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장충단공원·동국대학교·박문사·영빈관·신라호텔

이장춘 2019. 2. 16. 11:06

 

  

장충단! 서울시 사적 제1호다.

필자의 장충단공원 기억은 1971년

대통령선거   유세장으로부터 시작된다.

그해 4월 18일 김대중후보 연설회장에 100만의

인파가 이곳에 모였다고 했다.   그리고 1주일 후

같은 장소에서 박정희 후보의 연설이 있었다. 100만

인파를  넘어선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야 된다면서

총력을 기울여      김대중 연설 때보다도

20만이      더 많은 120만의

인파가 모였다고 했다.

    

 

  


필자가 장충단 공원을

처음 찾은 그 때는 그만큼 장충단

공원이 넓은 터였다. 그로부터 5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오늘, 그때의 장충단 공원의 흔적은

찾기 힘들다.     일제강점기 조선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 (伊藤博文-이등박문-)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박문사가 헐린    그 자리에 외국 사절들을 접대하거나

숙소로 사용하기 위해 작은 규모로 지었던 영빈관의

뒤에는 거대한 신라호텔이 들어섰고 그 춘무산

(春畝山)은      모두 신라호텔의

정원으로 변했다.

  


 

  

영빈관은 지금도 신라호텔

경내에 있는 신라호텔 소유다. 그리고

남산성곽을 돌자면 신라호텔의 경내를 지나야

하고 때로는 그 길을 통하는데 제약을 받기도 한다.

필자가  오래전 한양도성 탐방 길에 그 길을 걸으며 깜짝

놀랐다. 71년 그 당시 동국대학교 캠퍼스 모습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금은 동국대학교 캠퍼스인지, 장충단공원

부지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필자가 이것을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장충단 공원에는 국립극장,

반공연맹, 지금은 반얀트리 스퍼호텔이라고 불리는

타워호텔이 들어섰고, 또 대한민국을 위해

공을 세운 애국자들의 동상들이

여기저기 서 있다.

 

이런 얘기들을 춘하추동

방송에 써 올린 글들이 있어서

밑에 연결했다.

  


장   충   단  



 

서울시 사적 제1호인 장충단은.

을미사변이라고 부르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때 희생당한 국내부대신 이경직李耕稙,

시위대장 홍계훈洪啓薰과 임오군란, 갑신정변을

거치면서 희생당한 충신들의 영령을 위로하고

기리기 위해 단을 쌓고 제를 올렸다.

   

 


 

1900년에 세운 이 장충단은

항일의 상징적 표상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이곳을 짓밟아 갔다.   1908년

일본군은 이곳에 이토 히로부미와 조선의

군부대신 등을    초청해서 야유회를 열기도

했다. 이등박문이 죽자 이곳에 동상을 세우려

했지만 그때 까지만 해도 한·일 합방 전

이라 그것은 실현시킬 수 없었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사정은 달라져서 1910년 한, 일 합방과

동시에 장충단이 헐려버리고 이곳에서 올리던

제사도 금지시켜 버렸다. 비도 뽑아 버렸으며

그 흔적을 지우기 위해   1920년대 이곳에

장충단공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벚나무를 심는 등 놀이터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박문사



그리고 동남쪽 춘무산(春畝山)

이라고 불렸던 동산에는 1929년부터

이등 박문    (이토 히로부미)을 추모하는

절이라고도 하고 사당이라고도 하는 ‘박문사’를

세우기 시작해서       1932년 그 절이 완성되었다.

가증하게도 경희궁을 해체하면서   그 궁궐의 정문인

‘흥화문 興化門’을 이 박문사의   정문으로 옮겨 세우고

더러운 이름의 박문사 정문으로 되어 경춘문(慶春門)으로

불리는 등 수난을 겪다가 경희궁을 복원하면서 다시

경희궁으로 옮겨져 지금의 경희궁 정문

흥화문으로 되었다.

    



 



경희궁을 해체하면서 옮겨진

경희궁의 정전    숭정전 (崇政殿)은

현재 동국대학교 내에 있는 정각원(正覺院)

으로 부처님이 모셔져 수많은 불교신도들이

찾고 있다. 더 자세한 얘기는 뒷면에 있고

 또  관련 글을 뒷면에 연결했다.

    

 

숭정전  


  

오늘 남산을 오르면서

동국대학교 캠퍼스에 들려

눈에 띄는    몇 점의

사진을 촬영했다.

    


 


전철 3호선 동국대 입구 역

6번 출구를 나서면 동국대학교로

통하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바로

이곳에    거대한 사명당의 동상이 있다.

이 동상 서있는 곳이 동국대학교 교정인줄

알았는데       교정 도면 안에 이 동상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다른 애국 열사들의 동상과 같이

장충단 공원부지에 서 있는

동상이라고 생각되었다.

    



 

교정 안에서 몇점의 사진을 촬영했다.

    


 

정각원(正覺院)

 

경희궁 정전인 숭정전은

 경희궁이 해체되면서 불교계에

팔려 오늘날 동국대학교 안에 있는

 법당 정각원으로 자라 잡았다. 경희궁을

 북원하면서 옮기려 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새로 지었다.
















유경환 (유카리나) 여사님 글

 

 

2019.02.17 10:49

 

제가 처음 장충단 공원을

갔던 것이 1968년쯤인 것 같아요.

세월로 치면, 반세기가 흘렀으니, 저

황성옛터의 오카리나 소리가     그런대로

어울리는데, 너무 소리가 드센 것 같아요. ^^

몇 년 전엔 동국대학교에 밤 시간에 연극을

보러 간 것이 전부이니, 사진으로나마 이곳

저곳을 보며, 아~동국대에 가면 이런

곳들이 있구나 하며 봅니다.

 

만해 한용운

'님의 침묵'시비도 있고,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 시비도

있군요. 언제가 될 런지 모르지만,

저 목계장터도 익혀서 꼭 한번

오카리나로 불어볼

생각입니다.



 

김무생 (KimMooSaeng) 선생님

2019.02.23 02:16

 

 

<장충단 공원>은 서울의

유형문화재 1호 "장충단비"가

있는 곳으로 이장춘 선배님이 서두에

 말씀해 주신 대로 "서울시 사적 제1호"로

 의미가 있는 우리 역사문화의

샘터라 할 수 있습니다.

 

[안개낀 장충단 공원~~

누구를 찾아 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울고만 있을까~~

 

<중략>

 

다시 한 번 어루만지며

떠나가는   장충단 공원~~

여러분이   잘   아시겠지만 가수

배호의 노래 가사 일부인데요. 이렇게

유행된     노래로써 당시 우리의

서정을 읊기도 한 곳이죠.

 

제가 장충단(공원)을

처음 찾은 때가 1974년으로

기억됩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그 근처

"장충 체육관"에서 스포츠 경기가 자주 열렸죠.

그래서 거기에 가서 경기를 보고 중계연습도 할 겸

갔었는데 경기가 끝나면 "장충단(공원)"도 둘러보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추억이 어렴풋이

떠오르며 영상처럼 지나갑니다.

 

여기에 올려 주신 "장충단 터"

"박문사"    "흥화문"    "숭정전"

"사명당 동상" "정각원" "한용운 시비"

등은 바로 우리 민족 역사의 숨결들이

담겨져 있는 고귀한 유물들이라

생각합니다.

 

이장춘 선배님의

우리 역사 바로 알기----

<한양 도성 역사 탐방>  잘 보고

갑니다. 늘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이 방을 사랑해 주시는 여러분 늘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김무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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