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헐버트박사 (Hulbert,H.B.) 독립운동과 한글전용 사민필지

이장춘 2013. 8. 14. 12:51

 

 

 

외국인으로 그토록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한글 보급을

위해 한국인보다 더 힘을 기울였던 헐버트박사! 그의

이름 앞에는 최초라는 여러 수식어들이 있다.

 

최초의 한글교과서 사회지리 총서를 출간한 사람,

최초로 아리랑을 외국에 알린 사람.

대한민국 황제의 밀서를 최초로 미국 대통령에게 전하려고 한 외국인,

 

사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진 최초의 외국인,

최초로 건국훈장을 받은 외국인 독립운동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부터 묘비명을 받은 최초의 외국인,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최초의 외국인,

 

한국 이름으로 흘법(訖法), 할보(轄甫라고도 불리는 헐버트 박사의

양화진 묘비에는 한글로 다음 글이 쓰여있다.

 

오랜세월 비워두었던 「헐버트박사의 묘.」라는

묘비문은 1,999년 김대중대통령 친필휘호로 채웠다.

 

 

묘비에 있는 글자와 띄어쓰기를 그대로 옮겨 쓴다.

 

 

천팔백육십삼년일월이십육일 미국에서탄생

천구백사십구년팔월오일 서울에서별세

선각자요 한국의 친우인

 

헐버트박사의 묘.

 

나는윈스턴민스터성당보다도

한국땅에 뭍히기를 원하노라.

단기사천이백팔십이년팔월십일일

헐벝박사장의위원회세움

 

위 묘비 곁에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고 자신의 조국보다 한국을 위해 더

헌신했던 빅토리아 풍의 신사 헐버트박사

(Homer B. Hulbert) 이곳에 잠들다.

 

1999년 8월 5일 50주기에

헐버트박사 기념 사업회 세움 ”

 

오석에 새겨진 글이 있다.

 

 

헐버트박사 (Hulbert,H.B.)의 독립운동과 한글전용 사민필지

 

 

 

 

1863년 1월 26일 미국 버몬트 주에서

아버지 칼빈 헐버트 목사와 어머니 메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헐버트(Homer B. Hulbert) 박사가 우리

나라에 처음 온 것은 의 1886년의 일이다. 아펜젤러(아펜셀러),

언더우드(원더우드)박사가 우리나라에 발을 들여 놓았던 그 다음해다.

이때 육영공원(育英公院) 교사로 취임한 헐버트는 조선에 알파벳보다도

쓰기쉽고 알기쉬운  한글이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4일 만에

그토록 우수한 한글이 있음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난 1890년에 출간된

한글전용 교과서가 사민필지다(士民必知). 세계의

지리지식과 문화를 소개하는 최초의 한글로 된 교과서이자

지리총서다. 세계를 모르는 한국인들에게 세계를 알리고

 한국을 모르는 세계인들에게 한국을 알린 책이다.

 

한글 본 목차는 제1장 지구, 제2장

유럽주, 제3장 아시아주, 제4장 아메리카주,

제5장 아프리카주로 되어 있고, 총론에서는 태양계와

현상, 지구의 모습, 기후, 인력, 일월식, 그 밖의 지구상의 현상,

대륙과 해양,  인종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사민필지는

서울 정동에 있는 배재학당 기념관에 비치되어있다. 헐버트는

 조선에서 그 우수한 한글이 사용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종황제가 그 뜻을 받아드렸지만 일시에 한글만을

한다는 것이 어려워 한글, 한문 혼용을 택했다.

오늘 들으신 음성은 헐버트 청년모임 발대식

에서 채택한 대 국민 호소문이다. 

 

 

 

 

헐버트는 1896년 서재필박사가 독립신문을 발간 할 때

도움을 주었고 독립신문은 순 한글로 된 최초의 신문이었다.

선교사로 교육자로 활동한 헐버트는 동대문 교회 담임목사를 재냈고

 1897년 한성사범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1902년 관립중학교 (현 경기 중

고등학교전신)교관을 지냈다. 1903년 YMCA를 창립하면서 그 의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05년 “한국사”와 1906년 “대한제국 멸망사”를

출간하기도 한 헐버트는 명성황후의 시해 등 일본제국의

침략행위가 노골화 되는 것을 보고 일제침략을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고종황제를 도왔다.

 

청일전쟁, 노일전쟁의 승리와 명성황후

시해 등으로 이어지면서 2005년 을사보호조약이라고도

하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고종은 헐버트를 통해서 을사늑약의

 무효를 호소한 밀서를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코저 했으며 헐버트는

1907년 네덜란드 해아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해서 외교적

 활동을 해야 된다는 점을 역설해서 이준, 이위종, 이상설을 고종황제의 특사로

파견했고 본인도 특사가 되어 평화회의가 열리기 전 현지에 도착 일본침략행위의

부당성을 역설했다. 이 일로 고종황제가 강제로 황제자리를 물러나면서

 헐버트도 대한민국을 떠나지 않으면 않되었다. 1909년 돌아

왔지만 잠시 머물다가 다시 본국으로 돌아갔다.

 

 

 

 

 얼마 안 있어 조선 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없어 졌자먼 헐버트 머릿속에는 늘 조선이 있었고

대한민국과 함께했다. 미국에서 각계 인사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각종 회의에서 일제 침략을 규탄했으며 3.1운동 직후 미국 상원

외교관계위원회에 일본 잔학상을 고발하는 진술서를 제출

하기도 했다. 1945년 8월 15일 그의 생전에 그토록

 원하던 대한민국 광복의 날이 왔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헐버트를 대한민국에 초청해서 1949년 7월 29일

 40년 만에 독립된 대한민국 땅을 밟았지만 87세(우리나이)의

노령에 장거리 여행으로 병을 얻어 일주일 만에 대한민국 서울 청량리

위생병원에서 세상을 떴다. 한국인 보다도 한국을 사랑하고, 한글을 사랑

하고, 한국 독립을 위해 힘을 기울였던 헐버트박사가 가시는 길에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대한민국 최초로 치러진 외국인 사회장이다. 그리고

그 다음 해 1950년 3월 1일 3.1절을 기해서 대한민국 최고의

훈장 건국훈장 태극장이 수여되었다.

  

그로부터 헐버트는 오랜 세월 한국인들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그러던 중 1999년 오랜 세월 비워진

헐버트 묘비명이 김대중 대통령 친필휘호로 체워졌고 기념 사업회가

설립되어 그의 정신을 이어받으며 널리 알리고 있다. 2013년 올해는 국가

보훈처에서 실시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는 것을 계기로 헐버트박사의

대한민국사랑정신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사단법인 헐버트박사 기념

사업회(회장 김동진)에서는 헐버트박사 탄신 150주년과 64주기 그리고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것을 기념하는 기념식을 2013년 8월

12일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안에 있는 백주년

선교기념관에서 열었다.

 

 

 

 

 

 

미국에서 증손자인 킴벌 헐버트

(Kimball A. Hulbert)씨가 참석한 가운데

 기념 사업회 관계자들과 광복회 박유철회장 , 3.1동지회

이화옥 회장 등 독립단체 관계자들, 그리고 안철수 의원과 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처장, 박홍섭 마포구청장 등이 참여 한 가운데 성대히 열렸다.

국내외 유수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이 주축이 되는 ‘헐버트를 사랑하는 청년모임

(Hulbert Global Youth Network)’ 발대식이 있었고 한글을 사랑하고 사용하자는

 취지의 선언문도 채책되었으며 헐버트박사가 최초로 외국에 소개한 문경

아리랑을 전수한 송옥자씨의 아리랑 감상회도 있었다. 증손자인

킴벌 헐버트(Kimball A. Hulbert)씨에 대한

 감사패가 전달되었다.

 

 

문경새재 아라랑 전수자 송옥자님의 아리랑 열창

헐버트박사는 문경새재 아리랑을 최초로 외국에 소개했다.

 

 

 

 

 

 

 

서울 마포 양화진에 있는 외국인 묘역의

앞 중앙에 헐버트 묘가 있다.  "나는 윈스턴민스터

성당보다도 한국땅에 뭍히기를 원하노라". 라는 헐버트박사의

 유언에 따라 여기에 안장된 것이다. 묘에는 “독립 유공자 묘”

라는 표지석이 있고 묘비가 있으며 그의 간단한

생애가 쓰인 표지판이 서 있다.

 

 

 

 

 

 

헐버트박사를 설명하는 기념사업회 김동진회장

 

 

헐버트의 증손자 킴벌 헐버트와

김동진 기념사업회 회장, 이화옥 3.1동지회

 회장이 함께 한 사진이다. 아래 글은 유카리나

유경환 여사님이 남긴 댓글입니다.

 

자신의 뼈를 한국 땅에 몯고싶을만큼

한국을 사랑하였던 분이시군요. 그 한국사랑이

 마음과 생각을 넘어 평생을 한국사랑을 위해서 헌신

하신분, 늦게나마 우리의 대통령께서 그분께 묘비명을 친필

휘호로 내리고 고마움을 표하셔서 다행입니다. 이분을

 기리는 기념사업회가 영원히 그 뜻을 기리고

 알리는 일이 시들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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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옥자 문경새재 아리랑 전수자, 헐버트 추모 행사장 공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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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드라마 촬영장 옛길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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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사우회 2013 문화재 탐방 문경새재 도자기 전시관, 전통공예관, 유교문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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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 청년발대식 호소문.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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