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박창학 (박정준)KBS 음악 PD, 방송 가요이야기

이장춘 2017. 8. 16. 21:00








  
7천만의 아리랑!
오늘의 주인공 원로 방송인이자
 항일애국지사 박정환선생님의 손자  
박창학(존칭생락)이 민족통일의 염원을
담아 쓴 시에 원로작곡가 남봉용이 곡을
  붙여         김부자의 노래로 듣는다.
가사는 아래 따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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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학 (박정준)KBS 음악 PD, 방송 가요이야기

박정환! 항일 독립운동 애국지사 호남의 만석꾼 독립운동 자금줄
http://blog.daum.net/jc21th/17783281


음악인생 음악프로듀서 박창학 방송사료 2
 
강화도 보문사 普門寺 탐방 노래와 사찰 석모도

강찬선 아나운서 편 「그 시절 그 노래!」 (강경화 외교부장관 아버지) 대담, 박창학 PD
http://blog.daum.net/jc21th/17783279
 
 
 
 
위는 1990년대 박창학이 역사탐구
프로그램을 담당하던 시절 국회의원 이철승 
 전 신민당 당수와 드라마 작가 김교식과 박창학이
함께 한 사진이다.    박창학(박정준)은 1965년 음악
프로듀서로 방송에 입문   라디오 전성시대의 중심에서
가요, 쇼, 토크쇼 등      주요프로그램 제작에 임하면서
1960년대 70년대 가요방송을 이끌었다. 1940년대, 50년대
부터 KBS 전속 가수로 활약하던 송민도, 박재란. 권혜경,
 명국환, 안다성을 비롯해서 최희준, 페티킴, 위키리,
 이미자, 남진, 나훈아, 김세레나  연예계의 거성
 최무룡, 구봉서, 곽규석 등이 왕성한 활동을
 하던 시절이라 그들과 방송을 하면서
숱한 얘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박창학 (박정준)KBS 음악 PD 방송 가요이야기



 박창학은 1995년 그가
방송생활에서 체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거 아세요’ 책을 발견
면서  ‘KBS 음악 PD 박창학이 지켜본
방송 가요이야기’를  부제로 붙였다. 아직
 TV시대가 본격화되기 전의 기록, 이 저서는
그 시절의 가요를 비롯한 연예방송을 이해
하는 중요한 기록서이다.   이 책속에는
 일반인들이    미쳐  접하지 못한
흥미진진한 비화들이 많다.
 
남진, 이미자가 스타로 등단
하게 된 배경, 통키타 시대의 도래와
송창식, 윤형주, 김정호, 김세환, 양희은,
서유석, 등    웨스턴 또는 발라드 풍의 노래등장
 배경, 516 후 군 출신 공보부 장관이 부임 가요방송을
 금지시키고 가곡 등 민요, 가곡, 국민가요 등 클래식만
 방송 하도록 함으로써 청취자들이 KBS를 외면하는
현상을 빚음과 동시에 트롯트 가요계의 수난시대를
초래하면서 아마츄어 노래자랑이 폐지되고
 건전한 노래경연대회 등이 등장했던 일

백남봉의 장기자랑으로 처음
 등장하던 시절      장님들의 방송국
방문항의로 어려움을 겪었던 이야기,
전성기때의 김세레나와 전두환에 얽힌
비화, 영화배우 최무룡의 '노래의
성좌' 출연에 따른 어렵고
 힘들었이야기,

백금녀와 박PD의 사업이야기,
PD와 연예인간의 촌지사건, 기가
 없었던 전라남도 흑산도 공연과     여기에
얽힌사연 1972년 12월 성탄절 미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유신비판으로 빚어진 비화와 대연각
화재사건, 레코드사의 경쟁에서 빚어지는
가수와  작곡가  등의 사이에
얽힌 비화 등등,




어린 시절부터 방송에 뜻을
품은 박창학 (박정준)은 정동 방송국을 
드나들며 방송의 꿈을 키우다가    1964년
KBS 프로듀서가 되었다.      6.25전부터 KBS
음악방송을 이끌어 왔던 김창구 조백봉 등에 이어
 송영수 프로듀서가 KBS가요방송의 중심에 있던 시절
 가요나 연예방송에 관한 기록이    별로 없던 터에
 오랜 세월 가요방송의 중심에 있었던 박창학의
 체험적 기록은 춘하추동방송에도
 주요 史料로 활용된다.


이 책은 대중가요 이야기로
부터 시작된다. 책에서 쓴 대중가요
이야기를 간략히 요약했다.

우리가요 역사는 1931년
일본 군국주의가   만주사변을
일으킨 시기로 부터 근원을 찾아야
것이다. 당시를 일본 사가들은 일본사회의
암흑기로 보는데 당시 젊은 청년들은 징집을 당해
 전쟁터로 끌려갔고 군수물자 징수로 경제가 최악의
 상태로 치닫던 시절이었다. 그러다보니 나오느니
 한숨이요 눈물이었으며 자식 잃은 슬픔, 애인을
 떠나보낸 공허함이 술과 눈물과 탄식
으로 사회전반에 흘렀다.


그 시절의 예를 들어 일제하에서
 나라를 잃고 방황하던   우리민족에게
가장 애창되던 대중가요만 보더라도 백년설의
 나그네설움,  복지만리,    고복수의 사막의 한,
타향살이 등은 그 시대상을 절실하게 대변 해주고
 있다. 6.25 당시에는 팝송과 재즈가 유행했고
많은 한국 가수들이 미국을 연상시키는
노래를 즐겨 불렀다.


장세정이 부른 샌프란시스코,
백설희가 부른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그리고 홍콩아가씨 등이 그러한 노래다,
일사후퇴 때에는 현인의 히트 송 굳세어라
금순아가   피난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인기를 끌었다. 이와 같이 대중가요는 클래식
처럼 정통성이나 심오한 예술성을 찾기에
 앞서 많은 대중들에게 널리 보급되고
 애청 되기때문에 공기나 물처럼
 대중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연적인 문화이다.





그 책을 모두 설명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줄 안다. 박창학이 연출
했던 프로그램에서 MC 곽규석, 구봉서, 서수남
 3인과 박창학이 함께 촬영핱 사진, 스스로  쓴
글 한편을 올린다.   이 글은 2015년 2월
 1일자 KBS사우회보 이 한 장의 사진
난에 올라있던 글이다)




나는 라디오 전성기였던 1960년대
공무원 신분으로 음악 PD가 되어 1998년
 3월 명예퇴직하기까지 라디오 연예오락PD의
길을 걸어왔다.때로는 비서실, 지역방송국으로
외도(?)를 하기도 했지만 이내 라디오로 복귀했고
 지금도 내 이력에는 라디오 연예PD라는 타이틀이
붙어있다. 그것이 자랑스럽다. 그래서 내겐
위문공연 사진, 연예인과 함께 찍은
사진이 유난히 많은 편이다.


이 사진은 그 중 한 장으로
197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내가
 연출했던 라디오 연예오락 프로그램
진행자 세 사람과 찍은 사진이다.



후라이 보이 곽규석씨가 연예인 생활
을 끝내고 미국에서 목사가 되어 활동하다
 잠시 귀국했을 때 KBS TV가 특집방송을 했던 날로
 기억하고 있다. 사진 왼쪽은 ‘서수남·정혜경과 함께’를
 진행했던 가수 서수남 씨,하청일 씨와 듀엣 가수였다.
 키다리(187cm) 가수로 알려졌고, 단짝 하청일 씨는
175cm로 작은 키가 아닌데도 키 작은 하청일로
인식될 정도로 키에 관한한 늘 억울한(?)
대우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두 번 째인 곽규석 씨와는 ‘KBS배
 전국 노래자랑’, ‘쇼쇼쇼’, ‘라디오 100분 쇼’ 등
 많은프로그램을 함께 했다. ‘후라이 보이’라는 애칭을
 가진 그는진행자로서 뿐 아니라 영화배우,  코미디언 등
 만능연예인이었다. 그는 1999년 8월 뉴욕에서 71세로세상을
 떠났다. 그 다음의 구봉서선생과는 남산시절 ‘구봉서의노래 선물’
이라는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었다.키다리 서수남, 후라이보이
 곽규석, 막둥이 구봉서, 이 세 사람은 우리나라 연예계에서
내로라 하는 분들이었다. 그런 분을 MC로 하여 나의 대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던 나, 큰 행운이었고 내 인생
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추억이다.






 








박창학 인생역정








공공기관 제출용으로 2014년
12월 15일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올려 인생역정을 대신한다.








생년월일 1942년 2월 5일
상기 본인은 항일애국지사 故 박정환
선생의 손자로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을
 전후로 온갖 고난과   역경속에 편모 슬하에서
 성장 했고 서울 숭실중학교 서울수송전기공업
고등학교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신문방송 고위과정을 수료했으며   1965년
KBS 중앙방송국 PD입사 (공무원신분)후
 교양PD로 시작 연애오락 거쳐


 한국방송공사 라디오국 차장
 라디오국 수석 PD (C.P) KBS 라디오국
 부주간, KBS 청주방송총국 편성제작국장, 
 KBS 충주방송국장, KBS 라디오 방송본부 제작
 위원,  KBS TV 심의위원을 지내는 동안 문화공보부
주최 제 3회 방송의 날 방송 프로그램 컨테스트
에서 음악부문우수상을 수상함 *.시상자
문화공보부장관 신범식 1970년




1971년 우수공무원 표창장 수상 문화공보부장관 신범식


1981년 제 12대 전두환 대통령 취임 경축 예술제 연출
공로상 수상 문화공보부장관 이광표


1984년 보건사회부 노인복지 유공자표창장 수상
 보건사회부장관 김정례


1988년 제 24회 서울 올림픽 대회
올림픽 문화훈장<올림픽 기장> 체육부 장관 노태우


2013년 정부포상 국무총리표창장 국무총리 정홍원
 
이상 수상경력 있으며 KBS에서
 33년 한국언론재단 프레스센터에서 7년 등
40 여년간 언론에 종사 헌신 봉사 했으며 지금은
 광복회 상벌위원 국제 외교 안보포럼 상임이사직을
 맡아 나라사랑 정신을 방송 또는 힘을 통해 고양하고
있으며 한민족정신연구회이사, 대통령직속 헌법
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직을 맡아
통일 사업에 매진하고 있음


 2014년 12월 15일 박창학







박정환선생님! 그  독립운동가의
피를 이어받은 박창학은 투철한 민족의식
으로 독립기념관등에서 활동하며 신문, 잡지 등에
 여러편의 글을 기고, 방송에도 출연했다.  위사진은
  1968년    KBS 라디오  다큐멘터리   독립 운동사 그때
그 시절 오산 학교편으로 제작 당시의 인터뷰장면이다.  
 왼쪽 뒷머리 하얗게 보이는 분   김홍일장군 두번째 분
 함석헌 사상계 사장, 우측 중앙이 박창학
으로 왼손에 마이크를 쥐고 있 다








박창학이 쓴 시 '보문사'가
테너 박인수 등의 가곡으로 널리
불리고, 머리 동영상 김부자가 부르는
 7천만의 아리랑은 대중가요이면서도
  민족의 한을 풀고 강력한 통일염
담아 가슴을 울린다.






 7천만의 아리랑






  
작사 박창학
작곡 남봉용
노래 김부자







가고파도 갈 수 없는 고향이여
보고파도 볼 수 없는 내 형제여
한 핏줄은 갈라놓고 50년이 웬 말이냐.
저 하늘도 기가 막혀 통곡 하고 있구나.


이제 그만 남과 북이 하나 되어 불러보자
아리랑을 불러보자
민족의 한 민족의 꿈 통일이여
7천만이 소리친다.




가고파도 갈 수 없는 금강산아
꿈에서도 보고 싶던 대동강아
산허리를 절단한 채 50년이 웬 말이냐.
저 강물도 소리없이 통곡 하고 있구나.
이제 그만 얼사안고 맺힌 한을 풀어보자
아리랑을 불러보자
민족의 한 민족의 꿈 통일이여
7천만이 소리친다.

 
 
보문사


박창학 작사
이수인 작곡




황해 넓은 바다 굽어보며
낙가 영봉 넘어 가는 저 구름아
신라천년 사적 어디서 찾을고
물길 따라 뱃길 따라 왕도의 피신처 강화
오늘은 휴전선과 맞닿아 동족의 비극 실감케 하는 곳
아...... 천연세월 국난의 피신처
강화도 보문사를 바람아 너는 아니 백팔번뇌 잊을 곳
보문사라네 백팔번뇌 잊을 곳
보문사라네




보문사 노래는 뒤에 있습니다.
 
 
 
 
위는 2002년 광복절을
계기로 김대중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편지이고 아래는 2012년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 영빈관에서 있은
독립유공자 초청 오참회에서 한
박창학의 대표발언 내용이다.
 
 
.
 

손자 박창학이 쓴 박정환선생님 묘비문
 
 
 
방송인 박창학 방송사료
 
 





1984년 KBS 장수 무대
전국 순회 당시 PD 박창학이
찍어둔  사진으로 중앙회 앉아 피리
 부는 사람은 일제시대 jodk부터 정동
KBS 시절을 거쳐 최장수 악사로
 국보급  이충선씨다.









1986년 2월 오늘을 생각 한다
 PD시절    故  나운영 박사와 함께 :-!
나운영 선생은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학장을
 역임했으며 주옥같은 동요, 가곡, 성가곡, 국민가요를
 많이 남겼다. 대표곡     「가곡 : 가려나, 달밤, 성가곡,
여호와는 나의목자시니」    1960년대 「대한합창단」을
창단 한 후 지휘는 성악가 출신 유경선 선생이 맡고 있을 때
 PD인 나는 합창단 단원이었는데   후일  필자 결혼중매를
섰는가 하면  결혼식 때  선생님이 반주를 맡고 유경손
선생이 축가를 해주는 등 필자 평생 잊지 못 한다






고복수 (타향살이 짝사랑 사막의 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을 작곡 한 손목인
 (본명 손득열 선생과 박창학 (KBS 라디오 부국장)
하중희 (PD,   후일 방송작가 겸 음악평론가) 씨와
고기찬씨 (국군의 방송 PD로 위문열차 공개방송을
만든 장본인이다) 사진설명 왼쪽에서 두 번째
 빵떡모자 쓴 사람이 손목인 선생 중앙
 박창학 부국장, 하중희, 고기찬









1984년 KBS 별관 공개홀에서
열리고 있는 KBS 장수 무대 프로그램
에서 MC 김양일 아나운서가
할머니와 인터뷰 장면







1980 년대 박창학이
 KBS FM 부국장 당시 프로듀서 및
 MC 디제이가 세미나 마치고 영종도에서
 서울로 오는 베를 타기전 찍은 사진 왼쪽부터
맹관영 아나운서 박창학 FM 부국장 박중훈 박중훈
영화 배우 김진우(FM PD) 맹관영 아나운서가 이 사진을
 보고 그때,오미희,김미숙,이경진 등, 탈렌트들이 음악
 Pro DJ를 같이 해서 ,박중훈이도 남이섬에서 1박하며
같이 놀았지! 옛날 얘길세. ㅎㅎ 오미희는 나의
 나레이션 프로의 팬이라, 개인지도 좀 받고
싶다구까지 했는데,오래 가까이  지냈
지요! 옛날이 그리워지네! ㅎㅎ


이 사진 셜명을 하는동안
맹관영 아나운서가 보내주신
위 글을 써 올렸더니 다음 글을
또 보내주셨다.  사실 이장춘이도
빠르다고 하지만 앵관영 아나운서
빠름은 알아준다.       그래서 둘
사이는 소통이 빠른가 보다.


참 빠르게도 작성했수!
ㅎㅎ.박창학이 장수무대 Pd도
 했구나? 김양일이 하고...난 김무인이
 PD 할때 내가 MC를 했는데,피리의 명인
이충선 옹이 그때도 함께 국악 단원으로 참여
 했고,87세의 고령이라, 공개방송 녹음시간이 길어,
소변을  내복에   싸기를 여러번 한 기억이 나네요.
당시 초대가수로 박재홍,명국환 등이 단골 이었는데,
고운봉 씨가 제일 원로 였지 싶네요! 내가 3년인가
진행을 했는데, CM이 안 붙는다고
 폐지해 버렸다우!






 1980 년대 박창학 PD가 FM 부국장 당시
 프로듀서 및 MC, DJ, 아카데미 세미나를  마치고
 전체 참여자들이 함께 모여 찍은 사진






구성진 PD 박창학 부국장 맹관영 아나운서




 
영종도 세미나를 끝내고 귀경길 부둣가에서 기다리고 있 다 .








160 KBS 연예 오락 피디,  박창학이
 결혼하던 날 1970 년 12 월 28 일 한명숙
노란 셔츠 사나이,  송춘희 수덕사의여승을 부른
 인기가수 외 수십명의 연예인이 다녀갔다.  장소는
 광화문 새문안 교회 주례 강신명 목 사 당회장


 사진설명 : 맨 뒷줄 중앙 가수 한명숙,  송춘희
뒷줄 두번째줄 이춘 기 KBS 편성부,  신 귀 복 작곡가
 노동래 음악 PD, 넷째 줄 두번째 김강섭 KBS 경음악단장
 맨 앞 줄 첫째 줄    하중희,       송영수 정준극 대한일보
 문화부 기자  (백남옥 남편) 신부 우측 새문안 유치원장
 이순희, 유경순 성악가 (나운영 선생 부인) 이영보
중앙 대학 교육 대학 교수





 
*1984년 10월 20일 황문평 선생
 회갑연 때* 황문평 선생과는 1960년대
부터 1990년대까지 30년간 「전국노래
자랑,」, 그 시절 그 노래」 「장수무대」
 등 수많은 프로그램을 함께했다.







황문평 선생 회갑연 때 30여년 간 함께 했던  원로 가수 김정구 선생과  옆은  김상희





김재중 부사장을 보필할 때
사진으로 중앙 부사장 김재중,  
이인관 기술이사 이치순 감사
 박창 학 PD 당시 비서,



음악평론가 겸 KBS 음악 계장 이상만 씨가 한국 문 예상을 받았을때 음악계 직원들이 함께 찍은  축하사진, 사진 설명 유....,  최선혜,  노덕래,  윤희여사 이상만 계장 부인 (시인 윤동주의 사촌 누나다) 중앙 이상만, 오용한, 권 오성, 박창학,  전석 환 싱어롱 연주자





20박창학 피디가 'KBS 향연' 피디 때 목포 시민위안 특집  공개방송 차 목포 유달산 해수욕 장에서 찍은 사진,  왼쪽 00 매니저,  송영수 PD 가수 방은미 박창학 PD 코미디언 심철호 이날 목포가 고향인 영암이 고향인 하춘화도 함께해 대성황을 이루었다 70 년대로 기억 된다. 목포에서는 최초 수중 무대 바다 위에 무대를 만들 어 공연 했 다.





제 3공화국 유신 홍보를 위해  해군본부 주선으로 영종도에서 KBS 향연   MC 장고웅 주민들과 식사 하는 모습




남산시절 1970 년대 라디오 제작 2과 직원들 PD : 성우 효과 원들끼리 가을이면 친목 겸 단합 대차 축구 시합을 했다.  당시 과장은 이상설, 문예 게장 윤 생 음악계장은 이상만씨 였 다. 사진 됫줄 두번째 노덕래 , 박세정 PD, 이상설 과장, 박창학, 엄복영, 이상만 계장 앞줄 왼쪽 백00,PD 송영수 PD,  임택수 효과 신윤생 문예계장,  효과 00, 정찬웅 드라마 PD 최광일 효과




1990년  박창학 피디가 라디오국 제작 위원으로 있을 당시 최두헌 아나운서와 강미란 아나운서와 함께 기념 사진이다




1983년 11월 전국 농업 기술자 대회 때 출연 대기 중인 가수 이동기 정재은 등이 보인다 KBS 향연 PD 박창학






1992년 역사탐구 pd시절
 왼쪽부터 유준 기박사 총신대학교
부총장 가운데 PD 박창학 세번째가 MC
김교식 평론가 겸 다큐멘터리 작가





1994년 12월 역사탐구 피디시절
왼쪽부터 정진석 박 사 한국 외국어
 대학 교수 와 박창학 피디








1996년 역사탐구 현대사의
재고찰의 PD 박창학이 제작 전 초청교수
이배용 박사 (이화대학 총장 역임), MC 김교식
 현대사 다큐멘터리 작가 와 대화하는 장면






1997 년 역사탐구 PD 시절
당시 박창학 제작위원 왼쪽부터
 조동걸 국민대 교수, 중앙 박창학
 PD, 우측 MC 김교식






1985년 8월 광복 40주년
한일 수교 20주년 기념 특집 방송을
제작 하기 위해서 일본 와카야마, 오사카, 니가다
동경(도쿄)  순회공연,   담당PD 박창학과 출연자들
왼쪽부터  박인채 PD,  박창학,   원로 가수 남일해,  
가수 임지호,  고 박귀희 (가야금병창, 인간문화재
 국악고등학교 설립자) 묵계월 인간문화재 서도창)
 김혜란 국악인, 가수 김정구 사물놀이
 김덕수도 함께했다






78 년 11 월 육군부대
 위문 공연을 앞두고 당시 인기 가
수 이은하 와 함께한 박창학







1985년 8월 광복 40주년
 한 일 수교 20주년 기념 특
제작시 니가다 공개홀에서 제일교포
와의 인터뷰 장면,   좌측 김양일
아나운서, 우측 PD 박창학






1985년 8월 광복 40주년 및
 한일 수교 20주년 기념 특집 방송을
 제작 하기 위해서 일본 나가야마, 오사카, 
니가다,  동경 (도쿄) 순회 공연 중 대판 대한민국
 총영사관 영사 조남열 씨와 인터뷰 하는 장면
 왼쪽 조남열 영사,     중앙 박창학 우측
마이크 등 사람 김양일 아나운서






1985년 8월 광복 40주년 및
 한일수교 2시면 특집 방송 제작 차
일본 대판 한국인 소학교   음악
시간에 학생들과 인터뷰 장면







1973년 제 3공화국 정부 시절
국가 홍보를 위해 산업시찰 1차 지방
순회 때 찍은 사진 왼쪽부터 김영효 사회교육
PD , 이상익 편성국 PD 정유일 드라마 PD,
 박창학, 김선기 기자,  이동인 국제국
  PD,  이원배 농어촌 PD









1983년 4월 14일 공군 교육 사령부
 위문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터미널
 휴게소에서 왼쪽부터 MC 곽규호, 김상일
 PD,  개그맨 장천익, 여성중창단














70년대 중반으로 기억 된다.
장소는 소금강 맨 위쪽 원로성우 신원균,
  그 옆의 박창학 PD 붉은 베레모 홍그표
 PD, 앞줄 맨 우측 문종철 엔지니어







1970 년 12월 KBS 간부
고지위문, 장소 강원도 함백산
송신소 정상에서 찍은 사진 왼쪽부터
이무근 춘천방송국장 변형하 기획관리실
관리부장, 이지순 감사, 박창학 차장








1975년 5월 KBS는
성산포 송신소 설치계획에 따라
 시찰차 당시 부사장 최창봉, 기술국장 강기년
그리고 관리부장 변형하 그리고 부사장실 비서로
박창학이 수행했다. 왼쪽부터 최창봉 부사장
 서용수 제주방송국장, 박창학 최창봉
부사장실 비서, 강기년 기술국장,
 변형하 관리부장







추계예술대학교 국악 관현악단을
초청 청주시민회관 공연을 가지 우리나라의
 소중함 문화유산인 국악 발전과 보급에 기여한
 공로로 추계예술대 학 교 학 장 송봉주 학장으로
부터 감사패를 받는 사진 관현악단 단장 중앙
 박창학 국장 충주방송국장 시절






1970 년 제 3회 방송의날
 방송프로그램 컨테스트 음악 부문 우수상
 작품 노래 고개 세고개 시상 신범식 문화공보부
 장관 KBS에서 3명이 수상했는데 국악분야 권오성 PD,
  라디오드라마 분야에 정찬응,  음악 박창학 PD가
 수상했다.     당시 과정 김순 경, 계장 신윤생
이었다,  KBS 라디오 여성 직원 3명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3회 방송의날 박창학 수상장면




남산 방송시절 라디오제작 2과에서는
매년 친목 혐 체력 단련이란 명분으로 성우들과
음악 드라마 PD가 매년 축구시합을 이상설 과장의
 주도로 실시했다.  앞줄 앉은 자세 박세정 음악 담당 PD ,
최.., 성우,     신윤생 계장,   이상설 과장,   임텍수 효과, 
 뒷줄 두번째  권오성 PD,  양윤식 PD, 이상만 드라마 계
엄복경 PD, 박창학, 끝 두분  송영수,  노덕래 PD, 






박창학에게 있어서 가장 오래된 사진이다.
 1961년 1962년 학창시절 KBS 임시직 프리렌서 PD시절
KBS 음악계 직원들이 동구능에 야유회 가던때로 기억된다.
 당시 방송원들은 개에게 임시직이었다. 앞줄  맨 우측 정인식
 과장을 모시고 음악계 소속 악단 단원들도 함께 했 다.  사진
 우측 정인식 과장 고기찬 pd, 권오성PD, 김정인 PD 두사람
건너 이복윤 KBS 악단 키 기타리스트 줄 두번째줄 첫째
송영수 PD, 박창학, 서있는 사람 중 세 번째가
 신대남 전속 가수 (후일 일간 스포츠 기자)
 그리고 끝이 하중희 PD




 
1990년  KBS 제 2라디오 FM 부국장
당시 새마을 체육관에서 록 페스티벌을 끝내고
 왼쪽부터 이름이 가물가물,    중앙이 엠씨 임백천, 
 박창학 (바바리 차림)  그옆의 김진규 PD,
강영국PD 구성진 PD,   끝 김정태 PD






KBS 향연 등 수많은
쇼 프로그램을 함께해온
대형 가수 문주란과
박창학






KBS 악단장 연애오락
 PD로 30여년을 함께 해온 김강섭
 악단장과 박창 학 PD






1983년 녹음을 마치고 스튜디오에서
 70년대 슈퍼스타 남진과 함께 당시 박창학
 라디오 부 주간으로 있 었 다.
 




1970년대로 기억 된다.
 앞줄 정유일, 박창 학 PD, 오용환 PD,
이명환 PD (주먹질 하는 장면) 사이에 
노덕래 피디가 보인다.  






1992년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최고봉 설악산 대청봉을 당일코스로 올라가다가
죽을 고생을 했던 추억 연세대학교 언론 홍보 대학 대학원
신문방송 과정이 기생들이다. 사진은 맨 앞 줄 정운성 기술국 장
김진평 기술 국정 박창 학 국 장 좌측이 홍금표 국장
유동수 기자 등이 보인다






1986년 5월 KBS 연수원에서
외국인 18개국 프로듀서 및 보도요원
 교육 당시 박창학과 제자들 사진 앞 줄
의자에 앉은 박창학과  동시통역사






중국인들도 일생동안 한 번 가보기
 힘들다는 만리장성에서 KBS 산악회 회원들
 백두산 등정을 마치고 만리장성의 (인솔자 박창학
FM 부국장) 맨 오른쪽) 비롯해 이계진 아나운서
이광수,  앉은이 황량아나운서가 보인다.






1990 년 KBS 산악회원들이
 악천후 속에 백두산 정상 천지에
 오르는 모습 인솔자 박창학 뒷줄  우측
에사 두 번째, 네 번째가 이계진






어느 중국집에서 중국
인 조선족 안내원에게서 음식과 술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 다






1990 년 박창학 FM 2국 장 KBS 사우들은
 꿈에도 소원인 백 두산을 가기위해 아나운서실에서
연길 방송 탐방을 핑계로 백두산 원정에 나섰다. 당시
중국과 수교  이전이다 보니 수속 절차가 까다롭던 때라
 인솔 책임자인 나는 너무 불안한 상태로 떠났는데 설상가상
으로 날씨가 변덕이 심한 탓에 천지에 올라갔으나 천지를
보지 못 한채 하산해야 했던 기억과 아직 발전하지
못 한 중국의 비위생적인 모습들이 생생하다.
이계진, 황량, 이광수 등이 보인다.








백 두산 원정 열여섯 시간 기차여행 끝에 연기역에서 한때





백두산 원정기간 조선족 안내원
에게 서울 찬가를 지도 하고 있다.림에서
 심양으로 가는 도중 기차에서








1990 년 8 월 25일 KBS 산악회
중국 연길 방송국 방문 및   백두산 등정






1980 년 8 월 20 일 중국 항주에서
 야경을 감성 하기 위해서 거리에서
 이계진 아나운서 와 함께






국 연길에서 한때 중국 소녀들과 함께






KBS 산악회 백두산 등정 기념사진
공 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찍은 사진,  
뒷줄 맨 우측 김광석 사우,  밑에 중앙 
앉은 이가 인솔 국 장 박창학






 1992 월 24일 박창학 피디가
KBS 라디오 서울 국장 재임시  KBS 주관
대한 손해보험협회의 후원으로 KBS 라디오의
가로수를 누비며. 란 교통 프로그램에서 모범 교통
통신원을 선발 동남아지역 교통현황과 교통방송을 시찰하게
 되는데 일본 대만 싱가폴 태국 방콕 등 4개국가 중,  대만
 고궁박물관 앞에서 통신 원들과 PD 관광회사
 사장 보험회사 홍보 부장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병채 대한손해보험협회
 홍보부장, 중앙 한가운데 박창학, 우측 고성균
차장 , 가로수를 누비며 데스크 PD,  아래는  태국
방콕에서 우측 박창학 고성군 테스크 PD
안병재 대한 손해보험 홍보부장










1990년  제 2라디오 부국장 당시
새마을 체육관에서 록페스티벌 끝내고
왼쪽부터 MC 김광한, 박기완  PD,  박현규 PD,  
방창학 부국장 강현국 pd, 끝 여자 직원






 1990년 박창학이 KBS
라디오 부국장으로 재직 하고 있을 때
 당시 서소문에 있는 호암 아트홀에서 KBS
신인 가곡의대 향연 음악을 마치고, 앞 줄 왼쪽부터
 테너 임정근 바리톤 윤지호, 테너 엄정행, 작곡가 신귀복
 테너 임응균, 좌측 오른쪽부터 작곡가 최형섭, FM 차장 배동순
김00 PD,  유 은하 PD, 홍 순덕 PD, 매조 소프라노 김신자,
 소프라노 강미자 박창학 부국장, 이원익  PD,  안희재
 아나운서, 박경규  PD, 라디오 본부장 영효
이상익 부장, 작 곡가 이수인,  매뒷줄에
김정태 피디가 보인다






1990년 12월 9일 KBS 현역시인과
 뜻있는 작 곡 가들이 힘을 합쳐 현대적 감각에
 맞는 노래를 작곡 하고 보급한다는 취지로 제 4회 KBS
'신작 가곡 대향연'이란 공연을 가졌다 당시 우리가곡 보문사의
 작시作詩를 맡았던 PD FM 부국장과 작곡가 이수인 선생 그리고
 노래를 열창해 뜬 테너 박인수 현 서울 대학교 음악 대학 교수
 세 명의 콤비가 한자리에 모여 기념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작곡가 이수인 테너 박인수
 작사가 박창학 FM 부국장






백창학 피디가 1993년 2월 12일
 KBS 제 5대 충주방송국장으로 발령장을
받고 취임사 하는 장면






1993년 박창학 피디가 KBS 충주방송국장
으로 임명받고 초도 기관장 순심이 지역 유지를
찾아 순방 때 충주 구인사 총무원장을 만나 KBS 임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우측 기술부장,  구인사 주지 승,  중앙 박창학,  총무부장 끝에 방송부장





1993년 8월 4일 충주국 임직원들이
 체육대회를 마치고 임직원들과 함께






 1981년 보병 11사단 장병 위문 공개방송 때
 좌측 사단장 소장 권영욱과 함께 한 박창학







1989년 KBS TV 가요대상 심사
에서 가요대상을 받은 현철씨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나에게
 선생님 감사하다며 다가와 포옹하고 있는
 장면이다.  당시 박창 학은 라디오
 담당 제작위원이었다






1991년 박창학 피디가 청주방송
총국 편성제작국장으로 있을 당시 제작
회의를 마치고 찍은사진. 우측 자리에
앉은 사람 이중록 기술국 장이다
 




1985년 KBS 실시한 외국인 프로듀서 교육 위탁 교수로 있을 당시 외국인 PD,   보도요원에게   연예 오락 프로그램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 장면이다.  장소 KBS 연수원





 박창학, 곽규석 구봉서, 설명 위에 있음 






1988년 9월 제 24회 서울 올림픽 당시 과천에 있는 승마 경기장에서 승마 담당 PD 김선옥 씨와 리포터 정현숙 탁 구 국가 대표선수와 진행 점검차 만나 얘기하는 장면 왼쪽 김선옥 PD후일 라디오 센터장 중앙 정현숙 탁 국의 거장,  우측 박창 학 총감독





1980년대 박창학 피디가 연출한
제 2라디오 가요산책 디제이 그녀는
 개그우면으로 유명하다






1984년 10월 KBS 여의도공원에서 장수무대공연시 노인들 앞에서 '흙에살리라'  노래를 열창하는 홍세민 가수 우측에 황문평 심사 위원,  PD 박창학,  MC 김양일





 KBS 사회가 실시하는
문화탐방 강원도지역 탄방중 동강
사진박물관 앞에서 왼쪽 신후철 사진
끝에 두 번째가 박창학 PD, 아래는
지진웅과 함께 






제 5공화국 시절 공직자들은 누구나
 새마을 연수원 을통해 새마을 정신 개조 교육을
받았다.  특 히 특이한 점은 교육기간에 광주에서
 5.18 사건이 터져 광주에서 뒤늦게 도착 한 동요를 통해
 소식을 들었다.  전국에서 선발된 새마을 연수생들의 사진
 민간단체 새마을 운동 중앙 협의회 교육원 새마을교육
1980 년 7 월부터 12일까지 졸 업 생 들 사진








새마을 연수원 교육 앞줄 두 번째가 박창학






박창학 피디가 김재중 부사장을
모실때 강원도 고지위문 당시 사진이다.
 우측으로부터 박창학 PD , 이무근 춘천방송
국장,변형하  관리부장, 김재중 부사장 ,
박 광석 엔지니어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신문방송
 고위과정 제2기 수료식, 1993년 2월 8일






 1992년 10월 16일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신문방송과정 동기
진웅 박창학 이병윤 이민희





수료식날 서정우 대학 원장과 김영식 교수





516 군사 정부가 문화공보부를 통해
방송작가 피의자들을 동원에 국가 홍보를
 목적으로 당시 굴지의 공장인 호남정유, 포항제철,
 울산현대 조성공사 등을 시찰케 했는데 사진은 현대조선
공사가 한국최초로 제조 하고 있는 유조선 현장이다.


 참석자는 전국 신문방송 언론사에서
선발한 언론인 등이다.      호텔 식사제공
 각종 선물과 선전지가 전달되었 다.     사진은
뒷줄 두 번째가 KBS 김선기 기자 일곱 번째 영영
 라디오 사교육 PD , 여덟 번째 박창학 연예 PD 검정
베레모, 그 옆 이동린 국제국 피디 등이 보인다.
 




박창학 피디가 1985년 임성훈과 함께
피디시절 일요스페셜 특별 초대손님으로
 나왔는데 조용필과 함께 찍은 사진






1985년 KBS  신입 프로듀서 환영회








1998년 명예퇴직 후 한국
프레스센터 언론인 연구 집필실에서
 전문위원으로 있을 때 한국신문방송편집인
협회   원로 회원들과 야유회 갔을때 찍은 사진
세 번째가 박창학 위원 그다음 안평선




1988년 9월 제 24회 서울 올림픽 대회
방송에 참가하여 서울 감동과 영광을 전세계에
 알린  빛나는 노력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라는
감사장과 훈장  문화장 기장을 받은 기념 패다.    대회장은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당시 박창학의 직함은 Supervisor(총감독)
HOST BROADCASTER( KBS ) KOR PARK, CHANG HAK






1974년 7월 말경 노래 고개 세고개
라디오 인기 프로그램 공개방송 차 목포공생원
 공개방송을 마친 후  흑산도를 향해   떠나는 모습
 사진 맨 앞 줄 첫 번째가 TV 박칭학,  두번째 신귀복
작곡가,   세 번째가 별셋 멤버,   뒷쪽 우측 작곡가
이수인, 옆 소프라노 황성자,  별셋맴버 이광진






82년 kbs가 칼라 텔레비전 시대를
앞두고 분야별 수석 PD 프로듀서 일본방송
 특별 연수를 보냈다. 이 사진은 일본 ntv 이쿠타
 스튜디오 야외 촬영장에서 견학 온 일본 학생들과
찍은사진 왼쪽 하강일 pd, 최상현 PD , 한사람 건
너 유익수 미술감독, 다음 맨 오른쪽이 박창학







 5공화국 정부가 언론 통폐합을 한뒤
 KBS TBC, Dbs 기독교방송 등이 통합 뒤
함께 일할 때 사진,   KBS 반대 방향 경제인
연합회 건물이 보인다. 사진 중앙에 뭔가 원고를
열심히 보고 있는 PD는 이용호 피디로 TBC에서 와서
 얼마후    하와이 이민을 떠나 하와이 한국어 방송에서
 일하는 것으로 안다.  좌측 정유일, 우측 박창학






박창학 피디가 연출안 장수 대는
 처음 시작 할 땐 김양일 아나운서 (추적
 60분으로 유명세를 얻은) 변순복 아나운서가
진행하다가 나중에 김양일과 유애리 아나운서가
진행을 맡았다. 초창기 변순복 아나운서와
김양일 아나운서 진행장면






1983년 10일 전국 농업 기술대회
농촌후계자 위안 공연 당시 시민회관 별관
 (현 세종문화회관)에서 KBS 향연 공개방송 리허설
 장면 원맨쇼 1 인자 백남봉 씨와 TV 박창학






1983년 8월 KBS향연 쇼 프로듀서 시절
 납량특집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 공개방송을
 마치고 숙소인 설악 파크 호텔에서 야간 나이트 쇼를
관람 하는 장면, 오른쪽부터 가수 장재남, 홍세민
 PD 박창학, 중창 멤버 한소리 등이 보인다.






1983년 육군 특전사의 날
기념 공연 시작 전 PD 박창학,  
MC 곽규호와 보조 MC  개그맨
장천익에게 진행과정을
 설명 하고 있 다






1991년 박찬학이 청주방송총국
편성제작국장 시절 편성제작국 요원
들과 함께 중앙 박창학 국장 우측이 조영숙
아나운서 좌측 한사람 건너가 이명우 PD
우측끝 이병환 부장






1985년 광복 40주년특집 일본
대도시 순회공연 당시 좌측에 MC 김양일
 (KBS TV 추적 60분 MC),    우측 가수 김정구
 (눈물젖은 두만강), 박창학 김정구 뒤에 서있는
 분이 가수 남일해,  김양일, 가수 임지호






박창학 피디가 1983년 4월 1일
 육군특전사령부 위문 공연 당시 가수
 남이가 노래 할때 특별 특전사 장병이
무대에 올라와 함께   춤추고 곁에서
 개그맨 장천익 보조를 맞추고 있음






1983년 4월 1일 육군  특전사령부
장병 위문공연 당시 KBS 향연 박창학
 PD 와 정훈참모 이소령






1983년 4월 1일 육 군 특수 전투
사령부 장병 위문공연 당시 공연 차
 막 도착한        인기가수 남궁옥분
통기타가수,      PD 박창학






1983년 4월 6일 육군 특전사령부 장병 위문 때 대기 중인 인기 가수 계은숙 양과 정훈참모





1985년 박창학이 임성훈과
 함께 초대 가수  신중현과 함께
왼쪽 신중현 우측 박창학 PD
 





1983년 12월 육 군 위문공연
앞두고 부대 참모장 실에서 스텝들과
 함께 , 왼쪽 여자가수 끝 MC 곽규호
중앙 참모장 대령 우측 박창학
 정훈참모 (소령)






1983년 8월 철원 지역주민과
육군부대 합동 민. 군 위문 공연을
마치고 왼쪽부터 혼성듀엣 한마음,
 중앙 PD 박창학, 우측 한마음






1975년 10월 국군장병
위문 공연을 마치고 PD 박창학과
인기가수 옥희 와 찍은 사진 옥희는
세계챔피언 홍수환과 결혼






1986년 2월 오늘 생각한다,
 PD 시절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김형석 박사와 박창 학








위, 아래사진, 1984년
 KBS 연수원에서 실시한 외국인
프로듀서 및 보도 요원 교육 당시
 제자들과 함께 박창학






983년 5월 28일 KBS사내 체육대회 때
 라디오 응원단장 박창학 차장과 박광희 차장






1981년 프로듀서 일본 연수당시
 일본 TBS 야외 스튜디오에서 왼쪽부터
 최상현 PD, 박창학pd, 하강일 pd






2017년 9월 22일 사우회 여성윈원회 2주년 기념 문화행사

 
 
유경환 (유카리나) 여사님 글  








2017.08.17 10:52
이 책이 출간 된지가 좀 되어서,
아직 서점에가면 있는지 궁금합니다.
역대 방송국 연    예프로그램이나 관계
인기있던 분들의 야사 같은 이야기들이 관심
있는 분들에게도 추억을 안겨주는 책이 될 것
 같군요. 어려운 일제하에서 독립지사의 손자로
 태어나셨으니, 6.25를 거치며 숱한 어려움을
 겪으셨을 터인데도주어진 삶에 충실하셔서,
추측하건대    아직은 충분히 바쁘게
활동 하실것으로 짐작됩니다. 





 
 
 


방송 PD 수첩





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