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송영호, 홍은순, 송현식 선생님의 방송사료를 통해본 방송역사

이장춘 2014. 9. 1. 18:57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헌법이 제정 공포되었다. 국회의장

이승만 박사가 방송을 통해 헌법을 공포 하던  

역사의 현장을 담은 사진이다.     국회의장 이승만(중)과

당시의 중앙방송국장 홍양명(좌), 편성과장 송영호(뒤) 오른쪽

분은 조선방송협회 회장 이정섭으로 추정되지만 더 확인 해 보아야 할

일이다. 7월 17일 헌법공포에 이어 7월 20일 국회에서  이승만 박사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8월 15일 역사적인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했다.

송영호, 홍은순 부부는 이 역사적인 사진들을 6.25전쟁중에도 가장

소중하게 간직해서 오늘에 이르고 그 아들 송현식은 그 사진을

"춘하추동방송"에 제공해서 세상에 빛을 보게했다. 위 사진은

돌石판 같은 단단한 판에 특수처리해서 작은 액자로

보존되어 있어서 오랜세월에도 변치 않았다.

 

 

송영호, 홍은순, 송현식선생님의 방송사료를 통해본 방송역사

 

 

 이번에 제공된 방송사료 가운데는 사진도

 있지만 해방 전후의 방송극 대본을 포함한 방송원고,

 어린이 신문 등 송현식님 만이 소장 할 수 있는 소중한 방송

사료로 방송역사를 연구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사료들

이다.  송현식선생님께  고마운 말씀을 전하면서 오늘 사진

사료 일부를 올리고 앞으로 다른 사료들도 "춘하추동

방송" 방송역사 글을 쓰는데 활용 될 것이다.

이하  존칭은 생략한다.

  

 

 

 

 

부친 송영호 선생님은 1915년

서울에서 테어나 보성전문(고려대학교 전신)

법학부를 나온후 1938년, JODK 경성방송국 아나운서로

방송에 입문, 편성원으로 해방을 맞아 편성계장, 기획과장, 편성과장,

문예과장, 1949년 6개월간의 미국연수를 거쳐 6.25전쟁 중 전시 중앙방송국

방송과장 전주방송국의 전신 이리방송국장,그리고 1960년  대한민국 방송의

최고 책임을 맡은 공보부 방송관리국장을 지내면서 해방후의 이나라

 방송의 틀을 확립하고 많은 방송관련 기록을 남겨 방송의 큰 별로

 추앙 받고 있다.  방송영상산업진흥원에서 실시한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어머니 홍은순 여사는 일제강점기

교수의 꿈을 안고 일본 유학, 玉成 보육사범

연구과를 졸업하고 동경 야지시밤대학 사범과를 수료

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아나운서가 되려는 생각을 한적도

있지만 결국 어린이 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1940년  송영호선생님과

결혼 그로부터 어린이 교육을 수행하면서 방송활동을 전개 많은

업적을 남겼다. 1965년 방송문화상과 1979년 국민교육포장,

1987년 국민교육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송현식선생은 1968년 KBS아나운서로

방송에 입문 오랜세월 방송을 했다. 필자와는

1969년부터 한 사무실에서 일한 45년 지기 친구다.

송선생에게는 이나라 방송의 뿌리 아버지와 방송인이자

교육계의 원로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방송생활을 통해

이룩한 발자취와 역사적인 방송사료들을 보유하고

있다.  송선생이 아니면 보유할 수 없는 그런

 방송사료들이다. 오늘 그 일부를 올린다.

 

 

 

 

1941년 6월 이라고 쓰여있는것을 보면 

 송영호선생님이 평양방송국 아나운서 시절이고

그곳에서 사실때라  평양방송국에서 홍은순여사의

 방송모습인듯 하다. 그러고 보면 74년의 세월이 흘렀고

평양방송국 개국후 4년 7개월이 된 때다.

 

 

 

 

1949년 10월 16일 송영호, 송현식 부자가

 당시의 국무총리 철기 이범석장군과 창경궁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청산리 전투의 명장 이범석 장군과

이때 35세의 송영호선생님이 9세의 큰 아들 송현식과

 촬영한 사진으로 뒷면에 송영호 선생님의 친필 설명이

 있어 함께 올렸디.   그시절 창경원이라고 부르던

곳의 명칭을 "Palace"로 표현한것이 특이하다.

 

  

 

 

 

 

참으로 희귀한 크리스마스 카드다.

VUNC재직중이던 위진록(뒤 좌), 홍양보(뒤 우)

김복자 (전 좌), 유덕훈 (전 우)아나운서의 사진을 담아

송영호 부처에게 보낸 성탄카드로  본 "춘하추동방송"에서

늘 보아온  얼굴이지만 이런모습의 사진은 처음 보았다. NHK

마이크 마크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아직 오끼나와로 옮기기전 

1950년대 초 보내온 성탄카드다. 홍양보, 위진록, 유덕훈님은

KBS아나운서로 재직하다가 6.25가 일어나 국내방송이 마비

되자 갑자기 VUNC가  새로 발족 되면서  신 분이고

 김복자님은 KBS성우출신으로  VUNC에서 아나운서,

 성우등의 영역에 해당하는 여러 일을

한분이라고 들었다.

  

 

 

 

전주방송국 초창기 귀중한

역사사료다. 1954년 8월 15일 송영호

선생님이 이리방송국장 시절 이리방송국 직원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이리방송국은 전주방송국의 전신으로

1958년 전주에 사옥을 짛고 1959년 4월부터 전주방송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전주방송총국에서 2010년 방송역사 동영상을

제작한다고 해서 춘하추동방송에 있는 모든 사진을 제공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사진이 없어서 아쉬움이 있었다.

뒷면에 송영호선생님 친필 성함이 쓰여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윤영중,

홍성완, 김남북, 이을우, 김중식, 김광선, 최세환,

강재룡, 박한묵, 조지식, 이종만, 송영호, 전주오, 김윤석,

정윤량 순이다. 한쪽 눈을 가린 최세환이라고 쓰인 분은 최세훈

아나운서인데 그때 최세환 이라고 불렀는지 오자인지 확인이 안된다.

이때의 이리방송국 아나운서로 재직했던 이용훈. 이순길 두분은 이 사진

촬영에서 빠졌다. 아나운서 윤영중, 최세훈은 송영호 선생님이 다시 중앙방송국

방송과장으로 돌아온후 서울로 옮겼다. 윤영중은 1962년까지 아나운서로 재직했고

퇴직후에도 프리랜서연속낭독 등에 참여했다. 최세훈은 1964년 MBC아나운서

실장을 거쳐 대전, 전주, 마산등지에서 상무로 재직하던 중 19841984년 2월

 11일 51세의 젊은 연세로 세상을 뜨셨습니다. 세상을 뜨셨다. 이종만은

 목포방송국장 등을 지내다가 또 박한묵은 전주방송국 서무과장으로

재직하다가 공사발족후 1974년 정년퇴임했고 전주오는

남원기술과장 재직중 정년퇴임했다.

 

 

 

 

송현식 어린시절 친구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KBS TV 1기 탤런트로

오랜세월 시청자와 함께 한 김혜자는 송현식과

동년배로 함께  자랐다고 했다. 송현식은 KBS

어린이 합창단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참으로 희귀하고 의미있는 사진이다.

고려문화사, 어린이 신문부는 송영호, 홍은순

부처가 앞장서서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다.

 어찌되었던 위, 위안회를 주관한 고려문화사, 어린이 신문부,

조선아동예술연구회는 송영호부처와 밀접한 인연이 있음에 틀림

없다. 이 단체가 주체가 되어 1946년 추석을 맞아 9월 10일 전재동포

위안회를 가졌고 그 행사내용을 담은 7장의 사진을 당시는 앨범이

없었는지 두꺼운 상자종이를 오려 끈으로 묶어 만든 

 앨범에 사진 한장씩을 붙여 보존되어 왔다.  

  

 

 

 

조선재외전재동포구제회란 일제강점기

중국, 일본, 만주 등  각처에서 어렵게 살던 수백만의

동포들이 국내에 돌아왔어도 막상 갈곳이 없어 이들을 보호

하기 위해 사회각계각층 인사들이 동포들을 구원하고자 8月 31日

오후 1시 경성부 壽松町 中東學校 대강당에서 유지 다수 참석하여

 "조선재외전재동포구제회" 창립 총회를 열고 활동을 전개하면서 돈이고

물건이고 힘 닿는 대로 유지들의 기부금을 모아 전달하고  위문공연

등으로 이들을 위안했다. 이런 활동은 전재동포들이 돌아오는

부산, 인천 등 항구등의 수용소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필자도 말만 들었지 그때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처음본다.  

 

 

 

 

동요제창하는 출연자들의 성함이 쓰여있다.

조성녀, 고순애, 홍은순, 이정숙, 반주 조금자, 일제

강점기부터 방송활동을 해 오셨던 이분들은 해방공간에서

방송원고,   방송출연 등을 통해서  활동한 분들로 널리 알려진

 분들이었다. 조금자에 관한 글은 "춘하추동방송"에 여러편이 올라있다.

1933년 콜럼비아 레코드사가 최초로 전국을 대상으로 공모한 가수선발에서

최종입선 1934, 35년 가수로 이름을 날린 분이고 10여곡의 노래가 전해와서

 "춘하추동방송"에도 여섯곡이 올라있다.    1960년대까지 방송과 인연을 맺고

 많은 활동을 벌렸다. 아래 그 모습이 답긴 사진이 또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 방송드라마의 선봉에 서서 활동한 김영수선생님의

부인으로 그시대를 사신 분들은 김영수님을 모르는 분이 없을 도로

유명한 분이었다. 지난세기 재미작가로, 교육자로 널리 활동한

김유미선생님은 그의 둘째딸로 LA에 살고있다.

 

   

 

  

 

 

 

  

아래 사진은 송현식 선생님이

 김수환 추기경님과 함께 촬영한

 사진으로 뒷면에 1981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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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우 선생님 글

 

 

이 국장 님이 올리신 불록 잘 보았습니다,
우리나라  방송역사는 쿨론 초기 방송인들의 영상까지 
볼수있어  많은것을 배웠습니다. 재51회 방송의날 을 축하하

 모인 방송인들... 국장 님의 사진도 여러번 보았습니다.  축하 합니다.

특하 인상깊었던 것은 송현식 아나운서의 양친소개 와 그분들의 업적

(송영호 아나운서, 홍은순 여사).   우리 방송사에 기리 남을 소중한

사료들입니다.  송형식군은 제가 아끼는 후배 중의 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방송초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방송의 
내용을 기록한 산 증인들의 사료들 입니다 

 

LA에서 김영우 드림 

 

 

그때의 세시풍속과 환갑 상의 모습을

보기위해 1949년 송영호선생님 아버지 환갑기념

사진을 올렸다. 35살의 송영호 선생님, 33살의 홍은순

 여사님, 9살의 송현식의 모습이 보이는 사진으로

그 시절의 풍속을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사진이라고 생각해서 올렸다 

 

 

 

 

"춘하추동방송"에 올라있는 사진이나 동영상

음향을 어디서 어떻게 구하는가에 대해 관심 갖는 분들이

계십니다.   2005년 4월 24일 필자가 춘하추동방송 블로그를 

열고 10년 가까운 세월 글을 써 올리는 동안 성원과 격려, 그리고

그 많은 사료들을 보내주셨기에 늘 고마운 마음으로 밤, 낮없이 피곤한 줄

 모르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춘하추동방송이 방송인, 방송인가족들, 국내, 외

 네티즌들과 이토록 넓고 깊은 인연을 맺을 줄은 저도 미처 몰랐습니다. 1924년

 이땅에서 방송 설립준비를 하고 그해 12월 시험방송을 하던 때로부터 오랜 세월

 방송에 참여하셨던 많은 선배방송인과 가족들이  자료를 제공, 검증 해 주셨으며

성원과 격려를 보내주셨습니다. 비록 자주 연락드리지 못하지만 마음속에

깊히 새겨져 계시는 분들 성함을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분들이지만

 생각나는데로 순서없이 고마운 마음을 담아 그 성함을 씁니다.

  

 방우회 한영섭 회장님을 비롯,

박경환. 이혜경. 정관영, 김성배, 황우겸,

전영우, 강영숙, 박상진, 박종세, 최만린, 김소원 부부,

오승룡, 우제탁, 김명희, 계원준, 장도형, 엄복영, 이정오 

 이용억, 이철호, 신정호, 노익중, 정항구, 권영원,

고흥복, 이용실, 김선초, 김영효 ,

 

KBS 사우회 서병주, 김은구,

 김수웅, 강대영,  정근춘, 전, 현직 회장님,

박인채님을  비롯해서 선배, 동료, 후배 분들,

 

문공회 송재극, 조찬길, 김영우, 조부성. 이상익.

정석균. 그리고  여의동호회 많은 회원님

들과 현직 사우 분들,

 

대한언론인회 김은구 회장님을

비롯해서 이석희, 이병대님

  

KBS 전현직 사장님과 사원여러분!

 

국민방송 KTV 김관상 원장님을 비롯한 사원, 작가 여러분

 

한국방송인회 장한성회장님과

 안평선 부회장님, 강현두 교수님,

성우 고은정, 김세원님,

 

한국언론인회 성대석 회장님과 이후재님

 

이 땅의 최초방송인 노창성님과 이옥경님 부부의 딸

 노라노 여사님, 외손주 박기준님, 1930년대 축구 중계방송의 원조

박충근 아나운서의 증손자 박상현님, 손녀 김문정님, 시험방송때 부터

방송기술에 참여한 동양 제일의 무선기사 한덕봉님의 손주 한기호님, 6.25

첫방송 아나운서 위진록 님,  항단파방송 연락운동의 주역 성기석님의 아들

성용현님, 조카 성연석님, 역시 항일 단파방송으로 옥고를 치루신 박용신 아나운서의

아들 상언님, 해방정국에서 이름을 떨쳤고 6.25때 납북 당한 윤용노 아나운서의 손주

 윤병호님, 라디오 전성시대 방송의 별 윤길구님의 아들 윤남일, 손주 윤병주님,  우리말

전담방송 제2방송이 시작되기 전부터 해방 후 두 번에 걸쳐 중앙방송국장을 하셨던

 이혜구 선생님 (2010년 작고), 우리나라 방송기자 1호 문제안 선생님, 1943년에

 방송국에 들어와 2009년 8월 세상을 뜨실 때까지 방송과 방송역사연구에 힘을

 기울여 오신 유병은 선생님과 아들 유원재님, 1956년 최초의 TV방송 출발떼

연출과장으로 부터 일생을 방송과 함께 해 오신 MBC사장 최창봉

선생님, 일생을 음악과 함께 해 오신 손석우선생님,  항일단파

방송 연락운동으로옥사한 이근창님의 아들 이휘웅

사안을 제보 해주신 이종익님

 

1957년 장마루촌 이발사로 데뷔한 이래

일생동안 방송과 인연을 맺어오신 박서림님, 연출의 대가

박진님의 딸이자  1950년대  방송평론, 일본어 아나운서를 한

박진서님,  1920년대 부터 대구 방송국에서 지하 독립운동을 벌리다가

해방후 부산방송국장을 지낸 서종호님의 손주 서재경님, 초기 영화, 연극

배우로 방송극에 출연했던 권일청님의 손주 권혁범님, 시험방송때부터

방송극에 출연해 주시고 해방공간에서 김내성선생님의 진주탑 낭독으로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이백수님(연출계장을 하시던중 납북) 최장수

KBS 중앙방송국장 이운용님의 아들 이해석님, 항일독립운동

관련 방송기술자로 해방후 부산방송국의 기술과장을

 지낸 황세연님의 아들,

 

KBS 초대 TV방송국장을 지내신

황기호님의 외손주 이신주님, 목포방속국장을

지낸 박재윤님의 아들 박진호님, 1955년 KBS 아나운서로

 입문 MBC 아나운서실장을 지낸 최세훈 아나운서의 딸 최철미님.

 6.25 해상 이동방송 등을 이끌었고 KBS 대전방송국장, 대구방송국장을

 지내신 김석모님의 미망인 서정자님, 방송 드라마의 선구자 김영수님과

최초의 공모가수 조금자님의 딸 재미작가 김유미님, 경성방송국 어린이

 프로를 담당하셨던 빅의섭님의 아들 박기성님, 방송기술 한길로

 살아오신 정경순님의 아들 정영훈님.  정찬우 덕수초등학교

운영위원장님, 호기수 아나운서와 인척이신 미국

 샌프란시스코 거주 전영일님

 

1950년대 여성아나운서

윤영중, 김인숙, 문복순, 민병연 아나운서, 

 

한국 아나운서 클럽 김동건 회장님을

비롯해서, 임택근, 배덕환, 이성화,  임국희,

정흥숙, 맹관영, 김규홍, 이정부, 박찬숙, 서금랑,

김상준, 이혜옥, 박민정,  황인우, 민창기,

 재미 편집위원 정영호 아나운서

 

KBS TV초기부터 디자이너로 또는

홍보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일생동안 모은 

사료를 넘겨주시고 세상을  뜨신 정규봉님, 학생

시절부터 아나운서로, 탤런트로 방송을 해 오신 김영길,

 김영옥님 부부, 일생동안 드라마 연출 PD로 주옥같은

 자료를 넘겨주신 연진님,  KBS TV초기부터

간직 하셨던 사료를 정리해서 넘겨주신

 송병현, 그리고 장형일, 진종호님

 

최근들어 집중적으로 성원과

자료를 제공 해 주신, 미주방송인협회

김정수회장님, 양방수 총무국장님, 50여년간

모은 모든 사료를 보내주신 김영우 선생님,

전 동아방송 경원 아나운서,

 

늘 춘하추동방송과 함께 하시는

 유경환 여사님(유카리나), 이가인 보나

헤자님, 테리송 전영자님, 김무생 아나운서님

산란메라니 홍남희님, 박경옥님 

 

UN(유엔) 종교간 평화추진

 한국협회 김윤열 회장님,

삼일여성동지회 이화옥여사님

헐버트 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정용호님

 

오늘의 사료를 보내주신 송현식

 선생님, 이밖에도 실로 열거하기 어려울만큼

많은 방송인들과  방송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 춘하

추동방송과 인연을 맺어 주셨고 성원과 격려를 보내며

방송사료를 보내주심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입

니다. 행운이 같이 하심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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