초 경향신문으로 옮기고

또 얼마 안 있어 6.25를 맞았어도 그의

작가로서의 활동은 계속되었다.      그가

중앙방송국 시절 작사한  「신라의 달밤」은

오늘까지도        전 국민이   함께 부르는

불후의   명곡이고    6.25 전쟁 중의 노래

「전우야 잘 자라.」는 대중가요 이면서도

군가처럼 불렸던 국민적인 노래였다.

 

그의 노래는 신라의 달밤,

목장의 노래, 럭키 서울, 비 나리는

고모령,  고향만리,  여옥의 노래  등,

유호 작사로 발표된 경우가    많았지만

이별의 부산정거장, 비 나리는 고모령,

고향은 내 사랑처럼 호동아 작사로

발표된 노래들도 많다.

 

원래 이름은 유해준(兪海濬)이지만

해방 전 잠시 근무했던 동양극장 재직 시

맑은 호수라는 뜻을 담아     兪湖라는 이름을

썼고 작사가로서 노래를 발표하면서 「호동아」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다.       2013년 방송 된 KBS 2TV '

불후의 명곡'에서는 「전설의 작사가 유호 특집」이

방송되었다.    유호의 방송작가로서의  인생은

새로 편성된   「낭독소설」프로그램의

「기다리는 마음」 집필로부터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여러 작품을

썼고,  특히 최고의 인기 드라마였던

「똘똘이 모험」을 쓰기도 했다.     현재덕

연출로 방송된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이었지만

어른들도 즐기는 해방공간에서 최고의 인기프로그램

으로 자리매김 했다. 6.25를 지나 경향신문 문화부장을

역임하면서도 작품 활동은 계속되었다. 1950년대 중반

정비석 작, 영화 산유화 열풍이 불었을 때 그가 쓴

주제곡 「여옥의 노래」는 국민 모두가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1960년대 민영방송이 출현하면서

각 방송사에서는 유호 극본 드라마가

방송되었고, TV방송시대가 열린 1970년을

전후해서 그 작품은 절정을 이루었다. 드라마와

쇼를 중점 편성했던 TBC는 「일요극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유호 작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자

그 이름을 아예 「유호극장」으로 바꾸어

무려 5년간을 이어가며 250회를

방송했다.

    

 

  


  

정규프로그램에 작가의

이름을 붙인 것은 파격적인

일이었고    TBC 명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프로그램 가운데 

1971년 8월 21일부터 방송된 ‘돼지’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어느 시골대가의 머슴인

'돼지'가 우직한 성품 하나로 해방과 6.25동란을

거치면서도 주인 영감과    가족을 위해 온몸을

내던져 살아가는 얘기로 인기를 끌었다. 50회

방송예정으로 편성되었지만 26회로 막을

내리면서 작가는 물론, 시청자들도,

해당 방송국도 아쉬워했던

프로그램이다.

    

 

 

사연인즉 처음 남북적십자

회담이 열리던 시절, 북측대표가

‘요즘 남쪽 TV에서 볼 만한 것은 ‘돼지’밖에

없구먼’ 이라는 말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다. 서슬이

퍼렇던 유신시절,  당국자의 말 한마디면 그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그때 그렇게 해서 중단된 그 프로그램에

대해 유호는 그 일을 늘 가슴속에 새기고 살았다. 작가

들에게 마지막 남긴 말, 「시청률은 잊어버리십시오.」

1960년대 방송인들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로운 상

「방송문화상」  ·   서울시 문화상을   받았고

2002년    「방송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으며 2011년 11월 21일

문화훈장을 받았다.

  

  

님은 가셨어도

그가 남긴 족적은

영원할 것이다.



이성화 아나운서님(푸른 하늘)

 

이렇게 상세하게 훌륭한

족적을 남기신 분의 개인

역사를기록해주셔서 감동

속에 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박창학 선생님

  

  

이장춘 이사님

pd 출신방송작가

유호선생 일대기 감명

깊게 잘 봤습니다. 60년대에

pd로 활동했기에..추억처럼

당시 얼굴들이 새로웠

읍니다. 쌩큐!





2011년 문화훙장을 받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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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유해준)선생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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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방송사에 길이 남을 방송작가의 대명사 유 호)

전 방우회 회장 문시형님 유고


유호님, 영원한 현역 방송인 드라마와 노래, 신라의 달밤 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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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님의 해방될 무렵, 드라마방송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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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과 더불어 산 가요 한평생 박시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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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춘 손목인, KBS 최초 전속 경음악단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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