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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백수 정완영

이장춘 2016. 9. 18. 07:12

 

 



시조시인 백수 정완영선생님!

그 호 따라 백수를 사시다가 2016년 8월

27일 향년 98세로 세상을 뜨셨다. 위 동영상은

정완영 선생님이세상을 뜨심에 깊은 인연 속에 선생님을

 (이하 존칭생략)존경하며 모시던 고향 시골역장 강병규 황간역장

 추모 글과 함께 올린 동영상으로 생전에 그토록 가깝게 모시던 제자

 최정란시인이 보내주셨기에 글 한편을 올리며 동영상을 머리에 올렸다.

백수 정완영 시인의 작품은 ‘조국’이 1974년 고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오른 이래 1983년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분이네 살구나무’ 가

 올랐고  부자 상이 1984년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올랐다, 

 이 밖에도 '봄 오는 소리', 풀잎과 바람‘   '배 밭머리'

등이 수록되는 등 널리 알려진 시인이다.



시조시인 백수 정완영



조국 祖國 정완영 대표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에인사랑

손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 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어도

피맺힌 열두 줄은 굽이굽이 애정인데

청산아 왜 말이 없이 학처럼만 여위느냐.





1919년  11월 11일,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나 해방될 무렵 젊은 시절부터 

 시조시를 써오던 정완영이 19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조국」이 당선된 이래 본격적으로 시를 써 왔고 그때 당선된

「조국」은 교과서에 수록 되는 등 그의 대표 시로 자리매김 했다.

시인 자신은 '을숙도' ‘분이네 살구나무’ '부자 상' '모과'등의 시에

애착을 가졌다고 했다. 선생이 남긴 수많은 주옥같은 시는 국민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고 곡이 붙여져 노래로도 불린다. 살아서 

받는 최고 훈장 은관문화훈장을 비롯해서 2007년 제5회 유심

작품상특별상, 2008년 제13회 현대불교문학상 시조부문,

2012년 제2회 이설주 문학상 수상경력이 있다. 


 



말로만 들어오던 정완영 시인에

관해서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5년

필자가 시골역 황간역을 들렸을 때 만난 아크릴

 물감으로 돌이나 화판, 항아리에 채색해서 작품화 한

 강병규 시골역장의 시 항아리와 초상화를 보고 또 블로그에

올라있는 여러 편의 글에하면서 부터다. 김천에서 태어난

정완영의 외갓집이  황간역에서  얼마 안되는 거리    경상북도

상주여서  정완영은 외갓집을 주제로 많은 시를 썼고 그 시들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황간역에  작품으로  형상화 되어서

진열되어 있는가 하면 황간역에서는 정완영 시인이 참여한

 가운데 시화전이 열리는가 하면   정완영 시인이 황간

명예역장으로 추대되어 역장복장을 하고 역무를

 수행하는 등그  장면들이 사진으로 올라있다.





최정란 시인이 참여한 시 낭송회

등에서는 정완영 시 낭송이나 가곡이 불리는가 

하면  정완영의 고향 김천 직지사 등에서는  정완영

시인을 기리는 백일장 등 행사가 치러지고   또 정완영

문학관이나 시비도 서 있어서 관심을 끈다.   춘하추동방송과

깊은 인연을 맺어온  유튜브 최고의  음악동영상 제작자 김순옥

 등이 정완영 시에 곡을 붙인 노래를 모아 만든   영상이 

올라있기도 하다.   춘하추동방송은 이런 글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모았다.






 

정완영 시인과 황간역

 

 

97세의 원로시인 흔히 100수 인이라

불리는 정완영 선생은 외갓집이 황간역광 가까운

 곳이어서 황간과 관련되는 많은 시를 남겼고 황간역에는

정완영시 항라이가 많다.  황간역에 있는 정완영시와 최정란

 시인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의 시 항아리는 50여점이 된다.

 아래 글은 정완영 선생 관련 최정한시인의 글이다.

 

 

2014. 8. 9 음악회날 황간역은 국보급  

시조시인 백수 정완영님의 외갓집 가는 

'지나던 역으로  시의 역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시의 역

 강병규 역장님은 백수 정완영님께 명예 역장님 모자 씌워드리고

 강역장님과 주변인들과 사진을 기록으로 남겼답니다. 백수정완영

시조시인의 외갓집은 경북 상주군 모동면 오도티 마을이랍니다. 

 황간역에서 현재는 차로  10분거리인 경북상주로  넘어가는

재넘어 경계지역 마을이랍니다.  버스가 자주 다니는

 길이  아니라 걸어서  다니던  길 이었을거예요 

 



2014년 8월 9일 정완영 시인 황간역 명예역장 칭호를 받던날


 

 


백수시인 정완영 : 제자시인 최정란,  백수시인 시를 쓰고 초상을 그린 돌? (강병규 황간역장 작품) 옆에서

 



정완영 백수시인과 제자 최정란 이야기

황간역 강병규 골역장 블로그에서 

 

 

황간역 대합실에서 백수 정완영

시인과 함께 하는 시화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시화전 제목은 '시인의 외갓집 가는 길'입니다.백수

정완영 시인과 제자 시인들이, 백수 시인의 외갓집 가는

 길목인 황간역 대합실에서 오붓하게 만나는 것이 콘셉트입니다.

 백수 정완영  시인과,  조경순,  김영주, 이예숙, 김영희, 최정란,

장귀순, 김락기, 이명식, 김석인, 김동엽, 김명섭, 김호길, 정형석

제자 시인 13명의 시가 모였습니다.     갤러리와 대합실,

역 마당과  승강장에 있는 것   합치면 백수 시인과

제자 시인들의 작품만도 약 50점이 됩니다.


기간은 8.1~8.31까지입니다. 지난 4월에

 백수 정완영 동시조 그림전과 음악회를 마치고,

최정란 시인과 김영주 시인, 시골역장이 블로그 댓글을

 통해 이런 시화전을 모의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7월 한 달간

 시화전 작품 그리는 노동을 좀 했습니다.     날은 좀 더웠나요!

최정란 시인도 맘 고생 많았을 겁니다."선생님과 함께 시화전

 할 사람 여기 붙어라!"고 동네방네 소문 내고 연락하고

동분서주  했겠지만,  짐작컨대 '내 그럴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며 바로 시를 내 준 시인은

 아마 몇 안 되었을 걸요^^!


시골역장 입장에서는 생각보다는 호응(?)이

적은 편이라 그림 그리는 수고를 덜어서 다행이었지만,

"야, 내 시에 겨우 이런 그림 그리는 시화전이란 걸 왜 진작

 말 안했냐?"라던가, 나중에 황간역에 백수 시인과 제자들 시화전

했다더라는 소문을 듣고"야, 왜 나는 백수 선생 제자가

아니냐?" 고 따지는 분이라도 나오면 어쩌나 하는

그런 걱정이 좀 드네요....^^!

 

암튼, 시골역장이 이렇게 분수를 넘는

무리를 하는 것은, 최정란 시인이 언젠가 얘기해

준대로,'아름다운 시어로 워낙 큰 복을 지으신 어르신을

 모시니 우리가 그 복을 나눠 받는 것'이란 생각을 하기 때문

입니다.들은대로 첨언을 좀 하자면, 불가에 동업죄란 게 있는데

같이 있는 가운데 죽을 운이 있는 사람이랑 있을 때는 함께 화를

 입는 것처럼,복 있는 분과 있을 때는 같이 복을 누리는 것이랍니다.

골역장이 백수 정완영 시인의 아름다운 시어를 만난 것

 자체가 큰 복이니, 황간역을 찾는 이들에게 그 복을

 나누어 주고 싶은 것이지요.

 

 

 




 동영상 보기



정완영 시인의 우리 가곡 6곡 / 김순옥 동영상




정완영 시가곡 14곡




백수 정완영(98세) 시조시인, 노환으로 별세 '문인장으로 예우'




'황간역을 사랑하신 시인 할아버지-백수 정완영 시인을 기리며 /강병규역작 




정완영 시, 가곡 애모  황덕식 곡




정완영 시 '애모'는 황덕식 곡
가곡으로 불린 이래 더 널리 알려졌다.
 테너 임응균의 노래다.



서리 까마귀 울고 간 北天은 아득하고 
수척한 산과 들은 네 생각에 잠겼는데
내마음 나뭇가지에 깃사린 새 한마리 

고독이 연륜마냥 감겨오는 둘레가에
菊花 香氣 말라 시절은 저물고 
오늘은 어느 우물가 고달픔을 긷는가

일찌기 너와 더불어 푸르렀던 나의 山河
애석한 날과 달이 낙엽지는 嶺마루에
불러도 대답없어라 흘러만간 강물이여



정완영 애송시



-고향 가는



고향길 가는 날은 완행열차를 타고 가자

중간 역 간이역들 잘 있었나 인사하며

늘어진 강물도 데불고 세월 저편 찾아가자.


고향 역 내려서도 알은체를 하지 말자

재 넘는 흰 구름이 설사 낯이 익더라도

구름은 말없는 거라고 내가 나를 타이르자.


해지면 빈 하늘뿐 다 묻힐 줄 알았는데

불타는 노을 속에 저도 타는 갈가마귀

밤새 내 한잠도 못 이룬 뒷골 못물 찾아가자.



- 을숙도 



세월도 낙동강 따라 칠백 리 길 흘러와서

마지막 바다 가까운 하구에선 지쳤던가

을숙도 갈대밭 베고 질펀하게 누워있데.


그래서 목로주점엔 한낮에도 등을 달고

흔들리는 흰 술 한 잔을 落日 앞에 받아 놓으면

갈매기 울음소리가 술잔에 와 떨어지데. 

 

백발이 갈대처럼 서걱이는 노사공도

강물만 강이 아니라 하루해도 강이라며

김해 벌 막막히 저무는 또 하나의 강을 보데.



-부자상(父子像) 


사흘 와 계시다가 말없이 돌아가시는

아버님 모시 두루막 빛 바랜 흰 자락이

왠일로 제 가슴 속에 눈물로만 스밉니까.


어스름 짙어 오는 아버님 여일(餘日) 위에

꽃으로 비춰 드릴 제 마음 없사오며,

생각은 무지개 되어 고향길을 덮습니다.


손 내밀면 잡혀질 듯한 어릴 제 시절이온데

할아버님 닮아 가는 아버님의 모습 뒤에

저 또한 그 날 그 때의 아버님을 닮습니다.



-분이네 살구나무 


 

동네서 젤 작은 집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젤 큰 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밤사이 활짝 펴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모과



시골서 보내온 모과 울퉁불퉁 늙은 모과

서리 묻은 달 같은 것이 광주리에 앉아있다

타고난 모양새대로 서너 개나 앉아있다. 

 

시골서 보내온 모과 우리 형님 닮은 모과

주름진 고향 산처럼 근심스레 앉아있다

먼 마을 개 짖는 소리 그 소리로 앉아있다. 

 

시골서 보내온 모과 등불처럼 타는 모과

어느 날 비라도 젖어 혼자 들어오는 밤은

수수한 바람소리로 온 방안에 앉아있다.



-배밭 머리



배밭 머리 무논에서는 개구리들이 울고 있다.

개굴 개굴 개굴 개굴 개구리들이 울고 있다.

그 소리 배닽에 들어가 하얀 배꽃이 피어난다. 

 

휘파람 휘파람 불며 배밭 머릴 돌아가면

개구리 울음소리도 구름결도 잠깐 멎고

잊었던 옛 애기들이 배꽃들로 피어난다



어머님의 하늘



옛날 우리 어머님은 빨랫줄에 빨래를 널어야

비로서 하늘 문이 열린다고 하시었다

아득히 너무 푸르러 막막해진 하늘 문이 

 

왜인지 나는 몰랐다 어린제는 몰랐었다

한 타래 다 풀어 넣어도 닿지 않던 그 당사실

어머님 그 깊은 가슴 속 하늘빛을 몰랐었다.



秋晴(추청)

정완영


필시 무슨 언약이 있기라도 한가부다

산자락 강 자락들이 비단 필을 서로 펼쳐

서로들 눈이 부시어 눈 못 뜨고 섰나부다. 


산 머너 어느 산마을 그 덕 너머 어느 分校(분교)

그 마을 잔칫날 같은 운동회 날 갈채 같은

그 무슨 자지러진 일 세상에는 있나부다. 


평생에 편지 한 장을 써본 일이 없다던 너

꽃씨 같은 사연을 받아 봉지 지어 온 걸 봐도

천지에 귓속 이야기 저자라도 섰나부다.



호박꽃 바라보며



분단장 모른 꽃이, 몸단장도 모른 꽃이,

한 여름 내도록을 뙤약볕에 타던 꽃이,

이 세상 젤 큰 열매 물려주고 갔습니다.



― 돌아온 뻐꾸기가



지난해 짓다가 만 집을 올해도 다 못 짓고

아까운 꽃 시절도 낙화시절도 보낸 채로

늘어진 여름 한 철을 또 맞고야 말았구나.


돌아온 뻐꾸기가 저도 보기 민망했던지

후박나무 이파리 같은 푸른 날의 목소리를

우리 집의 용마루 위에 업어다가 자꾸 보탠다.



― 그래도 봄은 오네



세상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지만

그래도 오는 봄을 막을 수야 없잖은가

찬바람 붕대를 푸는 꽃가지를 보더라도.



― 봄이 찾아왔다는데



경부선 고속열차 미역줄기 같은 바람

바람도 봄바람엔 철로길이 휜다는데

황악산 안 갈 수 있나 진초록이 핀다는데.



― 서울의 버들가지



서울의 버들가지는 몸 풀기가 그리 힘든다

목숨도 짐짝 같은 중량교 넘엇길에

상기도 어두운 가지를 드리우고 섰는 버들.



― 연(蓮)과 바람



설사 진흙 바닥에 뿌리박고 산다 해도

우리들 얻은 백발도 연잎이라 생각하여

바람에 인경 소리를 실어 봄즉 하잖은가.



- 눈 내리는 밤



산과 들, 마을과 숲, 고목나무 가지까지

한 집안 식구 되어 한 이불 속 잠이 든다

한 밤 내 눈은 내리고 등불 혼자 타는 밤에



- 봄이 오고 있습니다.



소리 소문도 없이 봄이 오고 있습니다.

하늘에 소복한 별 씨, 땅에는 숨 쉬는 꽃씨

새들도 이 마을 저 마을 등불 달러 다닙니다.



적막한 봄



산골짝 외딴집에 복사꽃 혼자 핀다

사람도 집 비우고 물소리도 골 비우고

구름도 제 풀에 지쳐 오도가도 못한다 

 

봄날이 하도 고와 복사꽃 눈 멀겠다

저러다 저 꽃 지면 산도 골도 몸져눕고

꽃보다 어여쁜 적막을 누가 지고 갈 건가



-관악 봄 


 

산은 늙었는데도 봄은 늘상 어린 걸까

숲 속에 들어서면 구슬 치는 산새소리

나무들 키 재는 소리도 내 귓속엔 들려온다.



-초봄



내가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아내면

새 한 마리 날아가며 하늘빛을 닦아낸다

내일은 목련 꽃도 찾아와 구름 빛도 닦으리



최정란 (정완영 선생님 제자 시조시인)선생님 글 


이장춘 선생님  수고 많이 많이
하셨습니다... 정완영 선생님가시고
가을이 쓸쓸 해졌습니다...걸어다니는
백과사전 이라 할만큼 모든 분야에
 해박하신 분이셨는데 .....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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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간역을 사랑하신 시인 할아버지-백수 정완영 시인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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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시인 정완영 시조 낭송회

김천남산동문화회관 2013년 12월 14일



음악과 함께 하는 백수 정완영 시조

낭송회가2013년 12월 14일 김천   남산동

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올해 백수 정완영

시조와 노래로 풀어 보는 이해를 마감하는 송년행사다.

그리고 선생님의 시로 작곡된 애모(정완영 시,황덕식 곡)

가곡이 내 마음의 노래 사이트에서 솔로 가곡으로는 조회

수가 1위 가 되는 영광의 해이다."  영월 동강에서

청학스님이 오셔서 같이 참석하였다.

 




시조시, 엄마 목소리와 조국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백수 정완영 선생’은

 1919년 경북 김천시 봉산면 봉계에서 출생하여

일본 제국 시절 일본군에 항일하는 등 조국의 아픔을

 몸소 격은 산고의 고통이 선생의 시조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또한 일본군에 의해 입은 손의 부상으로 현재까지 글을 쓰는데

고통을 느낀다는 지인의 말이다. 시인 백수 선생은 봉계 공립보통

학교 시절 여름 홍수로 농경지가 유실되어     고향을 떠나게

되는데 일제 강점기하에서 힘든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

것이 조국과 고향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선생의 시를 더욱 빛내고 있다.  





시인 백수 정완영 선생의 경력으로,
1946년 향리에서 ‘時文學 구락부’발족 이후,
1947년 동인지 출간, 이호우와 ‘영남 시조문학회’창립,

한국시조인 협회 회장, 한국문인 협회와 한국시조인 협회

고문직을 했다. 1948년 작품‘조국’창작, 이후 1960년 국제신보

신춘문예‘해바라기’당선, 서울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1962년 현대문학 ‘애모’'어제오늘'

‘강’추천, 등과 포상으로


1974년 ‘한국문학 상 수상,

1979년 가람 시조문학 상 수상,
1984년 제3회 중앙일보 시조대상 수상,
1989년 제5회 육당 문학 상 수상했으며,
1995년 은관문화훈장 수상, 1999년 제2회

만해 시문학상 수상,

2003년 문화공보부 ’한국 근대, 현대사 증언

1차년도 30인 채록서업 선정‘
2004년 제1회 육사 문학 상 수상,

2007년 제5회 유심 특별상 수상,
2008년 제13회 현대불교 문학상 수상,

2010년 백자 예술상 수상,
2011년 제2회 이설주 문학상 수상 등

 한국을 대표하는 시조 문학인으로서의 

기량을 보여 주고 있다. 








백수 정완영 선생의 <조국(祖國)>

                                                 

조동화(시인)


백수(白水) 정완영(鄭婉永) 선생은 1919년 김천시 봉산면에서 출생했다. 1941년 미발표 처녀작 <북풍(北風)>등 시조 창작을 했다하여 일경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고, 8.15광복과 더불어 고향 김천에서 여석기(呂石基),김상갑(金相甲),배병창(裵秉昌)등과 「시문학 구락부 」창립회원으로 참가, 이듬해 동지인 「오동(梧桐)」을 창간했다. 1948년경부터 정석모(鄭石謨),박훈산(朴薰山) 등과 친하게 교유(交遊)하고, <조국>등 시조 창작에 몰두하는 한편 틈틈히 국토를 순례하였다.


1960년부터 1962년에 걸쳐 청마 유치환 선생을 통해 <애모(哀慕)>,<어제오늘>,<강(江)> 등의 작품으로 「현대문학(現代文學)」에 추천을 완료했으며, 특히 1962년에는 선생의 최고 대표작이라 할 <조국>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됨으로써 한국 시조단에 그 불멸의 광채를 드러냈다.


1966년 이호우(李鎬雨), 이영도(李永道), 이우출(李寓出) 등과 함께 「영남시조문학회」를 창립했고, 1969년 문화공보부로 부터 창작지원금을 받아 첫 시조집 <채춘보(採春譜)>를 상재한 이래 <묵로도(墨鷺圖)>, <실일(失日)의 명(銘)>, <산이 나를 따라와서>, <백수시선(白水時選)>,<연(蓮)과 바람>,<난(蘭)보다 푸른 돌>, <오동잎 그늘에 서서> 등의 시조집과 <꽃가지를 흔들듯이>,<엄마의 목소리> 등의 동시조집, <나비야 청산 가자>,<다(茶) 한 잔의 갈증>등의 산문집을 펴냈다. 받은 상으로는 한국문학상, 가람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육당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이 있다.


백수 정완영 선생이 우리 고유의 정형시 시조에 당신의 모든 것을 다 기울였다는 사실은, 굳이 박경용 시인이 쓴 저<산이 나를 따라와서>의 발문(跋文) '이 당대 시조의 순교자적 면모'라는 찬사가 아니더라도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시조단의 상식이다. 90년대 이후 문단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이 좁은 땅에 시인의 수가 물경 수천을 헤아리게 되었지만, 그 가운데 시인이라는 칭호를 여기(餘技)나 악세사리로서가 아닌 자신이 한 평생 지고 가야 할 십자가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이며, 마음 깊은 곳에 우리 시조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의 맑은 촛불 한 자루를 밝히고 가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될 것인가. 인기소설가나 동화작가 가운데는 더러 베스트셀러를 내놓아 고료 수입만으로도 능히 풍요로운 삶을 꾸려간다고 한다. 그러나 시인이 시인 외에 아무런 직업도 가지지 않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더욱이 시조라는 것이 대다수의 관심밖의 문학 장르 인데도 불구하고, 백수선생은 오로지 삼장육구라는 묵정밭에 당신이 가진 것을 몽땅 배팅하고 말았으니 실로 놀라운 경도(傾倒)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백수 정완영 선생의 이름을 내가 처음 들은 것은 60년대 후반 김천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무렵인데, 모교 선배인, 지금은 소설가가 된 심형준 형을 통해서였다. 당시 나는 문학에의 걸음마를 막 시작한 터라 중앙문단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방문단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심형준 형이 나를 찾아와 김천의 장정문 시인이 그 해 매일신문과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두메꽃>과 <석굴암대불>이라는 작품이 동시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며 긴 이야기 끝에 바로 이 김천에 정완영이라는 유명한 시인이 있다는 말을 들려 주었다. 그래서 내가 우리나라를 판도에 볼 때 그 분이 어느정도냐고 물으니 놀랍게도 국보급 이상이라는 대답이었다. 심형준 형의 이 단언(斷言)은 지금 생각해 봐도 내게 퍽 유익하고 정확한 정보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학교 도서관에는 시에 관한 책이래야 몇 권의 연간집이 고작이었는데, 거기서 서둘러 정완영 선생의 작품 몇 편을 찾아 노트에 옮겨 읊조리며 감격해 하던 일이 곡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 후 몇몇 잡지의 독자문예를 들락거리던 인연으로 친정에 온 김남환 시인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빌미가 되어 어느 여름날 나는 흠모하던 정완영 선생을 난생 처음으로 대면할 수 있었다. 김남환 시인과 대구에서 올라온 정표년 시인도 함께였다. 버스로 직지사까지 가서 절 뒤쪽 여울에 발을 담근 채 선생은 시조 이야기를 하고 우리 셋은 주로 듣는 편으로 긴 여름날 하루를 보냈다. 그때 나눈 세세한 이야기들이야 다 잊어버렸지만 선생의 말씀 가운데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있는 것은 시(詩)의 경지(境地)에 관한 것이다. 곧 시에는 경지라는 것이 있는데, 이를테면 박재삼 시인의 "몸으로, 사내 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 / 부연 들기름 불이 지지지 지지지 앓고 / 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 갈래 만갈래." 라고 한 시 구절의 오묘함이 그 시인의 높은 경지를 말해 준다는 것이다.


그날 선생이 예로 든 시 구절들은 그 외에도 " 세상이 있는 법은 가을나무 같은 것 / 그 밑에 우리들은 과일이나 주워서 / 허전히 아아 넉넉히 어루만질 뿐이다." 나 "아직도 손끝에는 때가 남아 부끄러운 / 봄날이 아픈 내 마음 복판을 뻗어 / 떨리는 가장가지를 볕살속에 내 놓아" 등이 기억나는데 그것들은 주로 박재삼 선생의 시 구절들이었다. 그때까지 조금은 시를 쓴다 했지만 기껏 청맹과니나 다름이 없었던 나에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날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그렇구나, 그렇구나!" 하며 몇 번이고 뇌이며 무릎을 쳤었다. 평범한 사람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경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누리는 그 아슬한 구만리 장공(長空)!. 시인이라면 모름지기 그러한 비유의 오묘함에 이르러야 한다는 그 놀아운 명제앞에서 나는 못내 가슴이 떨렸었다.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에인 사랑

손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 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어도

피맺힌 열두 줄은 굽이굽이 애정인데

청산아 왜 말이 없이 학처럼만 여위느냐.


정완영 <조국> 전문



보다시피 이 작품은 현대시조에서는 가장 보편화된 3수 연작이다. 초(初), 중(中), 종(終) 3장으로 이루어진 시조가 현대시조에 와서 3수로 된 연시조를 가장 많이 보편화시켰다는 사실은 거기에 어떤 필연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하는 대목이지만, 이 작품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첫째 수에서 애달픈 사랑이 서려 마디마디 떨려오는 열 손가락으로 행여 다치기라도 할까 저어하며 조심조심 줄을 고르면, 손이 닿자말자 서럽게 우는 내 사랑하는 가얏고를 말하고, 둘째 수에서는 둥기둥하고 가얏고가 울면 초가삼간 지붕위로 달이 둥실 솟는 가장 한국적 풍경이 떠오르고, 그 소리가 더욱 자지러지면 가녀린 꽃잎마저도 격정을 못이겨 스스로 몸을 떨고 있는데, 종내는 그 애틋한 가락 속에 서러운 겨레의 모습이 연상되는 사실을 말한 다음, 끝으로 셋째 수에 이르러서는 가얏고의 가락이 채 절정에 도달하기도 전에 하늘은 멍이들고 말지만 목숨만큼이나 사랑하는 가얏고이기에 그 열두줄은 굽이굽이가 다 사랑뿐인데, 어찌하여 청산(가얏고, 조국)은 말없이 학처럼 야위어 가기만 하느냐고 반문하며 끝을 맺고 있다.


우선 이쯤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조국'이라는 무거운 시제(詩題)와 '가얏고'라는 전통적 제재의 폭력적 결합의 불가사의(不可思議)다. 흔히 제목이 나오면 대개의 경우 그것이 그리 동떨어지지 않은 내용이 고만고만하게 따르게 마련인데, 여기에서는 그러한 상식을 단호히 거부하고 제목과는 엉뚱하리만큼 거리가 있는 가얏고의 줄을 고르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시종여일(始終如一) 악기와 관련된 이야기만 늘어놓다가 급기야 대미(大尾)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내디디고 펼치며 마무리짓는 기법에서 우리가 익히 대해온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경지를 이 시조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이 작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이 점을 상징(象徵)이라는 한 마디로 압축하고 싶다. 말하자면 피가 맺히도록 사랑하는 조국을 한 채의 가얏고로 동일시(상징)하여 시상을 일관되게 이끈 다음 마지막 매듭을 짓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고도의 상징은 무엇에 의해 어떻게 가능했는가, 물론 이것은 백수 정완영 선생의 여타 시인들과는 비교가 안되는 남 다른 능력의 소산이라 해서 크게 벗어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부분에 대해서 나는 조금 다른 견해를 덧붙이고 싶다. "천지가 넓다해도 탑(塔) 설 자리는 한 자리듯, 이왕지사(已往之事) 삼장육구(三章六句)에 생애를 걸었거니...."라고 한 그분 자신의 토로(吐露)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시조외에는 세상의 모든 일을 도외시하는 그 놀라울 정도의 몰입(沒入)과 집중(集中)이 어느 순간 합일(合一)을 이루어 마침내 이 빛나는 명편(名篇)은 한국시조사 속에 우담바라처럼 피어났을 것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주목할 일은 이 작품의 장중한 톤과 그것이 주는 비장미(悲壯美)다. 이육사의 <광야>가 길지 않은 시임에도 불구하고 장중한 남성적 톤을 가진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 또한 그에 못지않은 장엄함을 연출하고 있다. 다 알다시피 시조는 그 형식이 매우 단조로운 우리의 정형시이다. 행의 길고 짧믐의 융통성이 배제된 구속 속에서 동일한 율조 반복의 단조로움을 피하는 길은 행(行)이나 장(章)의 결구에서 적절히 맺고 풀어 변화를 주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그렇게 볼 때 '내 가얏고여', '흰 옷자락', '여위느냐' 등의 결구는 가히 환상적 결합이라 할 수 있다. 거기다 이 작품은 우리의 감정을 숙연하게 하는 '에인,애절히,서러운,흐느껴,눈물 비친, 통곡, 멍, 피맺힌, 학' 등의 단어들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셋째 수 종장 첫 구 '청산아'라는 돈호법(頓呼法)의 사용은 이 명작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청산'이라는 말은 시제 '조국'과 소재인 '가얏고'와 동일시의 대상이라고 이미 전술(前述)한 바 있거니와,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 결정적 열쇠가 되고 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바로 이 말에 '-아'라는 호격조사가 붙어 연출되고 있는 돈호법이 종당에는 '여위느냐'라는 설의법과 혼연일체가 되면서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장중한 비장미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이 작품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정완영 선생의 시조 도처에 번뜩이고 있는, 그 마치 멋진 무늬를 연상케하는 탁월한 감각이다. 그것이 특히 두드러진 곳은 둘째 수라 하겠는데 그것이 예사롭지가 않다.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라고 한 초장만 보아도 그 감각의 탁월성은 이미 넉넉히 입증되고도 남는다. '둥기둥 줄이 울면'은 청각이고, '초가삼간 달이 뜨고'는 시각으로, 이 두 감각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독특한 한국적 미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보라. 이런 표현은 굳이 가닥을 잡는다면 공감각(共感覺)의 범주에 든다 하겠는데, 이런 탁월한 감각은 보통의 시인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정완영 선생의 시조에서는 그것이 너무도 흔하게 발견된다는 점은 놀랍다. 이를테면 '천지간 어여쁜 물소리, 새소리를 만져본다.'라고 한것은 청각의 촉각화이고, '대관령 큰 포효같은 설월(雪月)보러 내가 왔다.'라고 한 것은 시각의 청각화이며, '새벽닭 울음소리가 동백처럼 떨어진다.'라는 구절은 청각의 시각화이다. 언어사용에 있어 그가 비록 내노라 하는 시인이라 할지라도 고정관념을 떨쳐 버리기란 쉽지가 않은 노릇인데, 정완영 선생은 기존의 관념을 거뜬히 일탈하여 독보적 표현을 함으로써 늘 신선한 충격을 우리에에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흔히 정지용의 <향수>를 한국 농경시대 최후의 명작이라고들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론적 근거는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고향에 이미 농경시대가 지나가 버렸다는데 있을 것이다. 정완영 선생의 조국에 나타난 우리민족의 삶의터전 역시 지나가 버린 그 농경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둘째 수의 '초가삼간'이란 말이 그 단초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선생의 <장항가는 길>이라는 단수를 보면 "길은 곧장 강으로 가고 / 그린 듯한 초가마을들 // 흰 두루막 고등어 한 손 / 석양에 홀로 장 나그네 // 내 핏줄 감기는 원경( 遠境) / 아 울꺼나, 이 무심을 ." 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조국>에 나타난 '초가삼간'은 바로 이 '그린 듯한 초가마을들'에 자리한 그러한 초가삼간이다. 첫머리에서 1948년경부터 틈틈히 국토순례를 했다고 소개를 했는데, 아마도 이 <장항가는 길>은 그 무렵의 체험에서 우러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조국에 나온 '초가삼간'은 당신이 살던 고향의 그것일 가능성이 높다. 초가삼간 지붕 위에 둥두렷이 떠오르는 달이 있기 때문이다.


시조<조국>에 나타난 정완영 선생이 사랑하는 조국의 모습은 풍요롭고 희망찬 나라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서럽고, 눈물을 자아내는, 그러기에 떨리는 열손가락으로 줄을 고를 수 밖에 없는 조국이다. 분단된 남북, 그 많은 젊은 목숨들을 전쟁에 앗기고도 끝내 하나가 되지 못한, 한없이 통곡하고 싶은, 그저 말없이 학처럼 여위어가기만 하는 그런 조국이다. 그리고 바로 그래서 <만경평야에 와서>라는 작품에서 당신은 "애홉다, 열루(熱漏)의 땅 / 내 조국은 날 울리고 " 라고 울면서 탄식했던가. 해외에서 축구의 빅 게임이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붉은 악마로 몰려가 응원을 하는 신세대들의 영광스런 조국과는 너무도 큰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시절이 설령 구차하고 힘든 세월이었다 해도 이 시대가 미칠 수 없는 곡진(曲盡)함과 경건(敬虔)함이 가슴 한가운데 오롯이 자리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출처] 백수 정완영 선생의 <조국(祖國)> - 조동화(시인) |작성자 시조21





화보 : 황간역과 정완영시인, 강병규 고향역장, 최정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