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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방송역사 1, KBS TV방송 역사의 기원 남산송신소 건설

이장춘 2016. 5. 23. 01:00






방송역사와 춘하추동방송!
이장춘의 춘하추동방송역사는 이장춘이
 36년간에 걸쳐 방송국에 재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장춘은 방송국에서 이례적으로 여러 업무를
담당했고 1973년 KBS 공사창립 기초작업을 수행했다.  새로
발족한   KBS 공사 직제에 따라 기획관리실 관리부 차장을 역임
하면서 공사창립의 틀을 확립하는데 심혈을 기울었다. KBS 재직 중 
1983년 문공회가 창립될 때 창립회원이 되었으며 방송국 퇴직후
 KBS 사우회 부회장, 감사 등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원로방송인 모임 사단법인 방우회(한국방송인
동우회)이사로 재직 중이다.


오랜 세월의 방송국 생활, 또 방송인들의
 만남을 통한 체험과 성원을 바탕으로 춘하추동
방송역사를 쓰기 시작한지 11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2015년은  춘하추동방송 10년이 되는 해로 이를 계기로
 여러 차례의 방송인터뷰와 KBS사우회, 한국아나운서클럽
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춘하추동방송에 관한 내용이
 알려졌고 춘하추동방송에 그 글들을 올렸다.


오늘부터 5차례에 걸쳐 연재할 내용은
 2015년 12월 30일에 발행된 공영방송 제5호
「김동식의 마이크를 끄고」라는 카테고리의 152페이지
 부터 185 페이지 까지 34페이지에 해당하는 글이다. 이 글을
쓰기위해 인하대학교 김동식 교수가 공영방송 편집위원 한양대
 특임교수 표정훈 교수와 공영방송 간사 김종화님이 배석한 가운데
   2015년 11월 16일 오후 3시부터 7시 반까지 4시간 반에 걸쳐
  이장춘 자택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오늘 첫 번째 글은
 이미 올려드린 적이 있지만 글 전체를
 연재하면서 다시 올렸다.




춘하추동방송과 방송역사 1, KBS TV방송 역사의 기원 남산송신소 건설




KBS TV방송의 역사는 1961년
12월 31일부터 시작된다. 우리나라
TV방송의 시작은 1956년 5월 12일 민영방송
HLKZ로 부터 시작되지만 그 방송은 TV수상기 3,000대
시대로 마감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TV방송이라는 역사적
의미는 있을지라도 본격적인 TV방송의 시작은 KBS TV방송
으로부터 시작되는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TV방송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그 TV방송의 역사는 눈물겨운 역사였다.
얘기들은 춘하추동방송에   여러편의 글이 있다, 오
글은 TV방송을 시작하기 위해피땀 흘린 눈물겨운
 방송기술자 엔지니어들의 얘기다. 




1. 1961년 남산 송신소 건설 현장의 방송 엔지니어들에 대하여




김동식 : 이곳이 「춘하추동방송」의
 제작현장이로군요.(웃음) 선생님께서는 블로그
 「춘하추동방송」을 10년 간 운영하면서, 한국 방송사
(放送史)의 중요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하고 계십니다.
또한 「춘하추동방송」은 한국방송자료의 보고(寶庫)로 평가받고
 있고, 선생님께서는 ‘청사(廳舍) 없는 방송국장’이라는 별칭
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흔쾌히 댁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장춘 :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전화로 이미 말씀드렸지만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제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KBS의 역사와 KBS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평생을 KBS와 함께 했으니까요.
 
김동식 : 저희가 블로그의
글들을 최대한 읽고 메모를 해
 왔습니다만, 내용이 워낙 방대해서
 숙지를 하지는 못했습니다. 「춘하추동
방송」 블로그를    참조하면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이장춘 :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꼭 보여드려야 할 영상이 있어요. 「춘하
추동방송」의 검색창에 ‘남산TV'를 입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화면의 스크롤의 내리다가)
 바로 이 글입니다. 남산송신소 그러니까 TV송신소를
 처음 세우는 장면을 담고있는 영상입니다. 음향이
나오지 않는 영상입니다. 설명은 나중에 해드릴
테니 먼저 화면을 보시기 바랍니다.
 
(「최초의 남산TV방송국과 송신소」의 영상함께 봄.)
 
 
 
 
이장춘 :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만든
 영상인데요. 내가 이것을 발견하고 가슴이
 뛰었어요. 100번도 넘게 봤습니다. 정말 눈물겹도록
고맙고 해서…… 우리 KBS TV가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1961년 7월 16일 오재경 장관이 취임을 합니다. 5.16이 일어난 후의
 일이지요. 8월에 김종필 씨가 오재경 장관을 불러서 “국민들에게 정말로
 어필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하나만 내보시오”라고 하더랍니다. 오 장관은
TV가 평소의 꿈이었으니 당연히 TV밖에 없다고 답을 했지요. 보고를 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연내에 실현하자고 밀어붙이게 됩니다.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급합니까. 그러면 예산은 어떻게 하느냐. 당시에 예산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황태성을 아시죠?
 
김동식 : 아, 네, 황태성은 박 대통령의
 친형 박상희의 친구이고 박 대통령과도 어린
시절부터 잘 알고 지냈던 사람이죠. 1961년에
 남파되어 박 대통령과의 만남을 시도하다가
체포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장춘 : 맞아요. 바로 그 황태성이
 가지고 온 공작금 20만 불을 뺏어 놓은 것이
있었어요. 박 대통령과 오재경 장관 사이에 그런
 대화가 오갔답니다. “방송국 그거 얼마 가지면 되나?”
 “얼마 주실 수 있습니까?” “20만 불 있어.” “그것만 주십쇼.
그 다음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렇게 추진된 것입니다.
 하지만 땅이 있나요. 당시 남산에 있던 한양교회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고, 10월부터 건물을 짓기 시작하고 미국에 기계를
 발주합니다. 요즘 같으면 1년도 더 걸렸을 지도 모르는데,
그때는 그냥 무조건 와야 됐으니까, 한 달만에
기계가 들어온 거예요.(웃음)
 
 보시다시피 송신소 건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몇몇은 노무자이겠지만, 대부분이
엔지니어들입니다. 엔지니어들이 기획, 설계, 배치,
설치까지 다 했어요.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한 거예요. 책임자는 공보부의 시설과장 한기선 씨였습니다.
미국에 6개월간 연수를 가 있는 동안 오재경 장관이
 연락해서 “남산에 방송국을 지을 테니까 가서
 공부 좀 하고 와”라고 그랬답니다.
 
돌아와서 1957년 남산방송국
 라디오 연주소를 짛고 또 1961년 KBS
TV방송국을 세웁니다. TV연주소와남산 TV송신소
 설계부터 설치까지 책임지고 했죠). 이 사람은 누군지
아십니까? KBS 기술본부장까지 한 김광식이란 사람입니다.
1961년 7월에 입사해서 12월의 남산 송신소 공사현장에 투입된 거죠.
지금은 나이가 80이 되었는데, 엊그제도 만났습니다.(웃음) 요즘은
안 춥지만 그 시절에는 12월에 영하 20도까지 내려갔습니다.
더군다나 남산 위에 바람이 얼마나 세고 힘듭니까.
그래도 그때는 이렇게 했습니다.
 




김광식(왼쪽) : 강창우님




조금 있으면 멋진 사나이가 나옵니다.
강창우라는 엔지니어예요. 김광식 씨와 함께
입사한 엔지니어죠. 제가 이 사람한테 물었어요.
 “저 여보, (제 선배이니 존대말로)그 때 송신소 가서
 일했지? 그때 사진 가지고 있어?” 그러니까 “아이 그때
 뭐 사진 찍겠습니까!” 그러더군요. 이 동영상을 보내줬더니
 제게 점심을 내더군요.   여든 한 살인데 열흘 전에 사고로
 죽었습니다. 이 멋쟁이가 죽어서 이제는 말도 못하지...
 
남산 위에 철탑을 짓고 안테나를
세우고 그 위에 슈퍼턴(super turn)을 얹고
 있는 장면입니다.     슈퍼턴은 약 1톤 그러니까 쌀
12가마니 무게였어요. 이것을 뚝심으로 밀어붙여서 올리고
있는 장면입니다. 만약 잘못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죠. 자, 이제
다 올라갔어요.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 TV방송의 역사가 시작된
 겁니다.      우리 엔지니어들이 이 모든 걸 한 거예요. 저는
방송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이 장면을 대한민국 사람들이
전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동식 : 「마이크를 끄고」가 5회 째인데요.
한국방송의 역사를 일구어 온 엔지니어들 또는
기술인들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방송의 역사와 함께 한 기술인에 대해 말씀해
주시니 저희들 마음이 너무 좋습니다. 한국방송의 초석을
놓은 방송기술인들의 노력에 새삼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장춘 : 이번에는 검색창에
 ‘정근춘’이라는 이름을 쳐주세요. 정근춘 씨는
 엔지니어이고 KBS 사우회의 회장을 역임했어요. 언젠가
저에게 “사진이 한 장 있는데 아랫부분이 다 달아나버렸다”고
그러더군요. 보내 봐라 해서 살펴봤더니 아랫부분이 달아난 것이
 아니고 이게 다 눈이에요.     길도 없는 눈밭을 개를 앞세워 장비를
싣고 가는 거죠. 고지의 송신소에 사고가 나면 인근의 10만 명이 TV를
 못 보게 되요. 그러면 이렇게 짐을 싣고 가서 고쳤던 거죠.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이기에 다 그런 줄 알아요. 그래서 “세상에 이런 일
안 겪은 사람이 어딨냐?”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말하죠.
“당신들이나 겪고 당신들이나 알지 그걸 누가 아냐.”고.
기억되어야 할, 한국방송의 역사니까요.
 
김동식 : 방송 엔지니어들은 방송의
 역사를 일구어 오신 분들이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 달리 말하면 많은 경우
서발턴(subaltern)적인 지위에 처해 있는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침묵 속에 가려져 있던 방송 엔지니어들의
역사를 건져 올리고 있는, 「춘하추동방송」의 활동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이장춘 : 여기에 보는 중계차도
방송 엔지니어들이 만든 겁니다. 겉은
번지르르 하지만, 당시의 엔지니어인 조찬길 씨와
정항구 씨가 내부에 비디오와 오디오 시설을 조립한
 겁니다. 중계방송용으로도 쓰고, 방송국 사람들 통근차로도
쓰고, 나중에는 시청자 봉사용으로도 썼죠. 이런 차를 예전에는
맹꽁이차라고 불렀어요. 나도 많이 타고 다녔어요.(웃음) 제가
방송 엔지니어들과도 잘 알고 지내지만, 아나운서들의 모임인
 아나운서클럽과도 친분이 많아요. 임택근 씨 덕분에
제 블로그가 많이 알려지기도 했죠. 검색창에
‘임택근 1977’이라고 쳐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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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남산 TV방송국과 송신소, 육성과 영상으로 보는 시설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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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TV 남산송신소와 남산타워http://blog.daum.net/jc21th/17781043
 
TV방송을 처음 시작하던 그때 그 얘기 ( 1 )
-TV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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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방송 창설자 오재경, 대한민국 방송기자 1호 문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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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정근춘 사진으로 본 방송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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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부 아나운서가 말하는 방송기술인 엔지니어와 정근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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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TV중게방송차와 중계방송 그때 그 얘기 오승룡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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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TV중계방송 그때 그 모습, 국립극장 개관식 1962년 3월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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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TV 방송 50년, 반세기 / 방송개시 1961년 12월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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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열차, 임택근 아나운서 목소리로 듣는 1960년대의 인기 공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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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환(유카리나)여사님
 
 
국가의 역사이던, 방송의 역사이던,
학교의 역사이던  기록이 없으면 후세에
 남길 수 없고 알려줄 수가 없고단 한장의 사진
이라도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리고 깨우치는 춘하추동
방송과 이장춘 국장님의 노고는 두고두고
그 가치를 높여가리라 생각됩니다.




새해부터는 이장춘 국장님 얼굴이
뚜렷하게 보이는 로고가 뜨니 여기가 대한민국의
 방송 역사의 보고임을 확실히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인데, 누가 선뜻 하지않는 일인데,
티끌을 모으듯 조금씩 조금씩 여건이 닿는대로 정성으로
 모으신 자료들이 시간을 더해갈수록 귀중한 자료로 그
가치를 더해 갈 것입니다. 국장님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이 블로그에서 너무도 당연한
일임을 말씀드립니다. ^ ^




이영호(LA -"LEEYOUNG HO) 선생님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우리의 방송은 탄생되었군요. 어찌보면   불가능한 일을가능하게 만든   Midas의 손들
이었습니다.아마 이런 쾌거는 우리 한국인 특유의
 뚝심과 집념이 만들어 낸 결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런 역사적인 사건들을 추적하여자료를 모으고 증언을 청취해
체계적인 기록으로 후세에 전달해 주고 계신춘하추동방송의 이장춘  국장님같은 숨은 공로자가 있기에 우리 후배 방송인들은 방송의 흐름과
역사를 공부하고배우는 소중한 기회를 갖게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뿌듯
하고 고맙기 짝이 없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당시에 이러한 역사들을 제대로 촬영하고 녹취하는 지혜를 가진
선각자들이 있어 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입니다.남산 송신소
 건설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주셨던 엔지니어
 제위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해 마지 않습니다.
 
로스앤젤리스 팔로스 버디스에서
이영호 드 림


 
 
 
김헌수 (53년 반세기의 인연) 선생님
 
 
이장춘 이사님 덕분에 ,kbs-tv를 빛낸
기라성같은 분들 용안을 볼수 있어 감사합니다.
......그리운 얼굴들 중계차를 배경으로한 좌측부터
이만희 오승룡 홍대규 박상수 박경환 그리고 윤은상
 김장식 ....56년전 일라서 가물가물......장춘형 참
좋은 일 많이 하십니다...2016년 새해에도
평강하고 강건하기를 기원합니다
 

이정부 (아나운서) 선생님 글
 
 
가벼운 마이크 하나 달랑 들고편하게 일했던 저희들로서는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방송 기술인들의 주인의식, 직업의식을
보면서 저희 아나운서들은 결코 방송의 주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늘 갖습니다. 편한 마음으로는 회상조차 하기 힘든
 눈물겨운 도전의 역사를 이렇게 볼 수 있다니!  쌓인 눈에 몸이
 반 이상   파묻혀 온통 하얀 바탕이 되어버린 빛 바랜 한장의 사진...
눈 덮인 관악산 꼭대기를 장비를 끌고 오르며 악전고투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두고 사진 아랫쪽이 다 날아갔다며 너털 웃음으로 사진을
 남겨주신 선배님이나, 소중한 만남의 장인 춘하추동에
꼼꼼이 챙겨 해설까지 붙여 담아주신 선배님이나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존경합니다.


가난하고 어렵고 몰라서 엄두가
 나지 않던 세상 60년대에 선배님들의 불굴의
 정신으로 만든 TV방송...TV는 현대한국을 이만킁이라도
만든 견인차였습니다. 훗날 후배들이 이러한 선배 방송기술인들의
 불가사의한 사명의식을 이 곳 춘하추동에서 목격한다면 선배들 못지
않은 훌륭한 방송인들이 반드시 줄을 이으리라 믿습니다.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단절 되었던 선후배간, 동료간, 시청자들 까지도 시대와
세월을 뛰어넘어 교감할 수 있게 해주신 청사없는 방송 춘하추동의
 연봉없는 방송국장 이장춘 선배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새해에 모든 기술인 선배님들 복많이 받으시고
이장춘 선배님 건승하시길 빕니다.    




아나운서   이정부 올림  
 


박서림(원로방송작가) 선생님
 
 
이장춘선생,   새해를  마지하면서 
더욱 활발해진 느낌이네요. 반갑습니다
 60년대의 기적같은 활동상을 대하고 보니 새삼
그때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되네요.  후대들은 
선대들의 노고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우리 <게시판> 에
 옮겼습니다   
 
 건강하세요.
 
 박서림.




윤후현(팔방미남)선생님
 


TV 방송의 역사는 눈물겨운 역사인데,
귀중한 자료를  또 하나 발견 하셨습니다.
방송자료의 보고,에서 건지신"남산타워와 KBS

철탑" 잘 보았습니다. 자택에서 방송활동을 체험하신
세분을 초청하여  인터뷰한 내용을 올리셨다구요. 감사
합니다.귀중한 자료 소개에 감사를 드리면서, 늘 우리곁
에서 불철주야 수고하시는 이장춘 국장님! 이 장춘! 그 이름
 석자를 방송인들은 영원히 기억되고  님,의 족적을 남길
것입니다.고맙습니다.^0^ ^0^ ^0^ ^0^ ^0^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인데,
안타깝게도 기록이 남겨지지 않아 후대에 전달할
 길이 막연 하든차, 지혜있는 분들의 도움으로 이렇게
험난했던 방송기술 역사의 현장을 보게되어 가슴 뿌듯합니다.
오래된 기록들을 눈속에서 창고속에서 그리고   헌책과 앨범속에서

이렇케 찾아 주시니 감개가 무량 합니다. 등에 카메라 가방 하나 달랑 
  메시고,   이 동네 저 동네 이 나라 저 나라 세계방방곡곡의 소식들을
 전달 해주시는 이장춘 사장님! 노고와 정성에 늘 감사를 드립니다.
후배 방송인들이 격려의 말을 하고, 선배님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걸   보면, 대단한 일을 하셨다는
 자부심도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늘 카메라와 함께 동분서주 하시는
이장춘 사장님! 몸 생각 하시여 잠도 좀 푹
주무시면서   활동을 하세요.자나깨나 사장님!의
건강이 걱정이니 금년에도 무탈 하게 봉사 해 주실것을
부탁드립니다.흘리신 땀방울과 긁어모은 흔적에 대하여
 다시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 이장춘 사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