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음악 백년

왕숙랑 (김숙자)王淑娘 연분홍 사랑 (염분홍사랑 艶粉紅 사랑)

이장춘 2015. 2. 22. 15:00

 

 

 

 오래전에 장세정에 관한 글을 쓰면서

위 머리사진의 오른쪽 분 성함을 몰라 공란으로

두었더니 춘하추동방송을 자주 옛노레에 댓글을 

달아주시던 운수납자님이 다음 글을 남겨 주셨다 가수

장세정, 박 향림, 이난영님이 소속된 조선악극단  만주공연

도중에 찍은 사진 속의 나머지 한 분은, 박향림님의

태평레코드 시절 친구인 王淑娘님입니다.

 

 

왕숙랑 (김숙자)王淑娘 연분홍 사랑 (염분홍사랑 艶粉紅 사랑)

 

 

 1939년 8월 艶粉紅 (염분홍) 연분홍 사랑과 

광동아가씨가 앞 뒷면으로 들어있는 노래가 레코드로

나오면서  히트했다. 그 연분홍 사랑( 艶粉紅 사랑) 은 오랜세월

 사랑을 받으며 불려왔고 지금도 그 노래를 즐기시는 분들이 많다. 

노래는 반야월작사 이재호곡이라고 소개된 글이 있지만 운수납자님은

 이고범 작사, 長谷川 堅二 곡으로, 이 레코드의 뒷면에 실린 이고범작사

전기현작곡 광동 아가씨와 함께 발표된 노래라고 했다.  

 

운수납자님은 얼굴도 성함도 들어내지 않고

사이트에 올라있는 옛 노래의 댓글을 통해서 그 노래에

대한 설명을 붙이고 때로는 잘못을 바로 잡아주는 분이다.

춘하추동방송에서 만나고저 했지만 대답이 없으셨다. 그 분의

 블로그가 있어도  그 안에 글은 없다. 댓글을 쓰기위해 만들어 놓은

불로그인 듯하다. 운수납자님의 소식이 끊긴지 2년정도 세월이

흐른 오늘. 왕숙랑에 관한 간단한 글 한편을 인용한다.

 

 

1939년 8월 광동아가씨(이고범 작사

전기현작곡), 염분홍사랑을 불러 데뷔한,

왕숙랑(본명 김숙자) 2008년 11월에 타계하셨다는

이야기를 알게되어 착잡합니다. 46년에 타계한 박향림과

절친했던 왕숙랑님은 정한의 달빛, 기생의 설움, 대전아

잘 있거라, 상사십년, 등의 곡을 남긴 것으로

자료에 전하고 있습니다.

 

 

연분홍 사랑을 처음 부르던 그 무렵

김해송이 이끄는 저고리 시스터즈 구성원

으로 노래를 부르고 뮤지컬공연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때의 “저고리 씨스터” 구성원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기와 상황에 따라 달랐고 이난영, 신카나리아, 

장세정, 김백희,  심연옥,  백설희, 옥잠화, 홍청자, 이준희, 

이화자, 나성려, 서봉희,  등이 참여하고 있을때

 왕숙랑도 그 구성원으로 있었다. 아래는

그 시절에 촬영한 사진이다.

 

 

    왼쪽부터 홍청자, 왕숙랑, 박향림, 이난영, 서봉희, 김능자, 장세정, 이화자

그 시절 이름있던 무용가 가수들이 함께 했다.

 

 

저고리 시스터는 해방되어 김해송이

KPK악극단을 구성할때 모체가 되었다.

왕숙랑은 1960년대까왕성한 활동을 했다. 

아래는 그시절 활발한 활동을 벌렸던  금사향,

장세정, 한명숙, 신 카나리아, 황금심, 왕숙랑,

오정심, 백난아와 함께 한 사진이다, 

 

 

 

 

  

왕숙랑님 딸의 글

 

 

1920년, 청진에서 테어나 2008.

11.1일 세상을 뜬 왕숙랑(김숙자(金淑子) 

님에 관해 2008년 11월 4일 사단법인 대한

가수협회 자유게시판에 다음 글

 올라 있어서 옮겼습니다.

 

 

한 평생을 가수에 대한 명예와

자부심으로 88세를 살다가신 왕숙랑님의

 딸입니다. 유명하시지 않아 가수분들도 잘 모르시

겠지만 조선악극단 소속이셨고 대만아가씨, 연분홍사랑

등의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인터넷에서도 소개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딸인 저도 최근에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4년여의 투병중 3개월

동안은 의식이 없으신 상태에서 11월 1일

고통없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1920년생으로

 노래가 좋아 고향인 함북 청진을 뒤로하고 가수의 길을 택하셨고

80세 초반까지도 '만나리'라는 모임에 참석하시어 그 기쁨을 오로지

가수이기에 느낄 수 있다며 늘 가수여서 행복해 하셨습니다

투병중 여러차례 전화와 격려를 보내주신

 몇몇분들께 지면을 통하여 감사드리고 입원중이신

상태에서 지팡이에 의지하시어 장례식장까지 와 주신

금사향 여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이글을 올리게 된것은
첫째, 그토록 가수임을 평생 명예롭게

생각하신 당신의 마지막을 아무도 가수임을

알지 못하게 보내드린것이 자식으로서 도리를 제대로

해드리지 못한 안타까움으로, 둘째 저희 어머니 왕숙랑님을

 알고 계시는 분들에게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이세상을 떠나셨음을

 알려 드리기 위하여 셋째 투병중인 4년동안 가수 협회비를 내지

않아 회원에서 삭제되어 회원들에게 알릴수 없으며 가수협회의

이름으로는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한다는 가수협회측의

간접 전달을 전해듣고 참으로 착잡한 심정으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악법도 법이라 그 규정에 따라야 함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거동이 불가했던 4년동안의

회비 때문에 평생을 자부심으로 살게해주고 가수이기

때문에 회원이 될수 있음을 늘 기뻐하셨는데 그것도 4년 회비

 때문에 회원에서 삭제되어 협회에서는 후배들에게 이런 선배가

있었다고, 이런 선배가 세상을 떠나셨다고 알려주는 정도까지

 제한함은 신속히 규정을 개선함이 타당하다 사료 됩니다

아주 작은 일이라 생각되지만 작은

관심이 더 크고 멋진 단체를 만들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저희 어머니 왕숙랑님을

알고 계시는 모든분들에게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늦은 가을인데도 기온차가 크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생각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

 

 

윤후현 (팔방미남) 선생님 글

 

 

지금도 그렇습니다 마는 초창기
가요계에도 미인 여자 가수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난영,장세정씨등... 가수협회의 미납회비

 때문에 아무런 연락도 할 수 없이 쓸쓸하게 가셨구만요.
늦게라도 이렇게 타계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왕숙랑(김숙자)가수님의 따님! ... 어머니의 소식을 이제 세상에

알렸으니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도록 기도해 드립시다.
소식 감사합니다. 이장춘 사장님!...



유수 선생님 글


 이 노래 대단한 수작이네요.

지금 리바이벌시켜도 좋은 반응

얻을 것 같습니다. 헌데 가수들 사회가

그렇게 비정한 곳인지? 저 자제분 글을

보니 너무 씁쓸해 보이는군요.


 

 

분홍 사랑

 

 

천하를 다 준데도 사랑만 못해

풋가슴 싸 들면 눈물이 흐릅니다.

이별의 눈물

울어도 소용없는 꿈인줄 아오

사랑은 목숨예요 목숨이례요

 

한평생 그 호강도 사랑만 못해

비단옷 몸에다 휘감는 그 사랑은

오래 못가요

주고도 변치않는 그 마음 속에

사랑은 목숨예요 목숨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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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1936년 평양방송국 개국무대, 노래 연락선은 떠난다. 데뷔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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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 목포 시립교향악단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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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숙랑 연분홍 사랑 반야월 이재호.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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