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5대궁 중의 하나 경희궁! 조선 15대 왕이 된 광해군이 왕권을 지키기 위해 어린 영창대군에게 죄를 씌워 살해하고 또 선조의 아들 정원군이 살고 있던 터에서 왕이 날것이라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그 터를 빼앗아 세운 궁전이 바로 경덕궁(慶德宮)으로 오늘의 사적 제271호로 보존되고 있는 경희궁(慶熙宮) 이다. 경희궁이라는 이름은 영조 36년에 바뀌었다.
경희궁(경덕궁), 조선왕조 5대궁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광해군의 왕권을 지키기 위한 집념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폭정과 당파싸움으로 인조반정이 일어나 옥좌에서 물러나야만해서 정작 경덕궁의 역사는 인조로부터 시작되어 갖가지 사연을 않으며 오늘까지 이어온다. 인조 즉위 후에 창덕궁이 불타고 이괄(李适)의 난(亂)으로 창경궁도 불타면서 이곳 경덕궁으로 이어했다. 이곳에서 제19대왕 숙종이 탄생하고 20대 경종, 22대 정조, 24대 헌종이 즉위했는가 하면 숙종, 21대 영조, 23대 순조가 이곳에서 승하했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타고 없던 시절 경덕궁이 잘 활용된 것이다.
조선 왕권이 무너지면서 경희궁도 사라지고 그 터에는 1910년 총독부 중학교가 들어서 일본인 학교 경성중학교가 되었다. 궁은 헐리고 건축물은 여기 저기 팔려 나갔다. 해방되어 일본인 학교는 사라지고 서울 고등학교가 되었다가 1973년대 강남으로 옮기면서 현대건설소유가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경희궁은 다시 빛을 보았지만 7만평이나 되는 옛터를 다 돌이킬 수는 없게 되었다.
경희궁의 정전 숭정전은 동국대학교에 있어서 돌아오기 어려운 상황이라 새로 지었고 경희궁의 정문 흥화문은 장춘단 공원에 세운 더러운 이름의 박문사 정문으로 되어 경춘문(慶春門)으로 불리는 등 수난을 겪다가 경희궁 정문으로 다시 왔지만 옛날의 그 자리는 아니다.
경희궁 경내에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울 역사박물관이 세워져 두 곳을 오가며 관람한다. 필자가 이 경희궁을 들려 사진을 촬영한 것은 2011년 8월의 일이지만 오늘에야 이 글을 올리게 되었다. 역사의 현장을 지켜본 고목이 인상적이다. 수령을 알아보려고 했지만 정확한 자료가 없어서 그대로 두었다.나무 밑에 크게 뚫린 구명이 희한한 모습이어서 이곳을 지나는 사람이면 그 구명에 눈길을 끈다.
사진으로 보는 경희궁의 역사 Gyeonghuigung Palace , 慶熙宮 사적 271호 위.아래 도면 경희궁 홈페이지에서 광해군이 경희궁을 세울 때의 이름은 경덕궁이라 했고 숭정전 (崇政殿), 융복전(隆福殿), 집경당(集慶堂) 흥정당(興政堂),회상전(會祥殿), 흥화문(興化門) 등의 여러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순조 29, 1829년 화재로 대부분이 소실(燒失)되어 1831년 중건, 한일합방되던 때 숭정전,회 상전, 흥정당, 흥화문, 황학정이 있었다. 숭정전은 일제강점기 1926년 남산기슭의 조계사로 옮겨졌다가 1976년 현재의 위치 동국대학교 구내로 이전되어 정강원이라는 법당으로 되어있다. 필자가 처음 그곳을 찾았을때는 공사중이어서 촬영은 할 수 없었지만 2019년 초이곳을 찾아 사진을 촬영해서 글을 올렸다. 흥정당은 1928년 광운사(光雲寺)로 옮겼으며, 흥화문은 1832년 장충단 공원(지금의 신라호텔 터)에 이등박문의 사당박문사(博文寺)를 지으면서 그곳으로 옮겨 경춘문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해방후 정부가 이곳에 영빈관을 지으면서 정문으로 사용되다가 1988년 경희궁을 복원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옮겨졌다. 이곳에 있던 확학정은 1922년 사직단(社稷壇) 뒤 등과정(登科亭) 터로 옮겨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동국대학교로 옮겨진 숭전전은 되돌아오기 어려워 새로 복원한것이다. 흥화문의 옛모습(도로 나기전) 1. 새문안교회, 2.구세군회관 3. 경복궁, 4.경희궁 터 (새문안 교회 소장) 도로가 난 후의 흥화문 1930년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박문사 정문의 경춘문(흥화문) 1932년 박문사 정문으로 옮김 경희궁과 숭정전의 옛 모습 경희궁과 경운궁을 연결하는 홍교 사직단 뒤에 있는 확학정(활터) 경성중학교 시절 경희궁 터에 들어선 경성중학교 지금의 서울고등학교 경성중학교 낙성기념 엽서 경성중학교 수영장 오늘날의 경희궁
참고자료
경희궁에 관한 글을 써 올린 것으로 조선왕조 5대궁 이야기를 나름대로 다 썼습니다. 계속 수정 보완 할 것입니다. 그동안 쓴 글은 영문자 주소를 클릭 하셔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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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방송 이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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