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역사 90년

해방 후 첫 3·1절, 한국방송역사 (10) 윤용노, 전인국, 문제안, 강찬선

이장춘 2017. 7. 11. 07:04



 



 

단기 4279년 3월 1일

27년 만에 처음으로 마음놓고

맞이하는 국경일 3·1절!


이날아침 서울 종로의 임경이 울더니

오후 2시부터는 덕수궁 중화전 앞에서

흰저고리 검정치마 입은 조선의 딸들이

3·1절을 기념하는 ‘ 3·1운동의 노래’ 를

소리 높여 불으더라.


중화전 앞에서 중계하는

전인국 아나운서

보조 문제안, 윤용노, 호기수, 박인자


자유신문사 주최


3·1절 기념 “서울안여학교연합음악회

덕수궁 중화전 앞

1979,3,1 오후 2시


문제안



해방 후 첫 중계방송에 참여하셨던

고 문제안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두 장의 사진 뒷면에 쓰인 글을 인용했다.



해방 후 첫 3·1절, 한국방송역사 (15) 윤용노, 전인국, 문제안, 강찬선



첫 3·1운동 기념식

1946년 3월 1일

서울 종로 보신각


머리 동영상은 그때의

 감격어린 모습을 담은 사진에

 그때의 목소리를     함께 듣는다.

   해방의 날 1945년 8월 15일 미처 울리지

 못했던 보신각종이 이날 처음 울렸다. 그때

중계방송에 임하셨던 최초의 방송기자 고 문제안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두 장의 사진 전 후면을 활용

하고  그때의 아나운서 음성을 넣어 해방 후 첫 3·1절

 행사를 재구성했다. 목소리는 윤용노 · 전인국 두 분

아나운서 증 한분이라고 생각되지만 확인되지는

않는다. 동영상의 뒷부분은 1950년대 강찬선

 아나운서의 3·1운동 해설 목소리를 넣어

 영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1919년 3월 1일 ! 암울한 세상에서 벗어

나야된다며 모든 국민들이 외쳤다.   국내

에서는 물론 만주에서, 중국에서, 소련에서,

미국에서 동포들이 있는 곳이면 목이

터져라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로부터 27년의 세월이 지나

 1946년 3월 1일 해방된 조국에서 처음

으로 삼일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압박과

설움의 세월을 지나 해방을 맞이했다. 모든

국민은 손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다.

해방 후 첫 3.1절 기념행사가 있던 날

KBS는 이 뜻 깊은 날의 행사를

 중계방송 했다.





3.1절 민족대표 33인을 상징

하는 보신각의 종소리는 오랜만에

들어보는것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보신각의 관리도 허술했고 종소리도 울리지

 않았다. 그 보신각에서 그리고 그 종소리에

맞추어 3. 1절의 감격을 안고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모여 들었다. 





집집마다 태극기를 걸고 방송과

신문은 3.1절얘기로 채워졌다. 군정청과

 국민들의 추앙을 받는 이승만, 김구, 김규식

등이 大韓國民代表民主議院을 구성하고 보신각

에서 행사를 갖기로 해서 보신각을 중심으로 한

종로에는 태극기를 든 사람들로 물결을 이루었다.

그때의 신문지면을 올렸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위의 신문은 3월 2일자이고

 아래신문은 3월 1일자이다.


(석간이어서기사가 하루씩

늦은 것이다. 사설부문은 앞부분만

나타난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1945년 해방의 날에 마땅히

울렸어야 할보신각종소리가 때는

 늦었지만 이날따라 더 큰 의미를 지닌 채

 멀리 멀리 울려 퍼졌다.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

했던 민족대표 33명의 고귀한 애국정신을 추모

하는 뜻에서 생존하신민족대표를 모시고

 33번의 타종이 있었고 이로부터

해마다 타종은 있어 왔다. 

 




그러나 1945년 말 신탁통치로

부터 비롯된 분열은 하나 된 마음으로

 치러졌어야 할 행사마저 여러 갈래로 치러져

민족의 미국은 깊어갔다. 서울에서만도 네 군데에서

열렸다. 좌익계열로 구성된 3·1記念全國準備委員會

남산에서, 민주주의민족전선은 탑골공원에서,

 또 일부우익단체는 보신각의 행사와는

시간을좀 달리해서 서울운동장

에서행사를 가졌다.





삼팔선이 그어지고

1946년 들어 찬탁, 반탁하면서

서로가 등을 돌리고 돌아선 가운데

처음 맞는 삼일절 행사는 민족의 분열이

깊어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면서 이후에

있을 각종 행사는 대립과 분열로 얼룩져

버리고 마침네   6.25를맞이했고

민족의 비극은 계속되었다.





서울운동장 삼일절 행사장에

 나온 인사들 오른쪽에서부터 오세창,

신익희,  이범석,  윤치영,  임영신,

 뒤에 얼굴 보이시는 분 장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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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未 獨立 宣言書(기미독립선언서)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 언)하노라. 此(차)로써 世界萬邦(세계만방)에 告(고)하야 人類平等(인류평등)의 大義(대의)를 克明(극명)하며, 此(차)로써 子孫萬代(자손만대)에 誥(고)하야 民族自存(민족자존)의 正權(정권)을 永有(영유)케 하노라.

    半萬年(반 만년) 歷史(역사)의 權威(권위)를
     仗(장)하야 此(차)를 宣言(선언)함이며, 二千萬(이천만)  民衆(민중) 의 誠忠(성충)을 合(합)하야 此(차)를 佈明(포명)함이며, 民族(민족)의 恒久如一(항구여일)한 自由發展(자유발 전)을 爲(위)하야  此(차)를 主張(주장)함이며, 人類的(인류적) 良心(양심)의 發露(발로)에 基因(기인)한 世界改造(세계개조)의 大機運(대기운)에 順應幷進(순응병진)하기 爲(위)하야 此(차)를 提起(제기)함이니, 是(시)ㅣ 天 (천)의 明命(명명)이며, 時代(시대)의 大勢(대세)ㅣ며, 全人類(전인류) 共存同生權(공존동생권)의 正當(정당)한 發動(발동)이라, 天下何物(천하하물)이던지 此(차)를 沮止抑制(저지억제)치 못할지니라.

    舊時代(구시대)의 遺物(유물)인 侵略主義(침략주의), 强權主義(강권주의)의 犧牲(희생)을 作(작)하야 有史以來 (유사이래) 累千年(누천년)에 처음으로 異民族(이민족) 箝制(겸제)의 痛苦(통고)를 嘗(상)한 지 今(금)에 十年 (십 년)을 過(과)한지라. 我(아) 生存權(생존권)의 剝喪(박상)됨이 무릇 幾何(기하)ㅣ며, 心靈上(심령상) 發展(발 전)의 障碍(장애)됨이 무릇 幾何(기하)ㅣ며, 民族的(민족적) 尊榮(존영)의 毁損(훼손)됨이 무릇 幾何(기하)ㅣ 며, 新銳(신예)와 獨創(독창)으로써 世界文化(세계문화)의 大潮流(대조류)에 寄與補裨(기여보비)할 機緣(기연) 을 遺失(유실)함이 무릇 幾何(기하)ㅣ뇨.

    噫(희)라, 舊來(구래)의 抑鬱(억울)을 宣暢(선창)하려 하면, 時下(시하)의 苦痛(고통)을 擺脫(파탈)하려 하면, 將來(장래)의 脅威(협위)를 芟除(삼제)하려 하면, 民族的(민족적) 良心(양심)과 國家的(국가적) 廉義(염의)의 壓縮銷殘(압축 소잔)을 興奮伸張(흥분 신장)하려 하면, 各個(각개) 人格(인격)의 正當(정당)한 發達(발달)을 遂(수) 하려 하면, 可憐(가련)한 子弟(자제)에게 苦恥的(고치적) 財産(재산)을 遺與(유여)치 안이하려 하면, 子子孫孫 (자자손손)의 永久完全(영구 완전)한 慶福(경복)을 導迎(도영)하려 하면, 最大急務(최대 급무)가 民族的(민족 적) 獨立(독립)을 確實(확실)케 함이니,二千萬(이천만) 各個(각개)가 人(인)마다 方寸(방촌)의 刃(인)을 懷(회) 하고, 人類通性(인류 통성)과 時代良心(시대 양심)이 正義(정의)의 軍(군)과 人道(인도)의 干戈(간과)로써 護援 (호원)하는 今日(금일), 吾人(오인)은 進(진)하야 取(취)하매 何强(하강)을 挫(좌)치 못하랴. 退(퇴)하야 作(작) 하매 何志(하지)를 展(전)치 못하랴.

    丙子修好條規(병자수호조규) 以來(이래) 時時種種(시시종종)의 金石盟約(금석 맹약)을 食(식)하얏다 하야 日本 (일본)의 無信(무신)을 罪(죄)하려 안이 하노라. 學者(학자)는 講壇(강단)에서, 政治家(정치가)는 實際(실제)에 서,我(아) 世宗世業(세종세업)을 植民地視(식민지시)하고, 我(아) 文化民族(문화민족)을 土昧人遇(토매인우)하 야, 한갓 征服者(정복자)의 快(쾌)를 貪(탐)할 뿐이오,

    我(아)의 久遠(구원)한 社會基礎(사회기초)와 卓 (탁락) 한 民族心理(민족 심리)를 無視(무시)한다 하야 日本(일본)의 少義(소의)함을 責(책)하려 안이 하노라.

    自己(자 기)를 策勵(책려)하기에 急(급)한 吾人(오인)은 他(타)의 怨尤(원우)를 暇(가)치 못하노라. 現在(현재)를 綢繆(주 무) 하기에 急(급)한 吾人(오인)은 宿昔(숙석)의 懲辨(징변)을 暇(가)치 못하노라.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所任 (소임)은 다만 自己(자기)의 建設(건설)이 有(유)할 뿐이오,

    決(결)코 他(타)의 破壞(파괴)에 在(재)치 안이하도 다. 嚴肅(엄숙)한 良心(양심)의 命令(명령)으로써 自家(자가)의 新運命(신운명)을 開拓(개척)함이오, 決(결)코 舊怨(구원)과 一時的(일시적) 感情(감정)으로써 他(타)를 嫉逐排斥(질축 배척)함이 안이로다. 舊思想(구사상), 舊勢力(구세력)에 羈 (기미)된 日本(일본) 爲政家( 위정가)의 功名的(공명적) 犧牲(희생)이 된 不自然(부자 연),

    又(우) 不合理(불합리)한 錯誤狀態(착오상태)를 改善匡正(개선 광정)하야, 自然(자연), 又(우) 合理(합리) 한 正經大原(정경대원)으로 歸還(귀환)케 함이로다. 當初(당초)에 民族的(민족적) 要求(요구)로서 出(출)치 안이 한 兩國倂合(양국 병합)의 結果(결과)가, 畢竟(필경) 姑息的(고식적) 威壓(위압)과 差別的(차별적) 不平(불평) 과 統計數字上(통계 숫자상) 虛飾(허식)의 下(하)에서 利害相反(이해상반)한 兩(양) 民族間(민족간)에 永遠(영 원)히 和同(화동)할 수 업는 怨溝(원구)를 去益深造(거익 심조)하는 今來實績(금래 실적)을 觀(관)하라.

    勇明果敢(용명과감)으로써 舊誤(구오)를 廓正(확정)하고, 眞正(진정)한 理解(이해)와 同情(동정)에 基本(기본)한 友好的(우호적) 新局面(신국면)을 打開(타개)함이 彼此間(피차간) 遠禍召福(원화 소복)하는 捷徑(첩경)임을 明知(명 지)할 것 안인가. 또, 二千萬(이천만) 含憤蓄怨(함분 축원)의 民(민)을 威力(위력)으로써 拘束(구속)함은 다만 東洋(동양)의 永久(영구)한 平和(평화)를 保障(보장) 所以(소이)가 안일 뿐 안이라, 此(차)로 因(인)하야 東洋安危 (동양 안위)의 主軸(주축)인 四億萬(사억만) 支那人(지나인)의 日本(일본)에 對(대)한 危懼(위구)와 猜疑(시의) 를 갈스록 濃厚(농후)케 하야, 그 結果(결과)로 東洋(동양) 全局(전국)이 共倒同亡(공도 동망)의 悲運(비운)을 招致(초치)할 것이 明(명)하니,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朝鮮獨立(조선 독립)은 朝鮮人(조선인)으로 하여금 正當 (정당)한 生榮(생영)을 遂(수)케 하는 同時(동시)에, 日本(일본)으로 하여금 邪路(사로)로서 出(출)하야 東洋(동 양) 支持者(지지자)인 重責(중책)을 全(전)케 하는 것이며, 支那(지나)로 하야금 夢寐(몽매)에도 免(면)하지 못 하는 不安(불안), 恐怖(공포)로서 脫出(탈출)케 하는 것이며, 또 東洋平和(동양 평화)로 重要(중요)한 一部(일부) 를 삼는 世界平和(세계 평화), 人類幸福(인류 행복)에 必要(필요)한 階段(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엇지 區區(구구)한 感情上(감정상) 問題(문제)ㅣ리오.

    아아, 新天地(신천지)가 眼前(안전)에 展開(전개)되도다. 威力(위력)의 時代(시대)가 去(거)하고 道義(도의)의 時代(시대)가 來(내)하도다. 過去(과거) 全世紀(전세기)에 鍊磨長養(연마 장양)된 人道的(인도적) 精神(정신)이 바야흐로 新文明(신문명)의 曙光(서광)을 人類(인류)의 歷史(역사)에 投射(투사)하기 始(시)하도다.

    新春(신춘) 이 世界(세계)에 來(내)하야 萬物(만물)의 回蘇(회소)를 催促(최촉)하는도다. 凍氷寒雪(동빙한설)에 呼吸(호흡) 을 閉蟄(폐칩)한 것이 彼一時(피 일시)의 勢(세)ㅣ라 하면 和風暖陽(화풍 난양)에 氣脈(기맥)을 振舒(진서)함은 此一時(차 일시)의 勢(세)ㅣ니, 天地(천지)의 復運(복운)에 際(제)하고 世界(세계)의 變潮(변조)를 乘(승)한 吾人 (오인)은 아모 躊躇(주저)할 것 업스며, 아모 忌憚(기탄)할 것 업도다.我(아)의 固有(고유)한 自由權(자유권)을 護全(호전)하야 生旺(생왕)의 樂(낙)을 飽享(포향)할 것이며, 我(아)의 自足(자족)한 獨創力(독창력)을 發揮(발 휘)하야 春滿(춘만)한 大界(대계)에 民族的(민족적) 精華(정화)를 結紐(결뉴)할지로다.

    吾等(오등)이 玆(자)에 奮起(분기)하도다. 良心(양심)이 我(아)와 同存(동존)하며 眞理(진리)가 我(아)와 幷進 (병진)하는도다. 男女老少(남녀노소) 업시 陰鬱(음울)한 古巢(고소)로서 活潑(활발)히 起來(기래)하야 萬彙군象 (만휘 군상)으로 더부러 欣快(흔쾌)한 復活(부활)을 成遂(성수)하게 되도다. 千百世(천 백세) 祖靈(조령)이 吾等 (오등)을 陰佑(음우)하며 全世界(전세계) 氣運(기운)이 吾等(오등)을 外護(외호)하나니,着手(착수)가 곳 成功(성 공)이라. 다만, 前頭(전두)의 光明(광명)으로 驀進(맥진)할 따름인뎌.

    公約三章(공약 삼 장)


    ㅡ.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此擧(차거)는 正義(정의), 人道(인도),生存(생존),尊榮(존영)을 爲(위)하는 民族的 (민족적) 要求(요구)ㅣ니, 오즉 自由的(자유적) 精神(정신)을 發揮(발휘)할 것이오, 決(결)코 排他的(배타적) 感情(감정)으로 逸走(일주)하지 말라.

    ㅡ. 最後(최후)의 一人(일인)까지, 最後(최후)의 一刻(일각)까지 民族(민족)의 正當(정당)한 意思(의사)를 快(쾌) 히 發表(발표)하라.

    ㅡ. 一切(일체)의 行動(행동)은 가장 秩序(질서)를 尊重(존중)하야, 吾人(오인)의 主張(주장)과 態度(태도)로 하 야금 어대까지던지 光明正大(광명정대)하게 하라.

    朝鮮建國 4252년 3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