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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노래자랑과 전국 아마추어 톱싱거 경연대회, 그 이름 그 명단

이장춘 2015. 8. 26. 07:13

 

 

 

1960년대는 KBS 중앙방송국은 물로

지역방송국 까지도 대부분 노래자랑 프로그램이

있었고 전속 경음악단과 전속가수가 있었다. 지역의

중요행사가 있을때는 방송국의 노래자랑이 행사의 중심을

 이루는 경우들이 많았다.  또 지역의 큰 중요한 행사가 있을때는

중앙방송국 공개방송팀이 현장을 찾아 분위기를 돋구기도 했다.

기범, 임택근 등 이름있는 아나운서들이 오면그 아나운서를

보기 위해 모여드는 청중도 수 없이 많던 시절이다. 

 

 

1960년대 노래자랑과  전국 아마추어 톱싱거 경연대회, 그 이름 그 명단

 

 

이 노래자랑은 또 가수의 등용문이기도

했다. 지역에서는 노래자랑이라는 프로그램으로

 통일되어 있었지만   중앙에서는 노래자랑과는 별도로

아마추어 쇼나 톱싱거대회라는 명침으로 그 해 최고의 아마츄어

가수를 뽑아 그 중 3사람을 전속가수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지역방송국에서는 1년동안 실시한 노래자랑에서 가장 우수한 아마추어

 2사람을 선발해서 서울에 보내고 서울에서는 아마추어 쇼 등에서 연속

4회 우승을 하는 사람에게 연말 톱싱거대회에 참여 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등 선발기준을 정해 몇사람의 후보를 선정 연말에 서울과

지역에서 선발된 20명에서 30명정도의 예비 톱 가수들을

대상으로 전국 아마추어 톱싱거 경연대회라는

공개 행사를 열어 엄격한 심사를 거쳐

5-6명의 입선자을 선발한다.

 

 

 

이 중에서 3사람은 전속가수로

등용된다.  또 지역에서 선발된 톱가수는

서울에서 톱 가수가 되지 않아도 그 해당방송국에서

전속가수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전속가수라고 해도 그것으로

생활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또 특출한 몇사람을 제외가고는 가수로

대성하는 경우도 적었지만  그 시절에는 전속가수라는 이름만으로도

또 방송국 공연무대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자부심이 있었고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방송공연무대에 서고 방송국

 경음악단의 반주에 맞추어 본인의 목소리가 방송전파를

 타고  신문에서도 큰 지면을 할애해서 보도

해주니 그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1961년 12월 22일 동아일보

 

 

지금도 옛날의 추억을 되새기며

방송국의 톱싱거가 되었다는 분들, 방송국

 전속가수를 하셨다는 분을이 많이 있고 또 자랑

스럽계 얘기한다.       어쩌면 일생의 가장

명예로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연도별 톱 싱거 성명 

 

 

1960년의 톱싱거 1등 송미현, 2등 한명자, 3등 이길남,

 4등 백수련, 5등 이미애, 장려상 김선풍, 남산규,

 

1961년의 톱싱거 1등 이재성, 2등 이씨스터즈, 3등 차도균,

 4등 김성택, 5등 김은영, 장려상 박선희, 김유복

 

1961년의 톱싱거 1등 김향미, 2등 김성환, 3등 송성구,

 4등 정창길, 5등 이미경, 장려상 김진환, 정혜자

 

 

 

 1962년 12월 15일 동아일보

 

마땅히 공연을 할만한 장소가 없던

1960년대 까지는 340석의 비좁은 공간이기는

 했어도남산 연주실에서 했지만 1961년 11월을 기해

시민회관이 개관을 보았기 때문에 1961년부터는 시민회관에서

 했다. 일제강점기 1935년에 세워진 부민관이 비교적 큰 공연장이었

지만 부민관이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된 이래 마땅한 공연장이 없다가

 이승만대통령의 호를 딴 우남회관을 지었고   우남회관이 개관될 때는

정권이 바뀐 뒤라 시민회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되어 방송국의 행사를

 비롯해서 큰 공연이나 행사는 이곳에서 치뤄졌다.  1972년 이 시민회관이

 불탄것도 1972년 MBC 10대수 청백공연을 마친   직후여서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일제  강점기때 핵심  방송 기술자였던 이남용은

시민회관 관장으로 있다가 이날의 화재로 순직했다.   그때

화재로 새로 지어진 시설이 오늘의 세종문화회관이다.  

 

 

 

 

 

윤후현 (팔방미남) 선생님  

 

 

노래자랑과 톱싱거 경연대회

역사 소개 감사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전국노래자랑 무대에 한번 서 보는게 꿈 인데
아직도 그 꿈을 이루지 못한 내 처지가 안타깝습니다.
노래자랑에서 입상한 분들이 극소수는 인기 가수가 되지만
생업 때문에 때로는 노래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안다성의 노래 "바닷가에서"가

처량하게 울려 퍼집니다. 소식 감사합니다.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사장님!...

 

 

케이 양님 글

 

 

아름다운 작품 올려주셔서 늘 감사

드립니다 ** 학창시절에 시민회관에서 ..

은희씨가 기타치면서 공연할때에 ...관람했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거운 수요일 되시고 ..

늘 건강하세요 햇빛이 따스하고 활동하기 좋은

날씨입니다 ^ㅡ^;; 가정마다 평안과 기쁨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 언제나 함께해서 고맙고

행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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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전속가수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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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과 가요 50년, 반세기 (1) / 정동방송시절 6.25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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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기록으로 본 부민관에서 세종문화 회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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