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가시면 별빛도 맑은데 20년 풍운 속에 묻고 묻힌 사연들 비바람에 흘렀단다. 아아 영욕은 무상해라. 광복 20년
광복 20년이 끝나고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작가 김교식, 연출 정인섭, 주제가 최희준, 해설 장민호 이승만 역 구민, 김수일 등의 모습이 보인다.
광복 20년 역사의 증언 TBC 동양방송 장편 다큐멘터리
1967년 8월 7일부터 1977년 9월 말까지 무려 10년 2개월간 밤 10시 10분부터 30분까지 날마다 20분씩 9,670회에 걸쳐 1945년부터 1961년 5. 16이 일어나기까지 광복 20년, 묻고 묻힌 사연들을 들추어 세상에 알리면서 풍파가 일기도 했던 그 드라마! 한국 현대사를 조명하면서 무려 10만 여명의 관련인사가 등장하고 백범 김구선생 암살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 등 그 거대한 정치세력들의 중심을 파고들 수밖에 없는 정치드라마였기에 그 풍파 또한 컸지만 청취자들의 절대적인 성원에 힘입어 흔들림 없었다.
그 드라마가 방송 된지 40년 세월이 지났고 그때 그 방송국은 사라졌어도 그 얘기는 춘하추동방송을 통해서 전해진다. 생소한 형태의 드라마 또 서로의 이해 갈등 속에서 어려울 것으로만 생각되었던 정치드라마가 첫 선을 보인 것은 1967년으로 동아방송의 한운사 작 연속극 「잘 되갑니다.」이었고 곧이어 나온 드라마가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정치드라마 TBC의 광복 20년이었다.
19살의 젊은 시절부터 정계에 뛰어들었던 작가 이영신은 정치인들과 교감을 갖고 정치감각을 익히면서 많은 일들을 보고 겪으며 애기를 들었다. 중요한 애그들은 녹음기에 담았다. 그 얘기들을 세상에 알리려고 방송국과 절충을 벌렸다. 그러나 그 일이 그리 쉽지 않았다. 그 시절 강력한 힘을 지닌동아일보사를 업고 거칠것 없던 동아방송에서 시사비평 프로그램으로 비롯된 「앵무새 사건」으로 최창봉 방송국장을 비롯해서 줄줄히 감옥 행을 하는등 훼오리 바람이 불고 있던때라 이토록 리얼한 정치드라마를 하는데는 부담이 있을 때였다.
이런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RSB 라디오서울 (뒤에 TBC 동양방송이 됨)은 홍진기선생이 사장으로 있을때여서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현 삼성그룹 총수 이건희 회장의 장인이기도 한 홍진기 사장은 자유당 정권에서 법무부 장관을 거쳐 4.19당시 내무부장관을 지낸 자유당 정권의 거물급 인사로 이승만대통령을 받들어 모시던 인사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그 프로그램의 중심인물로 거론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 프로그램을 받아 드리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중 홍진기 사장이 6개월간 미국에 머무를 일이 생기면서 그 기간동안 이 프로그램을 하기로 해서 시작했다.
작가 이영신이 정계활동 등을 통해 모은 육성, 현장 녹음물이 삽입되었는가 하면 제작진들도 이 프로그램에 삽입될 녹음 물을 채집하기 위해 동분서주 힘을 기울였다. 딱딱하고 어려울 줄만 알았던 이 프로그램은 해방이후 좌우갈등과 동서 냉전 속에서 시작되는 숨 막히는 역사의 진전, 격동의 세월, 다사다난했던 우리의 정치사가 생생하게 재현되면서 청취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하게 전개 되었다. 맬로 드라마의 청취율을 훌쩍 뛰어넘었다. 남녀, 신분여하를 불문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청취자들의 절대적인 환영을 받았고 이해관계에 민감한 사람들은 방송국에 항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프로그램 담당 프로듀서이자 연출을 맡았던 정인섭선생이 그때 남긴 글 한토막을 올렸다.
직장인들은 이 프로그램을 청취하기위해 귀가시간이 앞당겨지기도 하면서 여성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기도 했다. 홍진기사장이 미국 채류기간 6개월이지나 돌아 왔을때는 다쿠멘터리 광복 20년은 중단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날이 갈수록 청취자들의 관심이 고조되면서 단시일 내에 끝내려 했던 원래의 계획은 장편드라마로 이어졌다. 정치적 이해 갈등 속에서 빚어지는 갖가지 협박과 공갈 또는 법정 공방도 있었지만 이 프로그램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이영신 작가로서는 뜻밖에 여러 암초에 부딪혀 1년 반동안 387회를 쓰고 이 프로그램과 결별했어도 작가 김교식이 이어받아 1977년 9월 말까지 계속되었다.
최희준이 부른 주제곡에 이어 프로그램은 시작되었고 장민호의 해설과 주인공들의 실재 목소리 그리고 성우들의 목소리로 대신한 주인공들의 얘기들로 얘기가 진행 될때는 그 때 그 일이 눈앞에 전개 되는듯한 실감이 났고 동아방송의 연속극 잘 돼갑니다.에서 시작된 구민의 이승만 대통령 성대모사는 광복 20년에서 결실을 맺어 구민은 이승만 대통령의 성대모사 대명사로 불렸다. 미국에 있는 라디오 코리아에 출연해서도 그 성대모사를 들려주어 흥미있게 듣던 필자가 그 녹음을 채취해서 춘하추동방송에서 활용하기도 했는데 구민님도 춘하추동방송 에서 그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조병옥박사의 독특한 목소리를 그대로 재현한 유기현의 목소리도 그시절 "전설의 고향" 해설 목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다.
위는 1977년 9월 광복 20년을 끝내면서 작가 김교식, 연출 정인섭님을 비롯해서 출연자들이 함께 한 사진이고. 아래 광복 20년 사진 왼쪽부터 해설 장민호 탁원재 오필탁, 효과보는 분, 사진 이종구님 제공
그 프로그램이 방송된 10 여년의 세월 대한민국의 성우들은 모두 이 프로그램에 출연 해 보았음직 하다. 특히 A급 성우로 분류된 구민, 김수일, 주상현, 고은정, 임옥영. 유기현 등 그 시절에 이름있던 성우들 이승만, 김구, 여운형, 신익희, 조봉암, 김규식, 조소앙, 박순천, 이인, 조병옥, 윤보선, 김두한 등 한국 현대사를 움직인 모든 인사들의 목소리를 냈고 또 가능한 주인공의 육성은 실제 육성이 삽입되었다. 그 취재를 위해 제작진들은 밤낮없이 뛰었다.
이영신작가가 쓴 광복 20년 백범김구는 1973년 영화로 재작되어 상영되었고 광복 20년 저작권을 두고 소송 사건에 휘말려 우여곡절을 격기도 했지만 이영신 작 광복 20년이 출판되면서 11만 샛트에 달하는 책이 팔렸고 그 뒤에 방송된 내용도 계몽사 에서 발간되어 시판되었다. .
원로방송작가 박서림 : 이영신 선생님
필자가 "광복 20년"을 쓰는데 크게 도움을 주신분은 원로방송작가 박서림 선생님이다. 여기에 박광희, 이종구님의 사진으로 한편의 완성된 글을 올리게 되었다. 광복 20년의 작가 이영신선생님이, 이희복, 김포천, 황일청, 백전교, 박민아, 김석옥님이 함께 촬영한 위의 1960년대 중반 사진을 접하면서 박서림 선생님 홈 페이지에 쓴 종심만필의 글을 읽게 되었고 이 글을 읽으면서 동기를 부여받았다. 아래 종심만필의 글을 옮긴다
<박서림의 從心漫筆> (56)
「李榮信선생의 광복 20년」
박서림
8월 초, 책 한 질을 기증받았다. 李榮信의 大河實錄 <妖女 裵貞子>였다. 표지 뒷면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 * *
저자는 1967년 TBC(동양방송) 「光復20년」을 기획 방송함으로써 한국방송사상 최초로 정치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를 開拓했다.
以來 MBC-R에 「激動 30年」 KBS-R에 「독립운동 비화」 MBC-TV에 「제3공화국」 SBS-TV에 「코리아게이트」와 「3金시대」 SBS-R에 「金斗漢」을 집필했다.
그 뒤. 韓國現代史로 눈을 돌려 亡國의 와중에서 명멸한 무수한 人間群像들 중에서 남다른 榮辱의 길을 걸었던 인물들을 오늘에 되살리는 작업에 몰두 해왔다. 雅康의 新書로 출간예정인 「徐曰甫」「柳彩蘭」 이 영광의 인생을 걸었다면 「妖女 裵貞子」는 욕된 인생을 걸었던 인생이었다고 할 것이다.
* * *
이영신 형(평소 형이라 부른다)과의 만남은 60년대 초 명동 어느 대포집에서 이루어졌다. 이미 고인이 된 KBS 문예게 金雅씨의 소개였다. 검은 베레모에 뿔 테 안경, 바바리코트의 모습 이었다. 키는 커 보이지 않았다. (이번 만났을 떼도 검은 베레모였다) 알고 보니 김아 씨와는 절친한 사이였다. 황해도 安岳 출신인 형의 나이는 1928년 생으로 되어 있지만 가호적(假戶籍)이고 실제나이는 30년 생이라고 이번에 밝혔다.
형은 정계에 발이 넓었다. 수많은 정계인사와 접촉하고 있었다. 일반인이 모를 秘話들을 꿰뚫고 있었다. 그런 그이기에 정계 비화를 다루는 새 장르를 개척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홈드라마나 멜로드라마가 범람하는 시기에 특이하게 정치드라마를 들고 나온 그의 도전정신을 좋게 평가하고 싶다. 듣자니 그는 동아방송의 <정계 야화> TBC의 <일제 36년 사>와 <민족의 혈맥> (70년대에 내가 썼다) 도 기획 아이디어를 냈고 당시 고 노승병 부장에게 기획비도 받았다고 했다.
<광복20년>은 1968년 8월 7일에 첫 방송했다고 한다. 장민호 해설에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구민의 이승만 역, 유기현의 조병옥 박사 역 등의 특이한 연기는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어둔 밤 가시면 별빛도 빛나는데 20년 그 세월에 묻고 묻힌 사연들 영욕도 무심해라 광복 20년.
최희준이 부른 정감있고 박력있는 주제가를 기억하느냐 묻자 즉석에서 위의 가사를 읊었다. 처음에 여덟 줄을 써서 방송작가 이자 시인인 고 金敏夫씨에게 보이니 여덟 줄은 길다며 여섯 줄로 주려 주더란다.
<광복 20년>은 동향인 鄭仁燮 PD 연출로 1년 반 정도로 끝냈는데 정계와 주변의 압력이 예사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 후 金敎植씨가 이어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정을 묻자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그 후에도 그는 위와 같이 연이어 각 방송 라디오와 TV에 정계비화를 써서 이 분야의 전문가임을 과시하면서 <방송대상 극본상>을 타기도 했다.
* * *
이영신 형은 정치드라마 아닌 작품도 이따금 쓴 것으로 알고 있다. KBS 문예계 직원으로 근무한 적도 있는데 얼마 되지 않아 그만 둔 것을 보면 틀 잡힌 조직 안에서는 적응하지 못하는 야성(?) 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안산의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으며 새로운 정치실록 시리즈 집필에 몰두하는 한편 옛 친구들을 만나 식도락도 즐긴다고 했다.
술은 배포가 맞는 친구와 어울리면 아직도 양주 한 병쯤 거뜬히 치울 수 있다고. 다만 고관절이 여의 치 않지만 운전에는 지장이 없어 드라이브를 즐기기도 한단다. 그 날 나와 만나는 약속 아니었으면 안면도로 김우탁 회원을 찾아가 회를 즐기려 했단다.
형의 노익장과 건강을 빈다.
<박서림의 從心漫筆> (56)
「李榮信선생의 광복 20년」
박서림
박서림 문학비 제막식을 찾은 김광섭, 김남부, 촤환성님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2004년 10월 28일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장치드라마란 역시 흘러간 역사의
인물들을 조명하는 것이긴 해도, 흘러갔다고해도 어디 사라진 것이 아니여서, 이런저런 압력과 비판에 시달리기 마련이지요. 그런 것을 감수하면서도 이런 일을 하는 것도, 역사의 한 면을 밝히고자하는 신념에서 이겠지요. 귀한 옛 자료들을 제공하시는 분들도, 또한 그 자료를 모아 편집하셔서 이렇게 올리시는 국장님도 보이지 않던 일들을 볼 수 있도록 불을 밝히시는 분들이십니다.
이경희 (스무고개 박사) 선생님 글
춘하추동방송 잘 읽었습니다. 이번 소식중,' 보통군법회의에서 일차 공판 때' 사진에서 맨오른쪽 분이 조동화입니다. 이종구와 조동화 이름이 바뀌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동아방송 제작부장시절 앵무새 푸로를 만드신 조동화 선생이 작년 4월17일에 작고 하셔서 몇일 후 17일에 1주년 추모모임을 춤평론가회 주최로 동숭동 문예진흥원 예술의 집에서 갖는다는 연락을 몇일전받아서 알립니다.
조동화선생은 동아일보사건으로 퇴직당한 후 1976년에 '춤'전문 잡지를 발간하여 현재까지40년간 발행하시다가 작고 하셨습니다. 최창봉사장님의 '방송과 나'도 춤잡지에 연재한 글로 출판된책입니다. 저의 '李京姬 기행수필' 책도 춤잡지에 13년간 매달 연재된 글로 엮어진 책입니다. 방송과 관련된 이야기라 말씀드리다가 저의 이야기도 첨부했음을 양해바랍니다.
이경희 드림
광복 20년 종방기념 화보 (사진 : 박광희, 이종구님 제공)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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