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중조, 낙화유수 등 이 나라 최초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영화배우로 활약한 복혜숙님은 또 이 나라 방송이 정식 전파를 발사하기 전 1925년 시험방송시절 12살의 어린 소년 역으로 방송에 출연한 이래 오랜 세월 방송을 해왔습니다. 일생을 방송과 함께 해 오시면서 「방송할머니」라고 불렸던 복혜숙님이 1956년 11월 방송지에 -신노심 불로 (身老心 不老)-라는 부제가 붙은 ◀방송 할머니 변(辯)▶이라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그 시절을 이해하는 좋은 글이고 또 내용도 재미 있어서 전문을 올렸습니다. 듣고계신 음성은 전영우 아나운서 소개맨트와 복혜숙님의 노래 그대 그립다. 입니다.
복혜숙님에 관한 자세한 얘기는 아래 영문자 주소를 클릭하셔서 보실 수 있습니다.
방송할머니 복혜숙님!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배우, 성우 http://blog.daum.net/jc21th/17780442
방송 할머니 복혜숙님의 시험방송 출연 체험기 http://blog.daum.net/jc21th/17780391
강남달, 이정숙이 부른 1927년 낙화유수! 최초의 영화 주제곡 http://blog.daum.net/jc21th/17780586
복혜숙 회고록, 최초의 영화배우, 최초의 방송성우, 방송할머니,
복혜숙 영화 보기 청춘쌍곡선
음악을 면저 끄셔요.
할머니 변(辯) -신노심 불로 (身老心 不老)-
3년 전만 해도 방송국이나 어린이들이 할머니라고 부르면 섣부르게 들리고 서먹한 게 점즉하더니 작년에 첫 손녀를 보고 나서 부터는 격에 맞게 의젓이 할머니 노릇을 잘하게 되었답니다. 집에서나 행길에 지나가거나 방송국엘 가던지 할머니 하면 날 부르는 게지 하고 「오-냐」하고 대답하다가 남의 손주가 정말 자기 할머니를 부르는데 멋 적게 뚱어지 같은 방송 할머니가 대답을 했으니 우수울 일 아녜요. 그래도 나는 「응-난 또 우리 손주가 날 부르는 줄 알았지- 어쩌면 그리도 꼭 같으냐?」하고는 시침을 딱 때고 오느라니까 뒤에서 「저분은 방송 할머니야」하면서 얘길 하길래 달음질 하다시피 와 버렸지요. 그리고 보니 꼼짝없이 할머니지 별수 없게 되었군요.
한국 속담에 「백발이 올까봐 가시성을 쌓았더니 제 미리 알고 지름길로 왔구나」하더니 어느 결에 할머니 소리가 날 부르는 소리로 듣고 거침없이 대답을 하게 되었으니 가시성을 채 쌓치못해 빨리 온 모양이지요. 그렇지만 나도 열여덟, 스물, 서른, 마흔 다 순서대로 떡국 한 그릇씩 먹고 지내왔지 껑충 뛰어서 된 건 아녜요. 처음 시험방송으로 체신부 뒷방에서 포장치고 방송을 할 때는 열두 살 소년 역을 했답니다. 그 다음으로는 열대여섯 소녀 역, 열여덟 열아홉 철없이 달콤한 사랑에도 취하는 연속극 주인공으로 실연당하여 눈물짓고 부모와 사회에서 버림받고 타락하여 세상을 저주하는 비극의 여주인공 가지가지로, 거지에서부터 황후 요부, 효부, 효녀, 열녀, 연예시간을 독차지해서 다 해 보았으니 무었을 바라리오.
슬쩍 넘어가는 줄 모르게 어머니가 되어 버렸어요. 그때는 방송 아주머니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도 이제는 중년 고비가 되었구나. 했지요. 그리고 보니 쓸쓸한 감도 없지 않아 있어요.그러 든 게 팔자가 느러지느라구 방송국에만 가면 딸, 아들, 메누리, 사위, 죽 앉아서 연습을 하노라면 실감이 나고 아주 느긋한 생각이 들어요. 방송극이지만 역시 시어머니 역을 하다가 며느리의 서론 사정 푸념을 들으면서 눈물이 나고 목이 메어 처음에는 실패한 적이 있었어요.
그리구 집에서는 방송을 듣고는 「어이 그 아들, 딸, 메누리 사위, 다 괜찮지만 그 보도 듣도 못하는 누구네 자식인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영감, 영감 하는 게 아무리 연극이지만 듣기 거북 하드라 영감 안 부르면 연극 못하니」하시는 어머님이 또 과부 역을 했다고 펄쩍 뛰시면서 「영감이 어엿하게 있는 사람이 왜 하필 과부 노릇을 해 말만이라도 숭업다 」하시고 문둥이 역을 했다고 그런 징그러운 걸 하려거든 아예 집에 들어오지도 말라고 하시니 어떤 것 골라서만 합니까? 딱한 노릇, 괴로운 노릇, 말썽 많은 노릇으로 넘어가다가 6.25동란까지 치르고 보니 아 할머니가 되어 버렸어요.
그래두 할머니 소리는 듣지만 「늙은이라 할 수 없어」하는 소리를 안 들을려구 부즈런히 다녔답니다. 인제는 방송실에서도 식구가 더 는 셈이지요. 손주가 있으니 한결 더 느긋하고 대견할거 아닙니까? 그래서 나는 항상 하는 말이 「나는 방송국에 오기만 하면 팔자가 저절로 늘어지는 걸」합니다. 그러니 내가 방송할머니가 되었다구 서러울 일도 없구 불만도 없습니다. 다만 내 자신의 부족을 말하자면 나이로나 방송연조로나 또 가정환경으로나 할머니는 분명 할머닌데 방송국 연기자 역량으로 본다면 겨우 중학 중퇴쯤 밖에 안 되는 격이 구요 과실로 친다면 채 익지도 못하고 물러서 떨어진 격이지요. 조금 좀 방송극이라는 게 이렇구나 하구 해 보려다가 그것도 공부와 연구를 도저히 한 것도 아니요 속담에 「문전걸식도 10년이 되면 이름이 난다구」오랫동안 해보니 이름이 날려다가 할머니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할머니 변(辯) -신노심 불로 (身老心 不老)- 복혜숙
1936년 방송 실연대회때 복혜숙님과 함께 출연한 강석연, 신은봉, 김용규, 윤성묘님입니다.
1971년 TBC 인기드라마 아씨에 출연했던 분들이 공로표창을 받고 있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
'기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겪은 방송사 (일제 강점기부터 1958년) - 이서구선생님 회고록 (0) | 2012.04.07 |
---|---|
아나운서 강창선 강찬선(康贊宣) 강창성과 외교관 강경화 (0) | 2012.04.06 |
KBS사가, 37년의 추억이 담긴 그때의 그 사가 2011년 2월까지 부른 김성태 곡 (0) | 2012.04.01 |
노래자랑을 시작 하던 날 1955년 「땡의 유래」김창구님 (0) | 2012.03.21 |
일제 강점기 심훈님이 쓴 조선 영화인 언파레드-1931년- (0) | 2012.03.19 |