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우회·독립운동

물망비(勿忘碑)와 단파방송 독립운동 小考 / 벽산 우제탁

이장춘 2013. 10. 1. 17:11

 

 

이 글은 일제강점기 항일 단파방송

 독립운동에 관해서 벽산 우제탁님이 보내온

글입니다. 우제탁님은 1952년 방송국에 들어오셔서 일생을

방송과 함께 헤 오셨고 1991년 물망비 건립에 참여해서 물망비 題字를

쓰시는 등 활동을 하셨습니다. 지금은 중진 서예가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물망비란 일제강점기 해외에서 들려오는 단파방송을 듣고 그 소식을 통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350여명의 인사가 채포되고 70여명이 형을 받았으며

6명이 옥사한 그 일을 기리기 위해 KBS 1층 옥상에 세운 기념비를 말합

니다. 이 글은 2013년 9월 27일 실시한 물망비 앞에서의 항일 단파

방송연락운동 기념식에 참석하고 쓴 소고입니다.

 

 

물망비(勿忘碑)와 단파방송 독립운동 小考 / 벽산 우제탁 

 

 

우제탁님이 쓴 물망비 제자

 

 


가) 그 옛날 우리의 방송현실

 

 

 우리는 1960년도 까지만 해도,

방송현실이 너무나 열악,,,원시적인 모습?

그것 이였다, 대도시에서만이 소 전력의 중파방송 이였고,

지금의 단파방송,,,수신은 지방방송국 중계용으로 한정된 송신,

수신을 하고 있었다, 당시는 외국에서의 수입품인 단파수신기는

 겨우 1대씩 소유하고 있었고, 중파 라디오도 극히 한정,,,

일반보급이 급선무 였다, 시실 오늘에 우리의

 방송현실하고는 나무나 격세감이,,,,

 

 

 나) 단파수신기 침략, 일제는

 

 

단파방송 수신을 할 수 없도록 강력통제

했고, 그 수신기 소유 자체가 법적으로 규제 되었던 것,

그러던 중 1942년대 ?,, 정동 방송국 기술과 조정실 중계용

단파수신기 조작 중 우연히 듣게 된 한국어 방송이,,, “ 여기는

미국입니다, 이는 자유의 소리요 희망에 소리입니다, 일본은

전쟁에 패할 것이고, 우리 한국은 독립 될 것입니다.

 일본에 협조하지 마시오, 이를 여러 동포들에게

 알리시오 ” 이라는 한국어 방송,,,

 

 

다) 비밀은 없다 의외의 놀라운 방송

 

  

을 듣게 된 기술계 직원,,,이를 동료에게 은밀히

이야기,,,친지에게 귓속 말로 이야기 한 것, 그리고

 애국지사에게도 비밀히 알려주다가,,,이 사실이 일본경찰의

 감시망에 걸려 한국 방송인 대 비극은 시작된 것,,,,그만치 350여명이

  경찰에 구금,,,혹독한 고문,,,,결국 6명이 사망,,,그리고 형무소에,,,,8,15 해방

으로 서대문 형무소에 풀려나고,,,,,, 우리는 이를 어떻게 잊을 수가?,,,도리 켜

보면,,,해외 미국에서 구국운동을 하던 이승만 박사가 “미국의 소리” 단파방송을

 통해서 고국 한국 사람들에게 전하는 방송 이였는데, 사실 본 방송은

표준방송 중파로서는 전파전파기능상 불가능하고, 오직

단파방송만이 원거리 전파될 수 있는

 것이기에 단파방송 이였던 것,

 

그런 사유로 당시 침략 일본제국주의는

한국에서 단파방송 수신을 통제,,,범죄로 처리,,,

단파수신기의 소유조차 강력 통제 힌 사유가,,, 당시 한국의

 중앙방송국격인 서울정동은 jodk 란 호출부호로서 일본방송을

하게 되었던 것, 당기술부 조정실에는 단파수신기가 있어, 기술인들이

우연히 단파수신기 조작 중 한국어 방송이 들려온 것에 호기심을,,,의외의

놀라운 내용,,,본내용을 듣고는 모른 척,,,기피 했던 사람은 본 사건에

모면 되었지만, 많은 사람,,,,방송국직원외의 독립인사 둥 외부인도 

본 내용을 듣고 알게 되었던 사람들 350여명의 희생,,,,

 

 

라) 과거 역사를 무시하면 내일이 없다.

 

 

 잊을 수 없는 일제치하의 사연들,,,,사실 전술한 내용이

 잊어지고 있었다고 보여 지는데, 1990년 방송원로 “유병은” 님이

 대전 정부보전문서 보관창고를 찾아가서 1940년대 일본어로 된 그 방대한

수사기록전부 복사(본 사본은 kbs 벅물관 준비관련부서 보관) 열람,,, “단파방송연락

운동” 의 실체의 책자발간 했던 것,,,,그런데 당시 본 책자를 힘들게 발간은 했지만, 당시

주변에서 방관? 했던 것으로 보여 진다, 그레서 언론인 모임인 관훈크럽에 가서 강연,,,kbs의

협조 요청등,,,그다다가 방송인 방우회 ( 회장 문시형 ) 등 지원에 따른 물망비(勿忘碑)를

kbs 본관 앞에 건립하기로 했는데, 소요자금 조달이 될 수 없었으니,,,,결국 1991년

어렵게 건립,,,, 그레서 “글 극작가 유호,,,제작 조각가 최만린 교수,,, 글씨 서예가

우제탁,,, ” 이란 이름으로 건립,,, 매년 9월에 기념 헹사를,,,,, 그런데

본 기념비 관리 기념행사를 “방우회” 에서 주관하고 있는데 모든

사람이 하는 말,,,,이는 kbs 에서 주관 관리해야 된다는

중론,,,, 특히 우리들 방송인들이 잊을 수 없는

본 역사적인 기념물에 대한 합리적인

 대처가 요망 된다,

 

 

2013, 10, 1, 우 제 탁


  

 

물망비 글을 기자에게 설명하고 있는 우제탁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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