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역사 90년

한국방송역사 (14) 중앙청에 처음 태극기가 오르던 날

이장춘 2017. 2. 27. 12:18



 



태극기는 한겨레 한민족,

우리나라의 상징이다. 일제강점기에도

 늘 우리 가슴속에 새겨졌으며 3.1절 독립운동

 때도, 8.15광복을 맞았을 때도 태극기 앞에 하나가

되었다.    태극기 앞에서는 이념도 없었고, 남녀노소도

없이 모두 하나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청에

태극기가 처음으로 오른 것은 해방된 지 5개월이 지나 1946년

 1월 14일이었다. 개인이 태극기를 계양하거나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마음을 모았어도 군정청 하에 있던 관공서

에서는 군정청이 허락하지 않는 한 태극기를 올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래서 중앙청에 태극기가 오른

1946년 1월 14일은 날은 큰 의미가 있었다.


 위 영상은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태극기가

오르는 그때의 장면이다.





해방된 조국이 남북으로 갈리어,

체제가 달라져 갔어도 태극기는 남북이

다 같이 사용했다.    남한에 있던 공산당도

 태극기의 깃발을 올렸고 북한에도 태극기의 깃발이

올랐다. 김일성이 연단에 올라서 연설을 할 때도 태극기를

 배경으로 서서 연설을 헸다. 아래 사진은 북한에서 소련군을

 환영하면서 태극기를 흔들었던 그때의 사진이다. 북한이

 태극기 대신에 인공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48년 7월 24일의 일이었다.





명색이 나라를 세우자니 대한민국

태극기와는 다른 국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1948년 7월 24일    인민회의 제5차 회의에서

태극기 대신에 인공기를 사용하기로 할 때까지,

'공산주 체제의' 북한에서도    태극기는 휘날렸다. 

 필자가 대북방송을 하던 그때 북한에서 월남 귀순한

분들의 얘기를 들으면 인공기는   북한에서도 그리

 환영받지 못했지만 소련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한겨레 한민족은 단군왕검이

 조선을 세운이래. 5천년 역사를 지닌

 배달민족이다. 고려가 한반도를 통일해서

고려, 조선, 대한민국으로 이어온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나라이름 'KOREA'  

고려에서부터 유래된다.      조선조를 지나

일제강점기 뻐 아픈 역사를 거쳐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


대한민국은 조선조 말

고종황제가 환구단 위에 올라

‘조선이 자주 독립국가’ 임을 만천하에

선포하면서  쓰인   나라이름을  1948년 7월

 17일 공포된 헌법에서 정식으로 채택한 국호이고

영문자로는 'KOREA' 로 표시해서 세계가 다 함께

쓴다.  국제적으로 인정된 한반도의 유일의 국호로

쓰이는 것이다.  'KOREA' 유일의 국제적으로

정받은    합법정부 대한민국이 채택한

국기는 ‘태극기‘이고 國歌국가는

‘애국가’. 이다.



태극기와 애국가



해방되고 중앙청에서 일장기 대신

 올라간 것은   태극기가 아닌 미국의 성조기

였다.       태극기가 처음으로 중앙청 국기봉에

 오르던 날   이승만, 여운형, 조병옥 등 민족지도자와

 하지중장을 비롯한   군정청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옛날부터 불러왔던 구 애국가에 맞추어

계양되면서 감격어린 날이 되었다.


지금 들려오는 애국가는

 구 한말부터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 (Auld lang syne)곡조에 우리말을

 넣어서 불러오던 노래였다. 춘하추동방송에 올라

있는 이 노래를 듣고 ‘창피 하다.는 댓글을 쓴 분이

계셨다. 일제 강점기 하에서 그렇게라도 부를 수밖에

없었던 그때의 처지가 안타깝다. 그런 가운데서도

 안익태 선생님이 애국가 곡을 만들어    그 곡을

 익히시는 분들은 그 곡도 불렀다.  이 외에도

애국적인 음률을 담아 애국가처럼

부른 노래 들이 여러곡 있었다.





그래도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가 올드 랭 사인 (Auld lang syne)

 곡에 맞추어 부른 애국가다. 이 노래는 일제강점기

국내에서는 부르기 어려웠지만 해외동포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랬다. 1932년 LA올림픽에

참여했던 우리 선수들이 미국교포들이 마련한 만찬장에서

 태극기를  처음   보고  애국가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고 했다.     해방되던 날 애국가를 부르려고 했지만

 가사와 곡을 몰라 그저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태극기를 흔들며 애국가를 불렀다.

 



이렇듯이 이 노래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공간에

이르기까지 뜻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널리 불려 지던 노래로 해방되던 그날 저녁

740분 30여명의 방송인들은 제 4스튜디오

모여 이 노래를 부르며 해방의 기쁨을

얘기했다. 그리고 해방된 조국에서

이 노래를 방송으로 실었다.


1947년 해방 후 우리 땅에서

처음 나온 고려레코드에서 테너 송진혁과

 음악대학 합창단이 불러 음반번호 1호로 발매된

노래이기도 하다. 지금 듣고 계시는 노래는 그보다

훨씬 먼저인 1946년 1월 14일 중앙청광장에 태극기를

올리면서 부른 합창곡이고     지금 부르는 안익태

 작곡 애국가는 그해 46년12월 12일 입법의원

개회식 때부터 공식적으로 불려졌다.



조선사람과 대한사람



오늘 듣는 애국가 곡은 같아도

가사가 "조선사람 조선으로 길이 보전하세"

이고 오늘날 부르는 가사는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다. 처음에는「조선」에이라고 불렀던

것이 대한」으로 바뀌었다. 조선은 500여 년간 이어온

 왕조이고 대한은 고종이 우리나라가 독립국임을

만천하에 선포하면서 국호를 대한제국

이라고 한데서 비롯된다.


해방공간에서도 조선을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946년 4월 그 유명한 정판사 사건이 터졌다.

남로당이 위조지폐를 마구 찍어낸 것이다. 그로

부터 공상단은 불법화 되었다. 그런데 그 공산주의자

들은 대한보다는 조선을 즐겨썼다.     여기서 조선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가기시작했다. 조선이라는 말 대신에 대한으로

바뀌어 나간 것이다. 1947년 8월에 취입된 "조선의 노래"가 

1948년 정부 수립후 "대한의 노래"로 곡명이 바뀌고 일제

 강점기 선우일선이 부른 대표적인 신민요 조선팔경도

 대한팔경으로 이름을 바꾸어 남한의

 가수들이 불렀다.


그 시절 어린 필자는 조선이라는

 말을 쓰면 큰 일 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좀 커서 보니 조선일보,    조선호텔 등 조선을

쓰는 신문사나 큰 호텔 등이 있음을 보고 조선이라는

말도 흠이 아니라는 것을 안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남한은   헌법을 제정 할 때 국호를 대한민국이라고

했고   북한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했다. 이러다보니 남한에서 조선을 쓰는것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져 갔다. 


 1946년 12월 12일 입법의원이

 개원 되면서 안익태 작곡   애국가가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불렸다. 그래도

사람들은 올드랭 사인 곡에 익숙해져서 그

 노래를 불렀지만 "조선"은 차츰 대한이라는

말로 바뀌어갔다. 이때까지는 우리나라

에서 레코드 제작이 어려웠다. 





 그 시절에는 방송국에서

이런 행사를 중계방송해도 생방송

이어서 녹음물을 남기지 않아 기록이 없고

「조선시보」나 「전진조선보」등에서 만든 영화

기록이 있을 뿐이다.  해방되어 처음으로 레코드를

취입해서 나온것이 1947년 8월이다. 고려 레코드사가

 레코드 1번으로 내 놓은 것이    바로 송진혁과 대학

합창단이 부른 애국가다.     아래사진은 해방후

 처음으로    레코드를    제작한 고려레코드

최성두사장과 애국가 지휘자 김성태다.

최성두사장이 피아노반주를 했다.





1948년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를

정식 국가로 채택했지만 그 뒤에도 올드랭

사인의 애국가 불렸고 지금도 송가로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 들려 올 때면

그 곡에 맞추어 애국가를 흥얼거리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는 분들이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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