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

5.16과 김익모 1961년 5월 16일 새벽 첫방송과 김익모선생님의 떠나심

이장춘 2015. 4. 1. 18:51

 

 

 

1961년 5월 16일 새벽!

남산에 있는 KBS중앙방송국은

박정희 장군을 비롯한 5.16 주체세력에

의해서 점령되었다.   주체세력은 새벽 5시에

시작되는 KBS방송을 신호로 일제히 거사를 하기로

 되어있었다. 야간 당직을 하던 박종세 아나운서는

곹 현장에 나타났지만 기술자가 없이는

방송을 내 보낼 수가 없었다.

 

 

5.16 첫방송과 김익모선생님의 떠나심

 

 

잠시 피신했던 당직 기술자

한영식과 임시현은 정규방송시간 직전에

주 조정실로 돌아왔다.  가슴이 타던 주체세력은

한숨을 돌렸지만 정작 실재로 방송을 송출해야 하는

당일의 연희송신소 송출책임자 김익모(담당엔지니어 정용문)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방송시작 30분 전 부터 울려와야 할 

아리랑 타령도 울리지 않고  연주소연락을 해도 연락이 되지

 않는데 대해 의아해 하면서 간을 보내던 중  방송시간 

직전에야 타령이 울리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방송은 평소의 방송이 아니었다.

 

 

 

 

그때의 주체세력은 남산에 있는 방송국만

 장악하면 방송이 나가는 줄 알고 송신소에는 손을

쓰지 않아서 송신소에서 방송 키를 어떻게 돌리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되는 일이었다. 그 방송 키를 잡은 김익모는 잠시 긴장

했지만 그 방송을 하는 박종세  아나운서가 의심할 수 없는 방송국

 아나운서이고 방송 내용이 적성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면서

나가던 방송은 계속 송출되었다. 그리고 그  방송을

 신호로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졌다.

 

역사가정은 없다지만 그때 김익모의

 손이 반대로 돌아갔다면 역사는 어떻게 쓰였을까? 

 그날 네사람의 방송주인공 박종세 아나운서는 지금도 건강한

모습으로 활동하신다.   그러나 그때의 세사람의 기술자중 한영식,

임시현은 일찌기 세상을 떴고 남은 또 한분, 역사의 주인공 김익모는

 2015년 3월 28일 밤 11시 향년 92세로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 님이 사시던

 대전에서....!  그날 방송 마이크 앞에 앉은 아나운서는 세상에 널리 알려졌어도

조정판 앞에, 송신기 앞에 있었던 기술자들은 그 일을 아는 분이 적다. 필자가

이런 글을 쓰기에  방송기술자로 아시는 분이 많지만 기술자는  아니

라도 그분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사람임을 밝혀둔다.

 

 

선생님의 삼가 명복을 빕니다.

 

 

김익모 선생님은 일제감점기부터

방송을 지켜온 분이다.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해방전부터 방송에 종사했던 생존하는 방송인은 없다.

신의주방송국에서 출발한 김익모선생님은 해방을 대구방송국에서

맞이했고 6.25때는 1950년 9월 10일에 개국한 제주방송국 건립에 참여

박능상, 박경환, 왕종현 선생님 등과 제주방송국 개국요원이 되었다. 6.25  때

임시수도 부산에 있던  방송국이 서울로 돌아 오기전 선발대로 와  방송준비를

 서둘렀다. 그로부터 중앙방송국 핵심적인 기술을 담당하던 중 1958년 방송사상

최초로 동남아 순회공연을 떠날대 100 여명의 공연단 일원으로  해군

LST 함정을 탔다.  오늘의 사진은 순회공연  그때 동행

방송기자 박상진선생님이 제공한 사진을 사용했다.  

 

 

 

 

중앙방송국 기좌(사무관)로 있던

님은 5.16 직전 연희송신소로 옮겨 5.16을

그곳에서 맞으면서 역사의 주인공의 한사람이 되었지만

그를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고 그리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김익모 자신그리 생각치 않는가보 다.  춘하추동방송은

그 분을 역사의 주인공 중 한사람으로 생각하며 오늘 글을 쓴다.  일제강점기

부터 방송에 종사했던 분!  5.16 새벽! 첫방송의 키를 잡았던 분  그분은  떠나셨다. 

 대한민국에는 대한민국 건국을  전후해서  방송에  입문한 박경환, 한영섭, 김성배,

 정관영, 최병호 선생님섯분의  전직 방송인이 지금도 생존 해 계신다.  한영섭

 선생님은 6.25 참전 종군기자로 종군기자회 회장과    한국방송인동우회

(방우회) 회장을 역임하고 계시고   박경환, 정관영 선생님은 건강한

 모습으로 활동하신다. 김성배선생님은 동료들의 모임에 종종

참여 하신다.  건강하고, 행복하심을 기원한다.

 

 

 

1950년 6.25 전쟁중 낙동강전투가

한창이던 시절, 만약에 대비해서 세운 제주방송국

그 방송국의 시설,  개국요원으로  선발된 분은 박능상

 (방송과장)님을 시설책임자로한 엔지니어 김익모, 박경환,

 정기영, 강기년, 김재억, 이덕빈, 이성실, 김홍린, 조동식, 김구환,

왕종현님 등 12분이었고 초대 제주방송국장 이었던  이원영 님과,

  김홍진,  김해규, 권혁규,주태익, 홍대식, 최승길,

유종현, 김경식, 이순길님등이었.

 

  

 

부산에 있던 중앙방송국이 서울로 오기전

 그 준비를 위해 먼저 서울에 온 선발대원. 대부분

군복차림으로 왔다. (1951년 8월 22일) 앞줄 왼쪽부터

 조한긍기자, 통역관, 이종희(원고 번역관), Straus중위 (

극동 사령부 심리전국 서울파견대장 )변천수, 이종훈 가운데줄

 왼쪽부터 운전수, 양중석,  한사람 건너 최승주 아나운서,

김석봉, 이영기, 박광서, 경찰, 뒷줄 왼쪽부터 김익모,

진백림, 정유원, 김성배님이다. 

  

 

 

 

  위의 사진 1번이 김익모님이다.

1965년 KBS TV 초대 술과장을 지낸

박능상님이 방송국을 물러나 외국 이민길에

 오르기 전 송별연에 참여한 방송인, 박능상, 정항구,

박준병, 홍기봉, 최성략, 김익모, 이충수, 오신팔,

박종호, 최봉식님등이 촬영한 사진이다.

 

 

 

동남아 순방중 김익모님을 비롯해서(좌) 김백봉, 박상진, 000님이 함께 한 사진이다.

 

 

주봉자( 봉쟈르~쥬-가수 주병선 누님 )여사님

 

 

우리나라의 역사를 만날수 있는곳...
해방후 정권의 역사 를 알수 있는 곳..... 바로

 여기 춘하추동 방송국 정동 1번지 입니다. 유익한

 포스팅 잘 보고 듣고 배우고 갑니다. 이장춘 박사님..

늘` 건강 하시어 오래~~춘하추동 방송국이

존재하여 빛나길 기원 합니다

 

 

다음 글은 한영신(노인 컴멘) 블로그에서 옮긴 글.

 

 

 

 

 

●2015.3.30(월)●1955年のある日の想い出。

     ☆     ☆     ☆


一昨日我輩が常日頃、

尊敬してやまない金翼模兄が他界された。

昨日80代KBSの古友達数人が大田の病院の葬儀場へ

哀悼に出向いた。1955年の春頃だったと記憶が怪しいが、

私が何かの事件に巻き込まれ一時放送局を辞め、  京畿道の

○○局へ勤務する事になり朝早く出かける我輩のため、3歳の幼児を

含め一つ部屋で三人暮らしの若奥様(金翼模兄の妻)が当時珍しかった

鶏焼きをご馳走してくれた事を想い出し、急にとめどなく涙が出てきた。

当時私がオンブして遊んであげた、3歳の英漢君も今年60歳の中老人に

なり、若奥様が87歳のお婆さんになった。苦しく貧しかった

昔が偲ばれる。翼模兄よ!心おきなく安らかに

眠れ!神よ!彼の御霊に加護を与え給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