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전영우 아나운서 KBS사우회보 2016년 9월호 채영신

이장춘 2016. 9. 7. 06:05

 



오늘 글은 KBS사우회보 2016년 9월호


만나고 싶었습니다.

「아나운서 30년, 교수 30년 전영우의 스피치」


제목, 사우회 채영신 편집위원

 인터뷰로 쓴 글입니다. 회보 원문과

스마트 폰으로 편리하게 보실 수 있도록

아래 글판으로 함께 올렸습니다,

'


전영우 아나운서 KBS사우회보 2016년 9월호 채영신




 


만나고 싶었습니다



편집자 註 : 아나운서 30년, 교수 30년을 통해 늘 우리말
과 함께 살아 온 전영우 아나운서, 우리말 발음사전을 최초
로 냈고 화법(話法) 분야를 개척한 주인공이다. 저술서 35
권 중 5권이 미국 하버드대 수장고에 보존되어 있을 정도
로 가치와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명 뿐인
미국 스피치학회 회원이기도 한 전 회우를 그의 서재에서
채영신 편집위원이 인터뷰했다





전영우 회우(사진 오른쪽)를 인터뷰하는 채영신 편집위원


아나운서 30년, 교수 30년 전영우의 스피치



안녕하세요.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내 나이 올해 83살로 아나운서로, 교수로 살아
온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절반 정도 진척 됐습
니다. 그리고 서울신학대 초빙교수로 나가면서 강
의와 연구, 집필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50~60대 이상에겐 유명한 아나운서로 기억되고 있습
니다. 방송계에는 언제부터?


라디오 방송만 하던 1954년 공보처 서울중앙방
송국 수습아나운서 1기로 들어갔습니다. 사실 1954
년 봄 서울사범대학 2학년 때 시험을 보았으나 자
격이 대학 전문부(대학학부 전 단계)학력이상이어
서 재학생인 관계로 떨어졌습니다. 그해 가을 수습
아나운서 1기에 응시하여 비정규직부터 시작해, 정
규직이 되었고 아나운서가 공무원이었던 시대로 공
무원 직급에 따라 주사, 사무관이 되었지요.


아나운서가 되고 난 후 이야기를 좀 들려주십시오.


KBS에서 1963년 민간방송인 동아방송으로 옮
겼습니다. 거기에서 17년을 근무하다 1980년 12
월 방송통합으로 다시 KBS로 왔습니다. 1954년
KBS에서 아나운서를 시작해 1984년 마친 셈입니
다. 아나운서로 근무하면서 군복무의 일환으로 공
군사관학교 교관(1957)을 지낸 것과 경기고 교사
(1961)를 했던 기억도 내겐 자랑스럽습니다.
KBS에 근무하면서 당시 이원홍 사장 배려로 수
원대에서 1년간 겸임 교수를 지내다 퇴직하고 정
식 교수가 되었지요.


30년간 방송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많았을 텐데요?


그 시대를 산 사람이라면 모두가 겪은 일이고 기
억할 일이지만 4.19, 5.16, 12.12사태 등 역사적
격동기마다 아나운서로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
세를 방송했던 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4.19 당시 황우겸 선배가 아나운서 일동이 성명
을 발표하자는 아이디어를 내 ‘4.19에 대한 아나운
서의 입장’을 발표하여 보도되었던 일은 중요한 아
나운서 역사였습니다. 또 30년 아나운서생활 중 책
임자(실장)만 20년을 한 것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을 꼽는다면?


장기범 아나운서가 했던 ‘재치문답’도 가끔 했고
‘비밀의 문’, ‘만능스테이지’, ‘가정오락회’ 등을 꼽
고싶고 유석 조병옥박사 국민장 실황 중계방송, 이
승만 대통령 동상 제막식,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방한 환영 중계, 한국일보주최 제1회 경인간 국제
마라톤대회 거점중계, 멕시코 올림픽 극동예선전
한·일 축구 중계방송 등이 생각나는군요.
그러나 가장 신경 쓰고 중점을 두었던 것은 역시
낮 12시 뉴스였습니다. 당시 라디오 12시 뉴스는
아나운서 실장이나 대표 아나운서가 맡았지요.


늘 공부하고 노력하는 아나운서로 책도 많이 내셨죠.


네, 30년간 아나운서와 교수로 일하면서 방송관
련, 언어관련 35권의 저서와 번역서를 냈습니다.
최초의 우리말 발음사전 등 주로 화법(話法) 관련
으로 우리말을 학문적으로 체계화시킨 일이 자랑
스럽습니다. 그 중 학술원과 문화관광부 등에서 우
수 학술도서로 선정된 책이 있고 베스트셀러도 있
습니다. 국어국문학 분야에서 최초로 시작한 저서
중에는 국제음성기호로 표기한 발음사전 6권을 만
든 것입니다. 아나운서, 기자, 성우, 탤런트에게 꼭
필요한 책으로 KBS를 통해 전국에 보급했지요. 또
최초로 스피치, 화법 관련 저술서가 고교, 대학에
서 교재로 활용되어 보람을 느꼈습니다. 또 석·박
사논문을 종합한 논문집 ‘신국어 화법론’을 출판했
을 때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유럽의 스피치교육
사를 연구하면서 그리스, 로마 등 유럽 책을 여러
권 번역 출판한 것도 내게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스피치, 화법분야를 개척하고 학문적 토대를
만드셨는데 미국스피치학회 회원이기도 하시죠.


네, 1962년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미국 국제
스피치학회(Speech association of America)에 가
입했습니다. 막중한 책임을 느낍니다.


저서 5권이 미국 하버드대학교에 있다는 것은 그동안 학
문적 성과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하버드 대학교 내에 엔칭(중국의 연경)연구소가
있는데 그 연구소 도서관에 ‘전영우 책’을 검색해 5
권이 보관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표준한국어 발음사전’, ‘화법개설’, ‘신국어화법
론’ 등인데 내겐 큰 영광이자 보람입니다.


방송계를 떠난 후 대학에서의 생활은 어떠했습니까?


1984년부터 수원대교수로 강의와 함께 교학·학
생처장, 국어국문학과장, 인문대학장 겸 어학원장
을 지냈고 1994년 교수로 승진해 인문대학장, 홍
보처장을 끝으로 2000년 2월 정년을 했습니다. 그
후에도 수원대 명예교수 3년, 2004년부터는 수원
과학대 초빙교수, 2010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신학
대 초빙교수로 강의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분은 어떤 분인지 궁금합니다.


존경하는 분과 좋아하는 분으로 나누어 말하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분은 도남 조윤제 선생님과 외
솔 최현배 선생님입니다. 석사과정 지도 교수였던
도남 선생님은 국문학사 체계를 처음으로 세우신
분입니다. 내가 스피치라는 학문을 처음으로 도입
한 것도 그 분의 학문 개척정신을 배웠기에 가능했
던 것입니다. 외솔 선생님은 대학 은사이고 우리나
라 국어 연구의 거목이자 선구자입니다. 외솔상을
받은 나에게 화법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
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요즘 사람에겐 생소하겠지만
KBS 홍양보 아나운서와 최승주 아나운서를 들고
싶습니다. 내가 대학과 전공을 선택한 이유도 두 선
배 방송에 이끌려 같은 길을 걷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킬 만큼 나를 매료시킨 아나운서였습니다.


그동안 방송, 문화, 학계로부터 상도 많이 받으셨죠?


아나운서, 교수로 60년을 지내다 보니 국민훈장
목련장, 한글학회 제1회 언론상, 외솔회가 주는 한
글문화운동 실천부문에서 외솔(최현배)상, 스피치
분야를 개척하고 발음사전 저술에 대한 공로로 학
술부문 천원(오천석 초대 문교부장관)교육상, 제1
회 방송문화상 등을 받았습니다. 모두 과분하죠.


대중가요 작사도 하셨다고요?


네, 1967년에 작사한 ‘사랑의 계절’이라는 노래
인데 길옥윤 작곡으로 패티 김이 불렀습니다. 당시
작사가 이름은 가명으로 했지요.


들에는 들국화 소소로이 피고

길에는 코스모스 수련수련 피었네
높푸른 하늘에 흰 구름 떠가면

 그 얼굴 그리워라 보고 싶어라
아 아 가을인가 음음 사랑의 계절
하나둘 낙엽이 포도에 딩굴고

바람은 스산히 옷깃을 스치네
감빛노을이 산마루에 지면 그 이름

내 가슴에 포근히 안겨라
아아 가을인가 음음 사랑의 계절
음음음음 사랑의 계절


현재 힘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과 앞으로 계획은?


내 나이 83살입니다. 그러나 나이와 상관없이 집
필, 강의, 강연 등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요즘은 자서전 ‘전영우의 스피치, 30년
아나운서, 30년 대학교수’를 집필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 200자 원고지 600매를 써
반 정도 완성한 셈입니다.
돌이켜보니 훌륭한 선생님을 많이 만났던 것을
기반으로 아나운서를 했기에 이름을 얻었고 학문
에 집중했고 제자를 얻었고 Speech분야를 개척했
습니다. 이러한 일에 보람을 느낍니다. 이제 사회
에 나의 재능을 기부할 계획입니다.


우문(愚問)입니다만 아나운서와 교수 어느 쪽으로 불리
어지기를 원하시는지?


당연히 전영우 아나운서로 불려지기를 원하지요.
나의 꿈이고 바램이었고 나의 첫 직장이었으니까요.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6월 17일 자 조선일보 기사




[Why] "3·15 부정선거,

4·19혁명 다 제가 전했죠…

이승만 前대통령,

화술은 으뜸"


박돈규 기자

입력 : 2017.06.17 03:02

60~70년대 라디오 名DJ…

'화법' 책 펴낸 전영우 前 아나운서

아나운서 박사 1호


국제스피치학회 처음 가입,

아나운서는 뉴스의 연주자…

 화법·저널리즘 모두 알아야

지난 대선 TV토론 보니


유승민·심상정, 음성 좋아…

文대통령은 연설 토대 잡혀…

 안철수는 가끔 격앙되더라


5분 안에 청중 사로잡아야

들려야 하고 쉬워야 하고

흥미롭고 또 유익해야…

녹음한 뉴스 매일 다시 체크


사실 작사도 했어요


패티 김 노래 '사랑의 계절'…

유행가 가사 쓴다는 게 창피해서

 가명으로 활동도


또랑또랑한 발음, 깨끗한 음색,

억양의 높낮이가 먼저 귀에 들어왔다.

완급 조절도 적절했다. 방송국 떠난 지

30년이 넘었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아나운서다웠다.


전영우(83)씨는 50~60대 이상에게

 라디오 방송 명사회자로 기억된다. KBS

 아나운서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뎌 공개방송

MC로 명성을 날렸고 동아방송으로 옮겨 토크쇼

'유쾌한 응접실'로 정점을 찍었다. 언론 통폐합으로

 KBS에 복귀해 9시 뉴스 앵커로 활약한 그는 1983년부터

 학자의 길을 걷다 은퇴했다. 전영우씨가 최근 '화법에

 대하여'라는 책을 냈다. 부제가 '아나운서로

30년, 대학교수로 30년'이다.


회고담을 엮는 그는

"화법 체계를 세우고 국어 발음

사전을 만든 게 큰 보람"이라며 "저를

 이렇게 키워주신 게 바로 애청자들"이라고

했다. 전영우 전 아나운서가 책을

 확성기처럼 말아 쥐고 있다.


그는 “청취자나 독자에게

내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질 때 참

기쁘다”며 “자신에게 야박해야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장련성

객원기자"이 사람이 아낙군수요"


서울에서 태어나 경복고를

 졸업한 그는 1954년 공보처 시행

 서울중앙방송국(KBS의 전신) 1기 수습

 아나운서 모집 공채시험에 합격했다. 서울대

 국어교육과에 재학 중이었다. 발음과 음색,

전달 속도가 적절해 금방 두각을 나타냈다.


―언제부터 아나운서를 꿈꿨나요?


"국어 시간에 책 잘 읽는다고

 칭찬을 받았어요. 청계국민학교 5학년 때

 졸업식 송사를 낭독할 재학생 대표를 뽑는데

후보 세 명 중에 제가 제일 잘 읽었지요. 그런데

억울하게 떨어진 겁니다. 가슴에 응어리가 맺혔어요.

라디오 방송이 시대의 총아였던 시절이었고

자연스럽게 아나운서를 지망했지요."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나요?


"배달된 신문을 샅샅이 큰 소리로

 읽으며 조음과 발음 연습을 했어요. 라디오 방송

청취에도 많은 시간을 들였지요. 'HLKA(호출부호)'를

 발음하는 소리만 들어도 어느 아나운서인지 알 정도였어요."

―입사했을 때 외조모께서 주변에 '이 사람이 아낙군수요' 자랑

하셨다고요?"아나운서라는 영어를 모르니 그렇게 말씀하신

 거죠. 그런데 국어사전에 '아낙군수'라는 단어가 있더라고요.

안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변변치 못한 남자를

일컫는 말입니다(웃음)."


―인기만큼 봉급도 넉넉했나요?


"첫해 월급은 교통비 쓰고

조금 남는 액수에 쌀 반 가마였어요.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래도 꿈을 이뤘다는

자부심이 컸지요."―한국 현대사가 요동치던

시기라 기억에 남는 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1960년 대통령 선거 직전에 갑자기 서거한

 조병옥 박사의 국민장 실황 중계를

제가 맡았어요.


여론이 들끓고 집권층에 대한

 불만이 고조될 때였죠. '자극하지 말고

 침착하고 냉정하게 방송하라'는 당부가 내려왔

어요. 힘들었습니다. 3·15부정선거와 4·19혁명,

이승만 대통령 하야와 아나운서들의 방송 중립화

 선언 등 역사적 소용돌이를 겪었지요."


국영방송 KBS는 이 일 등을

계기로 공사(公社)가 됐다. 전영우는

"아나운서는 앵무새가 아니라 감정이 있다"고

했다. 그는 "단순히 낭독하는 게 아니라 연주

(演奏)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 기사를 '연주'하다


―기사를 연주한다고요?

"피아노 연주자에 따라 곡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잖아요. 아나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강약, 고저, 장단,

속도, 포즈(pause·잠시 멈춤)가

저마다 달라요."


―실제로 어떻게 구현했나요?


"원고 내용을 완전히

소화하지 않고는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알고 하는 뉴스와 모르고

전하는 뉴스는 다르니까. 그래서 서울

신문학원에 등록해 저널리즘을

 공부했지요."


―아나운서 박사 1호로 알고 있습니다.


"막연하지만 은퇴 후엔 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저는

'구제(舊製)박사' 아니고 정규 코스 다 밟은

 '신제박사'입니다. 아나운서로 일하면서 공부해

석·박사를 마쳤어요. 수필 '은근과 끈기'로 유명한

조윤제 박사 아시나요? 박사 과정 들어갈 때 성균관대

 대학원장이셨던 그분께 '스피치(화법)를

 공부하겠다'고 포부를 밝혔지요."


―뭐라 하시던가요?


"놀라며 '난 스피치를 모르는데

 왜 들어왔나' 물으셨어요. '선생님이

 한국문학 개척하신 방법을 배워 우리나라에서

스피치를 개척하려고 합니다' 답했지요. 학문의

시발은 역사적 연구요 학문의 종결은 철학일

것이라고 생각하던 때였습니다."


―아나운서로서 어떤 문제의식을 느꼈나요?


"국어 발음이 그랬어요.

 '이승만 대통령의 담화의 내용에

 의하면'을 읽었더니 실장이 '서울대학에선

 발음 안 배워? 다시 읽어봐' 하는 거예요. '이승만

대통령에 담화에 내용에 의하면'으로 들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문제의 싹이 텄지요.

(손뼉을 치며) 아, 국어 발음을 내가

 정리해야겠다."


―화법이군요.


"우리가 소리글을 등한시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학교에서 글만 가르치고

말을 안 가르친 거죠. 처녀 출판으로 '화술의

지식'이라는 번역서를 냈어요. 1962년엔

 한국인으론 처음으로 국제스피치

학회에 가입했지요."


대통령 후보 연설 들어보니



전영우씨가 1960년대 라디오 방송을 하는 모습. / 춘하추동방송



스피치 분야를 개척한 전영우는

 저술가 겸 강연가로 왕성히 활동했다.

저서가 40종에 이른다. 그가 자택에서 누렇게

 바랜 '스피치 개론'(1964)을 꺼내 보여주는데

 정가(定價)가 330원이었다. 여석기 고려대

교수는 신문 서평에서 '학술 서적으로는

 미흡한 점이 많다'고 신랄하게

 지적했다.


―시무룩해지셨나요?


"웬걸요. 사람은 자극

없이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 평이

저를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채찍질했지요."

―화법을 꾸준히 공부하면서 아나운서로 일했습니다.

양주동 박사가 고정 출연한 라디오 공개방송

'유쾌한 응접실'은 18년 넘게 진행한

 인기 프로였지요.


"토크쇼인데 '교양적인

 오락프로'라서 인기를 얻었습니다.

'인간국보' 양주동 박사의 유머, 민속학자이자

 언론인 이서구 선생의 구수한 재담, 김두희 서울대

교수의 날카로운 위트가 잘 어우러졌고 사이사이

가수의 유행가가 나왔어요. 방청객이 꽉꽉

 들어찼고 그 인기 덕에 CF도 찍었지요."


―책에는 '양주동 박사가

말씀하기를 황해도·평안도 방언 쓰는

사람은 당신을 냥두돈 선생으로, 어떤 이는

양주둥 박사로, 다른 이는 양주장으로 호칭

했는데 그것이 해학이다'라고 썼는데 그가

 왜 인간국보로 불렸나요?


"전쟁이 터지고 1·4 후퇴 때

어느 신문사 사장실에서 양주동 박사와

 마라토너 손기정 선생이 우연히 만났다고

합니다. 그때 손 선생이 '모두 피란 갔는데

 우리나라 국보 둘만 남아 있으니

 어떻게 된 겁니까?'라고 했대요."


―스피치는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정치를 잘하려면 변론을 잘해야

하고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 인사

청문회를 보니 톤이 많이 낮아졌어요. 높으면

높을수록 불리합니다. 설득력이 없어지고

 반발심이 생기니까요." 


―지난 대선 후보 TV토론은 어떻게 보셨나요?


"내용은 그만두고 음성

 표현으로만 보면 유승민·심상정씨가

잘했어요. 문재인씨는 연설의 토대가 잡혀

 있더군요. 홍준표씨도 검사 출신답게 말을

잘하죠. 안철수씨는 저음으로 깔면

좋은 스타일인데 가끔 격앙돼

점수를 까먹었어요."


―정치인 화법에서 가장 큰 문제는 뭡니까.


"도전적으로 말하면 누구도

환영 안 해요. 청중은 저마다 여과

장치를 작동시킵니다. 지금 저 사람 말이

 참인가 거짓인가, 참인가 과장인가, 참인가

 가식인가. 참만 받아줍니다."


―역대 대통령 중 화술로 으뜸은 누구였나요?


"단연 이승만 박사였지요.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말했습니다.

축구 중계를 보면 아나운서가 잔뜩 힘주고

 '슛~ 노골입니다' 할 때가 있지요. 그게

서투른 겁니다. 슛도 단지 패스의

 일종이거든요.


 부자연스러우면 설득력이 없고 연설이 아녜요."


"5분 안에 청중 사로잡아라"

화법에선 6가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①들려야 하고 ②쉬워야 하고

 ③흥미로워야 하고

 ④유익해야 하고

⑤감동을 줘야 하고

 ⑥여운을 남겨야 한다.


전씨는 "어려운 걸 어렵게 말하기는

쉬워도, 어려운 걸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녹음된 자기 뉴스를 다시 들으며 결점을 점검했다고요?


"우리에겐 그게 거울이에요.

녹음을 재생해 들으면서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게 되니까요."


―배우에겐 카메라 울렁증이 있다는데 아나운서도 그런가요?


"마이크 공포증이 있어요.

 자신감이 필요하죠. 충분한 연습과

 경험 없이는 극복하기 어려워요. 아나운서는

 5분 안에 청중 반응을 가져와야 합니다.

 웃기려고 했는데 웃지 않으면

공포가 더 심해져요."


―좋은 음성을 유지하는 방법은 뭔가요?


"목욕하고 나서 최고의

음성이 나옵니다. 따뜻한

오미자차나 꿀차, 박하사탕도 좋고요."


―30분 내리 방송하면 입이 타지 않았나요?


"말하는 사람은 타액의 분비가

 적절해야 해요. 아나운서들은 새벽에

소금물을 마셨어요. 짜니까 침이 나오잖우.

그런데 침이 너무 많아도 안 돼요.

그래서 참 어려워요."


―눈여겨보는 후배 아나운서가 있나요?


"KBS 윤인구 아나운서가 잘해요.

자연스럽고 겸손하고 센스도 있고. 김동건

 아나운서도 50년 넘게 장수하고 있는 아나운서죠.

기교 안 부리고 구김살이 없어요."


그가 패티 김 히트곡 '

사랑의 계절' 작사가인 줄은 몰랐다.

전씨는 "작곡가 길옥윤 선생께 부탁해

곡을 붙였다"며 "아나운서 실장이 유행가

 가사 쓴다는 게 좀 창피해서 한동안

가명으로 활동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16/2017061601603.html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젊고 패기있던 시절,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면서도, 관련분야에 특별한 뜻을 세우고

 공부하고 연구하여 학계에 진출하여 학위까지 받으셨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아나운서로 기억되고싶다고 하시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초심을 잃지않고 끊임없이 일관 해 오신 전영우

아나운서님의 복된 일생을 존경합니다.  백세시대에 이제

 80을 넘기셨으니, 남은 세월 동안 마음껏 하시고

싶은 일 하시며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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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S 동아방송의 얼굴, 전영우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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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 아나운서, 제 17회 천원학술상 수상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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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박사 육성 (바른말쓰기 실천운동가) 바른말쓰기와 올바른 화법, 토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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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방송국(JODK) 설립 그때 그 얘기, 유병은, 전영우

http://blog.daum.net/jc21th/17782466




자신의 서재에 쌓아놓은 저술서와 함께한 전 회우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전영우작사 사랑의 계절.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