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방송인협회

이경원(K.W. Lee), 한국인 최초 미국신문기자, 인권운동기자

이장춘 2014. 9. 12. 03:43

 

 

 

이경원! 1950년대 한국인 최초의 미국

신문기자이자 인권운동기자다. 1950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연구, 석사학위를 받고 1956년 신문기자가

되어 50여년간 기자활동을 하며 한인들을 비롯한 소수민족의 인권기자로 활동

했다. 두각을 나타낸 아세아 최초의 기자로 추앙받은 이경원 기자는 프리처상의 

후보에 오르고 1997년, 20세기가 낳은 우수언론인 500명 가운데 한사람으로 선발

되어 워싱턴 언론기념박물관에 그 이름을 올렸으며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미국에서 50년간 방송활동을 한 김영우 선생님으로부터 한인 1세대

 미, 언론계 선각자 이경원기자에 관한 14분 반의 동영상을 받아  

영상이나 글자 한자 드리기 어려운 소중한 내용

이어서 편집없이 올린다.

 

 

이경원(K.W. Lee), 한국인 최초 미국신문기자, 인권운동기자

 

 

이경원은 1928년 개성에서

아버지 이형선과 어머니 김순복사이에

태어나 해방되면서 고려대학교를 나오고 1950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West Virginia University와 일리노이

주립대학을 졸업했다.  학생시절 KOREA MASSINGER를 발행한

이경원은 졸업후  신문기자 생활을 하며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영자지 코리아 타운을 직접 발행하고 LA에서 발행된

유일한 한국일보 자매지 코리아 타임즈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50여년간의 그 많은 활동 가운데서도

 "이철수 사건"과 "1992년 L,A폭동사건"의 취재는 

길이 남는 성과다. 1970년대 샌프란시스코 차이나 타운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으로 이로 인해서 재미 한국인 "이철수"가 무기수가

 되어 감옥에 있는  상황에서 「새크라멘도 유니언」의 기자료 활약하던

 이경원은 6개월간의 다방면에 걸친 취재로 이철수 사건의 잘못된 재판을

지적하는 1978년 1월 29일자 특집기사를 싫어 이 기사가 AP통신을

 비롯한 미국 전언론의 보도로 이어지면서 그로부터

 이철수가 석방되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이사건은 뿌리깊은 백인우월주의 사회에서

무고한, 한 한국인의 진실을 밝혀주는 사건임과

동시에 150년의 동양인 소수민족  이민사에서 처음으로

 이루어낸 범 아시아인 정치운동의 성공이었다. 이 사건은 국내

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가졌고 그 사건 담당 변호사가 국내에서

 국회의원을 지낸적이 있으며 1983년 국내에서 영화로 제작되어

상영되 연극으로도  공연된 적이 있다.  아래는

 1983년 1월 17일자 동아일보  기사내용이.

 

 

 

 

 

 

한인들의 아메리컨 드림을 앗아간 "1992년

L,A폭동사건"에 대해서 필자는 여러 얘기를 들어왔고

 그 원인과 사건전개에 관해서 많은 얘기를 들어왔지만 이 동영상을

 통해서 그때의 현실과 그 사건의 진상을 알았다. 재판의 결과에 불만을

 품은 흑인들의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문제를

 심층적으로 보도한 이경원기자는 미국사회에서 오랫동안 빚어져 온

흑,백갈등을 한인과 흑인의 소수민족의 갈등으로 돌리려는

 백인들의 기도에서 온 것으로 한인을 희생양

으로 삼았다고 했다.

 

 

 

 

 

 

이 기자는 그 사건이 일어나기

 3년 전부터 백인신문에 한인과, 흑인의 갈등

 관계를 실은 신문들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아 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났을때도 백인들은 그 사건을 왜곡, 방조

하면서 키웠다고 했다.  한인들은 그 사건의 진상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민 1세들이 한계에 부딪혔던 사건들을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2세이후의 한인들은 그 진상을 정확히 알고 흑인 백인를 포함한 미국인

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평화롭게 살아나갈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LA 4.29 폭동에 관해서 이경원기자로부터 참으로

시원시런 답을 얻었다. 자세한 얘기는

동영상에 있어서 생략한다.

 

  

동영상 보기

 

 

음향을 먼저 끄셔요.

 

 

 

 

 

 

 

윤후현 (팔방미나)선생님 글

 

 

한국인 최초의 미국 신문 기자 와

인권 운동 기자인 "잠들지 않는 목탁!" 이경원

선생,의 인터뷰 영상과 활약상에 대하여 잘 감상 하였

습니다. 한인들의 미국 이민사에 크나큰 업적을 남기신
이경원 선생의 노고와 불굴의 투지에 대하여 한없는 존경과

 찬사를 보내 드리면서 이 귀한 자료를 보내주신 김영우

선생님!과 자료를 꼼꼼히 편집하여 보게 해 주신
춘하추동방송 에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고

 

 

 

 

이경원은 1928년 개성에서

아버지 이형선과 어머니 김순복

사이에 태어나 1남 2년를 두었고

4명의 손자, 손녀를 두었다.

 

 

 

 

이경원 재미 언론인 선각자.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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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