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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들의 삶과 애환, 마이크 뒤의 숨은 이야기 에피소드

이장춘 2016. 7. 5. 16:49



방송역사를 일구어 온 방송인! 

 외부에 비칠 때는 늘 화려하고 근심 걱

없이  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비친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면 괴롭고 힘든 때가 많았다.

방송인이 국가 공무원이던 시절, 국민 모두가 어렵게 살던 

시절, 그때 방송인들도 어렵기는 예외가 아니어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있었는가 하면 남편의

도움받지 못하는 부인들이  우울증에 시달린 다는  얘기가 들리고

또 때로는 세상을 등진 경우도 있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방송인은 늘 정해진 시간의 틀에 얽매어 긴장속에 살아야

 했다.  방송인들의 삶, 지금이야 많이 개선되었

어도 오랜 세월 그렇게 살았다.



방송인들의 삶과 애환,  마이크 뒤의 이야기 에피소드



춘하추동방송에 올라있는 글

 ‘아나운서 방송역사  그 이름 그 얼굴

 KBS 한국방송’ 제목의 글에 2016년 7월 2일

이정부 아나운서가 댓글을 쓰고 이 댓글과 함께 본문에

 올렸으면 하는 취지로 사진 4장과 사연을 보내 왔다. 그 글에

추가해서 올리는 것이 좋았겠는데 그 제목 글 한편에 너무 많은 글을

싣다보니 더 이상 글이 올라가질 않는다. 지금 올라있는 글만 해도 엄청난

 양이어서      사실 필자가 블로그를 열던 초기만 해도 생각지도 못한 많은

 양의 정보가 실렸. 지금 올라있는 글 양으로도 글이 잘 열리지 않는 등

어려움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제목을 설정해서 그 사진과

연을 올리면서 그 시대를 살아온 방송인들의 삶에 관한

 생각이 떠올라 함께 쓴다. 원래 올리려고 했던

 원 글의 표지사진과 배경음악은

 그대로 사용했다.






1958년 6월호 방송지에 실린 장기범

방송계장의 글   ‘아나운서의 24시간이다.’

직제상 방송계장이란 일반적으로 말하는 아나운서

실장을 말함이다.   방송과장은 윤길구이고 보도계와 방송

계가 있었다. 그때의 보도계장은 조한긍이고 내신부장은 한영섭,

외신부장 윤태로였다. 방송인들이 대외적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

하던 때이고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시절이다. 위 글을

 쓴 장기범 아나운서는 이름만 가지고도 세상사람들이 그를 모르는

 이가 없었고 그와 만나 얘기 한번 나누는 것이 큰 영광으로 다가

 오던 시절이다. 그러나 방송국 안에서 그들의 생활은 고달

프고 힘들었다.   위에 쓴 글 속에 어렴풋이나마

 그들의 생활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때의 특집에는 그 분야를 대표

 할만한 분들의 글을 받아 실었다. 기술에는

이종훈 기술과장, 그리고 프로듀서 조부성, 편성

한용희, 연출 이보라, 음악 이성우, 성우 이혜경 등의 글이

실려서 그 시대 방송생활의 단면을 볼 수 있는 글이다.  장기범

아나운서가 이 글을 쓰던 무렵, 방송국에서는 큰 사건이 벌어졌다. 

 이순길 아나운서가 더 이상 생활고를 견딜 수 없다. 며 방송국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세상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다른 직장도 아닌 방송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다니, 그러나

그것은 방송국 사람들은 잘먹고 잘 살 것이라고 생각하던

 세상 사람들의 얘기고    일반 공무원의 봉급으로

 생활하던 방송인들은 힘들대로 힘들었다. 


 봉급날은 빗 잔치 날이다.  한 달 동안

 외상으로 밥 먹고, 생활하고  용돈 빌려 쓰다가

 봉급을 받으면 그 돈 갚아야 하고 그날부터 빈털터리가

 되어 또 한달간을 빗으로 살아가는 생활이 이어진다. 위 글을 쓴

 장기범 아나운서도 그 유명한 임택근 아나운서도 그렇게 살았다.

 비록 방송인들의 생활뿐만 아니라 별도의 수입 없는 공무원생활이

그랬었다. 부모재산 있어 도움 받고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에게서

 식량 가져다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었다. 방송인과

결혼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꿈에도 그리던 방송인과

결혼한 신부는 그날부터 고생길에 들어섰다. 


 해방되던 때 적은 봉급으로 살 수

없었던 방송기술자들이 파업을 일으켰다. 

 우리나라 직장파업의 시초인지도 모르겠다. 그렇

다고 달라진 것은 없었고 그나마도 쫓겨나 갈 길이

막막해졌다.  그 무렵 국립경찰, 국군이 창설되자

방송기술자들은 그곳으로 옮겨 무선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경찰이나 군의 간부가 되어

삶이 다소 나아지기도 했다. 



불타버리고 뼈대만 남은 시민회관과 순직한 이남용 관장



 그 가운데 유명한 방송기술자

이남용이라는 분이 있었다.    경찰

무관으로 옮겨 과장이 되었다. 그리고 서울

공무원으로 전직해서 지금 세종문화회관의 전신

시민회관의 관장이 되었다. 그것도 복이라고 1972년

시민회관에 큰 불이 나 대피 진두지휘 하다가 본인은

불속에서 산화했다. 어렵게 살아오던 방송인들의

 생활!    1960년대 민영방송이 발족하면서

개선되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른다.





남초 이정부 아나운서가 보내온 사진과 글



방송역사 아나운서 편 글 밑에 넣어

주실 수 있는지 해서 사진 넉 장 보내드립니다.

 * 위 그림은 <봄의 남산에 올라> 이정부작 / PC 마우스화

로  배경음악 옛동산에 올라가 제가 좋아하는 노래인데

너무나 슬프고 감동적이라 < 목멱의 봄>을 <봄의

남산에 올라> 로 개칭해 올려봤습니다.




*주부광장 - 위는 1970년대 초반

지금의 아침마당이 생기기 전 그 프로그램

정도에 해당하는 생방송 프로그램 아니었나 생각합

니다. 이정부가 이병용 변호사와 얘기 나누고 있죠.

(필자 이장춘 주: 이병용 변호사는 1960년대 70년대 KBS와

함께 한 유명 변호사로 그 이름으로 발행된 KBS에서 방송한

법율상담이 책으로 발간되어 인기리에 판매된 적이 있다.

 필자 이장춘도 그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2개의 기묘한 사진




1977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9회

남자 ABC농구를 중계방송하는 대한민국

합동방송반 왼쪽부터   유동수(KBS 기자, 피디),

정철의(DBS 동아방송 아나운서), 아나운서), 이정부

(KBS아나운서) 이장우 (TBC 동양방송)


네 사람이 1980년 방송통폐합이 있기 전

(1977년 말레이지아 쿠알라룸푸르) 제9회 남자 ABC농구를

각 방송사 소속이 다른 채로 함께 합동방송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래 사진에서는 공〮:민영 합동방송반으로 따로 갔던 사람들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땐 KBS로 통합되어 KBS 중계 아나운서

팀으로  같은  방송국 소속으로 갔으니     묘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요. 아나운서 에피소드로 올려보면 어떨까. 해서 보냅니다.

아래 사진은  1992년 KBS 바르셀로나 올림픽 중계 방송팀

 앞줄 왼쪽부터 이정부, 김윤한, 뒷줄 왼쪽부터 이세진,

이명용, 양재성 (육상 해설위원), 조춘제, 이장우,

서기원 아나운서가 함께 한 사진.




필자 이장춘이 김정자 아나운서

글을 쓰면서 아래 사진에 설명을 달았다.


'즐거운 점심시간에 함께 한

김정자 · 임국희 아나운서로 참 재미

있는 사진이다. 그때 아나운서실은 2층에

있었는데 1층 뜰에서 이 사진을 촬영한 듯하다.

누가 어떻게 이런 사진을 촬영해서 김정자

아나운서에게 전했을까?'





필자 이장춘의 설명을 본 이정부

아나운서가 이 사진은 1층에서 촬영한 것이

 아니라 아나우서실 창문아래 사다리가 놓여 있었는데

그 사다리를 이용해서 촬영했던지 아니면 방송국 정원에

 있는 등나무를 손질하기 위해 간이 시설을 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촬영했던지, 산길다방 옥상에서 망원렌즈로 촬영

 했을 것이라면서 아나운서실 창밑에 있었던

 사다리에 얽힌 추억을 되새겨 주었다.


아나운서실 창틀에 사다리가 하나

 놓여있었습니다. 김규홍, 김윤힌 아나운서가

숙직을 하던 날인데  숙직실에 가지고 가야 할 뉴스

원고를 잘못해서 아나운서실에 놓고    숙직실에 갔다가

다시 아나운서실에 돌아와 보니 왠일인지 문이 잠겨 있었어요.  

 마침 아나운서실 창틀 밑에 사다리가 놓여 있어서 김윤힌 아나운서가  

그 사다리를 이용해서   아나운서실에 들려 뉴스 원고를 내 오다가

그만 사다리가 뒤로 넘어져 김윤한 아나운서가 원을 그리며 장원

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그 얘기

하지만 그때는 아찔했습니다. 김윤한 아나운서가

 스포츠맨이어서    그런대로   괜찮았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 했지요’ 





빨간 원 안은 2층 아나운실 창틀과 정원에

있는 등나무다.  이 등나무 밑에는 여러개의 휴식용

긴 의자가 있었다.  그 등나무 쉼터와 얽힌 얘기도 많다. 

한가지만 소개한다.     2층 아나운서실과 마주하는 등나무 밑에

 날마다 출근하는 여인이 있었다. 고운 얼굴, 아름다운 목소리가 그리워

 그 아나운서를 만나러 오지만 만나주지 않았다. 날마다 와서 기다리지만

아마 만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2층 아나운서실에서 보면 그 여인을 다

 볼 수  있었고 그것이 화제가 되었다.     그 시절 그 사연 80이 넘은

그 아나운서에게 그때 그 얘기를 하며 웃는다. 그 등나무, 모양은

달라졌지만 지금도 있다.  서울시내 건축물의 대부분이 달라

졌어도 남산 방송국 틀은 옛 그대로다. 아래 사진은

2016년 2월 이규항, 이팔웅, 이장춘이 남산 

옛 KBS 현장탐방서 촬영한 사진이다.







방송역사 아나운서 편에 올린 이정부 아나운서 글



<옛 동산에 올라>를 들으며 지난날을 반추한다.


저희보다 훨씬 앞서,  방송의 未明期

부터 아나운서의 길을 걸어오신 기라성 같은

 대 선배님들과...저처럼 막 아나운서를 은퇴했거나

 한창 현역의 길을 가고 있을 후배 아나운서 여러분 모두

에게, <춘하추동방송>화면을 통해 어제와 오늘의 아나운서

역사를 한눈에 보시는 감회는    다 같이 큰 행복이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페이지를 열어 그곳에  나이테

처럼  음각된 소중한 방송사료들을 볼 적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1년 전 국경도 울타리도 없는 인터넷이라는

 막막한 공간에      <춘하추동방송> 블로그를 개설,

단기필마로  일인 언론을 일구어, KBS자료실에서 마저도

사라져 찾을 길 없는 방송, 예술 등의 역사는 물론, 관련 종사자들의

삶의 기쁨과 보람, 고통과 극복의 이야기를 소중히 보존하고 국내외에

널리 알려온 방송사의 증인, 이장춘님의 시대를 앞서가는 생각, IT 역량,

사명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역시 68년부터 아나운서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동시대의 방송인, 그것도 저희보다 연로하신 방송원로서

해내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업적에 경의와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한국방송인 동우회(방우회)이사이시며  한국 아나운서클럽 특별회

원이신 이장춘 선배님께서 (-그는 청사없는 방송의 연봉 없는

국장이란 별칭을 얻고 있습니다.) 방송역사 아나운서

 편을 위해 기울여 주신 각별한 애정과 노고에

다시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복예 선생님 글 (케이양-카페 운영자)



방송인들의 삶과 애환.마이크 뒤의

 숨은 이야기 에피소드 방송 RADIO &TV

 방송역사 KBS 아나운서 (아나운서의 24시간)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 아나운서에게 하루는 없다 .각박한

 시간이 있을뿐이다 . 아나운서는 시간을 쫓고 .시간에 쫓기는

소리의 홍수 속에서 긴장과 안도감의 불연속선위에 위치하고

 있다 . 즉 방송이 생활이요 생활이 방송이라는 신념밑에서

 어제를 반성하고 오늘에 충실하고 .내일에 대비하는

 무한정한 시간의 궤도가 아나운서의

 서식지대인 것이다 .


오전 1시30분 ....방송이 종료되는 시각 .


아나운서의 하루는 .벌써 시작된 것이다 .
공복과 피로감으로 해서 숙직실에 들어가는 발길은

무겁다. 침대에 누우면 2시 ...아침 프로그램을 다짐하고 .나면

 머리는 공백이 된다 . 이숙직실에서 보낸 세월만해도 몇년이 된다든가 .
여태껏 읽어넘긴 원고를 싸놓으면 천정까지 닿을 것이라는 . 허잘것 없는

생각들이 스쳐가면 .혼수에 빠진다. 채 이루지 못한 꿈결에 자명종이 운다

. 5시 15분 ...10대 가수 청백전 시민회관 추억의 사진 ㅠ 이정부

아나운서 (주부광장) 프로그램 이병용 변호사와

함께한 추억의 사진 ^.^*


대한민국 방송단 1992년 KBS 바로셀로나

 올림픽 중계방송팀 추억의 사진 넘 멋져요 ^ㅡ^;;
1992년 KBS 바르셀로나 올림픽 중계방송팀 앞줄왼쪽부터
이정부.김윤한.뒷줄왼쪽부터 이세진 .이명용 .양재성 .(육상

해설위원).조춘제 .이장우 .서기원.아나운서님과 함께한

 추억의 사진 넘넘 멋지십니다 ^ㅡ^;;남산에 있던

 서울방송국 추억의사진 ㅠ ...


우리는 편안하게 안방에서 방송을

 보면서도이렇듯 보이지 않는곳에서

많은 아나운서님들의 희생이 있는줄은 ㅠ모르고

 살았는데 ㅠ 오늘 춘하추동방송에서 울려퍼지는 슬픈음악과

 함께 ㅠ방송을 담당하고 계시는 아나운서님들의 지나온 역사와

추억과 발자취들을 보면서 ㅠ한없이 통곡하면서 ㅠ 아나운서님

들께 넘 감사드립니다 귀한 작품 올려주신

 춘하추동방송 대표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



유경환 여사님 글 (유카리나)



KBS의 방송 역사가 우리 나라 역사를 
생각할 때, 크게 길지는 않아서, 이러한  에피소드를
 나눌 수 있는 산 증인 아나운서들께서   다행히 현존해 계셔서
 이렇게 후배들이 알 수 있도록 자료도 제공 해 주시고 추억담도
 들려주시니 더욱 생생하게 실감이 납니다.  이정부 아나운서님
께서 붙여주신, '청사없는 방송국에 연봉없는 국장님'이라는
 표현은 어찌그리도 정확한 표현이신지 무릎을 칠만한데,
거기에 답하는듯 '이정부 저정부 다해봐도 이정부가
최고'라고 하신 이장춘 국장님의 화답 또한
 무릎을 한번 더 치게 합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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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방송역사 그이름 그 얼굴 KBS 한국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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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1950년대 여성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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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국희 한밤의 음악편지 MBC 여성싸롱 한국아나서클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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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 아나운서

 http://blog.daum.net/jc21th/17782904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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