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아세아 레코드에서 발매한 나성려(羅星麗)의 노래 “쌍 굴뚝 이별” 노래 한곡을 듣는다. 1939년 태평양 레코드 전속가수가 되어 조경환(曺景煥) 작사, 이재호(李在鎬) 작곡의 "님 찾는 발길"이 취입된 이래 이곳에서 노래를 불러오던 나성녀는 1940년 8월, 박영호(朴英鎬) 작사 이재호 작곡의 이 노래를 발표했다.
가수 나성려(羅星麗) 쌍 굴뚝 이별 박영호 작사(처녀림) 이재호 작곡(무적인)
일본인이 경영하던 태평레코드가 경영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1938년 고려성이라고 불린 작사가 조경환(曺景煥) 은 거금을 투자해서 그 태평레코드를 살리고 문예부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당대의 최고반열에 있던 조명암. 박영호와 함께 노래 가사를 쓰고, 이재호(李在鎬), 전기현등 유명 작곡가들이 곡을 붙여 레코드를 제작했다.
위 사진은 백년설이 1970년대 미국에서 방송에 출연 김영우 아나운서애게 전해준 사진이다. 태평레코드 전속가수가 된 나성려는 백년설, 진방남, 백난아 등 당대 최고의 반열에 있던 가수돌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 분들이 쓰고 곡을 붙인 노래를 불러나갔다. 그로부터 태평레코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까지 전성기를 맡는다. 남양의 눈물, 절연편지, 녹색편지 등 나성녀의 노래 음반이 나올때마다 히트곡이 되었다.
그는 언제부터인지는 확실치 않아도 김해송, 이난영, 장세정, 빅시춘, 남인수 등이 활동하는 OK레코드에서 활동하면서 악극단원으로 만주 등지를 순회공연을 가졌고 해방된후 김해송이 주축이 되어 결성 활동한 KPK주 멤버가 되었다. 머리 광고사진을 보면 1946년 4월 21일자에도 그 이름이 있고 1948년 12월 31일자에도 있다. KPK와 깊은 인연을 맺고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쌍 굴뚝 이별
박영호 작사 이재호 작곡 나성려 노래
명든 졸고 있는 한 많은 부두위에서 마지막 고동소리 가슴이 찢어진다 잘 가란 말 한마디 입속을 감돌아도 안가면 안 될 사람 그 누가 막느냐
쌍 굴뚝 검은 연기 내뿜는 부두에서 마지막 태징소리 가슴이 미어진다 이럴 줄 알었더면 정이나 들지 말것을 정들고 돌아보니 이별이 원수다
깅영우 선생님 글
이 국장 님 덕분에 가수 나성려의
옛노래를 들어보았습니다. 솧직한 말로 나성려의 노래는 처음입니다. 제가 KPK김해송 악단의 쇼를 본것은 국도극장으로 생각 납나다만 계수남 과 윤부길(윤항가-윤복희 어버지) 의
코매디 쇼는 일품이였었지요...또한 희극 배우 이종철의 연기도 대단했자요....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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