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김영삼대통령 영전에 & 국가장 2015년 11월 26일

이장춘 2015. 11. 26. 04:30

 

 

大韓民國 民主主義 守護者 

金泳三 大統領 그 이름 永遠히 빛나리라.

 

 

88년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수호자 김영상대통령!

서울 동작동 서울국립현충원에 영원히 잠드시던 그날

2015년 11월 26일! 대한민국 국민들은 님의 가시는 길에

 평안히 잠드시길 기원했습니다.  가시는 길에는 눈발이 날리고

 0하의 추위에도  민주주의를 향한 웨침의 소리는 힘차게 울려퍼졌

니다. 님은 가셨어도 그 발자취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2015년

11월 22일부터 26일까지 김영삼 대통령 국가장 기간의 모습, 

떠나시는 모습을 담아 춘하추동방송과 함께 하시는

 분들과 함께 영원히 기릴 것입니다.

 

 

 

 

 

위 사진은 필자가 11월 24일 분향을 올린

국회의사당 분향소의 모습이다.    오늘26일

김영삼대통령 국가장 영결식이 있는날이다. 그동안

 춘하추동방송은 김영삼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한 글을 올리고

국회 의사당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분향을 올렸다.  오늘은 필자가

다녀온 분향소 모습을 올려드리고 국가장을 지켜보며 또 새로은 얘기를

써 올릴것이다.  아직 올려드리지 못한 사진도 골라서 올리고 국가장 모습도 

함께 올려 춘하추동방송의 영원한 기록으로 남길것이다. 아울러 김영삼 

대통령의  생전육성,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 ★ 내가

가는길을 무력으로 막을 수는 있지만 양심은 빼앗을 없다.

 명언도 육성으로 올려 기록으로 남길 것이다.   

 

 

김영삼대통령 영전에 & 국가장 2015년 11월 26일

 

 

 

 

 

 아침 일찍 우리집 국기대에 조기를

올리면서 아울러 아파트단지에도 조기를 올리

도록 부탁드리고  대한민국 대표분향소 국회의사당을

찾았다.  의사당 앞에는 잘 정돈된 분향소가 마련되었고

또 분향소 앞에서는 영결식장을 바삐 꾸미고 있었다. 

필자는 분향에 앞서 방명록에 평소 필자가

 생각한 짧은 글 한편을 남겼다.

 

 

大韓民國 民主主義 守護者

 

金泳三 大統領 그 이름 永遠히 빛나리라

 

 

春夏秋冬放送 李長椿

 

 

분향소 입구에서 젊은 병사가 바른자세로

국화꽃을  들고 있다가 그 앞을 지나는 조문객에게

한송이씩 나누어주는 정성이 대단하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시에는 시청 앞분향소에 들렸는데 이번에는 우리나라

대표분향소 국회의사당을 찾았다. 분향중 카메라를 

들고 사진 촬영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위 사진은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분향소다. 22일부터 차려진 이곳 분향소에는

 박근혜, 이명박 전 현직 대통령, 이희호 김대중대통령

영부인, 오랜세월 3김 이라는 이름으로 정치를 했던 김종필

 전 총리, 이회창총리, 그리고  전두환 전직 대통령까지도

수많은 조문객들이 이곳을 찾아 분향했다. 아래는 김영삼

대통령 차남 김현철 씨가 25일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이다.

 

 

 

 

  22일부터 설치된 전국 곳곳에 설치한 분향소에는

애도와 추모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님이 가시던날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과 생가에 마련된 빈소를 비롯해서 전국

곳곳에 빈소가 마련되어 23만여명이 추모조문을 올렸다. 행정자치부은 

 221곳에 분향소가 차려졌다고 밝혔다.   17개 광역자치단체가 23곳,

195개 기초자치단체가 198곳이다. 경기 용인시와 거제시 등은

조문객의 편의를 위해 2곳 이상 분향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김영삼 대통령 국가장 영결식

 

2015년 11월 26일

 

 

김영삼 대통령 국가장은 2011년 법율

개정이후 이번에 처음으로 치러졌다. 영결식은

오후 두시부터 실시되었고 서울 동작동에 있는 국립

현충원이다. 이곳 현충원에는  먼저가신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대통령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영면에 든

 묘소는 평생 동지이자 경쟁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와 3백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 잡았다. 양 김으로 불렸던 두 전직 김 대통령의

 묘는 전통 풍수의 관점으로는 봉황의 좌우 날개에 해당한다고 하며

특히 이번 묘를 조성하면서 묘자리에서 7개의 둥근돌이

 나와 나라에 좋은일이 있을   증조라며  반겼다.

밑에 현충원에 관한 글을 연결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장례식은 Δ영결식

Δ운구   Δ안장식 순으로  3단계로 치러졌다. 

국회의사당 본관 앞에 마련된 영결식 제단에서는 

상주와 직계유족, 장례위원장이 가장 앞자리에 자리했다.

김동건 아나운서 사회로 진행된 영결식은 장례집행위원장인 정종섭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 (행정자치부장관)의 김 전 대통령에 관한 약력

보고,  장례위원장인 황교안 국무총리의 조사가 이어지고 추도사는 상도동계

 핵심인사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낭독했다.  기독교와 천주교, 불교, 원불교의

종교 의식이 거행되고 고인의 생전 영상이 상영 될때는 눈물을 흘리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1시간 반 정도 진행된 영결식은 상주와

 직계유족등 인사들의 헌화와 분향 그리고 21발의

조총소시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국회를 떠난 운구 행렬은 상도동 사저와

김영삼 도서관을 들린  국립 서울 현충원에 오후

4시쯤 도착하면서, 군악대의  조악 연주가 고인을 맞이했다.

 안장식은 영결식처럼 최고의 예우를 갖춰 거행되었 헌화와

분향, 운구, 그리고 하관예배와 허토 의식 순서로 진행되었

 의장대의 조총 발사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화   보 

 

 

 

 

1954년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67년에 치러진 제7대 국회의원총선거

출마, 선거유세를 벌이고 있는 김영삼 

 

 

 

 

박근혜 대통령 조문

 

 

 

영부인 손명순 여사

   

 

김영삼 대통령 영부인 명순 여사와 김대중 대통령 영부인 이희호 여사

 

 

김종필 전 총

 

 

 

윤후현(팔방미남) 선생님

 

 

영욕의 세월을 뒤로 하시고,
좋은 곳에서 편히 영면 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떠나는 님 보다 보내는

나의 마음이 더 애닲습니다..잘 가세요.

김영삼 대통렬님!............

 

 

케이양 선생님 글

 

 

일평생 나라위해 몸바친 거룩하신분 ~!!
이땅에 민주화를 위해 젊음을 던지신 고귀하신님

ㅠㅠㅠ 부정과 불의를 용납하지 않고 정의를 세우신

청렴하신분 ~!! 우리들의 가슴속에 화합과

 통합을 심으시고 님은 먼곳으로 ~
떠나셨습니다 ㅠㅠㅠ


사랑과 희생으로 이루워진

민주주의 ㅠ 대한민국이 영원하듯이 ~
님의사랑도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함께

할것입니다 ㅠㅠㅠ 아픔과 고통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희쉬세요 ㅠㅠㅠ 김영삼 전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 ~!! 고귀한 자료 올려주신 .춘하추동방송

대표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김영삼 대통령!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http://blog.daum.net/jc21th/17782675

 

이승만 (李承晩) 건국대통령 독립운동

http://blog.daum.net/jc21th/17781841

 

박정희 대통령의 최초로 공개하는 1960년 70년대 사진들

http://blog.daum.net/jc21th/17781610

 

김대중 대통령의 삶은 감동적인 대하드라마다

http://blog.daum.net/jc21th/17780180

 

서울 국립 현충원, 동작동 국군묘지

 http://blog.daum.net/jc21th/17781794

 

국립 영천 호국원과 영천대첩 기념공원

http://blog.daum.net/jc21th/17780273

 

김현수 대령 (장군)순직 KBS중앙방송국에서 1950년 6월 28일새벽 그가 잠든곳 국립 현충원

http://blog.daum.net/jc21th/17782612

 

 

 

 

 

김영삼 대통령 영결식 추도사 전문

 

낭독 : 전국회의장의 김수한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영삼 대통령님!

지난 19일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만해도,

불굴의 의지로 어려운 고비를 꼭 이겨내시고 반드시

회복하시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11월22일 0시20분,

대통령님은 영영 저희 곁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엄혹한

 군사독재정권시절, 대통령님께서는 "국내에서의 투쟁을

 접고 외국에 나가 있으라"는 집요한 회유를

 받으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핍박 받는 국민들을 남겨두고,

 나 혼자 편하자고 고난의 현장을 떠날 수는 없다"며

 단호히 이를 거부하셨습니다. 대통령님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을 섬겨 오신, 진정한 문민 정치가였습니다.

민주주의와 민권을 위해 모든 것을 남김없이 바치신,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사셨습니다.     대통령님. 그렇게 사랑하던 조국, 그렇게 사랑하던 국민,

그렇게 사랑하던 동지들을 남겨놓고 이렇게 홀연히 가셨습니까?

 

 

회고해 보면, 실로 대통령님의 생애는

시련과 극복, 도전과 성취의 대한민국 민주헌정사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 국가장은 국회에서 거행되고

 있습니다. 민의의 전당인 이 곳 국회에는 대통령님의 숨결이

도처에 배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국회를 포기하지

않았던 의회존중의 정신이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26세 최연소 의원으로 3대국회에 처음

등원하신 이래, 아홉 차례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야당 원내총무 다섯 번, 제1야당 총재를 세 번, 그리고

집권여당의 대표까지 지낸, 의회정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대통령님이셨습니다.

 

 

1970년에는 40대 기수론을 제창해

한국 야당사에 신기원을 열었고, 1990년에는

 3당통합 결단으로 문민정부의 탄생을 구축한, 참으로

용기 있는 지도자이셨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구현을 위해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오시는 동안 초산테러, 가택연금,

국회의원직 제명 등의 혹독한 탄압이 간단없이 자행됐지만,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기보다, 잠시 죽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다"는 대통령님의 숭고한 의지를

꺾지 못했습니다.     특히 1983년, 군부독재에 맞서

목숨 걸고 결행한 23일간의 단식투쟁은 민주화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어 있던

겨울공화국 치하에서, 조국 땅, 역사의 현장을

 지키며 생명을 던져 처절하게 저항하는 대통령님의 모습은,

모든 민주세력들에게 무한한 감동과 용기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절규는,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던

 국민들의 가슴 속에 민주주의에 대한 비원으로 아로 새겨져,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1993년 2월25일,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는, 군 사조직 척결,

공직자 재산등록제, 금융실명제, 지방자치제의 전면실시 등 경이적인

 민주개혁을 과감히 단행하셨습니다. 군사독재체제의 누적된

폐해를 혁파하고 자유민주주의의 토대를 공고히

한, 역사적 결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거짓과 위계, 음해와

사술을 배격하고 한결같이 '대도무문'의 정도를

 걸어 온 김영삼 대통령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퇴임 후에도 대통령님께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의 역할을 하셨습니다.  나라의 근본을

 흔들려는 불순한 기도가 감지될 때마다 가해진, 준엄하고 단호한 경고는,

 강력한 제동력을 발휘해 국가 사회가 혼동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냈습니다.

 여론에 좌고우면함 없이 "옳은 길이라면 백만인이 반대해도 꿋꿋이 나의 길을

 간다"는 불퇴전의 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대의

앞에 단호한 대통령님이셨지만, 이웃들에게는, 동지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고 자상한 분이셨습니다.

 

 

지난 5일간 언론을 통해, 그간 숨겨졌던

대통령님에 관한 일화들이 많이 소개됐습니다.

소탈하고 가식 없었던 대통령님의 따뜻한 면모를 새삼

 추억하면서 국민들의 마음이 모처럼 하나가 되었습니다. 

서울대병원 빈소를 비롯해 전국 각지의 분향소에는, 고인의

서거를 애도하는 추모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광주 '5.18 기념재단'이,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을 제정하고

, 명예회복, 민주묘지 조성, 국가기념일 지정을 하신 대통령님을

 기리기 위해, 대통령님 유족들에게 '공로패'를 드리기로

 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통합과 화합'이라는

휘호를 유언처럼 남기신, 정직한 언행일치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대통령님.

지난 닷새의 장례기간 빈소를 지키면서,

금방이라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조문객 사이에

끼어 앉아 격의 없는 대화를 함께 나누시는 대통령님의

모습을 부질없이 상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 저 건너편에서 "나, 김영삼인데요"하는 대통령님의 음성이

 바로 들릴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머지않아 저희 모두

 대통령님의 부재를 실감하게 되겠지만, 사람을 중히 여겼던 대통령님을

모시고 정치 역정을 함께 해 온 많은 후배동지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나라의 정치를 바로 세우고, 님께서 염원하시던 상생과 통합, 화해와

통일의 그 날을 반드시 실현해 낼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끝으로

이 땅에서 대통령님과 영결하는 이 시간, 저는 민주주의를 사랑

하는 온 국민의 이름으로 삼가 대통령님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영삼 대통령님,

참으로  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말, 정

말 감사합니다. 사모하던 하나님

품 안에서 부디 안식하소서!

 

 

 

 

박근혜 대통령과 유족들이 26일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운구차량이

 떠나기전 예를 갖추고 있다. 오후 1시 25분 서울대학교

장례식장을 출발, 광화문과 세종로를 거쳐 국회의사당에

도착했다. 오  2시부터 있은 국회 영결식이 끝난 후

 상도동 사저와 기념 도서관을 거쳐 국립서울현충원 

도착해 오후 5시 쯤 안장식이 진행되었

 

 

 

 

 

 

 

 

 

 

손명순 여사

 

 

황교안 장례위원장

 

 

정종섭 국가장 집행위원장 약력보고

 

 

 

 

 

'청산에 살리라' 추모곡

 

바리톤 고성현 한양대 교수와 국립합창단,

구리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함께 '청산에 살리라'를

합창했다.   김영삼 추모곡으로 유족이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는 2010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자신의 83번째 생일잔치에서

 '축하노래'로 요청했을 만큼 평소 좋아하던 곡이었기  때문이었다. 

'청산에 살리라'는 성악가이자 작곡가, 언론인이었던 김연준이

1973년 윤필용 필화사건에 연루돼 구치소에 갇혔을 때

가사와 곡을 쓴 노래로 세속의 고통을 이상향

으로의 귀의로 달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6일 김영삼 전 대통령 고향마을인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서

YS와 작별인사를 하려는 조문객들이 김

 전 대통령의 흉상을 바라보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 생가 분향소 

 

 

상도동 김영삼 대통령 사저

 

 

위는 서울대학교 병원 분향소 모습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훈장 무궁화장이

 안치되어 있고. 아래는 국회의사당에 마련된 분향소이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조기가 올라간 국회의사당

 

 

 

 

김영삼 대통령 말 2.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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