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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송병현

이장춘 2016. 7. 15. 23:58

 

 

 

송병현! KBS-TV 개국 다음해인  

1963년부터       프로듀서로 재직했다.

새로 문을 연 TV방송에서 송병현 PD는 어린이

시간 등 TV방송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척 해

나갔다. TV방송을 위해 새로 선발된 뒷날 국회의원을

 지낸 서영희 아나운서가 새로 발족한 TV 어린이 방송에

활기를 불러 넣었지만 얼마 안 있어 방송국을 물러나면서

송병현PD는 그 시절 최고의  여성 아나운서로 이미  MBC로

적을 옮긴 강영숙 아나운서를 KBS어린이 TV방송에 출연

할 수 있도록  함으로서 라디오에서의 어린이

프로그램의 명성을 텔레비전에서도

이어 갈 수 있도록 했다.



방송인 송병현



TV방송이 자리를 잡혀갈 무렵 송병현PD

춘천방송국 편성책임을 맞는 등 일생을 방송과

함께 했다.        필자 이장춘은 1968년 춘천방송국

편성책임의 자리를 주고받은 인연이 있은 후 오늘날까지

깊은 우정을 나눈다. 1970년대 문화공보부 보도과, 해외공보관

 등 핵심적인 업무를 담당하면서 방송과 문화공보행정을 넘나들며

 폭넓은 활동을 했었기에 그 시대 방송도 방송이지만 문화공보

전반에 관한 폭 넓은 사료를     보유하고 있어 

 춘하추동방송 방송역사를 써 나가는데

기본 사료로 쓰인다.





춘하추동방송에 오른 초기

TV방송어린이 시간 史料들은 송병현

프로듀서 보존사료가 주를 이룬다. 여기에도

 올리지만 그때 방송얘기를 할 때면 요긴하게 쓰이는

 사료들이다.  특히 송병현이 주관해서 1982년에 KBS가

 실시한 '피카소 탄생 100주년 기념전'관한 자료는  송병현

PD가 史料를 보존해서 오늘날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이 밖에

  방송생활을  통해서  수집된   생생한 자료는 방송사의 소중한

사료들로 앞으로 춘하추동방송 방송역사를 써 나가는데

소중하게 활용되고 2014년에 발간된 춘천방송국

70년사 발간에고 활용되었다.   송병현PD

사진첩에서 몇 점의 사진을 골랐다.



방송인 송병현의 방송사료 사진첩




KBS-TV방송 PD시절

방송 프로그램 연출하는 송병현





송병현PD가 KBS-TV, PD시절 제작했던

 TV방송의 대표적인 어린이 프로그램

"누가 누가 잘하나" 생방송 모습.









 KBS TV방송 개국 때 "누가 먼저

 맞추나" (사회: 서영희 아나운서) 어린이

 공개방송을 하다가 1년 후인   63년 1월 잠시

중단된 후  64년 3월 1일 프로개편에서 라디오에서

 오랜 전통을 이어온 "누가누가 잘하나" 로 탄생했다.   그

 사회자 역시 KBS 중앙 방송국    HLKA 라디오에서 오랫동안

 "누가누가 잘하나"를 진행했던 강영숙 아나운서가 맡았다. 강영숙

 아나운서가 MBC로 옮긴 뒤의 일이지만 TV방송을 하지 않았던

 MBC로서는 강영숙이 KBS TV에 출연하는 것을 허용했고

또 강영숙 자신도 오랫동안   라디오 에서만 담당했던

어린이 방송을 TV방송을 통해서 새롭게 해 보려는

의욕이 맞아 떨어져 강영숙의 KBS TV

 어린이 공개방송이 실현되었다.





강영숙 아나운서는 아나운서 생활 중

 이 프로그램이 오늘날까지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다고 말한다. 지금 보시는 프로그램은 1965년에

방송된 프로그램이다. 송병현PD가 기간 중 누가 누가

잘하나 외에도. 퀴즈상자, 대화의 광장 (연세대 김

형석교수, 서울대학교 이숭녕교수등 출연)

TV요리 등의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이방자여사와 함께한 송병현PD 모습



이방자여사는 조선왕조 마지막

황태자비로 우리에게는 아주 친숙한

분이다. 나시모토 마사코라는 일본말 본명을

 가진 이방자여사는 일본 최고의 황족 가문이라는

 배경과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미모로 천황비 후보로

낙점, 다른 두명과 치열한 경합을 벌이던중 타 후보를

밀던   족벌의 흉계로  불임 판정  천황비 후보에서

탈락된후 조선황실의 대를 끊는다는 미명아래

 볼모로 잡혀있던 황태자 이은과 혼인했다.




천황비를 꿈꾸는 일본 최고가문의

나시모토마사코에서 식민지 조선의 황태자비

이방자로 거듭나며 걷잡을 수없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모범 어린이를

 청와대에 초청 접견하는 모습으로 악수하는 학생은

대구 동덕국민학교 6학년 이미숙양이다.




위는 윤주영 문화공보부장관의

국내 각 언론사기자단 기자회견 장면으로

 1971년 윤주영 장관이 취임 할 무렵 송병현은

보도 담당관실,  해외공보관에 재직하면서 국내

보도 업무화 주한 외신기자단 취재지원 등의 업무를

수행 했다. 사진은 윤주영 공보부장관의 기자회견에

참여한 손석주 보도담당관, 허만일 과장, 이철호

계장, 송병현PD와 기자들이 함께 한 사진이다.




월남에 파병된 장병들에게 초등학생

위문품을 전달하고 있는 송병현



문화공보부 보도과 기자시절 송병현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TV 중계 방송차 앞에 선 송병현.





어렵던 시절 갑자기 실시한

TV방송국에는 쓸 만한 중계차가

없었다.  마침 1957년에 이동 방송차로

도입되어 그 임무를 마치고 포항방송국 사옥

으로 쓰던 이 차를 정항구, 조찬길 등 엔지니어가

힘을 기울여 중계차로 개조해서 62년 3월부터 TV

중계방송에 임했다. 그 중계차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귀한 사진이다.   아래 사진은 송병현이 춘천방송국

편성책임을 맞고 있던 1968년과 69년에 촬영한

사진이다. 그때의 춘천방송국 모습과 방송국에

 근무하던 직원들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마이크가는대로 등 프로그램 

 취재모습이 담겨 있다.




그 시절에 춘천방송국에 근무했던

송병현PD를 비롯해서 앞줄 왼쪽부터 윤병찬,

최승민, 두번째 줄 왼쪽부터 한사람 건너 강영희,

장양, 유일봉 방송과장, 송흥식, 오수정, 뒷줄

왼쪽부터 한사람 건너 송병현, 강완수,

정만철이 함께한 사진.



왼쪽부터 정경래, 송병현, 정만철, 최승민



홍천농고 취재차 갔던 때 송병현,

최승민, 한태헌, 방영호 등방송국 스텝들과

 홍천농고 교직원들이 함께 한 사진.




프로듀서 송병현이 "마이크 가는대로"

프로그램의 현장을 취재하면서 농민과 대담

하는 모습이고 가운데 분은 홍천군수15분간의

 녹음구성으로 제작되어 방송되었다.




토끼 사육장에서 홍천군수와 대담 모습





1967년 벙송인 강습을 마치고 촬영한

사진 1.이광주, 2.김성배, 4. 6.한창환, 7.전인규,

 8.김정수, 10.조완재,  11.김선초, 12.김도진, 13.조춘재 

 (조춘제), 14.장영길, 15.김수웅, 16.박희양(관리과장)

 17.장성섭, 18.김종성, 20.박연규, 21.송병현,

 22.윤일우, 23.최규정(지도계장) 

 



송병현은 1970년대 외신기자단의

지방 산업시찰 및 판문점 남북적십자회담

 취재 지원활동을 했다.   위 사진은 송병현의 안내로

수단 공보부장관이 김종필 총리를 예방하던 사진이고

아래는 수단 공보부장관과 현충사 경내를

돌아보면서 촬영한 사진이다. 


 



위 사진은 남북적십자 회담시에 촬영한

송병현의 모습으로 뒤에 보이는 북측 판문각

 앞에 북한 병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래는 그때

 판문점에 함께 동행 했던 한국일보 정광모기자

(중앙)가 북한 여기자(좌, 우) 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외신기자단 지방 산업시찰 중

금강 가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위 사진은

맨 오른쪽이 송병현PD가 아래 사진은

오른쪽에서 두 번 째 분이다.






 

위는 1977년 11월 19일 김성진 문화공보부장관

초청으로 방한한 기자회견 장면이고 아래는 정, 관계인사

초청 리셉션 모습이다. 송병현PD 문화공보부 보도담당관실과

해외 홍보관에 근무하면서 국내 보도업무, 해외홍보, 외국인사

초청, 주한 외신기자 취재 지원 등의 업무를 수행 했다.




아래 왼쪽에 송병현PD가 함께 했다. 


 

위, 아래 사진은 문화재를 관람하는 가봉 공보부장관.





피카소 탄생 100주년 기념전



1982년 KBS가 연 피카소 100주년 기념전은

서울. 부산, 광주, 전주등지를 순회하며 4개월 이상 큰

관심을 모은 가운데 개최되었다.    피카소의 딸 위드 마이어

에게 상속된 비장의 작품이 출품된 것으로 일시에 이토록 많은 작품이

전시된 것은 세계에서도 드문 일로     한국에서는  처음 있었던 일이었다.

부산, 광주, 전주에서도 열린 이 전시회는 가는 곳 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고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때의 피카소전은 KBS가 장기간에 걸쳐 기획한 역점사업으로

 문교부, 문화공보부, 주한 프랑스대사관주한 스패인 대사관, 일본 국제 문화 교류협회

후원으로 열려 피카소 예술의 진수가담긴 도예작품 186점이 전시되었다.  1982년

2월 27일부터 4월 11일까지덕수궁 안에 있던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서울전의

모습의 사진을 올린다. 피카소 도예전의 실무 책임자 송병현은 이 행사를

 성공리에 이끄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전주에 채유석 국장,

 광주 안표순국장, 조창화부산 본부장께 피카소 도예전시회에

협조 해 주신데 대해서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 전시회를 개최 하던 때의 송병현




거장 피카소의 모습




덕수궁 담 벽 피카소 도예 전 홍보 포스터 

 



덕수궁 앞에 거대한 피카소 심벌이 세워졌다






위는 도예전 포스터 앞에 선 송병현, 

조성민이고 아래는 송병현, 조성민 그리고 진행요원

강일홍, 김미혜이 함께 한 사진이다.





위는 뒷날 대통령을 지내게 되는 김영삼,

국회 부의장이 되는 황낙주, 김동영이 피카소

 도예전을 관람하고 있는 모습이고 아래는 전시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김영삼 대통령 옆에

  앉은 이는 이 전시회를 주도한 송병현이다. 






관련 글 보기 영문자 클릭 


 

피카소 탄생 100주년 기념 도예 전 작품들과 피카소의 생애, 1982년 KBS개최

http://blog.daum.net/jc21th/17781022


























춘하추동방송 이장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