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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영화 제작소와 대한뉴스「대한늬우스」KTV 한국정책방송원

이장춘 2013. 3. 12. 19:19

 

 

TV시청이 일반화되기 전 극장을 찾은

분들이나 시골 공보원 순회영화를 보신 분들은

본 영화가 시작되기 전 대한뉴스나 문화영화가 상영

 되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오랜 세월 그 대한뉴스나 문화

영화를 만들어 내던 곳이 국립영화제작소이고 1990년대

 위성방송과 CATV가 보급되면서 1995년, KTV 한국정책

방송원으로 바뀌어 방송을 내 보내고 있습니다. 

 

 

국립영화 제작소와 대한뉴스「대한늬우스」KTV 한국정책방송원

 

 

 

 

 

2013년 3월 KTV 정책방송원으로부터

 「대한민국방송 50년」이란 제목이 붙은 30분간의

귀중한 내용이 담긴 DVD한편을 받았습니다. 1956년

5월 12일 우리나라 최초로 개설된 HLKZ로부터 KTV 정책방송이

 탄생하기까지 우리나라 방송의 현장을 담은 50여 편의 귀중한 사료영상

이었습니다. 방송사의 주축을 이루는 KBS가 생방송으로 하던 때의 방송은 물론

녹음이나 녹화를 하던 때의 방송도 녹음테이프나 필름이 부족하던 때라 자료로

보관된 경우가 거의 없어 늘 자료의 빈곤을 느껴 오던 중 1995년  국립영화

제작소에 있던 영상자료를 복사해서 영상 실록 광복 50년 특집

다큐멘터리 50편을  제작방송하고 그 자료를 보존

하면서 방송에 활용해 왔습니다. 

 

 

 

 

 

KTV 한국정책방송원이 방송을 실시 한 후

방송을 실시하면서 국립영화제작소 시절에 제작 보유한

 영상자료들을 공개하고 또 필요한 분에게는 판매도 해서 유용

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 공개된 영상 자료 가운데 1960년대에

호평을 받으며 상영된 영화 팔도강산을 비롯해서 1954년 미국

 어린이 합창단 순회공연 관련 영상물 등 주옥같은 영상물을

「춘하추동방송」에 연결해서 함께 공유하고 있습니다.

 

 

 

 

KBS가 국립방송일 때는 두 기관이 공보처,

공보실, 공보부, 문화공보부라고 하는 한 울타리 안에

 있었습니다. 방송국 직원과 국립영화 제작소 간에 인사교류도 있고

 또 방송국 아나운서가 대한 뉴스나 문화영화 내레이션을 담당하기도 했습

니다. 광복직후 「조선시보」로 부터 「전진조선보」시절을 거쳐 6.25가

일어나기 전까지 윤용노, 전인국 아나운서 1950년대의 대한뉴스시절 강찬선

 강영숙 아나운서,   1960년대의 박종세 아나운서 1970년대부터 대한뉴스가

끝나던 1994년 말까지 김승한 아나운서는 대한뉴스의 내레이터였습니다. 

지금 들으시는 음성은 1950년대의 인기아나운서 강찬선, 강영숙 아나

운서입니다. KBS직원으로 또는 전속작가로 활동했던 최홍목

(최홍준)님은 1970년부터 대한뉴스가 끝날 때까지 무려

25년간이나 대한뉴스와 문화영화의 해설

글을 집필했습니다. 

 

 

 

 

KTV 정책방송원이 발족한 후에도 KBS인들이

방송에 참여했고 현 KTV 정책방송원 김관상 원장님은

 KBS 기자출신입니다. 필자는 국립영화 제작소나 KTV 한국

정책방송원은 늘 마음속 깊이 자리하는 방송사입니다.

국립영화 제작소 얘기를 더 하겠습니다.

 

TV가 없던 군정청시절 조선시보,

조선전진보 등의 이름으로 그때그때의 뉴스를

영상으로 전해오다가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고 새로운 직제가

 마련되면서 1948년 11월 14일에 공보처 공보국에 현상과(現像課)가

 설치되어「대한전진보」와 문화영화 등을 제작 상영했습니다. 6.25전쟁으로

중단된 기능은 1952년 임시수도  釜山에서 16㎜ 흑백뉴스가 제작 상영되면서

「대한늬우스」1호가 되었습니다. 공보처 또는 공보국 안에 과단위의 기구가 국립

영화제작소로 개편된 것은 5.16직후 1961년 6월의 일이고  이때 소장 아래 

5개 과로 편성되어 기획과 (기획 예산 서무 경리) 제작1과(대한뉴스 제작,

 특보 및 기록영화 제작, 원판 보존) 제작2과(국내홍보영화 제작,

 편집실 운영) 제작3과(해외홍보영화 제작, 녹음, VTR 전환

복사) 현상과(현상 및 인화 영선)로 되었습니다.

 

 

 

 

이무렵 경험과 기술이 축적되어 문화영화와

 기록영화 분야에서 국제영화제에 참가하는 등 활동영역이

넓어져 40여 편의 수상작을 내기도 했습니다. 1960년 제7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기획 상을 받은 “뚝”을 비롯해서 “고려자기”(1977) “한평생”(1979)

 “한국인의 문화유산”(1982) “한국의 매듭”(1985) “열반”(1964) “꽃신”(1979) 등은

 대표적인 우수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제24회 88서울올림픽 공식 다큐멘터리

“손에 손잡고”는 1989에 임권택 감독으로 제작이 완료되어 (120분)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인들에게도 전해진 역작이었습니다. 대한뉴스 2,040호와 국가홍보용

문화영화 2,800여 편 제작을 통해서 우리 문화를 국내외에 알려 왔고

그 필름 원판을 보존하고 있어 우리문화와 기록의 보존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대한뉴스 마지막편을 올렸습니다.

 

 

동영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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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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