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전설의 방송인 최창봉선생님 명복을 빕니다.

이장춘 2016. 12. 30. 09:21

 


최창봉선생님 생전육성과 빈소 동영상





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PlviSB7dT6c








최창봉선생님 명복을 빕니다.



전설의 방송인 최창봉선생님이

 향년 92세로 2016년 12월 29일 세상을

 뜨셨습니다. 1925년 평북 의주군에서 태어나

고려대 영문학과에 다니던 중 6·25전쟁 때 군에 

입대해서 1954년 국방부 군 방송실장으로

방송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1956년 우리나라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사  HLKZ의 개국때 공개모집에 응모

 연출과장, 방송부장을 지낸 이래,  공보부 방송문화

연구실장, mbc개국, KBS TV개국, 동아방송 개국을

주도해서 이나라 각 방송사 개국의 대명사가 되었습

니다. KBS 한국방송공사 설립의 주역으로 초대

 부사장을  지내셨고 후에 MBC사장을 지내시는 등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자세한 글은 그동안

 써 올린 글을 연결하겠습니다.


2016년 마지막날 12월 31일

6시 반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영결식을 거행하고 영원한 안식처 대전

형충원으로 가십니다.  선생님은 충무무공

훈장을 받으신      6.25 참전용사로

국립묘지에 안장 되십니다.








이경희 님이 말하는 최창봉선생님



최창봉선생님 부음을 접한

이경희(스무고개 재치문답 박사)님이

글과 사진을 보내 오셨기에 함께 올립

니다. 이경희 박사님 고맙습니다.



전략....최창봉 선생님의 타계소식을

 듣고 마음 아픔을 금치못합니다. 최창봉선생님

저는 우리나라 최초의 텔레비전 HLKZ TV방송사에

 계실때 서명석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나는 누구일까요?>

프로에 방송국이 화재로 패쇄될 때까지 패널로 출연했던 오랜

인연이 있읍니다. 또한 동아방송국 편집국장님으로 계실

 때도 제가 오래도록 방송을 출연하는 등,  참으로

방송과 관련해서 인연이 많습니다.

.

 

그 뿐만이 아니라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에게 관심이 많으셨던 최창봉선생님

에게 만남의 자리를 마련해드렸더니 케이블방송국을

설립하려는 계획을 백남준씨에게 의논할만큼 방송만을

 생각하며 일생을 바치신 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최창봉

선생님이 MBC사장으로 계실 때   마침 백남준 회고전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갖기위해 한국에 온 백남준씨에게

 부탁해서 '춤의해'를 기념하기위해서 백남준포퍼먼스를

동숭동 아르코 극장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갖게 한 공로도 있으십니다. 

 

백남준씨가 타계하자 제가

공동대표로 있는 백기사(백남준을

 기리는 사람들)의 발기인으로 고백남준을

기리는 일에도 많은 일을 최창봉 선생님과

 함께 하였기에 더욱 애도의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부디 편히 잠드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이경희 올림




이경희 : 백남준 선생님


춤잡지 대담을 위한 동숭동 한식집에서

 1985.7.4. 왼쪽부터 최창봉, 조동화(춤잡지발행인,

전동아방송 제작과장), 이경희, 백남준



왼쪽부터 이경희, 최창봉, 백남준,

강태영(백기사명예회장), 송정숙(백기사

발기인), 조동화(춤잡지발행인)



1992년 ‘춤의해’를 위한 백남준퍼포먼스 가타로그에 실린 최창봉MBC사장의 인사말




박서림 (원로작가) 선생님


 

삼가 명복을 빕니다 .



아이고, 별이 떨어졌군요.

최창봉 선생님, 가까이 모시지는

않았지만 만나 뵙기만 하면 알아보시고

반가이 대해주시던 선생님이셨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하지만

어찌 합니까 命은 어찌하지

못하는 것을요.


삼가 명복을 빕니다 .


박서림 合掌.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신분


유경환, 정종표, 최철미, 김학, 배진수, 이복예



 

전설의 방송인 최창봉님과  방송의 역사 (1) 

 

 

1950년대 이래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방송국이 탄생 할 때는 최창봉님이  

계셨습니다. 1956년 HLKZ-TV가 탄생 할 때 그랬고  

1961년 서울 MBC문화방송이 탄생 할 때도 그랬습니다.  

1961년,   KBS-TV개국에 최창봉님이 계셨고 1963년  DBS

동아방송국 창설때도 그랬습니다.    1973년 KBS가 국영에서

공영방송으로 바뀔 때도 그 중심에는 최창봉님이 계셨습니다.  

우리방송 역사에 한 개인이 이토록 많은 방송국의 창설에  

힘을 기울인 경우는 없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TV

방송국   첫 PD, 첫 드라마 연출가 최창봉님은

전설의방송인, 영원한 PD로 불립니다.

 

방송학계에서 이름이 알려지셨고

현재 방송문화 진흥회 이사장이신 김우룡 교수는

 “리얼리즘 방송 방송의 선구자", "개국 전문가"라는 말로도

 최창봉이라는 사람을 다 표현 할 수는 없다. 그는 영국의

대표적인 방송 BBC 기틀을 다진 리스경에

비견할 말하다.” 라고 했습니다.

 

 


 

1925년 평안북도 청성진에서

출생한 최창봉님은 1946년 고려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고려대학교 극회에서 연극을

 시작했습니다.   대학재학중에 6.25가 일어나

육군 종합학교  22기 생도로 입교해서 장교로

복무했고 미국 포트 밴재민 해리슨 육군

고급 부관학교에 유학 했습니다.

 


귀국 후에 1954년 국방부

군 방송계장으로 근무하면서 방송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정훈장교 최창봉

육군대위는 육군대령이 하던 군 방송실장을

 맡았고 그것을     끝으로 군에서 예편 할 무렵

1956년 우리나라 최초의 TV방송국  HLKZ가

 창설되면서 공개모집에 응모,  연출과장으로

 발탁되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TV

방송국 설립에 참여했고 프로그램

제작에 임했습니다.

 

 

 

 

 경험도 없고 준비기간도 없이

 1956년 5월 12일! 대한민국 첫 TV방송

전파가 발사되었습니다. 최청봉 선생님은

그때 얘기를 다음과 같이 들려 줍니다.

 

1956년 3월에 공개 채용된

 텔레비전 요원들에게 6월의 방송 개시를

 앞두고  5월 12일부터 3일간의 시험방송준비

 지시가 하달된 것은 요원들이 정시출근을 시작한

5월 1일 이었다. 장님들이 코끼리를 더듬어볼 시간

여유는 실로 11일간 이었다.  KORCAD의 공동 사주이던

밀러씨와 황태영씨가 필자에게 들려준 몇 권의 전문서를

유일한 안내자로 시설공사가 한창이던 스튜디오와

사무실에서 연일 합숙하며 준비 끝에 맞이한 5월

 12일의 시험방송은 실로    정식 개국 식을

겸한 역사적인 공식방송이었다.

 


민의원의장 이기붕, 공보실장

 갈홍기, 체신부장관 이응준, 서울특별시장

 김태선 등 집권당 귀빈들이 유달리 많이 참석한

 가운데 명 아나운서 서명석의 사회로 진행된 개국식에

이어 방송된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성경린씨가

 지휘한 "萬波停息之曲" 과 壽齊天의 아악연주였다. 이어서

 민속무용단의 승무와 박시춘씨 지휘의 경음악 연주, 가수

원방현, 백설희, 현인, 장세정등의 가요로 구성된 바라

이어티.쇼,   영화등으로 오후 7시30분부터 방송

끝나는 9시30분까지 2시간동안 진행됐다.

 


 최창봉님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TV방송이 처음실시

 된것은 서울 종로 관철동 당시 화신앞에

있던 동일 빌딩에서 채널 9, 출력 100w, 호출부호

HLKZ로 1956년 5월 12일의 일로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실시한 TV방송의 시초이고   상업방송의 시작 이었습

니다. 세계에서는 15번째 이고 아세아 에서는

일본. 필리핀, 국에 이어 네 번째로  

텔레비전 방송을 실시했습니다.   

 

 

 

 

 첫 TV방송 드라마가 방송된 것은

 1956년 9월로 홀- 워씨홀 작 최창봉 연출

"사형수"였습니다. 이때 대한민국 첫 TV탤런트

오사랑, 최상현, 김경곽님이 등장합니다.

  

 

 

 

선생님은 TV방송 관계자로는 최초로

1957년 9월  미국 보스턴 대학연수를 떠납니다.

이때 같이 가신분이 1945년부터 방송국에 들어와

방송일 을 하시던 노정팔님이십니다.

 

 

 

 

최창봉님이 힘을 기울이던 HLKZ-TV는

처음부터 어려움이 많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수상기 보급이 안 되었을 때라 광고방송에 의존하던

 방송국으로서는 경영이 어려웠고 하는 수없이 한국일보사에

 넘어가 DBS가 되었습니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1959년

원인모를 불이 화재가 발생해서 AFKN 시설을 빌려

방송을 하는 등 어려움을 겪다가 문을 닫았습

니다.  (자세한 내용은 HLKZ편에 있음)


 

 

 

 


선생님은 1959년 방송문화연구

실장직을 맡았다가 MBC창설에 참여

하고 KBS-TV개국요원으로 KBS-TV

산파역을 맡으십니다. 다음 회에서 계속

하겠습니다. 아래 영문자 주소를 클릭

하시면 최창봉 선생님에 관한 글을

더 보실 수 있습니다


전설의 방송인 최창봉님과 방송의 역사 (1)

http://blog.daum.net/jc21th/17780350


방송의 역사 살아있는 전설, 최창봉님! (2)

http://blog.daum.net/jc21th/17780351


동영상, 방송역사 살아있는전설 최창봉 회장님 출판기념회

http://blog.daum.net/jc21th/17780349


연속극 여로, 그시절의 KBS 중앙방송국장 최창봉선생님의 글

http://blog.daum.net/jc21th/17780791

 

방송역사의 살아있는 전설 최창봉, KBS저널 한지은

http://blog.daum.net/jc21th/17781166


한국방송과 최창봉 한국방송인회 창립 8주년 기념 Conference 

http://blog.daum.net/jc21th/17782184


HLKZ 최초 TV방송국 그때 그 얘기, 위진록 선생님께 보낸 최창봉선생님 편지

http://blog.daum.net/jc21th/17782411




위는 최창봉선생님의 친필 위진록

 선생님에게 보내신  편지이고 아래는

최창봉 선생님이 필자에게 보내신

 편지 중에서 일부를 올렸습니다.


 

 

최창봉님이 KBS 중앙방송국장시절이던 1972년 여로 종방기념 사진으로

2 유신박, 4 이남섭(근본,연출) 5 박종국(TV부장), 6 장욱제(주연), 7 태현실(여 주인공),

8 최창봉(중앙방송국장), 10 오승룡, 11 김광식, 16 인운섭님 등이 함께 했습니다.

 

3김시대  그시절 김대중, 김영상, 김종필 3김과 박준규 국회의장이 함께 혰습니다.

 

1988년 방송위원회와 KBS이사회가 구성되던 시절 방송위원님들과 KBS 이사님들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왼쪽부터 노정팔 KBS이사장, 최창봉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윤주영

 전 문화공보부장관, 강원용 방송위원장, 한운사 KBS이사님입니다. 

 







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PlviSB7dT6c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