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은 우리나라 방송사에 의미 있는 해로 받아드려집니다. 정동방송국 연주소가 6.25로 완전 잿더미가 된 이래 사무실을 개조해서 임시 연주소로 활용되면서 제대로 된 공개방송 하나도 하지 못하던 환경 속에서 어려움을 겪다가 남산에 새로운 현대식 사옥이 마련되어 이해 12월 18일 준공식을 갖고 19년간의 남산방송시대를 열었고 태평로 지금의 프레스센터자리에 있던 대한 공론사 3층에 7월 23일부터 문을 연 훌륭한 공개홀을 마련해서 중요한 공개방송을 이곳에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방송은 아니지만 미군을 위한 텔레비전방송국 AFKN이 이해 9월 15일부터 문을 열었습니다. 비록 미군 방송이라 해도 우리나라 TV방송이변변치 않던 시절에 우리국민들이 그 방송을 시청했고 초기 수상기 보급에도 기여했습니다.
남산방송국 개국과 1957년 그때의 방송
남산 신사옥 준공 동영상
이 동영상은 한국정책방송원 KTV에서 받아 올렸습니다. KTV에 고마운 말씀을 함께 전합니다. 동영상을 보시기 전에 음향을 먼저 끄셔요.
남산 신사옥이 준공되면서 1953년 서울 환도후 직제 개편과 힘께 실시되었던 서울 지방방송국이 「서울 중앙방송국」으로 바뀌면서 방송과를 제1방송과와 제2방송과로 나누어 제1방송과장에 윤길구과장이 유임되고, 제2방송과장에는 김서봉 대전방송국장 이 전보 발령되었습니다. 개국특집 공개방송 특별 음악회에서 극동 순회 연주 중이었던 세계적으로 저명한 하프 연주자 「아서 로라」와 플루트 주자(奏者) 「에드워드 비토」 특별연주를 가져 역사적인 기쁨을 더 했습니다.
이어서 12월 19일부터 25일까지 일주일간에 걸쳐 날마다 저녘 7시 반부터 9시까지 특집공개방송으로 진행된 방송예술제가 있어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19일에 방송된 「노래의 30년」은 흘러간 옛 노래, 기억에 새로운 노래, 우렁찬 건설을 노래하는 새 가요 등으로 노래와 경음악으로 엮은 노래와 경음악의 30년사가 방송되어 가요계의 톱 싱거들이 총출연했습니다. 이때 활약한 가수들은 남인수, 이난영, 현인, 신세영, 고운봉, 남일해 등을 비롯해서 KBS전속가수 출신 송민도, 원방현, 금사향, 권혜경, 명국환, 박경원, 안다성, 김정애 등이 활동했고 숙자, 민자, 애자로 구성된 트리오 김 시스터즈와 그해 전속가수로 뽑힌 박재란이 혜성같이 나타나 가요계의 선풍을 일으켰습니다.
20일에 방송된 「국악의 밤」에서는 8도민요, 기악연주, 만담 등으로 엮은 국악무대가 방송되었고 21일의 「유머 즉흥극장」은 유모어 소극장과 인기프로그램 스타난생을 단대묶어 웃음보따리와 아마추어 스타를 탄생시키는 폭소(爆笑)와 홍소(洪笑)의 한시간 반22일의 「국악 경연대회」는 전국에서 모여든 국악인들이 숨은 기와 에를 다하여 다투는 국악 경연의 밤으로 막간에는 명창들의 찬조출연이 있었습니다.23일의 「전국 노래자랑」 은 각 지방방송국 예선에서 뽑아 지방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목청을 내는 노래자랑 전국대회의 준결승전과 결승전으로 이어지고 중간마다 일류 가수들의 특별출연이 있었습니다.24일의 「세개 퀴즈쇼」는 그때 인기리에 방송되던 스무고개, 라디오게임, 누구일 까요. 에경음악의 간주를 섞어서 다채롭게 꾸민 퀴즈 특집이었습니다.
25일의 방송 대 음악회에서는 우리의 기억에서 멀어진 옛 음악인, 현 악단의 중견음악인을 총망라한 양악의 제전으로서 독창, 합창, 기악, 교향악 등 한 시간 반에 걸친 음악의 향연이었습니다. 7월 23일에 개관된 대한공론사 공개홀 개관을 기념하는 특집 음악회에서는 서울방송 전속경음악단, 서울방송합창단, 서울방송 민요연구회 서울방송 교향악단 등의 전속음악단체가 출연하는 대규모의 잔치가 있었습니다. 7월 24일에는 서울운동장에서 인기 째즈 가수 박단마 쇼로 장식된 대규모의 시민 위안의 밤이 있었고 27일에는 실황이 전국에 중계방송 되는 가운데 서울방송 전속가수 공모선발전이 있었습니다. 이때 선발된 박재란은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습니다.7월 31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클래식 뮤직을 레퍼토리로 한 시민위안의 밤이 열리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리던 한 해였습니다.
두 대의 이동방송차가 들어오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라디오 전파가 미치기 어려웠던 지역까지 방송의 혜택을 안겨 주었고 그 이동방송이 끝나고 나서는 포항과 여수에 정착되어 , 포항, 여수 이동방송국이 되었습니다. 단파방송을 활용해서 대 하와이 방송, 대 북미주방송을 개시한 것도 이해 9월 2일의 일이었고 단거리 중계방송차가 들어온 것도 이해 9월 17일로 중계방송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이 해에 방송문화 연구실이 발족되는 등 1957년은 방송사상 바빴던 한해로 기억되는 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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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남산 TV방송국과 송신소, 육성과 영상으로 보는 시설현장
사진으로 본 KBS 정동방송국의 스튜디오와 그때의 방송모습 http://blog.daum.net/jc21th/17780953
남산으로 옮긴 여성아나운서들이 틈을 내어 멋진 포즈를 취했습니다. 윤영중, 김인숙, 문복순, 송영필, 이현숙 아나운서의 모습입니다. 아직도 건강한 모습으로 젊게 사시는 분들입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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