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색다른 분을 통해서 이나라 최초방송국, JODK 경성방송국 초기 방송을 알아본다. 1960년대까지 방송국 출입구에는 수위가 있었다. 금테 두른 모자에 금물로 입힌 견장을 한 제복을 입은 제법 멋스러운 모습을 하고 방송국 출입자들과 대면했다. 그 수위분 가운데는 이나라 방송이 시작되던 때부터 그 자리를 지켜온 분이 있어, 머리 사진에도 글이 새겨졋듯 그의 얼굴 주름살은 이나라 방송사의 연륜이라고 할 수 있었다. 1977년에 발행된 최초의 종합 방송 역사서 '한국방송 50년사'에 그 조병인 선생이 쓴 글이 있어그 글 전문을 옮겼다. 조병인 선생님 글 JODK 초기 방송비화 방송이 막 시작된 초창기 얘기다. 라디오가 차음 시민들에게 보급되고 듣는 이가 늘어 갈수록 방송국에 불리어 나온 예술가의 인기가 높아지자 제일먼저 일어난 문제는 기생들의 방송이었다. 이때의 연예방송은 주로 기생들이 불리어 나와 남도소리, 서도소리, 경기소리 등을 흥겹게 불렀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마이크에 대고 방송을 하면 혼이 빠져 명줄이 짧아진다며 잘 안 나오던 기생들도 차차 얼굴을 내밀게 되니 나중에 가서는 차차 경쟁이 붇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경쟁도 붙을 만 하였다. 우선 방송을 하고나면 방송을 듣는 손님들이 일부러 요릿집에 예약을 하고 찾아 와서는 ‘참 방송 잘 하더군. 어디 오늘은 직접 육성으로 들어보자.’ 하는 등 방송기생이라면 제일 우대를 하기 때문이었다. 어떤 기생은 손님자리에 나가도 아주 거드름을 피며 ‘오늘은 저녁 여덟시부터 방송이 있어요. 그 시간엔 꼭 보내 주셔야 합니다.’ 하면 손님들도 신이 나서 ‘그야 보내구 말구’ 잠시 후에 막상 방송국 직원이 찾아와서 ‘방송국에서 모시러 왔습니다.’ 라고 전하는 방은 무슨 위대한 예술가나 떠나보내듯 떠들썩하기까지 했다. 방송이 차츰 일반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어 소리 잘 하는 기생이란 의례 방송을 해야 되고 차례에 끼지 못하면 창피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쯤 되니 아무리 잘났다는 기생들도 방송실에만 들어오면 절에 간 색시모양 아나운서의 눈치만 보고 마이크 앞에 가서는 다리가 떨리고 말문이 막히는 모양이었다. 목청을 가다듬어 곱게 뺀다는 목소리에서 얼토당토 않은 가시 걸린 목소리가 나오는 경우도 있었고 발성이 잘못 되면 얼른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잘못이나 저지른 듯이 옆에 앉아있는 아나운서를 보고 ‘선생님 미안해요’ 하며 고개를 끄덕하는 판에 노래를 들으려던 청취자들은 뜻밖에 ‘선생님 미안해요’ 를 듣게 되기도 했다. 더욱 우스운 일은 대개가 마이크 앞에 나서면 공손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차차 방송에 익숙해진 기생들은 나중에 가서는 삼복더위에 심할 때는 웃옷을 벗어 저치고 노래를 부르는 여장부도 나오게 되었다. ‘아나운서 선생님 시작만 해 주시고 방 밖에 나가 끝날 때쯤 들어오세요. 남자 아나운서들을 밀어 내놓고 여자끼리만 앉아서 적삼을 벗고 치마도 벗고 나중 에는 버선까지 벗어 던지고 멋들어지게 방송하고 가는 기생도 나타나게 되었다. 이쯤 되고 보니 자연 나이 젊고 인기 좋은 아나운서들의 팔자는 점점 기구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방송국에 한대밖에 없던 경 168번 자동차 오른쪽은 자동차 옆에서 촬영한 조종국선생 모습 1943년 수위 조병인 선생과 함께 JODK 경성방송국을 지켜온 운전수 분이 있었다. 민병선 閔丙善! 방송국에 차 한대밖에 없던 시절 방송국 직원이면 회장으로 부터 모두가 함께 이용하는. 차이고 연사 모시는 일부터 자동차와 함께 하는 모든일을 이 운전수와 함께 해서 방송국 밑바닥 일을 제일 잘 아는 사람 중의 한분으로 이혜구선생님이 써 놓으신 글에 그 일화가 있어서 그 글을 옮겼다. 이혜구 선생님은 1932년 우리말 전담방송 실시 전야부터 방송국에 들어와 우리나라 정부가 수립 된 후까지도 방송국장을 했던 분이다. 민병선에 관한 얘기는 또 조선방송협회에 근무 하다가 해방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살던 분들이 쓴 '조선 방송협회 회상기' 에도 그 분 이름이 오르내린다. 이혜구 선생님 글 운전수 민병선 …….전략, 그 맞은편 방은 서무과실, 이 서무과에는 일평생 술 취한 사람같이 새빨간 얼굴을 가졌지만 10년간 자동차 사고 전무의 상장을 경찰에서 탄 적이 있었고 앞으로도 또 있을는지 모른다. 그 뿐 아니라 그는 방송초창기부터 있어서 방송사정에 익숙하여 혹 방송할 기생이 명월관에서 국일관으로 국일관에서 천향원으로 1차, 2차, 3차로 뛰었더라도 그는 자동차를 몰아 영락없이 소정 방송시간 전에 잡아왔고 또 못 찾을 때에는 방송과 직원이 지명치 안하더라도 자기가 그 대신 감을 척 끌 고와서 방송사고도 별로 일으킨 일이 없었다. 요새는 방송할 것이 미리 녹음 준비되어 있으니까, 인제는 그가 바삐 차 몰 일도 없어졌을는지 모른다. 1956년 11월 방송지에 실린 글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얼마 되지 않은 방송 역사 같다가도 명줄이 짧아진다는" 이유로 초창기에는 방송을 꺼리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오랜 역사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 ^이혜구 선생님의 글속에 민병선 운전수는 언제 어떤 처지에서라도 자신의 할 일을 알아서 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생각입니다.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사단법인 경성방송국, JODK, 조선방송협회, KBS 한국방송공사-방송변천 http://blog.daum.net/jc21th/17782563 . 경성방송국 이중방송과 한국어 전담방송실시 http://blog.daum.net/jc21th/177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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