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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역사 90년, 동요역사 90년 반달이 준 선물

이장춘 2014. 11. 6. 02:02

 

 

 

 2014년 10월 26일 오후 3시 반부터

 5시까지   90분간에 걸쳐 한국동요 90년

 다큐 콘서트 반달이 준 선물 특집방송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본노래가 판치던 시절, 어린이를 사랑하면서

어린이와 함께 산 방정환선생님은 우리 얼이 담긴 노래를 제작해서

우리 어린이들이 꿈을 심어가며 부를 노래를 만들어 보급하고자 했다.

그 뜻에 따라 윤극영은 노래 반달을 지어 1924년10월 20일자 동아일보

지상에 ‘푸른 하늘 은하수"....,.... 를 “반달”로 발표해서 곡을

붙여 우리노래를 부르기시작했다. 그로부터 90년,

 1세기 가까 세월이 흘렀다. 

 

 

 한국방송역사 90년, 동요역사 90년 반달이 준 선물

 

 

그 무렵 이 땅에는 그 시대의 총아,  

방송국 설립을 위해 꿈틀거렸다. 1924년 봄,

일본이 통치하고 있던 시절, 일본에서는 시험방송이

발사되었고 조선에서는 일본 네 번째의 방송국설립이 진행

되었다. 그때 한국인으로 방송국 설립에 참여 한분은 노창성이다.

3년에 걸쳐 추진된 방송국은 1927년 2월 16일부터 이 땅에서 전파가

 발사되었다.   시험방송 때부터 실시된 방정환의 어린이에 관한

 방송은 시험방송이 본 방송으로 이어질 때도 계속되어서

이 땅의  최초 방송출연자로 가록된다.

 

 

 

 

방송을 시작 하던 그때는 방정환의 어린이를

사랑하는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던 때이고 윤극영,

홍난파, 윤석중 등 뜻을 가지신 분들이 동요 말을 짓고 붙여서 

방송전파에 실었다.  비록 일본통치 하에서 태어닌 방송국일지라도

 이 땅의 백성들이 들어주어야 하는 방송이어서 일본말과 함께 우리말로도

 실시되었다. 일제강점기 모든 공공기관에서 일본어가 전용으로 쓰이던

 때도 방송국에서는 우리말이 사용되었고 우리노래를 불렀다.

 방송국은 우리말을 지켜온 최후의 보루였다.

 

 

 

 

일본말로 하는 방송을 조선의 백성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백성들이 듣지 않는

방송국은 운영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방송국이 살아서

운영되기 위해서는 우리말 방송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의

한국말 말살정책에도 방송국에서는 우리말로 방송을 했기에

우리말과, 노래가 실려 방송전파는 발사되고 이어졌다.

동요 90년은 한국방송역사 90년과 맥을 같이한다. 

 

 

 

 

방송국에서 우리말을 지키기기 위해

힘을 기울인 분들은 최승일, 윤백남, 김정진,

심우섭, 노창성, 이정섭, 이혜구, 김억, 김진섭, 모윤숙

민족의 선각자들이요 동요를 만들고 전파 해 오신 분들은

 윤극영, 홍난파, 윤석중, 이원수, 박태준, 박태현, 유기흥, 전기현,

마해송, 이흥열, 등 우리겨레 맥을 같이 한 분들이었다. 동요와

 방송,  둘 사이는 불가분의 인연이 있다. 태동시기도 같고 동요가

방송을 타면서 신속하고도 광범위 하게 퍼져나가 고유의

민족정신을  이어오면서  우리의 얼을 밑바탕에

깔아주었고 겨레의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해방을

마지했을때 동요는 방송을 타고 훨훨 날았다.

일제강점기부터 동요를 이어오던 분들은 물론, 안석영,

안병원, 권길상 등 새로운 분들이 동요를 만들고 보급하는데

앞장섰다.  임병석, 김영수, 윤석중, 정현옥, 박계주, 채정근등

 어린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분들은 려문화사를 세우고 1945년

12월 1일자 창간호를 시작으로 어린이 신문을 발행해서 어린이

얘기와 함께 동요를 실었고 안병원, 권길상은 어린이들을 모아

 봉선화 동요회를 만들어   노래를 배우고  보급하며

 해방기념호 우리의 노래를 발행하기도 했다.

 

 

 

 

이런 일을 하신분들이 모두 방송국과

긴밀한 인연이 있던 분들이고 방송국과 연계하에

이루어 졌으며 방송국에서는 동요보급시간을 편성해서

 동요보급에 힘을 기울였다. 윤석중작사, 박태현작곡 「새 나라의

어린이」동요는 KBS 어린이 프로그램에 처음 등장한 어린이 방송

로그램의 시그널로 사용되기도 했다. 어린이 신문 창간호 머리에

 노래 말과 악보가 실렸고 학교에서는 다같이 이노래를 불러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도 이 노래를 다같이 불렀다.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새나라의 어린이는 서로서로 돕습니다.

욕심쟁이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새나라의 어린이는 몸이 튼튼합니다

무럭무럭 크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이 노래를 쓴 윤석중선생님은

 1925년 14살의 나이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한 이래 수많은 동요곡을 썼고 홍난파, 이원수,

박태준, 박태현 등 그 시대의 동요를 이끌어 가시던분들이

곡을 붙여 불렸다.  오랜세월 색회 회장을 맡아 동요 창작과

보급에 힘을 기울였다. 그 유명한 어린이 날 노래도 선생님의

 작품이다. 1973년 5월 5일자 경향신문에 윤석중 선생님에

관한 자세한 얘기가 실렸기에 그 일부를 인용했다. 

 

 

 

 

 

KBS 방송국에서는 1947년 9월 1일을

 기해서 어린이 합창단을 만들어 본격적인 요보급에

나섰고 그 지휘자로 정세운선생님에 이어 안병원선생님이

오랫동안 맡아주셨다. 6.25가 일어나고 나라가 어려움을 겪을 때도

 동요는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아름다운 마음을 길러주었다. 방송국

에서 운영하기 어려웠던 어린합창단을 해군정훈음악대가 맡아 주었고 그렇게

 이어온 어린이 합창단은 1954년 4월부터 7월까지 미국 42개주를 돌며 국위를

선양하고  2,000만불의 경제부흥자금을 모아 국가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야말로 그 시절의 한류열풍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어린이 25명에 단장 안병원선생님을

비롯해서 모두 30명으로 편성된 합창단이었다.

그해 1954년 어린이 합창단이 선풍일으키던 그해

새로 선을 보인 「누가 누가 잘하나」방송프로그램은

지금까지도 그 명맥이 이어져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동요보급에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 시절 방송국에서 동요보급에

 오랫동안 힘을 기울인 분은 한용희 선생님

이다.  님는 2,000년대 초 까지도 

동요계에서 활동했다.

 

 

 

 

동요는 해외동포 어린이들에게도

널리 보급되었다. 동요보급의 금자탑 권길상

선생님은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와 미국을 넘나들며

어린이와 함게, 동요와 함께 해 오셨다. 이번 KBS특집을

 제작하면서 미국의 권길상선생님을 비롯해서 미국에서 힘을

 기울이는 분들을 찾아 미국 어린이들이 한국어를 공부

하고 동요를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국내에서 오랜세월 어린이와 함께

하면서 동요를 보급해 오던. 이혜자 선생님이

3년여에 걸쳐 미국에서 동요를 가르치고 보급하면서

한국에 있을때는 몰랐던 동요의 특성을 알았다고 했다.

「한국 아이든 미국 아이든 또 다른 나라 어느 아이라도

배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다 내면서 노래를

할 수 있는 그런 곡」이 동요라는 사실을

미국에서  새롭게 알았다고 했다.

 

 

 

늘 춘하추동방송과 함쎄 하

 이혜자님은 미주동요사랑회 회장직을

맡으며 행카 초등학교 등에서 동요를 가르치며

보급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분이다.  코행카 초등학교

1,800명 학생가운데 400명이 한국어 배우기를

선택하고 한국동요를 배운다고 했다.

 

 

 

 

 

1924년10월 20일자 동아일보 지상에

 우리들의 동요인‘푸른 하늘 은하수"....,.... 를

 “반달”로 발표한지 90년! 그 시절 동요의 씨를 뿌린

선구자들은 가셨어도 그 맥은 도도히 흐르고 한국인의

 동요는 세계의 동요로 발돋움하고 있다.   동요역사  90년,

한국방송역사 90년. 이제 10년 후면 그 역사 100년 한 세기가

된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달라져 첫 걸음을 했던 방송국은

 세계적인 방송국으로 발돋움하고 동요역시세계의 노래로

 불려지기 한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속에 세계속의

한민족으로 자리잡아가는 지긍심을 가지며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깨닿게 한다.  

 

 

관련 글 보기 영문자 클릭

 

 

경성방송국과 최초의 동요 반달 그리고 윤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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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중, 동요선-1939년 발행 「尹石重 童謠選」홍은순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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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80 음악회 이혜자 , 동요 90년 윤극영 반달, 이원수 홍난파 고향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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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DK 경성방송국 최초의 방송국 설립 그때 그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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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방송국, 경성방송국 개국의 날-1927년 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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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난파 현대음악의 선구자 불후의 명곡 노래 고향의 봄 봉선화 봉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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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과 어린이날, 노래 윤석중작사 윤극영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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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상 최장수 프로그램 누가 누가 잘하나 어린이 공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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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수선생님과 고향의 봄 작곡 홍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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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어린이 합창단의 어제와 오늘

http://blog.daum.net/jc21th/17780324

 

 

 

 

 

최초의 동요 반달을 써 곡을 붙인 윤극영선생님과 생가

 

 

 

 

 

동요 90년 역사의 해를 맞아 2014년 10월

강북구 수유동 인수봉로에 있는 윤극영 가옥이 동요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문화전시관으로 꾸며져 무료로 개방되었다.

집 내부는 생전 이용하던 모습 그대로 복원됐고, 유품과 친필 작품을

전시한 공간도 마련되었다. 1970년에 지어진 이 집은 윤극영선생님 1977년부터

 세상을 떠난 1988년까지 머물렀고 이후 장남 윤봉섭씨(82)가 살았다. 2012년 서울시가

 미래유산 보전사업을 시작한 뒤 대상지 1호로 지정됐고 지난해 12월 서울시가 윤씨로부터

가옥을 사들였다. 윤극영선생님은 1903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중퇴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음악을 배웠다. 1923년 방정환, 진장섭, 조재호, 마해송과 함께 색동회를

만들어 ‘어린이날’ 제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듬해 방정환이 만든 잡지 ‘어린이’에

 동요 ‘반달’과 ‘설날’을 발표했고, 1926년 국내 첫 창작 동요곡집 ‘반달’을

 발간했다. 동요 ‘고드름’과 ‘따오기’, ‘고기잡이’, ‘나란히나란히’,

등도 모두 선생님이 만든 곡들이다.

 

 

 

 

 

 

 

 

 

1945년 12월 1일 해방되어

최초로 발행된 어린이 신문은 그시절

KBS 편성과장을 지낸 송영호 선생님과,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어린이와 함쎄홍은순부부가

  오랜세월 보존 해 온것을  아들 송현식님이 춘하추동

벙송에 특별제공한 것이다. 앞으로 방송역사를

 쓰면서 소중한 사료로 활용 될 것이다.

 

 

 

 

 

 

 

1973년 5월 5일자 경향신문

에서 윤석중 선생님과 인터뷰를 통해

 동요 초창기부터 이 인터뷰를 하던 날까지

생생한 기록이 있어 그 일부를 인용한다.

 

 

 

 

 

일생을 동요작곡에 힘을 기울인 권길상선생님의 2014년 9월의 모습이다.

 

 

위 사진  선명원, 안희복, 최승자, 이규도을 비롯해서 30명의 단원이 활동했다.

 

 

1954년 미국 순회 공연 어린이 합창단원 명단

 

 

<미국순회공연 단원명단> 단장-지휘: 안병원, 반주:윤기선

손정웅(서울중), 이성호(서울중), 이여진(서울사범부속), 이규도(이화여중),

김혜진(이화여중), 안희복(이화여중), 박경옥(경기여중), 김기정(이화여중),김미라

(이화여중), 전영자(이화여중), 최승자(남산초), 이광자(남산초), 서옥자(혜화초),

최애자(남산초), 송광자(덕수초), 조연자(혜화초), 김성애(덕수초), 신유미(덕수초),

조성자(혜화초), 윤현실(남산초),서윤자(덕수초), 계원경(서울사범부속),

윤경숙(교동초), 김성희(덕수초), 이승연(바이얼린),

한동일(피아노), 성악가 김자경님 동행.

  

레코드에 수록된 노래는 인사, 노래를 비롯해서

구슬비, 자전거, 오빠생각, 즐거운 농부, 뻐꾹새, 들로 산으로,

 작 은별, 아 목동아, 제니, 참새, 아리랑, 천안 삼거리, 김서방네 농장,

 종소리, 바다로 가자, 우리의 소원, 세우자 새나라, 눈꽃송이,

아침이슬, 굳바이 등 23곡이다.

 

 

 

 

 

 

 

 

이수인 선생님, 40여년을 KBS어린이 합창단을 지휘하며 동요와 가곡발전에 힘을 기울였음

 

 

 

 

미국에서 동요보급에 힘을 기울이는 이혜자 선생님과 코행카 초등학교 학생들

 

 

 

 

이혜자 (이가인 보나)선생님글 글

 

 

국장님 감사합니다

오늘 메일로 보내 주신것 잘 보았습니다
편집할 일이 무척 많으신데도 애써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무리하시지 않도록 하셔요  제가 11월 행사

마치고 소식 드리겠습니다. 행사 준비 마지막 교정등 컴 작업

 하다가 매일매일 미뤄온 이국장님 뵈러 왔습니다. 제가 11월8일

행사 마치면 자주 뵐거예요 지난 10월26일 kbs  한국동요90년

특집 방영시 LA 촬영분 많은 부분 방송 되었습니다.

저도 아직 다운받아 시청할수 없었지만 지인들

께서 보내주신 일부분 보았습니다

 

 

유경환(유카리나)사님 글

 

저도 그날 명심을 하고 이특집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위해서 멀리 로스엔젤레스

까지도 가서 촬영하고 제작에 힘쓴, 우리 동요의 뿌리를 찾기

위해 애쓴 프로그램인데다가, 특히 L.A.에 계시는 이혜자님이 시청을

권하고 안내하셔서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서 고마웠습니다. 방송이라는

것이 녹화를 해 놓지 않으면 보는 그 순간인데,    국장님께서 이렇게 블로그

춘하추동방송국에 가지고 계신 귀한 자료들을 찾아 편집하시어 이렇게 두고두고

볼 수 있는 인터넷 방송으로 올려놓으시니, 쉽고 편하게, 두고두고 볼 수 있도록

정리해 올려 놓으셨으니, 그 노고와 열성에 큰 박수와 감사를 드립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멀지않은 수유동의 윤극영 선생님 생가의

문화전시관도 꼭 가보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이곳에가서

윤극영 선생님의 반달을 오카리나로 꼭 불어보고

 싶은 마음이 자연히 생기는군요.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Y 2015.07.27 01:33 국장님

오늘 국장님 내외분 모시고 김정숙님과

 함께 윤극영 선생님 생가에가서 반달과 따오기를

 오카리나로 불며 둘러볼 생각을하니 국장님께는

작업하실 일도 많이 생기겠지만, 저는

 마음이 설레입니다.

 

 

┗이장춘 2015.07.27 03:05

 

고맙습니다,

11시 동대문역 1번출구에서

 뵙겠습니다.

 

 

 

 

윤후현(팔방미남) 선생님 글

 

 

9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동요사,

 잘 보았습니다.늘 느끼는 심정입니다 마는

저 보다 더 연로 하신분들이지만 생각과 마음은

항상 저 보다 더 어린것 같습니다.반달,노래,

너무 좋아 합니다. 감사합니다.

 

 

 

 

 

 

반달이 준 선물 특집 90분간으 진행을 맡은 배우 박주미님

 

 

동요 90년 반달이 준 선물 편.wma

  

동요 90년 반달이 준 선물 편.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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