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규님의 부인이자 배우 김보애님이 향년 79세로 2017년 10월 14일 세상을 뜨셨습니다.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또 한편으로는 파란만장한 삶을 이어가며 살아온 인생이었습니다. 김보애님의 명복을 빕니다.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의 대스타 영화배우 김진규 金振奎! 1955년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에서 주연으로 그 역을 완벽하게 수행한 이래 260여편의 영화에 출연한 김진규는 세상에서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이순신 장군에 마음이 끌려 1970년 전 재산을 쏟아 넣어 「성웅 이순신」을 제작하며 주연을 맡아 우수한 작품을 만들었지만 흥행에 실패 전 재산을 날리고 사랑하는 아내 김보애와 해어져야 하는등 어려움의 수렁에 빠졌다. 영화로 누구보다 많은 돈을 벌었다던 그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에서도 1975년 또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도전 대작을 내놓아 그해 대종상 최우수 작품상을 받으면서 스스로 남우주연상을 받아 그의 뜻을 이루어 큰 보람으로 알며 살았다.
영화배우 김진규 金振奎! 김보애 김진아
김진규와 김보애 가족
어린시절 제주도와 인연을 맺은 김진규는 제주도에서 말년을 보냈다. 1997년부터 제주방송총국에 근무했던 필자는 제주도 바로 그곳에서 김진규를 만나 예기를 나누어 희미한 기억이나마 그의 말을 기억한다. 金振奎! 진짜 한자 이름은 金振圭지만 첫 데뷔 영화에서 어쩌다가 金振奎!라는 이름이 쓰인 이래 金振奎!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김진규가 어린시절 일본 우에노 음악대학 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1942년부터 연예활동을 했다. 우에노 음악대학은 음악에 뜻을 둔 우리나라 학생들이 많이 다니던 학교다. 봉선화를 대중 앞에서 처음 부른 것으로 유명한 김천애도 이 학교 재학 중 한복을 입고 노래를 불러 봉선화 성악가가 되었다.
김진규는 국내에 돌아와 영화배우 등을 할 뜻은 있었지만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영화제작이 어렵게 되어 약초가극단에서 활동했다. 김진규의 첫 데뷔작 피아골의 여주인공 노경희도 그 약초가극단에서 함께 활동했다. 1955년 이강천이 노경희를 여주인공으로 피아골을 제작하면서 김진규를 일약 주연급으로 등장시켰고 김진규는 첫 데뷔작에서 맡은 역을 완벽하게 해 냈다.
피아골은 1955년의 최대 히트작이 되었고 이강천은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인들에게 준 금룡상 감독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그로부터 김진규는 이강천의 영화에 본격적으로 출연했고 당대 최대스타라고 불리던 조미령, 최은희, 노경희, 윤인자, 문정숙 등의 상대 남자주역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최은희와의 열연은 길이길이 명작으로 남는다. 이 기회에 그 영화를 보실 분들은 보실 수 있도록 아래 그 영화를 연결했다.
아울러 그의 데뷔작이자 노경희 와의 열연작품 「피아골」, 이광수의 명작 「흙」을 영화화 한 작품과, 문정숙과의 작품 「귀로」 등도 연결 했다. 중후하면서도 정감있고 따뜻한 이메이지, 때로는 강인한 이메이지를 심어주며 그의 작품은 늘 대중의 호평을 받았다. 젊은시절에 영화배우 생활을 접는 당시의 현실속에서 연령에 구애 받지 않고 활동이 가능한 날까지 영화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의 대작 난중일기도 54때의 작품이고 그 뒤로도 촬영에 임했다.
「피아골」,「귀로」,「옥단춘 (1956)」, 「사랑(1957)」,「아빠 안녕(1959)」,「이 생명 다 하도록 (1960)」「흙」「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마의 계단)」,「하녀(1960)」, 「오발탄(1961)」,「성춘향(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1961)」「새엄마(1963)」, 「고려장(1963)」,「잉여인간(1964)」,「순교자(1965)」,「벙어리 삼룡(1964)」「추풍령 (1965)」,「유정」,「나도 인간이 되련다(1969)」,「세종대왕(1970)」,「의사 안중근(1972)」 「성웅이순신 (1975)」,「삼포가는 길(1975)」「불꽃(1975)」,「난중일기(1977)」,「호국 팔만대장경(1978)」,「내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1982)」,「가고파(1984)」
영화인 중에서 그 누구보다도 많은 돈을 번 김진규지만 그의 손에는 돈이 없었다. 6.25 와중에서 첫째부인 김민자와 해어진후 35세가 되어 19세의 젊은 후배배우 김보애와 결혼을 해서 1남 3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던 그가 성웅 이순신으로 파산 상황에 이르러 다시 해어지는 아픔을 안았지만 그 둘 사이의 마음은 가까이 있어서 말년을 같이했고 그가 세상을 뜰 때도 함께 있었다.
김보애는 김진규 삶의 얘기를 모아 「내 운명의 별 김진규」 라는 책으로 세상에 내 놓아서 뒷날의 세대에게 그의 기록을 전하고 그 책으로 해서 2009년 조선일보 논픽션 대상을 받았다. 김보애는 2014년 3월 17일 KBS여유만만 프로그램에 출연 김진규와 삶의 얘기 가족사를 털어놓기도 했다. 김보애는 일생동안 영화배우 TV 탤런트로 살아온 만년 연예인이다. 김진규와 김보애 사이에 태어난 김진아는 1983년 스크린에 데뷔했으며 이후 수렁에서 건진 내 딸(1983), 내시(1986), 연산일기(1987) 등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으며 전성기를 누렸다. 2000년 미국인과 결혼한 뒤에는 주로 하와이에서 살았다. 2013년 4월 KBS2 ‘여유만만’에서 남편 케빈과 아들 매튜와의 행복한 하와이 생활을 공개하기도 했고 그 무렵 춘하추동방송 블로그에 댓글을 남기기도 했던 김진아가 2014년 8월 20일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 전해젔다. 안타갑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진규 주연 영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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