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고 구수한 맹관영 선배와 만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 양현민 아나운서
이 글은 한국아나운서클럽회보 제 15호 (2014년 9월 15일발행)에 실린 초대석 글입니다. 이 초대석 글을 쓰기 위해 선배 맹관영 원로 아나운서와 후배 febc 극동방송 현직 양현민 아나운서가 2014년 8월 12일 만났습니다. 아나운서 클럽 회보에 실린 글과 함께 그날의 얘기를 담은 동영상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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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관영 아나운서 특집대담 febc 극동방송 양현민 아나운서
지난 5월 말 ‘대한민국 서예문인화 원로총연합회’ 회장이 되신 것, 축하합니다!
심적으로 부담이 큽니다. 한국미술협회, 서예협회, 서예가협회, 서도협회 소속 65세 이상의 초대작가 모임으로 2006년 만들어진 단체인데,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다가 이번에 회장으로 추대된 것이지요.
서예와 문인화는 누구에게 배우셨나요?
붓글씨를 잘 쓰신 선친으로부터 어렸을 때부터 필법 등 기본기를 익힌 셈입니다. 그리고 이당 (以堂) 김은호 선생과 함께 활동하신 충남 공주 출신 석연 (石淵) 이경배 선생이 피난 차 낙향해 제 고향인 온양중학교 미술교사로 부임하셨어요. 좋은 스승을 만난 덕분에 소질을 계발하게 되었지요. 그 후로도 꾸준히 붓은 놓지 않았고, 아나운서 할 때도 주변에 축하할 일이 있으면 그림 선물을 하곤 했답니다. 하지만 그간 정식으로 사사(師事)한 스승이 없으니 공모전에 출품할 엄두도 못 냈었지요. 아나운서 퇴직 후에 예전부터 해왔던 솜씨를 살려 1997년에 개인전을 열고 서예와 문인화 작업을 선보였는데, 그 때 와서 보신 조수호 선생 등 원로 대가분들이 국전 출신이 아닌데도 감사하게도 초대작가로 추대해 주셨어요. 2008년에 제2회 개인전을 열었고 현재 한국문인화협회 고문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거문고도 능하시다고 들었습니다.
선비의 다섯 가지 기본이 ‘시詩, 서書, 화畵, 금琴, 기棋’예요. 그래서 거문고도 익히자 싶어 1970년대 초 국립국악원의 거문고 강습에 지원해 황득주 선생 에게 정식으로 배웠지요. 일주일에 세 번씩 7년간 다니며 정악부터 한갑득류 산조까지 마쳤습니다.
선배님이 전에 성우와 교사도 하셨다면서요? 정말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6.25 후유증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할 처지였는데, 담임 선생님의 권면으로 어렵사리 대학 문을 열었어요. 처음 전공은 연극영화였는데 성균관대 국문학과로 옮겨 대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 음대생들을 제치고 교회 성가대 지휘를 했으니 음악적 재능은 있었던 것 같아요. 2학년(1960년) 때는 CBS 방송국 성우 시험에 합격해 당대 원로 배우인 김승호, 최무룡, 장민호, 복혜숙 씨 등과 친구 또는 부부가 되어 보기도 하고, 선배 성우인 구민, 주상현, 김성원, 고은정, 정은숙 씨 등과도 드라마를 여러 편 했습니다. 1961년엔 MBC 1기 성우 모집에 합격해 활동하기도 했지요. 그러다 1965년 ROTC 1기 육군 소위로 예편한 뒤 상명여고 교사가 되어 2년 반 동안 근무했는데, TBC에서 아나운서 모집이 있다는 방송 예고를 듣고는 응모해야겠다고 결심했지요.
HLKY성우 (미국의 소리 방송에서)시절 성우, 정건우, 맹관영, 임옥영, 한경돈, 정은숙, 김영배, 홍석진, ( )이 함께 한 사진
아나운서에 지원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1958년 고교 졸업 후 진학을 포기하고 낙담해 있던 나를 위해, 누님이 라디오 한 대를 사주셨어요. 방송 듣는 게 유일한 낙이던 그 때 미국의 소리방송(VUNC)에서 장기범 아나운서 가 전하는 뉴스를 듣고 그 분의 솜사탕 같은 목소리에 매료되었지요. 또 황우겸 아나운서의 <스타탄생>과 임택근 아나운서의 <아마추어 쇼> 공개방송을 들으며 반한 나머지 ‘나도 목소리는 타고 났으니 반드시 아나운서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1967년 첫 번째 응시에 다행히 합격해 TBC(동양방송) 아나운서 4기로 입사했고 1997년 KBS에서 정년퇴직했습니다.
어떤 방송을 진행하셨나요?
TBC에선 <마이크 초점>, <카메라의 눈>, <카메라 백경>, <동물의 세계>, <인간만세> 등 라디오와 TV의 내레이션 프로그램을 많이 했어요. 1980년 TBC가 막을 내리던 11월 30일 마지막 뉴스를 전하기도 했지요.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KBS에 와서는 <FM 가요무대>, <흥겨운 한마당>, <가요 반세기> 그리고 DBS 에서부터 인기 공개방송이던 전영우 선배님의 <유쾌한 응접실>, 최계환 선배님이 진행하던 <장수무대>, 정도 600년 기념 <서울야화> 등 공개방송이나 매일 DJ 프로를 정년 3개월 전까지 진행했습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 궁금합니다!
평생 기억에 남는 방송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국장일에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거행된 <하관식 실황> 중계방송입니다. 자그마치 50여 분이 넘는 하관식 실황중계방송은 우리 방송 역사상 유례가 없던 지라, 순서나 용어 등 아는 이가 없어, 혼자 계속 멘트 한다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용케도 해낸 자신에게 스스로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덕분에 <아웅산 순국> 국민장 때 17분의 실황 중계방송도 저에게 배당이 돌아와 진땀을 흘렸었죠. 그리고 1992년 ‘LA 폭동’으로 교민들이 많은 상처를 입었을 때 <LA 교민 위문 공연> MC를 맡아 미국에 처음 가서 동기생인 권윤기, 나동숙 아나운서와 TBC 후배 홍우창 아나운서를 만나 그랜드 캐니언, 유니버셜 스튜디오 관람 등 옛정을 나누고 교민들과 함께 눈물 흘렸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100세 시대엔 한 사람이 적어도 4개에서 7개의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선배님이야말로 선두주자이신 것 같습니다. 후배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자연스럽게 이것저것 하게 되었지만 아나운서실이 제일 그립고, 작품이나 방송이나 근본적으로는 같다고 생각해요. 둘 다 실력을 쌓아야 하고 기본이 충실해야 하니까요. 물론 아나운서는 다재다능한 게 당연한데, 다만 우리의 품위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고, 어느 프로그램을 맡던지 폭넓은 지식과 번뜩이는 재치가 발휘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인기 있는 방송만 좇을 게 아니라 가치 있는 방송에 욕심을 내면 좋겠어요. 아나운서라는 본분을 잊지 말고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길 바랍니다.
글 / febc 양현민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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