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황정순선생님, 1943년부터 방송, 연극, 영화, 뮤지컬과 함께 한 배우

이장춘 2014. 2. 19. 07:16

 

 

 

 

우리시대의 어머니 황정순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시대의 어머니 배우 황정순선생님이

2014년 2월 17일 향년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셨

니다. 이날밤 심야에 방송된 KBS 뉴스 Y에서 별세소식을 상세히

 보도 했습니다. 지금 들으시는 음성은 그 별세소식입니다. 황정순(黃貞順)

선생님은 1925년 8월 20일에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나 1940년부터 동양극장의

 청춘좌에 입단하면서 연극과,   방송극에 출연했고 1943년 "그대와 나" 영화를

시작으로 영화배우가 되었습니다.  47년부터는 서울방송국 전속성우가 되어 드라마

 "청춘행로" 등에 출연,   인기를 얻었고 49년에 이 작품이 장황연 독에  의해 영화화

되면서 영화주연을 맞게 되면서 오랜 기간 영화배우로 활동했는가 하면  텔레비전이

 출연하면서 더 바빠졌습니다. 특히 "꽃 피는 팔도강산"은 1974년 4월부터

 다음해 10월까지 날마다 방송해서 그때까지 드라마 최장수 기록을

새우면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연세 80이 되어서

출연한 뮤지컬 "팔도강산"에출연 이 시대의

 어머니로서 열정을 보여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2006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시고 2007년 7월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셨으며 2012년 제32회 한국영화평론가 협회상

 공로영화인상, 2013년 제50회 대종상영화제

영화발전 공로상을 받으셨습니다.

 

 

 

 

 아래 글은 1982년 11월호
월간 방송에  실린 황정순선생님의

그때까지의 발자취를 더듬어본 KBS홍보실

 길주님의 글을 옮겼습니다.  

 
 



 

 대체로 신연극의 효시는 1908년

원각사에서 공연된 이인직의 은세계로
기록된다. 원로연극인 황졍순은 지금도 국립극단의
일원으로서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15살의 나이로
 동양극장의 전속극단의 하나인 호화선에 입단한 그녀의 일생은

살아있는  한편의 한국 연극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정순은

한마디로 연기생활밖에  모르고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 석 자를 떠 올리면 우선 영원한 모상을 연상시킬

수밖에 없다. 우리가 배우를 보면 작품 속에 허상을

생각하지 않은 수 없지만 황정순은 그만큼

 된장찌개의 전통적인 구수함일까.

 

 

 

 

고향의 풋풋한 흙 내음을 퍼 올리리만치
포근한 어머니 상을 강하게 심어 주었다. 그러나
어려운 작품속의 허상은 그녀의 내면적인 실상과 너무

흡사하게 생활화 되어 왔기 때문에 지금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황정순에게서풍기는 이미지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직업경영을 철저하게 표방했던 동양극장은 당시

회전 무대와 호리존트 시설을 갖춘 우리 나라사람이

 새운 연극 전문관이었는데신파연극이

꽃핀 곳도 바로 여기였다.

 
 

 
  
황정순은 불과 15살의 나이로 신파연극의

중심인 동양극장 전속극단인 호화선에 입단한다.

 호화선은 천춘좌와 함께 서울과 지방, 만주까지 순회공연을

하며 장안의 인기를 독차지했는데이때의 연기진 중에는 박재행,

서월영, 원영, 변기종, 김승호, 한은진,조미령등 낯익은 이름들이

 있다. 황정순의 일생을 보면무대의 여왕에서 은막의 스타로

 은막의 스타에서 지금은 브라운관의 할머니로

 시대에 따른변천과정을 밟아왔다.

 

 

 

 

어쩌면 이런 탈바꿈의 과정은
 각각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도덕성 보다는
시류에 쫓기듯 경황조차 없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하나의 과정이기도 했다. 다만 황정순만은 이런 변천과정에서도
항상 각광을 받는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새삼 강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즉 그녀는 수많은 스타의 명멸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인기의 정상을 누린
선망의 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KBS1TV일일극 보통 사람들
한 작품마저도 힘에 벅찬? 실정이지만 영화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60년대 만 하더라도 말 그대로 주어진 일을
소같이 일한 그런 시기였다.
 

 

 

 

그녀는 영화가 한참 붐을 이룰 때 한 달이면
 닷새정도 집에서 잠을 자는 마지 일벌과 개미 같은 생활을
 해 왔다고 한다. 삼청동에 있는 90평 남짓한 대지위에 아담하게
서있는 2층 양옥, 황정순이 22년 동안 살아온, 정이 깊게 들어버린 집이다. 
지금도 집 맞은편에 있는 칠보사의 인경소리를 신호로 새벽 4시면 어김없이

 눈을 뜬다.그러나 새벽잠에서 깨면 마치 소같이 일하던 시절이 생각나고 또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으로서 할 일이 못 되었다고고소를 머금을 때도

있다. 15살의 나이로 동양극장 호화선에 입단했을 무렵은 그녀가

 무성영화를 보며 영화에 심취된 시기이기도 했다. 두 살 위의

오빠와 영화를 보러 다니고 쌍둥이처럼 지낸사촌언니와

함께 호화선에 입단한 것은 어쩌면당시의 상황

으로서는 예삿일일일수도 없었다.

 

 

 

 

 

황정순은 만 45년을 연기자로 생활 해 왔는데
 얼마 전 타계한 복혜숙여사를 떠 올릴 때 그녀는 자신이
아직도 젊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80에 가신분도 70대까지
활동을 하셨는데 내가 무엇인데 사양을 하겠습니까. 황정순은 할머니의

죽음을 몹시 애석 해 했지만그처럼 살다간 연기자의 참 자세에 대해서는

 자신의 일처럼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황정순-- 벌써 그녀의

얼굴에는경륜과 다름없는 긴 주름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일에 임할 때는 식사를 거르고 일이 끝나야 비로소
 소나기 식사를 하는 것은 예나 다름없다.
 

 

 

 

 

바로 이것이 황정순 특유의 일에 대한
옥심일 줄이야. 영화가 한참 붐을 이룰 때 그녀의

별명은탱크 부대였다고 한다. 날마다 지새는 밤샘 촬영도

 아랑곳 하지 않고지칠 줄 모르고 일에 열중하는 연기자였기 때문에

 얻어진 별명이었다.TV드라마 보통 사람들 녹화장에 가보면 대사 외기에

 여념이 없는 그녀의 진지한 모습을 자주 보곤 한다. 그리고 어느 날 극히

일부분이 미흡했다고생각하면 황정순의 심정은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모른다.

열의 없이 성취된 위업이란 이룰 수 없는 법이다, 황정순의 열의와 열심은

지금 이 시간에도 일에 묻혀 살기를 원하는 그 마음가짐을 보면

족히 짐작이 간다. 모처럼 자신의 연기가 잘 되었다고

느껴지면 그처럼 기쁠 수가 없다고 말하는 황정순.
 

 

 

 
여기서 우리는 그녀가 대단한 욕심의

 소유자이고 또 한가지 아직도 변하지 않는 티 없이

 맑은 소녀의 표정을발견한다. 황정순은 3년 전 드라마

원앙별곡에서 너무 혼이 났기  때문에 이 당시 다시는 일일

 연속극을 안 하겠다고 맹세(?) 했었다고 한다.그러나 그전처럼

 많은 일을 하고 싶지는 않으나 연기자가연기를 안 하면

슬프고 아픈 것임을 너무잘 아는 사람이었다.

 

 

 

 

다만 1년에 몇 번이라도 주어진 작품을
 완벽하게 처리하고 싶고 만약 이런 기대가 70%
가량만이라도 이루어진다면 그저 기쁠 뿐이라는 것이다.
만약 맥아더에 출연한 영국의 명배우 로렌스 올리비에가
 10년만 젊은 나이에 출연 했더라면 안 좋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그런 실수는 하지 않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하는 원로배우 황정순, 어쩌면
 말없이 찾아온 자신의 나이를 의식하는 것은 아닐지-- 영국에서 경의
작위를 내릴 만큼 명연기자로 소문난 로렌스 올리비에도 나이에는
어쩔 수없이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는 자연의 섭리.
정순의 연기생활은 올해로 45년이 된다.
 

 

 
 
영화배우를 꿈꾸었지만 시작은 연극이었다.
그녀는 이해랑, 김동원씨등과 함께 명연기를 보여주었고
무대의 여왕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이런 영광의 뒤에는 지칠 줄
모르는 열의와 부단한 자신에 대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황정순은 연기자란 나이가 없는 것이라고 영원한
 연기자의 자세를 보이면서 초연히 살아가는 사람이다.
 
굴곡 없는 영광의 히로인으로서 추억이 많지만
황정순의 나이는 이팔청춘. 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출연한 연극 무대는 색스피어의 4대 비극을 비롯해서
 100여 편이다. 영화역시 일제 때 그대와 나라는 영화에서
단역으로 출연한 기록도 있지만 50년대 당시 최고의
 금액으로 스카우트돼 출연한 촌색시를 위시해
수많은 작품이 있다.
 

 

 

 

황정순의 응접실에 있는 즐비란
각종 트로피를 보면 40여개의 연극, 영화, TV와 함께
 살아온 60평생을 짐작하게 해 준다. 그 수많은 트로피와
 상장은 모두 황정순의 분신들이고 추억의 지욱들이기도 하다.
 황정순은 한 마디로 어느 상황에서든 최선을 다 해서 살아온 사람이다.
그녀가 45년을 살아온 연기자의 자세도 그렇거니와 가정을
지켜온 여성의 입장에서도 역시 최선은 그녀의
 최대의 무기 노릇을 하였다.
 
황정순은 만인의 사랑을 받는 은박의
여왕이었으나 대신 이렇게 많은 사람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되돌려 줄 줄 아는 깊은 심성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촬영 때 우연이 정신박약아를 보고 호주머니를
몽땅 털었던 일이 있다. 지금도 황정순은 정신박약아를 돕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녀가 사랑을 되돌리는
작업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대종상, 여우주연상, 제 1회 청룡상,
주연여우상(영화 혈맥) 한국평론가 협회의 최우수

여우상 (57년 영화사랑) 서울특별시 문화상 등등 그녀에게는

찬란한 경력을간직하고 있다.(위 사진은 1968년 대종상 시상식에서

 김진규, 엄앵란등 연예인과 함께한 사진입니다.) 그러나 주어진 일을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황정순은 그녀가 신파극에 데뷔한

 15살 때의 욕심과 다를 바 없다.    황정순 확실히 그녀는

 은막의 여왕에서 지금은  인자한 모상으로 탈바꿈

하였지만 예술만을 위해서 살아온 안 되는

연기자중의 한사람이다. 

 

 

 

 

1947년 KBS전속성우로 방송과

인연을 맺은 이래 주요 방송 프로그램에서

님의 목소리가 들렸고 1974년부터 1년 반 동안에 걸쳐

날마다 방송되던 꽃피는 팔도강산에서 전성기를 이루었습니다.

연극인,   영화인이 방송에 출연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황정순의 출연은 잦았고 청취자, 또는

시청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1971년, 영화 팔도강산 시리즈로 신범식 문화공보부 장관으로 부터 공로패를 받는 황정순과 김희갑

 

 

과천 옥탁선생님 글

  

역시 선생님이십니다.
황정순 선생님의 삶을 이토록 세세하게

 소개해주신 선생님께 황선생님께서 천상에서 좋아하실

것 입니다. 60년대 제가 어렸을때 제 고향 산청에는 여름에 이동영화

차가와서 밤에 학교 운동장에 영사막을 설치하고 월남전 소식등 대한뉴우스 와
지금 생각하면 박서방 팔도강산등을 상영했는 데 그날이 되면 사람들이 20리 30리 떨어진 

  산동네서도 일찌감치 저녁을 들고 학교 운동장으로 구름같이 모여들었고 바로 학교앞에 집이

 있었던 저도 친구들과 돗자리 깔고 정신을 놓고 보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뒤에선

어르신들의 막걸리 잔치가 열리곤 했지요 소중한 자료 스크랩해가면서 감사

드리며 화사한 봄날 더욱 강건하시고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우리시대의 푸근한 어머니이셨던

 황정순 여사께서도 충실했던 삶을 뒤로하고,

숫한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까지를 통해서도, 실제로

자신을 생활을 통해서도모두에게 본이 되신 모습을

뒤로한채 그렇게 영면을 하셨군요. 인자한 미소를

 영원히 남기신채로.............. 저세상에서

편히 쉬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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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순 별세 KBS 뉴스Y.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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