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단상

가마골과 6.25전쟁, 용소(龍沼)와 영산강의 시원(始原) 동영상

이장춘 2012. 9. 28. 22:30

 

 

 

가마골이라면 필자에게는 비행기에서

 폭탄이 떨어질 때마다 거대하게 피어오르는

버섯구름을 보던 6.25때의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다.

학교가 불타고 없던 시절이라 야외에서 공부를 하고

있노라면 가마골에서 피어오르는 버섯구름이 눈 안에

들어왔다. 6.25때 퇴로가 막힌 빨치산들과 수많은

 피난민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가마골과 6.25전쟁, 용소(龍沼)와 영산강의 시원(始原) 동영상

 

  

피난민이라고 하지만 공산치하에서

구장, 반장 등 별로 큰 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

또 일부 부녀자들 까지 자의로 간 사람도 있었겠지만, 속아서

또는 끌려서 빨치산 따라 이곳으로 모여 들었다. 8사단, 11사단,

수도사단? 등 군 주력부대가 집중적인 토벌작전을 렸지만 좀처럼

그 뿌리가 뽑히지 않고 양쪽의 사상자는 늘어났다. 구사일생으로 이곳을

 빠져나온 사람도 있었지만 한번 그 골자기에 들어간 사람들은 빨치산과

함께 살아야만 했다. “제무시“ (G.M.C. 트럭을 그렇게 불렀음)라고

 부르던 군 트럭에 채포된 빨치산이나 피란민이 실려가는 모습을

 종종 목격 하기도 했는가 하면 거물 빨치산을 채포해서 

자수 시켰다며 국군과 합류시키고 일반인들과도

얘기를 나누도록 한 적도 있었다.  

 

1955년이 되어서야 소탕작전이 끝났다고

 했고 그간에 있었던 가마골의 얘기는 숱한 화제를

남겨 철 모르던 어린 시절에 호기심을 가지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누가 보아도 미색이 뛰어난 18살 된 동내 처녀가 가마골에

끌려가 그곳에서 빨치산과 함께 생활하다가 전쟁이 끝나 동내로 돌아

왔다. 시집도 안간 그 처녀에게 가마골 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가마골

댁이 어느 날 낫 설은 서울로 갔는데 뒷날 훌륭한 가정주부가 되어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6.25 참전용사로 8사단에

소속되어 복흥 공비토벌에서 공을 세우고 화랑 무공훈장도

받으셨던 노익중님은 오늘날 방우회에서 만나

 그때의 무용담을 들려주신다.

  

그 유명한 가마골이 필자의 동내

가까이 있어서 그 주변은 자주 다녔지만

골짜기에는 2012년 9월 23일에야 처음으로 들릴

기회를 가졌다. 가마골 끝부분에 영산강의 始原 용소가 있고

 그 부근에 가마골 안내 석비가 있어 그 비를 자세히 보니 6.25때

피난민 3,000 여명과 빨치산 전병덕을 사령관으로 한 노령(盧嶺)병단

 1,000여명이 국군에 항전했던 곳으로 1951년 8월 빨치산과 육군 8사단

 소속 445명이 숨지고 800여명의 사상자를 내어 피의 계곡으로 알려진

골자기라는 말이 적혀있다. 이런 가마골이 오늘날에는 관광지,

휴양지, 여름철 피서지가 되었고 훌륭한 등산로 등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가마골을 들어가는 입구나 골자기는

담양군 용면이지만 주변의 산들은 필자의 고향

순창군 복흥, 쌍치, 구림면에 접해있다. 조선시대에 도자기를

굽는 가마터가 있어 가마골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영산강의

시원지에 있는 폭포가 용이 오르는 모습과 흡사 하다고해서 용과

관련한 전설이 있고 용(龍)자를 딴 많은 이름들이 지어졌다.

가마골이 있는 행정구역이 용면이고 용치리라는

마을이 있으며 산 이름이 용추산이고 

안에 용추사라는 절이이다,

 

 

 

 

영산강 발원지가 용소(龍沼)이고 제1용연폭포,

 제2용연폭포가 있다. 산책길에는 용의 상징물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번 여름 폭우와 홍수로 주변의 아스팔트길이 모두

패여 복구공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훌륭한 등산길이 있지만

 시간에 제약을 받았던 필자는 등산은 다음을 기약하고 용소

부근에서 몇 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는

것으로 이번 답사를 마쳤다.

 

영산강의 시원지 용소 부근에는

시원정이 있고 용소를 내려 다 볼 수 있는

 출렁다리가 있다. 용소에 떨어지는 폭포가 큰

것은 아니지만 물줄기 따라 올라가보니 머릿속에

그리던 그 용의 형상을 하며 기기묘묘한 모습으로

바위틈을 흘러내리다가 마지막에 용소로

 떨어지고 있었다.

 

용소는 오랜 세월 땅이 패여 제법

깊은 물이 고여 운치가 있었고 그 가에

“영산강의 始原 龍沼” 라는 석비가 서 있었다. 일행이

정자를 가르치며 "시원한 곳에 있어서 시원정이라 했나보다."

얘기를 해서 농담으로 알아들었더니 실재로 그리 아는 것 같아

 영산강이 이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시원정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설명 해 주었다. 용소폭포의 모습을 다소라도

 실감 있게 보여 드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간단한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동영상, 영산강 시원 가마골 용소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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