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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국희아나운서 한밤의 음악편지 윤동주 별헤는 밤

이장춘 2016. 7. 19.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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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9일, 위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카톡으로 통하는 친지분들에게

 전해드렸더니 많은 답글이 왔습니다. 학생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상처럼 좋아했던  임국희 아나운서의

 청아한 음성을 들으며 회한에 젖는다고 하는 분이 계시는가 하면

 그 시 낭송을 듣다가 눈물 흘리며,   추억을 되살리며 필자에게 전화

했다는 선배분도 계셨습니다.  세월이 지난 지금이라도 시낭송을

 해 보고 다는 선배분도 계셨습니다.    임국희 아나운서

같이는 못해도  하면 할 수 있을것 같은데.....!


연세들면 추억과 함께 산다더니

연세 들수록 옛날이 그리워진다는 분들이

많은듯 합니다.  춘하추동방송을 찾으시는 분들이

옛 추억을 더듬으며 몇시간씩을 머물다가 가시는 분들이

 계신다.고 합니다.     임국희 아나운서에 관한 여러편의 글을

  써 올렸지만 아직도 쓸 글, 들려드릴 음성은 많습니다.     임국희

아나운서가 한밤의 음악편지를 하던 시절   그 프로그램을 음반으로

만들어 시중에서 팔리기도 하고 책으로 출판되어 지금도 희귀한 귀중품

으로 소중히 간직 한 분들이 계신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얼마전 7장으로

된 임국희 한밤의 음악편지 음반이 인터넷상의 매물로 나온적이 있었는데

7장 한 샛트에 25만원이라고 하더군요.   세월이 지났어도 사랑을 받고

있는 임국희 아나운서 기회되는대로  얫    얘기도 더 올려 드리고

옛 추억을 되살릴만한 글들을 더 올려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동안 못 보셨던 사진 몇장과 함께  지난날 올려드린

임국희 아나운서 한편 다시 올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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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반 임국희 아나운서를

비롯해서 MBC아나운서들이 청와대를 방문

해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임국희 아나운서! 그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은「한밤의 음악편지」, 「MBC 여성싸롱」

프로그램 이름과 함께  ‘임국희’ 그 이름이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어 그 이름을 들으면   그 정겹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떠오른다. 

그로부터 반세기의 세월이 흘러  님은 79세가 되었건만 지금도 임국희

 아나운서를 20대, 30대로 머릿속에 그리시는 분들이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아온 아나운서였던가를 짐작케 한다.  1964년

부터 10년 가까운 세월「한밤의 음악편지」를 들어오던 여학생들이 

 주부가 되었을 때   MBC는 ‘임국희’ 그 이름을 넣어 「MBC 임국희

 여성싸롱」을 편성했다. 그러자 같은 시간대 편성된

 각 방송사들의 프로그램이 어려움을 겪었다. 



임국희 아나운서 한밤의 음악편지 윤동주 별헤는 밤



 오랜 세월 청취율 1위를 지켜오던

같은 시간대의 TBC 동양방송 아차부인

재치부인」의 청취율을 허물어 뜨려 그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김선옥은 세월이 지난 오늘도 그때의 어려

웠던 일을 토로하기도 한다.    한밤의 음악편지를

들어왔던 여학생들이 주부가 되어 모두 임국희

방송 따라 MBC로 옮겨버렸기 때문이다.





임국희林菊姬 아나운서! 1938년

 1월 17일 만주 할빈에서 중학교 교사의 2남

 1녀 중 막네로 태어나 어린시절 용정으로 옮겼다.

아버지는 용정 제3중학교 선생님으로 계셨고 본인은 7살때

금강소학교에 들어가 2학년때 해방되어 서울로 돌아와 살았다.  

만주에서 살던 어린시절   우리말과 중국어, 러시아말을 사용했고,

또 국내에 돌아와 자라면서 영어와 일본어를 배워 모두 5개국어를 할 수

 있다.   만주에서 살던시절에도 오빠들은 서울에서 경성제국대학을 다녔는데

 해방되어 서울로 돌아와 전 가족이 함께 살게 되었다. 할빈에서 살때는 할빈역

부근에 살면서  역전에 새워진 이등박문 동상 앞을 오가던 기억이 생생하고

 용정에서는  해란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바지에서 살았다.  민족시인

윤동주의 고향이 용정이라 그의 시에 관심이 많았고  '한밤의

음악편지'를 진행 할때는       용정과 동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했다.



여고시절의 임국희와 6살 아래의 S동생 황유자 



남산국민(초등)학교, 경기여자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곧 이어 1961년 KBS아나운서 공개

채용시험이 있어 응모, 아나운서가 되었다. 결혼 후에 아나운서로

들어가기가 어려울 때였지만 임국희 아나운서가 시험에 응시 했을 때는

그런 제약은 없었다고 했다.  그때 함께 들어온 아나운서로는 배덕환,

인주희, 최정현 등이 있다. 엄복영, 이규항, 용문, 이홍우,

길종휘, 이원춘, 김정자, 최승일 등은 1961년

같은 해에 들어왔어도 기수가 다르다.





 KBS에 재직하던 1962년 KBS 연말

특집방송,  남 : 여 청백전(위 사진),  임택근

 : 임국희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는 가운데 남, 녀가

대표 현인, 신카나리아가   어느편이 먼저하나  가위,

 바위, 보 히는모습이다.  1년차 임국희 아나운서가 대스타 

임택근 아나운서와 함께, 대 스타들이 출연한 공개방송에서 

흔들림 없이 사회를 보 는 모습을 본 주위 분들로 부터

칭찬을 받으며 대성 할 수 있는 아나운서

로서의 재능을 보여주었다.


3년간 KBS에서 근무하던 임국희

 아나운서가 1964년 MBC로 옮겼다.  MBC

 창설요원들이 TBC로 옮겨가고 MBC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대한민국 대표 간판 아나운서 임택근, 최세훈,

임국희 아나운서 등을 영입했다. 임국희는 KBS에서 3년간 갈고

 닦은 실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임국희 아나운서는 2011년 MBC창사

특집  'MBC와 나' 프로그램에 출연  "직장대항 노래자랑 같은 일반인

코너나 행사 前 분위기 띄우는 역할을 내가 맡고, 임택근 선배는

뒤에 등장해 스타들이 나오는 쇼만 맡았다" 는  에피소드를

공개하기도 했다. 주요프로그램을 담당했다는 의미다.





그때 MBC가 새로 내놓은 프로그램이

DJ 「한밤의 음악편지」로 청취율이 낮았던

심야 프로그램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그때의 방송을

배경음으로 듣고 계신다.  심야 생방송, 여성 아나운서들이

 그 심야의 생방송을 하는 경우가 없던 시절 임국희 아나운서에

의해서 새로운 기록이 수립되었다.      그로부터 날마다 이어지는

「한밤의 음악편지」는 TV가 별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임국희 아나운서는

 어렵고 힘들어도 아플 시간도 없이 이 프로그램을 이어갔다.

 이 프로그램 담당자 또 한사람의 유명인 이종환

프로듀서와 함께................!



 녹음기 앞에 서있는 분은 박진현 프로듀서, 앉은분은 엔지니어 최인열



필자 이장춘이 임국희 아나운서를

 만난 것은 50년 반세기기 넘고 님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지도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구하고

 싶은 「한밤의 음악편지사진 한장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 시절

사진을 잘 찍지 않던 시절 이어서다.   임국희 아나운서에게 몇 번인가

 이야기를 했더니 한 모임에 참석하시며 벽에 걸린 작은 액자를 때어가지고

오셨다. 그 사진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액자에 담은 사진과 그 사진을 손에 든

 임국희 아나운서  50년이 지난 오늘의 모습을 담았다.         손에 들린 사진은 

1960년대의 사진이고 들고 계시는 분은 77세, 2014년의 임국희  아나운서다.

50년의 세월이 흘렀건만....50년의 시차가 있는 같은분 사진......!



 녹음기 앞에 서있는 분은 박진현 프로듀서, 앉은분은 엔지니어 최인열



그 시절 신문, 잡지 등에서는 임국희

아나운서를 화제의 인물로 알리는 경우가 많았다.

많이 보던 아리랑잡지에서 1966년 1월 임국희 아나운서

에게 상을 주었을 때 촬영한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수상을

축하 해 주러  김동건, 이영주, 최계환, 임국희,

 박종세 아나운서(왼쪽부터)와 함께 한 사진이다.





 임국희 아나운서의 방송에 관한 

이해를 돕기위해 2013년 12월 15일자

한국아나운서클럽 회보 초대석에서 후배

MBC 새내기 김대호 아나운서와 나눈

 대화의 일부를 인용한다.





당시에 어떤 방송들을 했었나요?"


"대호 씨, 정말 옛날이야기 잘 모르는구나.

‘한밤의 음악편지’ 몰라? 내가 1964년부터

72년까지 진행했지."


"사실 찾아보고 알았어요. 죄송하지만 잘 몰라요."


"호호호! 당시에는 오전 7시 전과

오후 10시 이후에는 여자 목소리가

전파를 타면 안 되는 시기였어."


"네? 정말요? 왜요?"


"예전에는 그랬어. 그런데

‘한밤의 음악편지’는 우리나라 최초로

밤 시간대에, 그것도 가요가 아닌 팝송이 나간

방송이었지. 당시에는 아나운서가 엔지니어와 작가의

 일도 다했다고. 만능이 되어야 했지. 나는 음악도 많이 듣고

 책도 많이 봤어.    그게 다 라디오 방송하는데 도움이 되었지.

다른 DJ들은 가지고 있지 않은 외국 앨범들도 많이 가지고

있었어. 그런 프로그램이었다고, 이 사람아!"


당시 선배님 방송 중 시낭송을 녹음해 만든

해적판 레코드가 날개 돋친 듯팔릴 정도였다고 한다.





임국희 아나운서가 그 8년간

날이면 날마다 한밤의 음악편지를 담당하면서

겪은 사연들,  하루에만도 갖가지 사연을 담아 보내온 

수천통의 엽서가 싸이던 시절 거기에 얽힌 얘기만 해도 얼마나

많았겠는가? 여성이 통행금지 시간이 되어 퇴근 하면서 겪은 사연! 

등등 임국희 아나운서에게 그때 그 얘기를 해 달라고 물으면 답 하기를

'그때 그 얘기를 다 간직 했으면 옛날에 죽었을 거야,     나 알지 않아

그때 그때 잊어버리는 것'  그렇다  임국희 아나운서는 잊어

버리는 사람이다. 잊어버리지 않고는 하루 하루를

 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괴로웠던 일, 힘들었던 일은 물론

즐거웠던일, 행복했던일 까지도 뒤로 돌리는

성격이다.    말도 꼭 필요한 단어만 골라서 한다.

임국희 아나운서의 건강비결은 바로 이것일거라고 생각

한다. 그래서 복잡한 애기는 묻기도 어렵고 물어도 웃어 넘길뿐

자세한 얘기는 듣기 어렵다.  그 얘기를 다 하고 듣자면 책으로

몇십권 써도 모자람직하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많은

사연을 안고 사는 분이지만그로부터 그 사연을 듣기도

 어렵다.  그래서 남긴 사진도 없나보다. 옆에서

 보면 사진도 그저 지나쳐 버리는 듯 하다.


임국희 아나운서에게 필자가

아렵게 몇장의 사진을 받은적이 있다.

원본을 돌려드리겠다고 했더니 '버려 버리라고

 한다' 필자는 엣 사진을 받으면서 '버려 버려라. 고

 한 얘기를 들은적이 잆다. 그러니 임국희 아나운서에게

엤사진이 없는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님의

곁에 있어보면 늘 행복 해 하는 모습이다.

 




그 시절 임국희 아나운서가 1974년

MBC 아나운서 직을 뒤로했다. 그렇다고 아나운서를

그만 둔 것이 아니라 오늘날로 말하면 프리랜서 아나운서를

했다.  프리랜서가 그리 흔하지 않던 시절이지만 워낙 인기가

있었던 임국희 아나운서에게는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MBC 임국희의 여성싸롱」이번에는 심야방송이 아닌 아침

생방송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아침 6시부터 준비를

 갖추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임국희 라는

름따라 수많은 청취자들이 함께 했다.





1965년 5월 3일 방송이 시작된 TBC

동양방송 '아차부인 재치부인'!, 뉴스, 인기연속극

 스포츠 빅게임에도 청취율 1위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던

 이 프로그램이 MBC 임국희의 여성싸롱이 생기면서 된 서리를

 맞았다. 그동안 한밤의 음악편지에 심취하던 여학생들이 결혼시기다

되고  또 주부가 되어 임국희 아나운서 프로그램 따라「MBC 임국희의

 여성싸롱 이예요.」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때의 TBC 아차부인 재치

부인 담당 프로듀서  김선옥은 2015년 11월에   대 한언론인회에서

출판한「그때 그 현장, 못다 한 이야기」에서   그때   그 얘기를

 썼다. 임국희의 여성싸롱이 한참 인기를 끌던 1979년 3월

 대중여성잡지 ‘쥬단학’에 실린 글이 있어 옮긴다.





MBC 여성살롱 임국희예요. 에서 전국에서

보내져 오는 편지만 해도 3천통에 이른다. 미혼여성과

가정주부의 편지가 주로 소개되는 이 프로는 외계로부터 차단

 당한 채 생활하는 집안 여자들의 바람직한 교감의 수단으로 비록

그 의미있다고는 하나 매월 백만통에 육박하는 만지장서가

한 프로그램에 쇄도한다. 함은 라디오 프로그램의 요리사를

넘어선 전파 미디어를 통한 규중사연교(閨中事

緣敎)의  교주임을 알게 된다.


생방송을 위해 365일 매일 새벽 6시에

출근함 틈만 나면 아무데서나 책을 펼쳐든다.

나이의 티를 느낄수 없는 것은 긴머리 탓이 아니라

 그녀의 머리의 회전력 때문이라고,


취미 1호 독서를 위해 책을 선택하는

 시야가 넓고 다양하면서도 기민하게 구사한다는

사실을 들수 있다. 그는 탐정 소설도 읽고 문학작품도

 읽고 소녀스런 베스트셀러도 읽고 전공인 역사 서적도 읽는다.

스스로 변덕쟁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독서습관을 통해 그는

부지런히 굳어져가는 고정관념을 깨고,, 나이를 깨고,

 직업의 틀을 깨면서 매너리즘을 모르는 임국희의

청춘을 연장시켜 나가고 있다.





오늘날 대중화된 떡볶이가

 이 프로그램에서 신당동 떡볶이

골목을 소개하면서 비롯되었다는 얘기가

 있듯이 이 프로그램에서 전파를 타면 순식간에

유행이 번지곤 했다.  이 프로그램을 시작한지 10년이

되어 1984년 MBC는 대규모의 특집방송과 행사를 했고 

임국희 아나운서는 1984년 방송대상 MC부문상을 받았

으며 MC 10년, 방송 23년을 맞아  특집방송을 위해

 동남아 취재길에 오르기도 했다. 1984년 10월

 8일자 매일경제 기사 한편을 올린다.





임국희 아나운서의 전성기를 기억하던

 후배 방송인들은 계속해서 방송 스튜디오에 모셔 

 2003년 4월까지  평화방송, SBS, tbs(교통방송)등에서

방송마이크 앞에 앉았고 2003년 6월부터 MBC 경영 최고

 의결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역임했다. 오랜 기간 MBC

여성아나운서 모임 초록회 회장과 MBC사우회 감사, 한국아나운서

클럽 부회장을 역임한  임국희 아나운서가  2015년 3월 5일 한국

아나운서클럽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활발한 활동을 벌리있다.

여기에 관해서는 춘하추동방송에 자세한 내용이 올라

있기에 관련 글을 연결하는 것으로 가름한다.



임국희 아나운서 가족



성대경(전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2016년 10월 26일 별세, 아들 성지동(성균관대

의대 교수) 딸 성은애(단국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며느리 백영경(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사위 박찬길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화    보





임국희 아나운서가 KBS에서 3년을 근무 했다.

 이 사진은 1963년 강찬선 아나운서가 방송문화상을

 받고 아나운서들이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남산방송국 뜰에서 임국희 ·김경숙 아나운서가 다정한

모습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선후배라고 하셨는데 어느분이

 선배이고 언니일가. 궁금하다. 아래는 같은 해에 들어온 김정자(좌)

아나운서와  함께 한 사진이다.  위 사진은 김경숙 아나운서가,

아래 사진은 미국 김정자 아나운서가 주셨다.



 임국의 아나운서 KBS 입사무렵 1961년

사진으로 보인다. 왼쪽부터 최세훈, 김정자, 한분건너 

임국희 아나운서다. 뒤에 새로 짓고 있는 건물은  뒷날 KBS

건물이 된 원자력병원이 아닐까 한다.        필자의 추측이

맞다면 원자력병원 짓는 모습은 처음보는 사진이다.




위 사진은 왼쪽부터 송영필, 이광재, 임택근, 임국희

아래는 확인되는대로 기록 할 것이다.




MBC시절 사진




임국희 아나운서가 MBC로 옮기고 아나운서들이 함께 한 사진 조규원,

 승일, 송영규, 오남열, 세훈, 김순환, 이철원, 유창경, 최정연. 백혜정, 장인숙,

김상옥, 안영희, 임국희 아나운서가 참여한 가운데  촬영한 사진이다.



1964년 12월 25일 밤 11시부터 시작된

성탄절 특집방송 공개방송 수원 전투비행단에서

 실시된 이 공개방송은 4만피트 상공을 날이는 Z기

 편대와  2원방송로 이루어 졌다.



위 사진은 1966년1월에 아리랑 시상식무대에

오른 임국희 아나운서다. 임국희 아나운서에게 이 사진의 

사연을 물어 답을 보내주셨다.  당시 인사동 오진암이란 요정에

예쁜 기생 들이 가는 미장원에서 머리 올리고 분장실 없는데서 내 손으로

눈섭부치고무대 올라갔죠.  둘째 아들 임신으로 입고싶은 드레스 못입었죠

 ㅋㅋㅋㅋㅋㅋㅋ, 아래는 이때 시상대에 함께 섰던분들 최계환아나운서

성우 오승룡님의 모습과 그리고 수상하는 모습을 담았다.  

 





MBC 제4대 조증출사장님과 함께 한  임국희 아나운서다. 1967

조증출사장님은 박정희 대통령과 친분이 깊었던 분이다.




1972년 한국일보 사진기자가 찍어

덕수궁 갤러리에 전시된 임국희, 배병

 아나운서의 모습이다. 명동에서 MBC정동방송국

으로 가는길에 촬영된 스냎 사진으로 사진 화질이

좀 떨어진 감이 있지만 참으로 멋진 모습이 담겼다. 

원본을 구할 수 있으면 다시 올릴것이다. 임국희

아나운서는 이 사진이 '찍힌것도, 전시회에

전시된 것도 몰랐다.' 고 했다.



영화배우 김승호와 함께 특집방송 사회보는 임국희 아나운서


노래자랑 연말 결선대회를 마치고상장면


mbc광주방송국 개국때

왼쪽부터 임국희, 이수홍전무, 임택근 상무

강영숙 아나운서


맨왼쪽분이 임국희아나운서

최세훈, 이철원, 김재영, 김채영,

나운서등이 함께 한 사진.




이철원, 임국희, 오남열 아나운서


임국희 아나운서와 함"께 한 1966년의 여성 아나운서들



한국 아나운서클럽 회장취임때 문화일보에 나온 사진으로

임국희 아나운서는  금기시 된 심야방송의 금기를 깼다고 했다.



SBS 달빛노래 MC 매일 월-토






TBS 교통방송 출연때







신혼시절






위, 신혼첫날 시가에 인사와 시 할머니와

시 어머니 옆에서 고개숙인 임국희 회장이고 아래는

 남편 성대경 교수가 태어나 어린 시절 살았던 청수당 파초

앞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1962년에 태어나 1966년 5살이

 된 이때의 어린 성은애는지금 55살이 되어 단국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국제대학원원장으로 재직 중이며

영문 소설을 번역,  다수의 출판경력이 있다.





친지분들과 함께 한 사진 모음



김경숙, 이소원 아나운서와 함께 한 임국희 아나운서

*. 음악평론가로 널리 알려진 장일범의 어머니이기도 한

 이소원  아나운서는 1960년대   KBS 아나운서로 입문

기자, 불어 아나운서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왼쪽부터 임국희, 이소원, 김정자, 김경숙 아나운서,



완쪽부터 김정자, 임국희 아나운서





화가 천경자와


왼쪽부터 문학가 이병주, 정은숙, 한사람건너 임국희아나운서,

오른쪽 끝,  바리톤 오현명, 1985년


오래된 칼라 사진이네요. 임국희 아나운서가  윤희 

 김채영 아나운서와 함께 한 70년대 사




초록회 회원들과








 2,000년 새천년 새해 새날에




 

한국 아나운서 클럽 & 방송인들과




2015년 6월 아나운서 클럽 MBC방문의 날에 임택근 아나운서와
 임국희 한국아나운서클럽회장 맹관영아나운서



 제 51회 방송의 날에  문인수, 윤영미,

김상준, 임국희, 이장춘, 한이수





오늘의 임국희 아나운서와 필자 이장춘 한국아나운서클럽 이형균국장 촬영




2012년 5월 24일 한국 아나운서 클럽 모임에서 함께 촬영한 사진입

니다. 1.이성화, 2.문복순, 3.강영숙, 4.임택근, 5.황우겸, 6.전영우, 7.김동건

8.임국희, 9.김규홍, 10.황인우, 11.임주완, 12.박민정, 13.윤영중, 14.민병연,

15.정용실 16.정영희, 17.원종배 18.이혜옥. 19.차인태, 20.맹관영, 21.박영웅,

22.배덕환, 23.이계진, 24.이후재, 25.성기영, 26. 정연호, 27. 권혁화,

28.양진수, 29.김상준, 30. 성경환, 이형균님입니다 .





임국희 아나운서 방송史料
































이덕화와



정광모와





임택근 아나운서와 연말특집 사회보는 임국희 아나운서
















황 량  국장님 카톡 편지 내용



수백~수천년의 중국역사를

 "사마천"이 있다면.. (일설에는

모택동이 29번읽었다는 사기와 자치통감)
한국방송의 역사 특히 임국희 회장임과 관련한

 아나운서의 역사를 만드신 이장춘국장님의 업적은

사마천과 버금가는  명작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대작입니다. 이달 중순를 기다리겠습니다.


2016년 어버이날 아침.



권영탁 선생님 글



국장님! 한동안 못뵈서 궁금했는데
제가 좋아하는 윤동주 시인의 별을 헤는밤

 또한 젊은날에 우상처럼 좋아했던 임국희 아나운서

 청아한  음성을 들으며 회한에 젖습니다
감사드리며 늘 옥체 보존하소서



이성화 아나운서 (최초의 민영 라디오방송 부산 MBC)



모습으로 아름다운 시 감상 잘했습니다.
별 하나가 저 멀리 아스라히 있는 그 옆에 윤동주

시인은 맑은 영혼으로 우리가 가졌던 순수가 아스라히

 멀어져 있는 것을 다시금 끈을 잡아당길 수 있는 갈망을

 가지라고 아스라한 눈 빛을 보내고 있습니다.
임국희회장님 청춘의모습으로 아름다운

 시 감상 잘했습니다.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한밤의 음악편지에서 '별을 헤는 밤'을

낭송하는   임국희 아나운서의 또랑또랑하고

애리애리한 목소리가 너무도 아름다운 목소리입니다.
맨 아래에 국장님과 손잡고 찍으신 사진이 정겹습니다.
만주에서 교사를 하시던 아버지까지는 저와 똑 같은데,
저는 길림성에서 태어났고, 임국희 아나운서님은
하얼빈

에서 태어나셨군요.임국희 여사님은 초등학교 2학년때

 나오셨구, 저는 태어난지 백일정도에 해방이 되어

본국으로 돌아온것이구요. ^ ^세월따라

아주 씸플하게 사시는 점은 배워야

할 점인 것 같습니다.



이장춘 답글



유여사님 그러고

보니 임국희 아나운서와는

 인연이 깊으시네요



이정부 아나운서



저는 방송 비평가도, 이론가도 아닙니다.

엄밀하게 말씀드려 중학시절부터 대학까지의

학창시절 10여년, 그리고 아나운서생활 48년...

모두 60년 가깝게 방송을 듣고 보며 살아온 방송

 좋아하는 일개 시, 청취자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단언할 수있습니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 보내드리는

행복편지 생방송 '한밤의 음악편지'나

'임국희의 여성 살롱'등 당대  최고의 시, 청취율을

기록한 방송만을  궂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60년대 초반,

구 시대 방송의 흉내가 아닌 시대를 뛰어 넘는 지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룬 신선한 방송, 일생토록 유지하며 보여주신 책 읽고

쓰시는 탐구정신, 시들지 않는 젊음과 밝고 경쾌한 생동감

으로일관하신 일과 사회생활의 모습에서 대 선배님

으로 부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뒤늦게나마 아나운서 클럽

회장으로 추대되어 전임 선배님들과

 함께 후배들을 이끌어 주시게 되어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이런 간과해선 안 될 방송사적

의미를 재 조명 해주고계신 청사 없는 방송

춘하추동의 연봉없는 국장 '      밤을 잊은

이장춘 선배님'께아울러 감사드립니다.

         2016년   8월의 열대야에  

             아나운서   이정부 드림





임연희 (효녀천사 팝가수)선생님 글



임국희 아나운서님 목소리가

 너무 예뻐요 어쩜 이렇게 목소리가

 여성스럽고 청아하고 깨끗해요. 임국희

아나운서님! 아름다운 시 감상 잘

 했습니다   넘 멋져요



황인우 아나운서클럽 편집장



와 새로운 사진 자료

보는 재미 쏠쏠하네요
임 회장님 세련미 최고!



김규홍 아나운서클럽 부회장



임국희선배님의 그 시절
화려했던 방송의 옛
모습을 실감나게 느끼게
해 주네요~!
이장춘 선배님의 춘하추동
방송은 영원히 또 아주
영원히 빛날 겁니다??



서금랑 아나운서 (매니큐어 화가)



존경하는 임국희 대 선배님, 언니!!
언니를 생각하면 종달새, 꾀꼬리, 국화 향기가

떠오릅니다. 50년전 제게 아나운서의 꿈과 희망을 주신 분...
가난한 동료나 후배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못 받아도 그 사람을

그리워 하시는 분...영원한 소녀, 최고의 아나운서, 그런분 또

 없습니다. 아울러 이런 분을 방송사에 길이 남기기 위하여
이 무더운 여름 밤을 지새우시는 이장춘 국장님...
이런 분들 또 없습니다.   


          아나운서 서금랑 드림



동원 윤성원 아나운서



중고시절 애청했던 한밤의 음악편지,
 전 당시   임회장님의 열렬한 펜이었어요.
특히 60년대 그당시 방송, 지금 들어도 감동,
감동입니다. 특히 윤동주 천재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시는 지금 들어도 가슴이  막 저어 옵니다.  어떻게
천재시인의   감정을 그대로 이입해 선배님  전형의 낭랑한
 목소리에 템포도 처지지않고  떼굴떼굴 구르는 옥쟁반의
  구술처럼 전할수 있을까 아직도 저는 의문입니다.

제가 지금 가장  먼저 가고싶은 곳이
 있다면 바로 용정입니다. 그곳의 분위기를
누구보다도 선배님은 잘 아시기에  체취가 둠뿍
 젖은그런 방송을 하시지 않았나 나름대로 생각해
봅니다. 멋진 아나운서클럽회장님께 이런  글은 그저
평범하겠지마는  저는 동시대에 이런 분이 계셨다는
것만으로 영광입니다. 다소 마음에 들지 않는
 글 이었다며는 너그럽게 해량해
주시며는 감사하겠습니다

 60년대 후반 늘씬한 키에
 판타롱입고  명동거리를오고가던
 추억이  그리 먼시절은 아니었겠지요?
 한겨울보다 더추운 꽃샘추위에  감기
조심하시고,건강하세요...동산에서
한쬐그마한 한아이가

 童園拜上



민순혜(리아) 선생님!



너무나 소중한 글 감동깊게 잘

 읽었어요. 얼마전 '동주' 영화를 보면서

감동이 블로그를 읽으며 더욱 깊게 느껴집니다.

국장님 역사의 단편인 좋은 글 고맙습니다. 임국희

 아나운서 방송 청취도 열렬 팬이었는데요, 오늘

 다시 블로그에서 임국희 아나운서

목소리를 들으니 감동 깊어요



깜비깜비님 글

 

 

너무도 소중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린시절 ,,

학창시절 ,,

임국희님,,

감사합니다

가슴에 담아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HAHAHA님 글

  

너무나 그때 그 음성을 듣고

 싶었는데 37년만 인가 들었습니다.

 이렇게 들을수 있어 행복 합니다.


김경영 선생님 글



제가 70년대부터 그리도 좋아했던

임국희 아나운서님의    예쁜 목소리는

 여전히 변함없으셨고, 영원한 여고생들의 팬.

김동건 아나운서님도 청년의 모습이셨지요.

한동안 7080으로 돌아가 행복했습니다.~

회원님들 모두모두 건강하고 행복

하시길 기원합니다.~*




위 사진는 1972년 한국일보

사진기자가 찍어덕수궁 갤러리에 전시된

국희, 배병 아나운서의 모습이다. 명동에서

MBC정동방송국으로 가는길에 촬영된 스냎 사진으로

 사진 화질이 좀 떨어진 감이 있지만 참으로 멋진 모습

 담겼다.  원본을 구할 수 있으면 다시 올릴것이다.

 임국희아나운서는 이 사진이 '찍힌것도, 전시회에

전시된 것도 몰랐다.' 고 했다.



이 사진에 붙이는 긓


이정부 아나운서



60年代나 지금이나 林菊姬

 先輩님은 시代 를 앞서가는 보기드문

放送人이었으니 자연히 記者의 카메라에

잡히셨을 것입니다. 아울러 半世紀가 지난 그

喜貴한 資料를 인터넷을 통해 세상에 기어코

 전하고야 마는 李長椿 선배님 의 使命感 역시

 國寶급이 아닐른지요... 두 분을 알고

있다 는 것만으로도 幸福하군요



황인우 아나운서



임 회장님의 세련미

 지금 봐도 멋져요



김경숙 아나운서



임여사 성교수로 착갓할정도네

 임여사가 예전에 이렇게 미인인줄

미처몰랐네요 ^♡^



동원 윤성원 아나운서



네, 임 회장님,멋쟁이이십니다.

제가 백양로서 여학생들 판타론 넘좋아했는

데요. 임회장님은 그때 이미 유행을 선도하셨군요

그당시 넘 멋있었지요. 후배가 감히.......대한민국

방송 역사를 쥐락펴락... 아직도 임회장님의  당찬

모습은  후배들의 귀감이......각종  귀한  값진사료

들을  일목요원하게  정리하신 이장춘이사님과의

 조합은과히 국보급.....존경스러운   회장님과

 이사님  넘 멋지고 자랑스럽습니다.~~



미국에서 이병훈 선생님

  

  

오랜만에 임국희 회장님의

시 낭송을 들으니 옛 생각이 나네요.

1960년대 월남전 당시 한국에서 처음으로

독자적으로 우리말 방송을 했던 주월 한국군방송

시절 배트남 하늘에 메아리쳤던 "십자성 밤하늘에"

프로그램이 생각이 납니다. 임국희 아나운서의

속삭이듯 매력적이고     감미로운 음성으로

많은 장병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한편

사기를 진작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었죠.

 

그 당시 "십자성 밤하늘에"를

담당했던       저로서는 임국희

아나운서와 그 프로그램을 잊을

수가 없는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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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국희 한밤의 음악편지! 김소월 초혼(超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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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국희 한국아나운서클럽회장 연임 재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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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국희 아나운서 한국아나운서클럽 제 8대 회장취임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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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택근 황우겸 임국희 한국아나운서클럽 MBC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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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겸 아나운서 미수 인생역정 한국아나운서클럽 2016년 8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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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택근 아나운서클럽 특집동영상 회보창간 5주년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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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나운서클럽 창녕고택 모임 임국희 회장, 2016년 4월 11일

 

임국희 아나운서 그때의 방송(시낭송 초혼장기범선생님 추모)오늘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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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국희 아나운서 특집대담 MBC 문화방송 김대호 아나운서, 한국아나운서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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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국희 아나운서 그때 그 목소리와 그 모습 그리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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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회 MBC OB 여성사원모임 (PD, 아나운서-회장 임국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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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환 PD(DJ)와 임국희 아나운서, MBC 한밤의 음악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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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삶과 시 별헤는 밤 낭송 임국희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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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문화방송 아나운서 그 이름(명단) 그 얼굴 사진

http://blog.daum.net/jc21th/17782218

 

임국희 (네이버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9E%84%EA%B5%AD%ED%9D%AC




임국희 아나운서 한밤의 음악편지, 초혼 / 김소월 시 


 

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GAFDJMVXLvI

  


임국희 아나운서 한밤의 음악편지, 별헤는 밤 / 윤동주 



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fJGcqweSp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