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서 선생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일생을 국민과 함께 웃고 울었던 구봉서 선생님이 2016년 8월 27일 새벽 2시 세상을 뜨셨습니다. 구봉서 선생님은 일제강점기 어린 시절부터 방송이 좋아 방송국을 찾다보니 라디오방송의 성우로, 코미디언으로, 희극배우로 라디오에도 출연하고 악극단 무대에도 섰으며 텔레비전, 영화 스크린을 통해서 웃음을 주고 즐거움을 안겨주며 일생을 그렇게 살아온 구봉서님선생님은 1960년대 70년대 코미디언 프로그램의 전성기에 갖가지 유행어를 만들어 내며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쁜 사람 중에 한 분이었습니다. 영화 세편, 네 편의 겹치기 출연은 보통이고 텔레비전의 코미디언, 쇼, 요즈음 같으면 이런 프로그램들이 대본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지만 생방송시절 스스로의 애드리브로 엮어가던 프로그램도 많았습니다. 1958년 정동에 있던 방송국이 남산으로 옮겨 드라마를 녹음하는 사진을 올렸습니다. 구봉서선생님을 비롯해서 오승룡, 깁희갑, 복혜숙, 이향자님등 영화배우들과 성우들이 함께 출연하고 있고 김영수님이 연출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1965년에 방송된 구봉서 선생님 출연 방송동영상
구봉서, 화면 얼굴만 보아도 웃음이 나왔던 희극배우
어린 시절부터 방송이 좋아 방송국을 찾았고 방송에 출연했으며 아코디언, 오르간이 좋아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던 님이 해방되던 때 태평가극단을 이끌던 김용환, 김정구님 현제분과 인연이 맺어져 태평양 가극단 단원이 되고 방송국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성우 역할을 했으며, 1956년 우리나라 최초의 TV방송 HLKZ가 문을 열면서, 새로 희극배우로 입문한 김희갑, 서영춘과 더불어 TV무대에 섰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방송국 HLKZ TV무대에 섰던 몇 분 안 되는 생존하신 분 중의 한분이 되었습니다.
1962년에 시작된 KBS TV 생방송시절부터 TV에 출연하기 시작한 님은 녹화방송이 시작되던 초기 그의 성을 따 편성된 “사직 골 구서 방”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출연자의 성을 넣어 편성한 프로그램의 시초가 아닐까 합니다. 김난영의 남편이자 연출가 이남섭 연출의 이 프로그램에서 김난영과, 결혼 전의, 최불암, 김민자님 등 이름있던 탤런트들이 출연했던 이 프로그램은 인기리에 방송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녹화로 방송되었지만 방송을 앞두고 녹화테잎이 분실되어 불시에 생방송으로 방송되면서 땀을 흘렸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KBS와 TBC 두 채널이 있던 이 무렵 어느 채널을 틀어도 구봉서의 얼굴이 보였고 극장에서도 한꺼번에 여러 곳에서 그 얼굴이 상영되었습 니다. 희극 프로그램의 저질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찌든 생활에 웃음과 재미도 있어야 된다는 얘기들도 많아서 그 프로그램들은 안방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때의 국민 학교 (초등학교)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적어 내라고 했더니 “구봉서”를 써낸 학생들이 많아 정부는 이런 현상을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1958년에 히트한 개봉영화 “오부자” 에서 막둥이로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 별명은 막둥이로 통했고 아우로 통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늘 막둥이였고 아우였습니다. 한 라면회사 광고에서 “형이 먼저, 아우먼저” 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한 광고내용이 인상적이어서 사람들의 머리에 깊게 각인되기도 했던 적이 있습니다. 1963년에 시작된 동아방송 개국 프로그램으로 탄생한 “안녕하십니까? 구봉서입니다”는 매일 아침 5분 동안 하는 라디오 원맨쇼로 그때 "이거 되겠습니까? 이거 안 됩니다" 라는 유행어를 낳기도 했습니다.
MBC TV 개국직후인 1969년 8월 14일부터 1985년까지 이어졌던 MBC “웃으면 복이 와요”는 15년 8개월을 방송했습니다. 대본은 거의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코미디언들이 썼다고 했습니다. 구봉서님은 어린 시절부터 희극을 읽고 쓰는데도 재질이 있었습니다. 이때 유행어가 된 '김수한무~'는 귀한 자식을 오래 살게 하려고 지은 이름으로 70자가 넘고 이름이 너무 길어 생기는 에피소드를 매회 다뤘습니다. 다음은 이 프로그램의 500회 방송을 맞아 1979년 7월 갖은 대담 모습으로 구봉서님과 이기동, 이대성, 신소걸님이 창여했습니다.
2011년 KBS TV 여유만만 프로그램에 성우 고은정님과 함께 나와 그의 삶에 대한 얘기를 했지만 그것은 대체적인 얘기이고 그의 삶은 우리 국민들에게 마음속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시간약속을 철저히 지키며 늘 시간과 함께 살았던 님은 시간의 소중함을 잘 알고 시간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1926년에 태어나셨으니 올해 만 90세로 세상을 뜨신 막둥이 구봉서선생님은 늘 젊게 살가가 가셨습니다.
2013년 11월 18일 2013 대중문화 예술상 시상식에서 은관문화훈장을 받는 모습입니다.
흑백시대 디자인 화면
1967년 인기드라마 사직골 구서방 이석진은 이남섭의 예명입니다.
화면의 기술감독 이정오님은 방우회 현 사무총장으로 재직중입니다.
1968년 KBS 올스타 온 파레이드 (우로부터 한명숙, 이금희, 구봉서, 박재란, 현미)
TBC 쇼쇼쇼 200회 기념 대 공연때의 구봉서니입니다.
1970. 9. 7부터 75. 10월까지 방송된 MBC-TV 일일 홈드라마 부부만세로 코메디언 구봉서, 유하나, 최정자, 배삼룡님 출연했습니다.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사직골 구서방(구봉서), 1967년 TV 인기드라마 http://blog.daum.net/jc21th/17781108 김무생 선생님 글 ★ 대한민국 코미디의 큰 별 구봉서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제가 구봉서 선생님을 인상 깊게 뵌 때가 69년 MBC-TV의 개국 프로그램인 "웃으면 복이 와요 "입니다! 저는 평소 방송진행자들의 진행자로서의 부족한 일명 "진행자로서의 진행 연기력"을 터득 좀 하기 위해 코미디언이나 만담 원맨쇼 등의 연기기자들 에게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요! 당시 중학생이었던 저의 시야에 퍽 편안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연기로 시청자들께 접근하시 는 구봉서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이 "웃으면 복이 와요"시간에는 온 동네가 마치 동네에서 상영하는 "이동 영화 무대"에서 다 함께 영화보듯이 모여서 보며 합창하듯이 웃고 그랬습니다! 이것 뿐만 아니라 수 많은 프로그램을 통해 온 국민을 향해 그 서글서글하시고 정겨운 웃음을 선사 하셨고, 또 그렇게 웃을 수 있는 여유도 제공해 주셨던 분입 니다! 하늘 나라로 가셨다 생각하니 그리워지는 분이 또 한 분 늘어났습니다! 앞으로 제 삶에서 일상생활이나 교육현장이나 방송현장에서 당신의 그 서글서글한 연기가 필요할 때는 효과적인 진행을 위해서 당신보다는 훨씬 덜 하더라도 지나치지 않고 꼭 활용하겠습니다! 이것이 하늘로 가신 별 당신을 조금이나마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이 될 수도 있겠지요?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하늘 나라에서 대한민국의 코미디의 큰 별로 빛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이 얘기를 기록할 수있도록 여기에 <춘하 추동 방송>의 창문을 열어 주신 이장춘 이사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우리 <춘하 추동 방송>과 함께 해 주시는 여러분 고맙습니다! 건강과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김무생 드림.
구봉서 선생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박서림 선생님 (1958년 장마루촌 이발사 집필 원로방손작가) 선생과는 MBC <부부만세>에서 함께한 인연이 있습니다. 최철미 선생님 (미국 샌프란시스코-최세훈 아나운서 딸) 김학교수님 (전주) 배진수 선생님 송영희 선선님 오카리너 이복신 (미국 Joy Gebhard) 선생님
구봉서, 곽규석, 서수남이 프로듀서 박창학과 함께 촬영한 사진. 광규석님이 미국에서 목회활동을 하던중 잠시 귀국했을때 촬영함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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