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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의 최초 생방송 뉴스, 이정석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이장춘 2013. 5. 15. 12:22

 

 

 

이 글은 고 이정석기자가 2001년에

"대한 언론인회"에서 발간한 "한국 언론사"에

실린 내용입니다. 이정석기자는 1954년 조선일보에

입사해서 동아일보사 방송뉴스부장을 거쳐 별정직 국가

공무원 2급 을로 보직된 KBS 보도부장, 올림픽방송본부장,

 기획조정실장을 지내셨고 대한 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하셨

습니다. 이 글은 1972년 KBS보도부장 재직시 제1차

남북 적십자회담 방송사를 대표한 취재기자로

 평양파견되었을 때 얘기를 쓴 글입니다.

 

 

평양에서의 최초 생방송 뉴스, 이정석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남북이 분단된 지 27년만인

1972년 8월 310일부터 9월 2일까지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다.

 남한 언론기관은 20명의 취재 및 사진기자로

 “대한민국 신문. 통신 공동취재단을 구성했다.

방송요원은 신문, 통신 취재기자 몫으로

 4명을 추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 방송의 영향력이나 중요성은

오늘날과는 차이가 있던 시절이었다. 4명의

 방송요원은, 방송기자에 내가 뽑혔고, 카메라맨

김광남(KBS) 고명철(MBC), 현지중계 엔지니어 박상수

등이었다. 남측 적십자 대표단은 8월 29일 아침 7시 남산의

 한국 적십자사 본부를 떠나 연도 시민들의 뜨거운 환송 태극기

물결 속을 뚫고 판문점에 도착했다. 판문점에서 북측이 제공한

 벤츠 승용차에 올라 평양을 향해 북상 3시간 만에 평양교외의

 일제시대 군용 비행장이었던 문수 초대소에 도착 여장을

풀었다. 그날 (8월 29일) 저녁 나는 박상수 엔지니어가

서울에서 가지고 간 중계 장비 설치와 시험통화가

성공하기를 초조히 기다리다 OK큐 사인이

 나자 평양에서 제1성을 보냈다.

 

일생일대의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지금 평양에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

대표단 일행은 무사히 평양에 도착해 평양교외의

문수초대소에서 여장을 풀고 내일 대동강 회관ㅇ서 열릴

역사적인 남북 적십자 회단 제1차 회의의 개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분단 27년 만에 남한 기자로서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생방송을 한 방송인으로 기록되었다.

 

내가 평양에서 보낸 리포트와 녹음 물은

모두 전화선으로 서울 KBS로 전송되었으며 MBC,

TBC, DBS, CBS 등에도 제공되었다. TV의 경우 하루

두 차례 서울로 보내지는 행낭 편으로 평양 현지 취재 필름이

 서울로 보내져 이를 현상하고 복사해 각 TV사에 제공하는 복잡한

수고로움이 더해졌다. 8월 31일 조선 민주당이 남측적십자 대표단을

 위해 오찬을 베풀기로 했는데 우리기자들은 회담장 밖 길가에서

 이범석 우리 측 수석대표를 기다리며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남측기자단의 정도현(鄭道賢-신아일보 편집국장)

기자가 멀찌감치 서 있는 북측요원을 가리키며 강량욱 목사라고

귀띔해 주었다. 강목사는 김일성 주석의 외숙이며 조국통일 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의장단 조선민주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북한에서 실력자였다.

정도현기자는 고향인 평양에서 강목사를 〮본적이 있기 때문에 그를 쉽게

 알아 볼 수 있다고 했다.나는 녹음기를 들고 강목사에게 다가가

다음과 같은 일문일답을 녹취하는데 성공했다.

 

-강량욱 목사이시지요.

 

:네 그렇습니다.

 

-남측에서 온 기자입니다.

 우리 일행이 판문점에서 평양에 오기

까지 그리고 평양시내에서도 교회가 눈에

 띄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6.25전쟁 때 미군 폭격으로 다 부서졌습니다.

 

-강선생은 목사일도 보십니까?

 

:....(예상치 않은 질문이어서인지 말이없다.)

 

-북한에 지금 기독교인이 있는지요?

:지방에는 있습니다.

 

-성경책은 부족함이 없는지요.

:많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집에서 예배를 보시며 기도를 하시는지요.

: “집에서 아침과 저녁에 기도합니다.”

 

이날 강양욱 목사와의 인터뷰 내용이

서울에서 방송되자, 특히 서방측 기독교 국가

들은 공산주의 북한에 기독교가 존재 하느냐에

관심이 많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나의 인터뷰

 내용이 서방신문에 대서특필 되고 북한

기독교 돕기 운동이 싹트는 듯 했다.

 

 

이정석 선생님에 관한 얘기를 더 보시려면

아래 영문자 주소를 클릭하셔요.

 

언론인 이정석과 방송인 명예의 전당

 http://blog.daum.net/jc21th/17780028

 

일생을 방송,언론인으로 산 이정석님

http://blog.daum.net/jc21th/17780747

 

언론인 曉巖 이정석 선생님 삶의 행적을 더듬어

http://blog.daum.net/jc21th/17780743

 

언론인 고 효암 이정석 선생님 추모문집 출판기념회

http://blog.daum.net/jc21th/17780373

  

 

 2001년 KBS교향악단 평양공연때

KBS시청자 위원장이었던 이정석, KBS

이사였던 송재극, 전응덕님이 평양을 방문,

교향악단 공연 관람모습입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우리의 소원은 통일 합성.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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