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11월 15일 부산에서 최초의 KBS TV 지역(local)방송을 내보낸 그때의 부산 TV방송 개국현장이다. 국립영화제작소 (현 KTV-국민방송)에서 대한뉴스로 제작한 내용에 KBS부산방송국이 보유한 영상을 더한 장면이다. 1972년 11월 15일 채널 5, 호출부호 HLKC 영상출력 2㎾, 음성출력 500W, 주당 방송 1시간 55분,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 local방송이자 부산의 최초 자체방송역사다. KBS TV 부산방송 개국 동영상과 사진으로 본 그때 그 현장 1972년 11월 15일 부산에서 KBS TV를 처음 보기 시작한 것은 1968년 4월 10일, 영도에 있는 TV중계소에서 출력 500W로 방송을 내보내면서 부터로 서울의 TV방송을 실시간으로 부산에서 볼 수 있게 된 최초다. TBC 동양방송 TV가 부산지역에서 1964년 12월 12일 (서을 64년 12월 7일)부터 TV방송을 채널 9 호출부호 HLKE로 내 보냈지만 서울의 방송은 필름에 담아 1주일 후에 부산 에서 방송된 것이어서 실시간방송은 이 지역에 마이크로웨이브 중계소가 개통된 이후의 일이었고 MBC는 1969년에 서울 MBC 문화방송 TV가 개국하고 그 이듬해인 1970년 1월 24일에 부산 TV가 방송된 것이기 때문에 서울 TV방송이 부산에서 최초로 실시간 방송된 것은 영도 봉래산 (고갈산)의 KBS 영도 TV중계소가 준공을 본 1968년 4월 10일이다. KBS가 서울에서 처음 방송을 내보낸 것은 1961년 12월 31일 이지만 그때로서는 중간 중계망이 설치되거나 마이크로웨이브 (Micro-wave)가 개통되지 않고서는 서울서 부산까지 전파가 직접 미칠 수가 없어서 천안, 대전, 김천, 대구 등을 거치는 링크가 구성되기 전에 부산에서 먼저 서울의 텔레비전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이때 전파를 총체적으로 관장하던 체신부가 부산 영도 고갈산 (봉래산)에 마이크로웨이브(Micro-wave)중계소를 설치하기로 한 것은 1967년 11월로 이를 계기로 KBS에서도 체신부 중계소 설치장소에 KBS TV방송중계소를 설치하기로 해서 체신부 마이크로웨이브 설치공사와 병행 11월 20일 500W 영도TV중계소 착공, 그 다음해인 1968년 4월 10일 TV방송을 내보낸 것이다. 채널 5 호출부호 HLAB 이것이 부산 에서 서울의 TV방송을 볼 수 있게 된 최초의 부산 TV방송역사다. 이때는 KBS부산방송국은 1935년에 개국한 대청동 좁은 공간에서 방송을 하던 때라 자체 지역 (local)방송이 불가능해서 새로운 방송 부지를 물색, 고관 입구 초량동에 768평의 3층 건물 새로운 사옥을 짓고 1972년 5월 22일부터 내장시설을 갖추어 11월 15일부터 신청사 준공과 함께 자체방송을 실시한 것이다. 이날의 개국식에는 뒷날 공사창립 사장을 역임한 홍경모 문화공보부 차관, 박영수 부산시장을 비롯해서 내외빈 다수 참여한 가운데 성대히 열렸고 구덕 체육관에서 열린 기념공연에는 방송사상 최고의 시청율을 기록했던 '드라마 여로'가 방송되던 때라 그 주인공 장욱재, 태현실, 박주아 등, 탤런트, 그리고 최희준, 패티킴(김혜자) 김상국, 김세레나, 서수남, 하청일, 곽규호 등 그시절 최고의 가수 코미디언들이 출연 대 성황을 이루었다, 대구, 광주, 전주, 대전 등 다른 곳의 지역방송은 1978년부터 실시된 것이어서 이보다 6년이나 앞서 제 2의 도시 부산에서 자체방송이 실시 된 것이다. 처음 마련된 TV방송시설로는 연주소 하나에 조정실 하나, 여기에서 하루에 한 차례의 뉴스와 주당 2회의 프로그램을 제작, 주당 1시간 55분의 방송을 내보냈다. 처음에는 뉴스에 필름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아나운서 스트레이트 방송으로 진행 됐으며 프로그램도 출연자의 대담 등으로 이루어 졌다. 여기서 뉴스도 하고 간단한 토크 프로그램이나 어린이 공개방송 등을 했다. 다음사진은 부산방송국 개국식 후에 정규프로그램 으로 나간 최초의 프로그램이다. 일주일에 1시간 55분의 자체방송이 방송 되었다. 1973년 3월 3일 公社로 되기 전까지는 종전의 직제 방송과와 기술과에서 오래 근무하던 분들이 본사의 지원을 받으며 방송제작에 임했다. 공사발족과 동시에 방송부(부장 서용수)에 방송과, 보도과가 생겨 방송과장으로 황희두가, 보도과장에 권용중 또 기술부(부장 박한국)에 라디오 조정과, TV조정과가 마련되어 라디오 조정과장은 그 지역에 오래 근무했던 구연도,TV조정과장 으로는 서울 TV방송 초기부터 근무했던 김영송이 최초의 TV조정과장이 되었다. 이때의 부산방송국장은 국제방송국장, 춘천방송국장 등 오랜세월 방송과 함께 해 오신 김득성이었다. 1974년 6월부터 75년 1월까지 부산방송국에 근무했던 필자도 부산 TV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지만 그 시절에는필름을 보존 할 수 없던 때라 남은 자료는 없다.
37년간 오랜 세월을 지켜오던 대창동 시대는 초량동시대가 열리면서 마감 되었다. 급히 서둘러 마련된 초량동의 TV방송시설은 곧 한계에 다다라 새로운 부지를 물색 1988년 남천동 사옥으로 옮겨 오늘에 이른다. 초량은 16년이라는 짧은 기간이기는 했어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지역 TV방송의 문을 열었고 이곳에서 칼라 방송을 했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1978년부터 실시된 다른 지역 TV방송을 실시 할 때도 기존시설로는 TV방송이 불가능해서 새로운 시설을 마련했지만 그 새로운 시설도 얼마 안가 모두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에 지금 있는 각 지역방송총국 사옥은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새로 지었다. 다만 창원방송총국은 종전의 사옥을 증축했다. 참고로 처음 설치된 부산의 방송시설로는 한 개씩의 연주소와 조정실, 비디오, 오디오 조정판, 서울 연주소와 부산 TV중계소를 연결하는 마이크로웨이브(Micro-wave). TV전용 변전시설, 에어컨 시설, 비디콘 카메라 2대, 비디콘 필름 체인 1대, 16미리 프로젝터 1대, 동기신호 발생기 2대, 음향 콘솔 1대, VTR1대, 턴테이블 2대, 영상모니터 6대 마이크로웨이브 송수신기 1대, 조명용 승강장치 8대가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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